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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사무엘상 25:23~31)

분당소망교회 2013. 8. 2. 13:52

배려

 

사무엘상 25:23~31


얼마 전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악수하는 장면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국가 원수를 만나는 자리에서 결례라는 말들도 많았고 반면에 미국에서는 그런 자세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빌게이츠는 다른 나라 국가 원수를 만날 때는 같은 방법으로 악수를 했다고 합니다. 올랑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을 만날 때에도 그러했고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과 악수할 때에도 같은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와 대비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입니다. 2011년 중국의 후진타우 주석을 만날 때에 만찬을 앞두고 하얗던 머리를 검게 염색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하얀색은 죽음을 의미하는 불길한 색깔이기 때문에 그런 모습으로 후진타우 수상을 만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오바마 영부인 역시 의도적으로 붉은 드레스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붉은 색은 중국에서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상징의 색깔로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문제는 그러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배려의 문제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입니다. 서양인이야 그런 자세로 인사를 나누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고 익숙합니다. 그러나 동양인에게는 그것이 아닙니다. 강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대통령이든 혹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대통령이든 우리나라의 수반인데 한 나라의 수반을 대하는 자세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동양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비가일은 기독교인들이 가져야할 가장 모범적인 배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의 일입니다. 광야에서 부하 600명과 함께 진을 치고 있을 때 다윗은 형편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식솔들을 먹일 양식도 제대로 없었습니다. 그때 다윗 진영 부근에서 나발이라는 부자가 대대적으로 양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때, 형편이 그렇게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남의 물건을 손대면 안 된다고 부하들을 단속했습니다. 그러한 반면, 비록 사울에게 쫓기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최고의 장군이 가까이 있었다는 자체만으로 나발에게는 큰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다윗 때문에 도둑들이 나발의 목장 근처에 감히 얼씬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반사적 이익이라고 합니다. 나는 무엇을 주지 않아도 상대방은 도움을 받는 이익입니다. 이때 나발은 다윗으로 인해 반사적 이익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나발이 양털 깎는 날을 잡았다는 소문이 다윗에게 들렸습니다. 이런 날은 큰 잔칫날입니다.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없는 사람들, 심지어 나병환자들까지도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움을 나누는 날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이런 좋은 날에 자기를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전갈을 나발에게 보냈습니다.
전갈을 받은 나발은 한 마디로 거절합니다. 거절하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10-11절) 라고 심하게 모욕했습니다. 대단한 모욕입니다. 당시 다윗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밖의 사람들도 다윗의 명성에 대해서 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엄청난 모욕입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생각하고 격분하였습니다. 그래서 600명 중 200명은 집을 지키게 하고 400명을 데리고 출동하였습니다.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21-22절) 나발 집안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출발했습니다. 이제 잠시 후면 나발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 소식이 나발의 아내에게 전해집니다. 나발의 아내 이름은 아비가일입니다. 나발은 이름 자체가 미련하다는 뜻이고 그 이름대로 악하고 아주 미련했습니다. 그 아내 아비가일은 용모도 아름답고 총명하기로 소문이 나 있던 사람입니다. 아비가일은 서둘러서 준비하여 나귀를 타고 급히 다윗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가다가 다윗을 만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의 입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학자들은 오늘 본문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인 처세술 제 1번’ 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람들은 못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상대방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또는 내가 좀 잘 되어있을 때는 말을 함부로 하거나 못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더구나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한 말이 다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그대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잘 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은사, 특별한 선물을 주시지만 잘못하는 사람에게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무섭게 책망하시고 벌을 내리십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어서 복을 받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욥기 4장 8절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라고 말씀하시고 갈라디아 6장 7절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사는 방법의 첫 번째는 못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기독교인은 고마움을 알아야합니다. 은혜를 알아야합니다. 사환이 나발의 아내에게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15-16절)라고 말했습니다. 나발도 이것을 알았습니다. 아비가일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발은 알고만 말았습니다. 사실만 알았지 은혜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달랐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의 근거는 여러 가지 많이 있지만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은혜를 안 것입니다. 전쟁이 끝이 나고 나라가 안정되고 자기 입지가 굳건하게 되었을 때 다윗이 맨 처음으로 한 일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양이나 치던 나 같은 사람을 왕이 되게 해주심을 감사해했고 자기는 이렇게 좋은 집에 사는데 하나님의 집은 천막으로 되어있으니 하나님의 집부터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여 성전을 짓겠다고 나섰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그 다음 한 일이 요나단의 자손들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울 때 자기에게 힘이 되었고 자기를 도와준 요나단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이미 죽었습니다. 전쟁에서 전사했습니다. 요나단 대신 그의 후손들을 돌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요나단 자손들을 찾아 돌보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사람의 은혜를 알았던 다윗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마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알고 사람의 은혜도 알아야합니다.

세 번째, 그리스도인들은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정치계에서 소통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더욱 다른 사람과 말이 통해야합니다. 다른 사람과 말이 통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이 통하기 원하지만 잘 안 됩니다. 비결을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입은 다물고 귀를 열어야 말이 통합니다. 남의 말을 들을 때 말 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비가일의 사환이 말합니다, ‘그런즉 이제 당신이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17절) 주인과는 말이 안 되지만 당신은 말이 통하기 때문에 보고를 드린다고 말합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이 통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합니다.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심중에 담을 줄 알아야합니다. 깊숙한 곳에서 받아들일 줄 알아야합니다.

네 번째, 하나님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필요를 ‘실제적으로’ 채워줄 줄 알아야합니다. 다윗이 쳐들어왔을 때 아비가일은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실었습니다. 다윗이 화가 나있지만 지금 다윗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그것이라는 것을 아비가일은 알았습니다. 말로만 다윗을 누그러뜨리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에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2:15-16) 여러분은 어떻게 사십니까?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실제적으로 채워주고 있습니까? 그러면 복 받은 사람입니다. 또 복 받을 사람입니다. 앞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병이 들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곧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병은 점점 더 심해집니다. 아이는 아주 힘들어 보입니다. 아이를 진찰하고 난 의사가 부모에게 말합니다, “ 아이는 살아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천국의 소망을 가지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엄마에게 천국 이야기를 들은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서 천국 이야기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 이번에는 “얘야, 천국에 가면 예수님이 계신단다. 천사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천사들이 너를 맞아줄 것이다. 거기는 사자도 함께 놀 것이고 호랑이도 함께 놀 것이다.” 라고 말하자 아이는 “엄마, 나 너무 힘들어 예수님을 만나고 싶지 않고 천사도 만나고 싶지 않고 사자와도 호랑이와도 함께 놀고 싶지 않아.” 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방법이 없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슬픈 심정으로 그 아이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그때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난 이게 좋아. 예수님도 좋고 천사도 좋고 천국도 좋지만 지금 엄마가 나를 안아주는 이것이 훨씬 더 좋아. 예수님도 나를 이렇게 안아주었으면 좋겠어.”
이것입니다. 실제적인 도움을 줄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합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만 잘한다, 혹은 말은 잘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여러분들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남을 이해할 줄 알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남의 형편, 남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다윗은 격분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격분한 것을 보고 다윗이 그런 것으로 왜 그렇게 화를 내는가를 말하지 마십시오. 분명한 것은 다윗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든지 혹은 오해로 말미암아 격분했든지 지금 너무나 화가 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그것으로 저렇게 슬퍼하는가를 말할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지금 너무도 슬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렇게 겁을 내는가 말할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지금 겁을 내고 있다는 것, 그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합니다. 판단하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고 말할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지금 그렇다는 심정을 이해해야합니다. 다윗의 그 심정을 아비가일은 이해했습니다.
아비가일의 이해는 입에 달린 말이 아니나 진정으로 한 이해였습니다. 그 증거가 그 일의 모든 책임을 전부 다 자기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 탓이라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23-24절)라고 말하고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25절) 내가 챙겼어야하는데 챙기지 못했으니 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판단하려고 합니다. 판단하지 마십시오. 이해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느헤미야가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호되게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무섭고 모질게 하실 수 있는지 말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너무나 화가 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와 내 아비의 집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망해야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맞고 망해도 마땅합니다. 이것이 전부 다 제 잘못입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번에 대통령 방미 때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사자가 급거 귀국해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한 언론인이, 만약 그 사람이 자기가 큰 실수를 했다고 사죄를 했다면 지금과 다른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내 잘못으로 돌리면 됩니다. 다윗은 이것을 잘했습니다. 다윗은 청와대 대변인보다 훨씬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밧세바 그리고 그보다 더 악한 우리아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너 같은 놈이야말로 죽을 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다윗은 즉각적으로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또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나도 너를 용서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이런 회개에 마음이 누그러뜨려지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말을 하면 다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더구나 한국 국민들은 얼마나 마음이 좋습니까? 잘 잊어버려 주고 이해하려고 하는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의 심정을, 남의 형편을 이해할 줄 알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섯 번째는 그리스도인들은 상대방을 인정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아비가일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비록 지금 당신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저 나발과 같은 사람을 상대할 사람 정도가 아닙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25절).. 그런 사람들과 상대할 분이 아니니 잊어버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께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28절).. 당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틀림없이 잘 되고 크게 될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이런 아내가 있는 집안을 다윗이 화났다고 엎을 것 같습니까? 그렇게 못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사람이 되십시오. 아내 되신 여러분들 혹시 남편에게 조금 부족함이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이 그것을 채워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내 탓, 남편 탓, 누구 탓 할 것 없습니다. 여러분만 바로 서면 문제가 없습니다.

일곱 번째, 이 모든 것이 온통 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출발도 배려에서 출발하고 끝맺음도 배려에서 끝맺습니다. 다윗은 당시 너무나 춥고 배고팠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비가일이 이것을 꿰뚫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27절) 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다윗은 이것이 꼭 필요하지만 화를 내었으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비가일은 이것을 꿰뚫어보고 ‘다윗님, 제가 이것을 준비해왔으니 저쪽을 잠깐만 쳐다보면 제가 부하들에게 드리겠으니 받아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이것이 센스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아내 되신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런 센스를 가지고 여러분의 가정을 지키고 여러분의 가정을 복되게 하십시오. 여러분만 바로 서면됩니다.
거기다 지금 다윗은 나발을 당장 죽이고 싶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갈등이 있는 것도 아비가일은 꿰뚫어보았습니다. 청문회를 보면 이전에 위장전입을 했고 다운 계약서 쓴 것이 다 드러나지 않습니까? 다윗이 나중에 이것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갈등하고 있음을 아비가일은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힘없는 사람을 협박하고 갈취하고 자기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폭행하고 살해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다윗이 갈등하고 있음을 아비가일은 꿰뚫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행하사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30-31절)

얼마나 멋집니까? 이것이 바로 신앙인격입니다. 인격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것까지 볼 줄 압니다. 이런 신앙인격을 가지십시오. 노력하십시오. 애를 쓰십시오.
그러나 한 가지 아실 것은 이것은 노력만으로 가능해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하고 하나님께서 이런 성품을 선물로 주셔야지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선물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길은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이 예수님을 모시기만 하면 여러분이 모신 그 예수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혹시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지 않는 분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에 ‘주님, 저의 속에 오셔서 저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최고의 인격자이신 주님, 내 속에서 힘 있게 인격자로 역사하시옵소서.’ 라고 요청하십시오.

새벽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하나 보았습니다. ‘금연 표시가 없어도 이웃이 있습니다.’ 그 뒤에는 ‘배려는 행복입니다.’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배려할 때, 다른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배려하는 사람이 먼저 그리고 더 행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