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안디옥 교회(사도행전 13:1-3)
초대 안디옥 교회
사도행전 13:1~3
교회에 대해서 실망을 한 한 청년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가는 교회마다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완전한 교회를 하나 소개시켜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알았네. 찾아보겠네. 자네도 찾아보게. 찾으면 나에게도 말해주게. 나도 그 교회에 나가려고 하네. 그리고 자네는 그 교회에 나가지 말게. 왜냐하면 자네가 그 교회에 나가면 그 시간으로부터 그 교회는 자네로 말미암아 교회의 완전함이 깨어지고 말테니까 말일세.’
기독교 교회 역사 2,000년 동안 끊임없이 외치는 소리가 있습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이 소리는 세월이 지나갈수록 점점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초대교회가 기독교 교회의 최고 모델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또 그만큼 오늘날의 교회가 교회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본문은 초대교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초대 안디옥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분당소망교회 창립 15주년 기념 주일에 이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초대 안디옥 교회가 생겨난 유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독교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집사로 일하던 스데반이 순교를 당합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순교 그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기독교 교회에 대한 박해로 이어집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흩어진 그 교인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 몇 명이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 소문을 예루살렘 교회가 듣게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바나바를 안디옥에 목회자로 파송하였습니다. 바나바의 사역으로 안디옥 교회는 교인수가 많이 늘어나게 됩니다. 교인수가 많이 늘어나자 바나바는 자기 혼자서는 교회를 감당하지 못하겠으니 지도자가 더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적합할까 생각하던 차에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이전에 교회를 박해하다 이제는 개종해서 기독교인이 된 사울이라는 사람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모시고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목회를 하였습니다. 이 두 분이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목회를 했더니 오늘날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인 크리스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안디옥 교회 교인들이 듣게 됩니다.
이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이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은 이때만 특별히 모여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면 늘 함께 모여서 기도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보내라는 계시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 계시에 순종해서 두 분을 선교사로 파송하게 됩니다. 이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란 어떤 곳인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를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교회는 특정인 몇 사람이 계속해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교회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나가는 것이고, 교회의 주도는 여러 사람들이 바꾸어서 담당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부터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모여서 모든 일들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교인 숫자가 늘어나니 일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사도들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본연의 일인 기도와 말씀에 소홀하게 되겠다, 다른 일들은 교인들에게 맡겨야하겠다고 판단하고 집사들을 세웁니다. 이 집사들로 하여금 말씀과 기도 외의 다른 일들을 담당하게 하고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 바나바도 그러했습니다. 교인 숫자가 많이 늘어나자 혼자서 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함께 해야 할 사람이 필요 하다고 생각하고 사울을 찾아가서 함께 목회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교회는 한 사람 혹은 특정인이 계속해서 그 일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 이외에 또 다른 목회자가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라는 1절 말씀에서 여러 사람들의 목회자가 함께 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동안은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를 주도했습니다. 교회 중심을 이 두 사람이 담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안디옥 교회는 두 분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교회의 중심이 비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 이 역할을 다른 사람이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중요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생각에는 기둥 같으신 분이고 중심되신 분이고 처음부터 이 교회를 위해서 일해오신 이런 분들이 계속해서 하는 것이 교회에도 좋고 우리에게도 좋고 하나님께도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 두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교회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독교 교회의 첫 시작을 보인 사도행전 1장에서는 베드로가 교회를 주도합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베드로가 나서고 이끌어갔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사도행전 2장, 3장, 4장 쭉 나가면서 조금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혼자 교회의 전방에서 일하던 베드로가 조금씩 뒤로 물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사도행전 15장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야고보 선생이 교회를 주도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는 한 두 사람만 계속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고 교회 주도는 바꾸어가면서 감당하는 것이라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손해 볼 것 같고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교회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교회의 교과서입니다. 교회의 교과서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는 한 두 사람 특정인이 계속해서 그 일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고 바꾸어가면서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첫 번째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의 주인은, 교회의 최종 결정권자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아무리 사람이 많고 아무리 유능한 지도자가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교회 일의 최종 결정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이 정말로 잘 알아야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초대교회들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이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은 늘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힘써서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면서까지 기도했습니다. 특별한 사안이 있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굶어가면서 기도하면서까지 ‘교회 일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십시오. 인도해주십시오.’ 라고 요청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2절)’..
사안이 있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먼저 금식하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교사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보낼 때 또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냥 보내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또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냥 기도 모양만 갖춘 것이 아니라, 무늬만 갖춘 것이 아니라 정말로 힘써서 기도했다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기도의 정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아주 귀한 기도의 정의에 ‘기도란 하나님의 사랑스런 간섭과 도움을 얻는 수단이다.’ 라는 정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에 하나님께서 간섭해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듣기 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싫은데 억지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은 사랑스런 하나님의 간섭이시라는 것을 알고 그 간섭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기도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분명한 예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를 뽑을 때였습니다. 열 두 사도 중에 가룟 유다가 그렇게 없어졌으므로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보궐선거 최종 결정을 어떻게 했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제비를 뽑아서 했습니다. 그릇에 하나는 맛디아 또 하나는 유다라는 이름을 집어넣고 돌려서 하나 튀어나오면 그것을 집어 그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어린아이들 장난 같지만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그 중요한 사도들을 뽑는 일에 이 방법을 썼습니다. 당시 사도들이 우리만 못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 못해서, 이것이 아이들 장난 같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해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의 머리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기술만, 문명만 발달될 뿐이지 비슷합니다. 그들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처음의 교회가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형태로 뽑는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지정한 사람이 선택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인도하실 것임을 확신하고 장난 같은 그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보내라는 하나님 뜻을 알자마자 즉각적으로 순종합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순종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기둥이고 중심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교회를 키운 것도, 교회를 교회되게 한 것도 이 두 분입니다. 이 두 분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습니다. 건물 기둥으로 예를 든다면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기둥이 없으면 건물은 제대로 지탱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두 기둥을 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보아도 아닐 것 같지만 그들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 교회의 주인, 이 교회를 더 생각하시는 분은 우리보다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안디옥 교회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잘 알고계신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것이고 설사 교회가 무너지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옳다고 생각했고 이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이 다 이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이 순종을 선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참 좋은 말을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친구다, 아브라함과는 친구처럼 이야기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슬람교도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고 부릅니다. 오늘 기독교인들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참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의 친구, 믿음의 아버지’ 어떻게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나에게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였습니다. 얼마나 고민이 많이 되었겠습니까?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찍이 아브라함은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출발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기독교인들의 순종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했듯이, 안디옥 교회가 했듯이, 아브라함이 했듯이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우리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이 가장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 것 같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어느 교회 지도자이든지 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정말로 잘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말뿐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내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하고 나의 주장을 이루기 위해서 큰소리 치고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교회가 분열하고 때로는 소송까지 하는 일들을 우리는 언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내 의견을 끝까지 주장하는 사람 혹은 내 의견이 관철된 사람이 잘난 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유치하고 못난 사람, 가장 어린 사람은 바로 내 생각이 옳다 내 생각이 아니면 안 된다, 내 의견이 관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진짜 어른은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을 때 혹은 아닌 의견 같은데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이 있을 때 내 의견을 접고 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조금 안다고, 조금 배웠다고, 조금 경험했다고 서로 어른 노릇하려고 하다 보니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연출하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고 했지만 아직 제대로 출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 것 같습니까? 야당이 잘못한 것 같습니까? 여당이 잘못한 것 같습니까? 청와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어른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당에도 야당에도 청와대에도 어른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어른 한 분만 계셔도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고 가장 잘해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가 이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도 나라도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탓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좋은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모델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이 이 뒤를 따라오고 교회는 오히려 세상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것을 잘 해야 합니다. 잘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주인이 따로 계시다고 말하고 있고 이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서고 일이 어떻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우리 교회들은 다 믿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잠언서 16장은 33절은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큰소리 치고 잘난 척 하고 떠들어도 결국 내가 결정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우 여러분들, 교회에서 어떤 부분에서 지도자역할을 하시든지 간에 이 일을 잘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분당소망교회 창립 15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 모두 확인하고 다짐할 것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이 정신에 따라 2005년, 지금으로부터 8년 전 9월에 담임은 전문적인 목회부분만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일 모두 다 교인대표인 장로님들을 비롯해서 교인들이 하도록 정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일하다 보면 책임적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책임적으로 분명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장로님들 중에서 대표 한 분을 뽑기로 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시행하고 있는 행정장로 제도입니다. 교인들의 대표로 담임이 담당해야할 전문적인 목회 이외의 부분은 전부 다 교인들이 담당하도록 해왔습니다. 8년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일곱 분의 행정장로님들이 돌아가면서 그 일을 담당해왔습니다. 이런 취지에 부응해서 우리 장로님들도 스스로 임기를 설정했습니다. 장로님들은 교회일은 돌아가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3년간 시무하고 1년간은 안식년을 가지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안식년을 가지는 이유는 3년간 장로의 직분을 잘 담당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자는 의미입니다. 일을 많이 했으니 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앞으로 3년간의 장로 직분을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해서 안식년을 가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3년 시무를 더하고 시무장로에서 퇴임하도록 결정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시행해왔습니다. 이 취지를 잘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렇게 말씀드리는 까닭은 누차 이것을 말씀드렸음에도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시고 새로 온 교우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알면서도 담임을 생각하느라고 당회장에게 먼저 알리고 먼저 의논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담임을 먼저 찾는 분들이 계시고 때로는 담임을 찾으면 일이 좀 쉬울 것 같아서 찾아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다 원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교회 개혁, 성경다운 교회, 성경처럼 하는 초대교회처럼 하는 교회로 돌아가자고 했던 것들이 전부다 잘못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은 실망하게 됩니다. 말은 잘하더니 또 그렇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고, 어떤 분들은 목사가 이런 일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섭섭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이 취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일에 관련된 모든 분들은 이 일을 취지대로 잘 시행해주시기를 창립 16년을 향해 가면서 다시 부탁드립니다.
혹시라도 여러분들 가운데 다른 교회가 그렇게 하니 이런 일을 담임에게 예의상 말씀드리고 먼저 의논해야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교회의 담임은 하나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맡은 말씀과 기도하는 일, 목회와 관련된 전문 부분만 담당하면 됩니다. 필요하다면 우리 교회도 초대 안디옥 교회처럼 담임을 선교사로 보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보냈지만 두 분이 영 가신 것이 아닙니다. 가셔서 선교를 하다가 안디옥 교회로 돌아와서 목회를 하시다 또 다시 선교를 갔다가 또 다시 돌아옵니다. 선교사로 영영 보낸 것이 아니라 갔다가 오셔서 목회하고 또 갔다가 오셔서 목회를 했습니다. 필요하다면 우리도 이런 결단을 해야합니다. 꼭 어떤 사람이 있어야한다, 이렇게 해야 우리가 제대로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말로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대로 하는 것이 가장 교회를 생각하고 목사를 위하고 바른 교회 만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창립 16년째 달리고 있는 우리 교회가 더 우직하고 더 성경적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좀 못났고 바보 같다는 소리를 들어도, 흔히 사람들이 바라는 것만큼 부흥이 안 되어도 성경대로 해나가면 필경은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