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12) - 신명기 16:18-20
신명기(12)
신명기 16:18-20
430년이나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도 노예이고 어머니도 노예인 이스라엘 민족이 드디어 하나님 은혜로 노예에서 해방되고 출애굽을 했습니다. 단시간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순종하지 아니한 것 때문에 40년간이나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죽을 고생을 다했습니다.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다시 가나안 앞에까지 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지난번처럼 불순종이 아니라 순종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말씀하시고, 그렇게 해야 복을 받고 얻을 풍요함을 계속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신명기 말씀 16장은 이스라엘 3대 명절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유월절 그리고 칠칠절 초막절을 말씀하시고 이어서 16장 말미에는 재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면 열두지파가 따로 따로 자기 땅을 가지고 살 것이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18절) 라고 각 지파마다 지도자를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재판장은 재판을 관할하는 총책임자입니다. 지도자라는 말은 원어로는 ‘쇼태림’이라고 표현하는데 문자적인 뜻은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재판을 보조하는 서기 즉 요즘으로 하면 법원 서기입니다. 이 제도는 점차 확립되어 나중에는 작은 마을, 좀 더 큰 마을 그리고 나라의 중앙에 법원이 따로 서게 됩니다. 작은 마을에는 세 사람의 재판관이 있는데 한 사람은 제사장, 또 한 사람은 장로 그리고 레위 사람 이렇게 세 사람이 재판관을 담당합니다. 큰 도시에는 스물세 명으로 구성된 법원이 있습니다. 나라의 중앙에는 칠십 명의 이스라엘 지도자 그리고 한 사람의 의장으로 구성된 일흔 한 명의 법관이 있습니다. 신약에 나오는 산헤드린 공회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판관들과 지도자들에게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18-19절).. 바르게 재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에 대해서도 물론 관심이 많지만 재판에 관해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관심이 많습니다. 재판에 있어서 최종적인 판단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장 17절은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재판하실 것인데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 대신 재판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재판하는 사람들에게 바르게 하는가, 그렇지 않은지 관심을 가지고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재판관과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의입니다. 신명기 1장에서는 여기에 대해서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신1:17)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거나 그 사람이 어떻다는 것을 보거나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등을 생각하지 말고 법대로 재판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레위기 19장 15절에서는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법대로 재판하라,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편애하기 말고 두둔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자라고 물론 두둔해서 안 되지만 가난하다고 그 사람 편을 들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정의에 대해서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법원에서 바르게 재판하는 것을 사람들의 감정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일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상당히 조심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라, 판단하는 사람, 재판하는 사람은 법대로 정당하게 재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권력 있는 사람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되지만 권력 없는 사람이라고 불쌍히 여겨서 법을 왜곡되게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재판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재판을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약에 재판을 바르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당신이 무서운 벌을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라는 20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실 무서운 말씀입니다. 만약 정의대로 법대로 올바른 재판을 하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는 것인데 하나님 당신이 죽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재판을 하는 사람들, 중요한 일들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잘 보아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법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 본래의 마음대로 제대로 재판하는 사람들, 하나님 뜻에 맞게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은 상을 주겠다고 말슴하십니다,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20절) 준비한 모든 복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판하는 사람들이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이 일을 두려워해야합니다. 잘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지만 만약 잘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만약 잘못하게 될 것 같으면 이런 일을 맡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뒤를 이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라는 21절, 22절 말씀과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아무것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라는 17장 1절 말씀은 재판과는 별개의 말씀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일은 재판관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담당해야할 직무를 말씀하십니다. 나라의 지도자들, 공동체의 지도자들, 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먼저 재판하는 일이었습니다. 판단하는 일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앞장서는 것이 아닙니다. 뒤에 있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하고 잘하는지 판단하고 볼 줄 알아야하는데 지도자들이 나서서 일하게 되면 그 판단은 누가 하게 됩니까? 내가 일하면서 내가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일하는 사람 뒤에 앉아서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고 신앙도 제대로 하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중 하나가 제단 곁에 우상을 세우지 말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우상이 될 만한 것은 어떤 것도 세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더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한 어떤 것도 하지 말라, 성도들의 믿음이 이렇게 하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성도들이 예배를 더 잘 드릴 수 있을 것인데, 이렇게 하면 우리 성도들의 신앙이 더 좋아질 것인데……’ 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일까지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사실 잘 하려고 하다가 잘못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16장 22절에서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라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더 잘하려고 더 바르게 하려고 하다 보면 잘못되는 일이 있으므로 아예 그런 일은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잘못하는 일들이 있을 때 어른들, 지도자들은 그것은 아니라고 말씀하고 가르칠 줄 알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막상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잘 하는지 잘못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지도자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또 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하도록 도와주고 격려하고 가르치고 판단하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해야 할 또 하나의 일들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배를 더 잘 드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어른들, 지도자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한 가지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예물 드리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지도할 줄 알고 판단할 줄 알고 가르칠 줄 알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흠이 있는 것은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막상 드리는 사람은 이것을 드려도 되는지 안 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 경험이 있는 사람들, 어른들, 지도자들이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뿐 아니라 속에서도 흠이 있는 것, 잘못 된 것, 이것은 아니라고 제대로 지도할 줄 알아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말씀하시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주겠느냐’ 라는 말라기 1장 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어떤 물건을 드리고 물질을 드릴 때 이것이, 이 금액이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귀하게 여기는 사람, 나에게 영향을 끼칠 사람에게 주었을 때 그 사람이 기뻐하면서 받겠는가, 받아들이겠는가를 많이 생각해야합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시지 않는 것 같고, 안 보시는 것 같고 뒤에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아서 함부로 하는 일들이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심지어 우리들이 알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의도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십니다. 과연 내가 이것을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 아닌지 생각해야하고 교회 지도자들은 이것을 가르쳐줄 줄 알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직무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재판, 판단하는 것입니다. 나서서 앞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잘 되었는지, 잘못 되었는지 판단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앙적인 문제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장로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임무가 바로 신앙적인 문제입니다. 교회 헌법 제 39조에 장로의 직무 네 가지가 있습니다. 그 네 가지 장로 집무 중에서 세 가지가 신앙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는, 장로는 교회의 신령 상 관계를 살핀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인들이 교리를 오해하거나 도덕적으로 부패하지 않도록 교인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장로는 권면하였으나 회개하지 아니하면 당회에 보고한다는 것입니다.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당회에 보고해서 당회가 결정으로 어떤 일들을 조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장로의 직무 네 가지 중에서 세 가지가 신앙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신앙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라는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재판에 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에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라는 17장 2절과 3절 말씀은 신앙에 관한 일을 예를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의 말씀에 재판이나 판단에 관한 아주 중요한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만약 고발이 있을 때는 고발하는 사람의 말에만 의존하지 말고 직접적으로 그 사실 여부를 정확하게 조사하고 판단하라는 말씀을 17장 4절에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네게 알려지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조사해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확실하게 조사해서 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증인은 한 사람만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최소 두 사람 아니면 세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그 일이 성립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죽이되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실제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나 세상을 보고 말하는 사람들도 이 일을 잘 보아야합니다.
이 말씀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조금 더 자세한 말씀 하십니다.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신19:15-21)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얼마 전에 우리 정치계에서 있었던 한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사람이 그 아들 병역의 문제로 말미암아 많이 시달렸습니다. 국민들은 사실인지 아닌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언론에서 떠들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결국은 그 일 때문에 아주 유력했던 그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하였고 그 이후에도 다시 그럴 기회까지 잃은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물론 최종의 진실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전문가인 법관들이 재판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그 일에 관해서만큼은 죄가 없다고 판단되었지만 그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그런 일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19장 21절 말씀입니다.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많은 경우에 공의, 정의 바르게 일하고 나라를 위한다고 하면서 나라를 위하지 아니하고 국민을 위하지 아니하고 국민을 오히려 해롭게 하고, 정의를 위한다고 하면서 정의를 깨뜨리는 일들이 많고,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면서 영광을 가리는 일이 많고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바로 해야 합니다. 특별히 지도자들,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잘 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믿고 권한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한에 대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최종 심판주, 모든 것에 책임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북이스라엘에 아합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백성 중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아주 좋은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왕이 그 포도원을 탐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도저히 그 포도원을 왕에게 넘길 수가 없어서 왕에게 그 사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 포도원을 얻지 못하여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왕비 이세벨이 나서서 두 사람의 증인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앞에서 이세벨이 세운 증인 중 한 사람이 저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말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사형에 해당되는 범죄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증인으로는 사형이 충족되지 않으므로 또 세운 다른 한 사람이 나서서 나도 저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게 했습니다. 결국 나봇은 돌에 맞아서 죽고 맙니다. 그리고 나봇의 포도원은 왕의 포도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은 이것으로 끝난 것 같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아합에게 보내서 아합의 피를 개들이 핥을 것이고 이세벨의 살은 개들이 먹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아합이 전쟁에서 상처를 입고 죽습니다. 그가 흘린 피를 개들이 핥았습니다.
더 많은 세월이 지나갑니다. 그 왕비 이세벨만큼은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지 않고 끝났다고 생각되었는데 한참 뒤에 나라에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그때까지 살아있던 왕비 이세벨이 반역자에 의해서 높은 곳에서 땅바닥에 버려져서 죽게 됩니다. 땅바닥에 던지게 한 사람이 그래도 왕비였는데 안 되었다고 생각하여 이세벨의 시체를 찾아서 장사나 지내주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고 바싹 마른 뼈만 남아있었습니다. 개들이 살을 다 먹고 살점 하나 붙어있지 않은 뼈만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지만 이런 악한 사람, 특별히 권한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한을 잘못 사용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재판 결과에 대해서 승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오늘날 삼심제도가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지를 네게 가르치리니’(신17:8-9)
문제는 이렇게 두 번이나 세 번 재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라고 해서 승복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하나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재판에 참여했다면 재판에 참여한 그 자체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런 약속까지 하고 난 후 자기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고 승복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질서는 다 잃어버리고 무질서와 혼란 속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일은 용납하지 못한다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든지 간에 이런 과정을 통해서 최종 결과가 나왔다면 모든 사람은 절대적으로 그 결과에 승복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대로 삼가 행할 것이니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율법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말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신17:10-11)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승복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리라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무법하게 행하지 아니하리라’(신17:12-13).. 죽이라, 처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나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만의 하나 정말로 재판관이 잘못 판단해서 잘못한 재판이 나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억울하지만 승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당사자는 참 억울하겠지만 그러나 그럴 때도 승복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잘 알아야합니다. 아무리 내 맘속에 100%, 200%, 300% 아니라고 할지라도 기독교인들은 최종 결과가 나오면 승복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바르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십시오. 억울하더라도, 정말로 아니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승복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승복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그 모습을 기억하십니다. 자주 여러분들에게 지금 여러분들이 바라는 결과보다도 더 좋은 결과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식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어서 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틀림없이 이웃 나라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에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4절)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왕 될 사람의 조건입니다. 두 가지를 충족시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출하기 전에도 또 선출한 후에도 반드시 명심해야합니다. 선출되고 나면 하나님께서 선출하셨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항간에 대통령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조심해야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법을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어떤 경우를 통해서 하든지 간에 절대적인 문제가 아닌 한, 선택되고 결정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고 할지라도 기독교인들은 알아야합니다.
두 번째는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신17:15)입니다.
왕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잘 아는 사람,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신앙을 잘 아는 사람 가운데 세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알아야하고 이스라엘 신앙을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장로 후보 자격에 대해서 세례 받은 지 7년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정식으로 등록한 지 5년이 지나야 된다고 정했는데 이런 의미입니다. 기본적으로 신앙이 있어야 하고 우리 교회를 알아야 우리 교회 지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왕이 될 사람의 조건 두 가지에 더하여 이제는 왕이 된 사람이 지켜야할 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라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16-17절)
금지사항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군사력을 강화하지 말라, 두 번째는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세 번째는 자기재산을 많이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전부 다 신앙의 문제입니다.
군사력을 강화하지 말라는 것은 왕들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군사력이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군사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지킨다는 불신앙이기 때문에 금지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내를 많이 두는 까닭이 정략결혼이기 때문입니다. 이웃나라와 사돈관계를 통해서 서로 불가침하고 도와주자는 것인데 이는 즉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웃 나라를 의지하겠다는 마음이기 때문에 금지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쌓는 것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은금을 많이 쌓은 것은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진다는 이것이 신앙인데 이것은 결국 불신앙입니다. 내 인생을 맡기지 못하고 내 노후를 하나님께 부탁하지 못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이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지도자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이번에는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17:18-19) 라고 왕이 되어서 지켜야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왕이든지 지도자이든지 성경을 항상 가까이 두고 읽고 공부하고 성경말씀에 있는 것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대신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두고 읽고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읽고 있습니까?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왕이든지 어떤 지도자이든지 누구든지 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할 것은 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면 잘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망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 사건을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많은 과일이 있게 하셨는데 그 중앙에 나무를 두 그루 두셨습니다. 하나는 선악과가 맺히게 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바로 앞에 나무 하나를 더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두 나무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는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먼저 보여주신 생명나무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먹어도 된다는 말씀이고 이 말씀 전체를 미루어보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먹어도 된다, 먹어야한다는 생명나무는 먹지 아니하고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는 먹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낙원을 빼앗기고 쫓겨나고 맙니다. 저주를 받습니다. 죽을 때까지 고생하고 기어이는 죽고 맙니다.
이 말씀을 명심해야합니다. 나라의 지도자들, 기업의 경영자들, 가정의 가장들, 교회의 지도자들은 늘 성경을 옆에 두고 보고 또 보고 배우고 공부하고 그 말씀 그대로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렇게 할 때 날이 장구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신1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