소망 말씀(설교 말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로마서 9:1~3)

분당소망교회 2013. 5. 9. 09:54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로마서 9:1~3

 

 

만약 여러분이 누구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지 말만 그렇게 하는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에는 증거가 있습니다. 속된 표현으로 한다면 사랑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내가 그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증표가 있고,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는 반드시 거기에 따르는 아픔이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없다면 내 사랑이 또 다른 사람의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바쳤는지 이것으로 그 사랑이 진인지 위인지 그 진위가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 사랑을 확인하고 싶으셨고, 또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사랑을 믿음의 후예들에게 보여주고도 싶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네 사랑하는 아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나에게 바쳐라.’ 라고 어마어마한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정말로 말도 되지 아니하는 것 같은 요구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두 말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날 이른 아침 아들을 데리고 제사에 필요한 다른 것들을 가지고 출발하였습니다. 제사를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되었다, 그만 되었다, 이제 알았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도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한다고 많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그러나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제가 하나님을 이처럼 사랑합니다.’ 라는 것을 자기 아들 이삭을 내놓음을 통해 보여주었듯이 하나님은 내가 너희들을 이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배 바울은 하나님께 바칠 아들도 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들보다 딸보다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구원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구원을 담보로 하나님께 소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민족, 이스라엘 유대민족의 구원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1-2절)’ 너무나도 아픈 가슴을 가지고 하나님께 소원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끊어져도 좋다고 말합니다.

 

참된 신앙인들 그리고 위대한 신앙인들은 모두 자기 민족을 사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귀찮을 정도로 집요하고 끈질기게 요청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소돔과 고모라성을 용서해주시겠습니까? 그 안에 의인 쉰 명이 있으면 용서해주시겠습니까? 다섯 명을 뺀 마흔 다섯 명, 마흔 명, 서른 명, 스물 명, 열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밉살스러울 정도로 달려 붙어서 요청합니다. 아브라함이 왜 그렇게 하나님께 밉상을 보이면서까지 요청했습니까? 물론 소돔과 고모라성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 소돔과 고모라성에 조카 롯이 있었습니다. 자기 혈족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잠깐 하나님을 만나고 오는 사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마어마하게 화가 나셔서 당장 유대민족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없애버리겠다고 말씀하셨을 때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서서 ‘하나님 저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시옵소서’ 라고 공갈협박을 하였습니다. 유대민족들, 이스라엘 민족들을 멸망시킬 바에는 나도 함께 멸망시켜달라고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덜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자기 멸망이 덜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자기 민족을 구원시키려고 하는 열망을 모세에게서 읽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고 있을 때 보고가 들어옵니다, ‘변방에 있는 그일라 라는 마을이 블레셋의 침공을 받고 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블레셋의 침공을 받게 되면 거기에 있는 모든 이들, 부녀자들까지도 엄청난 어려움을 당할 텐데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당시 다윗은 자기 코가 석자였습니다. 아차 잘못하면 사울에게 잡혀 큰 변을 당할 처지였습니다. 부하들까지도 만류하였고 반대가 거셌습니다. 대장이라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다 그일라 주민들을 구해주었을 때 그 뒤에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이 있을 지까지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일라 주민들은 사울에게 다윗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워낙 악독하고 악랄하게 다윗을 쫓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만일 저들이 고발하지 않으면 사울에게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를 고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다윗은 알면서도 그일라 주민들을 구원해줍니다. 내 백성, 내 민족, 내 형제이고 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당장 내가 힘들고 어렵고 위기가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저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에 다윗은 나섰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평신도 지도자 중에 최고라고 일컬음을 받고 있는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바벨론에 있던 그는 늘 조국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기는 높은 자리에서 모든 좋은 것을 다 누리고 있었습니다.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고 있으면서도 늘 조국과 민족의 소식에 귀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조국의 슬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완전히 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느헤미야는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울면서 음식을 먹지 않으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내 민족 내 나라가 그렇게 된 것이 제가 그리고 내 집이 죄를 지어서입니다.’ 그 모든 것을 자기의 죄로 회개했습니다. 그 정도로 그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조국 재건에 투신했습니다. 왕에게 조국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왕은 너무도 사랑했던 느헤미야이기에 그냥 보내지 못하고 유다의 총독으로 발령을 냈습니다.

 

드디어 조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막상 가서 보니 동족들의 사는 모습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는 월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자기 월급이 백성들의 세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총독은 월급을 받았지만 느헤미야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땅을 사서 남기려고 하고 어떻게 하든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속성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땅을 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벨론에서 벌어서 모은 자기 사유재산을 조국을 위해서 사용하기까지 했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이 되기까지 반드시 무엇이 있습니다. 참된 기독교 신자들, 위대한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항상 무엇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주 큰 것 하나가 자기 나라, 자기 민족 사랑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합니다. 내 형제도 사랑해야하고 남도 사랑해야합니다. 내 민족도 사랑해야하지만 다른 민족도 사랑해야합니다. 그러나 내 가족, 내 형제, 내 민족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 다른 민족을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는 일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내 아내를 사랑하지 아니하면서, 내 부모님을 공경하지 아니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공경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까운데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멀리 있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이런 일에 있어서 유대인들로부터 상당한 오해를 받았습니다. 자기 민족인 유대인은 사랑하지 않고 이방인들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미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바울이 오해받을만한 일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서 나는 이방인의 사도이다, 이반인의 스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주로 이방세계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에게는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여러분의 구세주, 여러분의 메시야,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사람이 여러분들이다, 여러분들은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방 세계를 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까닭은 결코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을 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맨 처음 부르셨을 때 아예 ‘너는 이방인을 위한 내 도구’라고 부르셨습니다. ‘내가 너를 멀리 이방세계로 보내겠다.’ 라고 말씀하셨고, 다른 사람들에게 바울을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택한 나의 그릇이다, 내 도구이다.’ 라고 소개하실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민족을 너무나도 사랑했습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가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내 민족을 위해서라면 내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내가 구원의 반열에서 구원의 생명책에서 내 이름이 없어질지라도 좋다. 어떻게 하든 간에 내 민족만 구원받기만 하면 좋다.’ 라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도구로 부르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에게 나가기 전에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맨 처음 찾아가는 곳이 회당입니다. 회당에는 누가 있습니까? 회당은 누구의 회당입니까? 유대인들의 회당입니다. 거기에는 이방인들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유대인이 있는 회당에 항상 먼저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이방인들에게 나갔습니까? 복음을 전할 때 어쩌다 받아들이는 유대인들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바울을 반역자라고 하면서 죽이려고 쫓아다닌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바울은 그 다음으로 이방인들에게로 나갔습니다.

 

참된 기독교인들은 자기 민족 자기 조국을 사랑합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이든지 어느 나라의 기독교인들이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한국의 기독교 선배들은 이 부분에서 특히 더했습니다. 31운동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31운동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주도했고 한국 기독교인들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역사라고 감히 그리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31운동의 민족 대표중의 한 사람인 남강 이승훈 선생을 통해서 31운동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확인합니다.

탁월한 사업 능력을 가졌던 이승훈은 큰 재산을 이루었습니다. 본래 자기는 재산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 사업을 했는데 아주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이 이승훈이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 9월 기독교 신자가 됩니다. 돈을 많이 벌고 난 뒤 기독교 신자가 된 것입니다. 그 후 그동안 운영해오던 오산학교를 기독교 정신으로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만 기독교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르치고 운영하는 학교도 기독교 정신으로 채우기 위해서 이승훈은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이듬해 2월 이승훈은 안중군의 사촌동생 안영근의 독립군 자금 모금에 연류 됩니다. 돈이 있었던 이승훈은 당연하게 독립을 위해서 군자금을 내어놓았고 그것 때문에 제주도로 유배되었습니다.

 

1911년 9월, 일제는 테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사건을 조작합니다. 그 사건은 어떻게 하든 간에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의 씨앗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일제가 조작한 사건입니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민족 운동자들, 나라의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들 600명을 대거 체포했습니다. 일제는 이 사건의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던 이승훈을 지목하고 서울로 압송했습니다. 체포된 이승훈은 갖은 고초를 당합니다. 그리고 징역 6년을 선고받습니다.

1915년, 이승훈은 감옥에서 가출옥을 합니다. 그리고 52세의 늦은 나이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합니다. 거기서 이승훈은 여러 독립 운동가들을 만나고 기독교 지도자들과 접촉하게 됩니다. 거기서 민족 독립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합니다.

 

1917년 겨울, 천도교, 기독교, 유림 등 세 종단이 연합해서 독립운동을 논의합니다. 여기서 기독교계를 대표한 이승훈, 천도교계를 대표한 최린은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31운동을 추진하기도 합의합니다. 이승훈은 31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기독교 지도자들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모든 힘을 다 기울입니다. 평양에 가서 장로교회 원로 지도자들을 만나서 기독교의 31운동 참여를 요청합니다. 기독교회 어른들로부터 확약을 받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기독교, 한국교회는 31운동의 주도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1919년 2월 28일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의 민족대표들이 모여서 독립선언 계획을 최종 검토하였고 3월1일 오후 2시 독립선언식을 갖는다고 결정합니다. 드디어 3월 1일이 되었습니다. 오후 2시 인사동 태화관에서 이승훈을 비롯한 민족대표들은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했습니다.

이 독립운동 직후 일제는 이승훈을 비롯한 민족대표들을 다 체포했습니다.

 

이제 잠시 법정의 장면을 보겠습니다. 이승훈이 재판을 받는데 검사가 이승훈에게 질문합니다.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국권회복운동을 계속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 이승훈이 대답합니다. ‘그렇다. 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어디까지든 하려고 한다.’ 이 답변 때문에 이승훈은 민족 대표 가운데 가장 늦은 1920년 7월 22일에야 출옥하게 됩니다. 탁월한 사업 능력으로 재산을 많이 일으키고 많은 부를 가졌던 이승훈은 그러나 자기 재산보다도 자기 안위보다 조국 그리고 민족의 자주독립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승훈 선생의 개인역사가 아닙니다. 이승훈 선생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의 요약이고 한국 기독교 본래의 얼굴입니다. 한국 기독교 교회 본래 얼굴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대한민국 우리 한민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나라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민족이라 믿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여러분, 모든 힘을 다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하십시오. 모두가 같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각각, 각자가 선 그 자리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지켜야할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하나 기억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주님께서 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의 이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이 명령에 순종하시는 분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여러분 속에서 모든 권과 능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께서 힘 있게 역사하시는 복 있는 그리고 참된 신앙인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