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일어나는 곳(사도행전 10:1~6)
기적이 일어나는 곳
사도행전 10:1~6
미국 시골 한 마을에 물레방아 방앗간이 있었습니다. 주인 스트롱은 매일 매일 행복했습니다. 길 하나 건너 조그마한 오두막집에는 아내와 딸이 있었습니다. 스트롱의 최고 기쁨은 아장아장 걷는 네 살짜리 어린 딸이었습니다. 딸의 이름은 ‘어글레이어’였습니다. 일과를 마칠 무렵이 되면 아내는 딸을 예쁘게 꾸며서 아빠를 마중가게 합니다. 딸의 모습이 보이면 스트롱은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합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면 밀가루가 빻아지네, 밀가루를 덮어쓰고 방아꾼은 즐겁다네. 귀여운 아기를 생각하면 이런 일도 즐겁다네.』 그러면 어린 딸은 아빠에게 달려가 두 팔을 벌리면서 ‘아빠, 덤스를 집에 데려다 주어요.’ 라는 말을 합니다. 딸은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이름을 따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덤스’라고 불렀습니다. 이 일은 매일 계속되었고 스트롱은 마냥 행복했습니다.
이 아이가 갑자기 없어졌습니다. 흔적이 없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서서 모든 노력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찾지 못했습니다. 2년 동안이나 하루도 빠짐없이 그 노력은 계속 되었지만 찾지 못해 희망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스트롱은 마을을 떠나 대도시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기서 제분 공장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은 대단히 번창했습니다. 그러나 스트롱의 슬픔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재산을 모은 스트롱은 옛날의 물레방아를 찾습니다. 그 곳에 교회를 짓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마을은 사방 30킬로 이내에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방앗간에 교회를 지었습니다. 작은 예배당이었지만 파이프 오르간도 두었습니다. 가난한 마을이라 교회가 설교자와 오르간 반주자의 월급을 지불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트롱이 그들의 월급을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교회를 지으면서 교회안의 물레방아만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제분공장은 날로 번창했습니다. 스트롱은 번창한 제분공장을 바탕으로 구호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재난이 일어난 곳에는 어디든지 스트롱이 보낸 밀가루가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 밀가루 이름을 딸의 이름을 붙여서 ‘어글레이표 밀가루’ 라고 했습니다.
방앗간 마을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스트롱은 당연하게 ‘어글레이표 밀가루’를 물레방아 마을로 보냈습니다. 교회에 밀가루 부대를 쌓아놓고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한 부대씩 나누어주도록 했습니다.
얼마 뒤 스트롱은 휴가차 물레방앗간 마을의 한 소박한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호텔에는 몇 명의 투숙객밖에 없었습니다. 그 중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병약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아주 불우한 가정 출신의 백화점 점원을 하고 있는 처녀였습니다. 이 처녀는 난생처음 얻은 휴가를 왔다고 합니다. 스트롱은 그 처녀가 혹시 자기 딸이 아닐까 여러 모로 확인해보지만 자기 딸이 아니었습니다. 실망에 잠긴 스트롱은 물레방앗간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그 처녀가 편지를 들고 울고 앉아있었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처녀는 자신의 형편을 알지 못하는 앞날 유망한 젊은이가 청혼을 했지만 그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처녀는 그런 자기 처지를 비관하여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오르간이 연주되기 시작합니다. 마침 그때 2층에 쌓아둔 밀가루 부대에서 밀가루가 흘러내려 스트롱의 온몸을 하얗게 뒤덮입니다. 그러자 스트롱은 마치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이십 년 전 물레방앗간 주인이 되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물방아가 돌아가면 밀가루가 빻아지네. 밀가루를 덮어쓰고 방아꾼은 즐겁다네. 귀여운 아기를 생각하며 이런 일도 즐겁다네.』 그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의자에 슬픈 표정으로 앉아있던 그 처녀가 꿈꾸듯이 일어나서 두 팔을 스트롱에게 내밀면서 단 한 사람 자기 딸 어글레이어만 쓰는 말을 하며 다가왔습니다. ‘아빠, 덤스를 집에 데려다주어요.’
기적은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이 일어날만한 곳에만 일어납니다.
초대교회 당시 팔레스틴 해변의 ‘가이사랴’ 라는 도시에 로마 정부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말하는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 라는 말이 그 로마군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로마는 넓은 지역의 로마 제국 통치를 위해서 강한 통제력이 필요했는데 그 통제력을 군대를 통해서 행사하였습니다. 로마의 군대 단위는 제일 큰 것이 군단으로 6천명의 군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단위가 대대로 6백 명의 군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다음이 100명의 군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백인대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중대정도가 되겠습니다. 이 백인대의 책임자가 백부장(centurion)입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핵심멤버이고 로마의 최고 자랑이고 로마군대의 베테랑입니다. 최고의 용기를 가진 사람들만이 백부장을 할 수가 있고, 최고의 충성을 로마에 바치는 사람들만이 백부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로마 정부는 백부장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로마 백부장들은 교만하기 쉬웠고 완악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 백부장의 한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입니다.
고넬료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이 고넬료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날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기적 중 하나인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서 이방인에게 결정적으로 전해지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느 날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가 고넬료에게 ‘너의 기도와 구제를 하나님께서 보셨다. 지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거기에 있는 베드로를 모시고 오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기적이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당시 욥바에 있던 베드로에게도 똑같은 환상이 내려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고넬료라는 사람이 너에게 사람을 보낼 텐데 너는 그 사람이 이방인이라도 군소리 하지 말고 따라가라. 그래서 고넬료를 만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만날 수 없었고 더구나 이방인의 집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서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환상에서 깨어나자 정말로 사람이 왔습니다. 고넬료가 보냈다고 합니다. 따라갔습니다. 따라가서 고넬료를 만나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기적이 여기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각별히 사랑하시는가?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전해지는가? 어떤 사람에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고넬료를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먼저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에서 ‘그가 경건하여’ 라고 말씀하시는데 본래의 말인 헬라어는 ‘유세베스’ 입니다. ‘유세베스’는 그냥 대강 믿는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독실한 신앙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아도, 자기가 보아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그 신앙만큼은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기적을 베풀어주시고 그런 사람들을 각별한 은총으로 베풀어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고넬료는 신앙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자기만 경건한 것이 아니라 온 집안사람들이 고넬료로 말미암아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본문 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집의 주인이고 가장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고넬료가 그런 신앙 인격을 가지고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고넬료의 신앙모범은 자기 집안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친구들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고넬료의 요청을 받아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했을 때 거기 모인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고넬료의 집안사람들, 친척들은 물론이고 친구까지 모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모시러 사람을 보낸 것은 전적으로 환상 때문이었습니다. 환상이란 말 그대로 환상입니다. 욥바에 베드로가 있다는 말을 환상 중에 들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거기에 없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거기에 있다고 할지라도 유대인인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고넬료의 친척들과 친구들은 이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고넬료의 초청에 응답하여 그 집에 와서 다 모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고넬료가 어떠한 삶을 살았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세상이 다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고넬료의 말은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으로 한다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하더라도 고넬료는 믿을 수 있다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말은 다 잘합니다. 기도도 다 잘합니다. 그런데 그런 삶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삶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삶이 있는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그러한 기적을 주신 것입니다.
고넬료의 이런 신앙모범은 심지어 자기 부하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경험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위의 사람들에게는 그럭저럭 잘 보일 수 있지만 아래에 있는 부하 직원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는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모시러 사람을 보낼 때 그 세 사람 중에는 고넬료의 부하가 하나 있었습니다. 본문 7절에서 ‘마침 말하는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그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고넬료의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로마군인인 고넬료에게 로마 군인인 부하가 경건했다는 말은 그 상관이 어떤 삶을 살았던가를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세 사람이 베드로를 찾아가서 자기 주인을 소개할 때 하는 말은 너무도 분명하게 그것을 드러냅니다. 베드로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물었더니 그들은 자기 주인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22절) 자기 신앙뿐만 아니라 신앙의 모범이 되는, 그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그야말로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좋아하십니다.
세 번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절 마지막에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양만 있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기도 시간만 많이 가지는 기도가 아니었고 자주 하기만 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기도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 되었으니’ 고넬료의 기도는 하는 것마다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기도입니다.
상당히 많은 경우에 우리 기독교인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하늘까지 상달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이 땅에 평화가, 이 사회에 평화가, 나라에 어둠이 가득 가려져 있는 것을 우리는 지금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넬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들으시고 기억하실만한 참된 기도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다.
네 번째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 불쌍한 사람들을 많이 도운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절대로 금액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없는 사람은 천원만 도와주어도 귀한 돈입니다. 그러나 있는 사람, 좀 넉넉한 사람, 좀 많이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만큼 했다 또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도, 그 사람의 형편에 따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돈을 다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돈으로 계산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4절).. 기도뿐만 아니라 구제까지도 하나님께서 보시고 인정하실만 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흉내만 내고 다른 사람이 하니까 나도 따라하는 그 정도는 하나님께 기억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고넬료가 어느 정도까지 좋은 일을 했는지를 22절이 말씀합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유대민족들을 로마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주 미워합니다. 원수같이 생각합니다. 그런 로마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인 고넬료를 유대인들이 칭찬했다는 말씀입니다. 가난하고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상당한 아픔을 떼어내어 돌봐주고 도와주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각별히 좋아하시고 그런 사람들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이번에 제가 라오스를 다녀왔습니다. 라오스 정부가 우리들에게 나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부탁해서 지금까지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나환자 학교 건축문제, 나환자 지원문제 때문에 두 개 마을에 갔습니다. 한 마을은 지난번에도 간 곳으로 꽤 큰 마을입니다. 그런데 그 곳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을 돌아보니 교실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가만히 놀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왜 그런지 물었더니 공책과 연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반 정도 됩니다. 신발을 신지 못한 아이들도 절반 정도 됩니다. 그곳에 컴퓨터를 사 주었습니다. 성화와 같은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장비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또 공책, 필기도구도 사주었습니다.
그러다 거의 한 스무 시간 정도 걸리는 다른 나환자 마을을 갔습니다. 날씨가 대단히 더웠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다 국수로 먹고 다녔습니다. 그야말로 정글지대를 다녔습니다. 흘린 땀 때문에 같이 가신 분들 지금 몸무게가 상당히 많이 빠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참 만에 도착했습니다. 거기도 마찬가지로 구워서 자른 돼지고기와 찰밥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냥 밥은 손이나 손가락이 없는 분들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과일과 음료수를 사드렸습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음료수를 부어드리는데 컵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음료수는 한 잔만 마시고 진짜 요리인 돼지고기를 잡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또 빈 잔을 들고 오십니다. 맘은 돼지고기를 드시고 나중에 드시라고 하고 싶었습니다만 거절할 수가 없어서 또 부어드렸습니다. 그런데 돌아서고 나면 어느새 잔이 다 비워졌습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음료수를 많이 마시면 배가 불러서 돼지고기를 못 드시니 적게 드시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부어주기만 하면 마시고 또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예전 우리처럼 물 마시는 배, 밥 먹는 배가 따로 있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드셨습니다. 배가 불러서 고생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랬습니다. 너무 너무 고마워했습니다.
그 분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정성껏 꽃을 준비했습니다. 그 분들도 찰밥을 준비했습니다. 야자수 잎에 정성껏 싸서 차렸습니다. 달걀도 준비했습니다. 초란이라고 합니다. 닭고기도 다리만 골라 쟁반에 담았습니다. 손을 내밀라고 합니다. 손을 내었더니 손목에 실을 매어주었습니다. 아직까지 그것을 아직 매고 있습니다. 제가 그 실을 아직 매고 있는 까닭은 손, 손가락이 없는 사람들이 메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손가락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손가락이 제대로 없는 사람들이 매주면서 손에다 야자수에 싼 찰밥, 달걀, 닭고기를 올려두고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찌릿했는지 모릅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옆 마른 땅에 나룻배가 있었습니다. 이제 몇 번 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마른 땅이 비만 오면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우기 때에는 마을 사람들이 시내에 나가지도 못하고 시내 사람들이 들어오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아주 응급할 때는 조그마한 배로 다니지만 제일 문제는 시내에 사시는 학교 선생님이 못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나환자들이 정부에 요청을 해서 땅을 얻었는데 집을 지을 돈이 없습니다. 라오스 정부 관리자들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우리에게 부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 교회가 나환자들이 살 집을 마련해주려고 합니다. 한 집당 한 3천불 정도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곳은 ‘시빌라이’라는 작은 마을로 열여덟 가구 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능한 한 적은 비용으로 하기 위해서 있던 주택의 목재를 뜯어 쓰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논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기 때문에 틀림없이 하십니다. 만약 여러분들 가운데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여러분들이 대신 할 수도 있고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얼마나 복된 일일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노래 한곡을 하려고 합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라는 노래입니다. 제목만 해도 좋습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소금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여러분도 실제로 잘 안 되어서 그렇지 이 땅에 빛과 소금되고픈 꿈은 다 있을 것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욕심이 가로막힌다고 하는 말이 제 이야기인 것 같아 노래가 제 마음을 짓누릅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 듯이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거저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 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 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모든 것을 다 가지셨지만 우리를 위해서 다 버리신 주님이셨습니다. 바울은 아버지도 부자이고 자기도 충분히 부자였지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선교를 하다가 온갖 고난을 당하고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꿈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 닮고 싶은 꿈을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