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축복하라 (마가복음 12:28~34)
원수를 축복하라
마가복음 12:28~34
인류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교수가 말했습니다. ‘현 세대는 인류역사가 백만 년에 겪은 모든 변혁을 한 인생에서 겪는 최초의 세대이자 마지막 세대인지도 모른다.’ 그 교수는 사람들이 신는 신발을 그 하나의 예로 들었습니다. ‘인류 문명이 제공해 온 모든 종류의 신을 다 신어본 세대는 인류 역사상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의 70대뿐이다.’
여러분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짚신을 신었고 검정 고무신, 흰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운동화를 신었고 학교 다닐 때는 신 같지도 않은 군화를 멋있다고 신고 다녔고, 우리나라에서 만든 구두를 신었고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비싼 외국 구두를 신었습니다. 이것을 다 신어본 사람이 대한민국의 70대밖에 없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속도가 빠른 초스피드 사회라는 말입니다. 이미 지금 그렇게 되었고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교수는 이 세대의 사람들에게 경고성 주의를 줍니다. ‘그러한 변혁은 이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상이 된다는 점을 중시해야한다. 앞으로는 과거처럼 변화 없는 안일한 삶을 기대할 수 없다.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시대에 변혁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그런 경고와 함께 희망의 말을 빠뜨리지는 않았습니다. ‘변혁은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것이지만 대신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기회의 시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도태가 아니라 희망의 시대가가 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시대는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다음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혼란의 시대입니다. 개인주의가 아주 극심해질 것입니다. 대강 심한 것이 아니라 매우 심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미 개인주의가 심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점점 더 극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성가치가 붕괴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항상 그러했지만 앞으로는 급격하게 기성사회가 붕괴될 것이고, 통제 불가능, 예측불가능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상식으로 법으로 정치로 예측도 불가능하고 통제도 불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인데 이런 전문가들의 의견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이런 지난 8년간 미국 그리고 전 세계의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던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한 말이 있습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표퓰리즘이 대세인 것이 분명한 것이 현실이다.’ 진보도 보수도 표퓰리즘을 추구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표퓰리즘은 인종, 종교, 문화 정체성과 결합될 때 휘발성이 강해진다’ 라고도 말했습니다. 이것을 미국 대통령 한 사람이 그냥 말한 정도로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바마 그 자체로만 해도 대단히 똑똑한 사람입니다. 거기다 미국대통령은 세계 최고의 정보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조력자를 얻을 수 있고 세계의 가장 중요한 일들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이 미국대통령입니다. 그런 미국 대통령이 이런 소리를 했다는데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중요한 말을 덧붙였습니다. ‘사람들은 변화가 가져올 결과를 잘 모르면서 단순히 변화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르면서 단지 변화만 선택한다, 이런 딱한 일들이 세계 곳곳에 벌어졌다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말하는 것이 종말의 시대입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종교인들이 말해왔고 지금도 공히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증명하는 좋은 자료가 있습니다. 지구 종말의 시계, 지구 운명의 시계(The doomsday clock)가 그것입니다. 지구 종말의 시계가 자정을 가르치는 순간 인류는 멸망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시계를 관리하는 미국의 핵과학자들은 마지막으로 2015년 3월 21일에 그 시계를 고정했습니다. 종전보다 2분 더 자정 쪽으로 당겨 23시 57분으로 한 것입니다. 3분만 더 지나면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과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현재는 지구 종말 일보직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종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세상 끝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을 받은 예수님의 대답은 요약하면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미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야말로 진정한 지도자라고 나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현재 도 틈만 나면 세상을, 세계를 움직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몇 몇 보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의 기회만 있으면 내가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잠룡(潛龍)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그 표현이 아주 우습습니다. 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용 같지 않습니다. 미꾸라지만 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야말로 이 나라의 진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떠들어댑니다. ‘진짜 지도자’가 되어주었으면 되겠습니다. 첫 번째는 이러한 미혹입니다.
두 번째는 난리입니다. 민족과 민족이 종족과 종족이 나라와 나라가 서로 다투고 전쟁할 것이라고 하시고
세 번째로 자연재해를 말씀하셨습니다. 곳곳에 굶어죽는 기근이 많이 생길 것이고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번째는 미움과 무정입니다.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서로 책임을 돌리는 미움의 세대이고, 사랑도 없고 정도 없고 아무런 인정머리가 없는 세상을 말합니다. 부부간에도 정이 식어질 것이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정이 없는 그런 무정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시대가 꼭 그러합니다. 나라 밖을 보아도 그렇고 나라 안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나라밖을 보면 나라와 나라의 분쟁, 종족과 종족의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까? 그 상황을 제대로 알면 밥이 잘 안 넘어갑니다.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진은 세계 곳곳에서 연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라 안 사람끼리는 어떻습니까? 속되게 표현하면 밤낮 서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웁니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완전히 쓰러질 때까지 싸우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꼴 같지도 않은 세상에 끌려갑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마감할 때 내가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았는지 후회막급일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후회하면 땅을 치고 통곡을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제대로 살 것인가?
2천 년 전에도 이 문제에 대하여 무척이나 궁금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 중 한 사람인 서기관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당한 경제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종교적 지위도 있었습니다. 전문적 지식이 있는 전문인이었습니다. 한평생 나름대로 성경을 연구하고 깊은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 깊은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인생을 끝내도 되겠는가? 사는데 부족함이 없지만 무언가는 아쉽고 무언가 허전함이 이 서기관 마음 속 깊숙이 있었습니다. 이대로 살 수가 없다,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라는 젊은 랍비를 보고 저 분이라면 나의 이 문제를 확실하게 대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질문했습니다. 그 질문이 ‘모든 계명 중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라는 28절입니다. 이 말은 내가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하겠는지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29-31절)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서기관이 알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눈앞이 훤해졌습니다. 가슴이 뚫렸습니다. 서기관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한다고 감탄했습니다.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이 서기관인 지금까지 그 문제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이런 저런 노력도 해보았고, 이렇게 저렇게 살아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기 인생의 그 큰 문제가 예수님의 한 마디 말씀으로 단 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 다 이 서기관이 받았던 그 감동, 감명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살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만 해도 인생이 괜찮습니다. 이것만 알아도 괜찮습니다. 이런 결심만 서도 괜찮습니다. 그때 서기관이 감동을 받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34절) 큰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말씀 중에 무언가 콕 찌르는 것이 있습니다. ‘멀지 않도다..’ 무언가 남아있습니다. 가까이는 갔는데 아직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아니겠습니까? 감동을 받았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감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좋은 감동, 좋은 감격, 좋은 감명이 되려면 삶으로 이어져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감명을 받습니다. 심지어는 TV 드라마를 보고도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조폭 영화를 보고도 감동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감동만 받고 맙니다. 그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말고 그 말씀대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 숙제가 그 서기관에게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제 주어졌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 예수님께서 답을 주십니다.
첫째는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라는 2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 주인이다, 한 분만을 나의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다른 방향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 한 분 이외 다른 것들, 이런 것 저런 것 전부 다 그저 그런 것으로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그것 없으면 못 살 것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용을 들어보면 거의 비슷합니다. 성경 몇 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귀하게 여기는가를 말씀하시는데 그 내용들이 다 비슷합니다.
먼저, 창세가 3장에 하와를 통해서 인간이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 이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신약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예수님을 시험하는 마귀를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돌로 떡을 만들라고 합니다. 물질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놓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영광을 돌려줄 것이라고 합니다. 명예입니다. 한 번만 절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말합니다. 소유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끝나갈 무렵 요한 일서 2장에서 세 가지를 또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육체의 정욕입니다. 육체의 쾌락, ‘육체적으로 인간적으로 좋은 것’이고 두 번째는 안목의 정욕을 말씀합니다. 눈의 욕심 즉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이고, 세 번째는 이생의 자랑을 말씀하십니다. 성경의 다른 번역에는 재산자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그것이 꼭 더 따뜻하기 때문에, 더 시원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이런 옷을 입으면 이런 차를 타고 다니면 이런 집에 살면 이런 곳에 출입하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눈의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전체를 요약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우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가깝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돈 즉 맘몬신이고 또 하나는 명예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가 더해집니다. 건강과 자식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필요한 것이고 가장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것이고 좋고 필요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저 그러려니 하라!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 것에 무게를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돈 바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무게 중심을 그런 곳에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기독교인들이 힘쓰고 애쓰는 것은 단 하나 하나님 한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한 분께 마음을 두고 뜻을 두고 힘을 다해서 사랑하라, 심지어는 목숨을 바칠 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에게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여러분들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좋으시라고 요구하시겠습니까?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하나님이 득 볼 것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는 일이 줄어드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행복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자식들이 오래 오래 행복하게 웃고 살라고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주님의 이 말씀에 감동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이 문제가 생겨나게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겠는가?’
이 질문에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한다면 무엇을 해줄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아내가 무엇을 제일 좋아하는지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실컷 보라고 하시고, 아내가 집에 일찍 들어오는 것을 좋아한다면 일찍 들어가고, 아내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아내 말을 들어주는 것, 이것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분명하게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강조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너무 화가 나셔서 책망하실 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도 순종하지 않으니 순종만 하면 제사 드린 것처럼 생각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9장에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마9:1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마12: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도 긍휼이 없고 자비가 없기 때문에 긍휼과 자비만 있으면 내가 여러분들이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드린 것처럼 생각해주겠다, 예배드린 것만큼 귀하게 여겨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귀하게 여기는 것이 예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배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신다면 예배를 좋아하십시오. 특히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 등 공예배에 할 수만 있으면 참석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배를 좋아하고 예배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록펠러의 성공비결 중에서 하나가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제일 성공한 사람의 자리에 록펠러가 절대로 빠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정말로 좋아하십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웃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사람 사랑하는 것에 당장 따라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해야하는가?’, ‘예수께서 사랑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5:45)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십니다. 좋은 사람, 안 좋은 사람, 덜한 사람, 더한 사람, 예수 믿는 사람, 귀신 믿는 사람까지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하실 일은 다른 핑계대지 말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진정 하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성경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계속해서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특별히 힘을 주어서 이런 사람들을 더 사랑하라고 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못 배운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더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또 포함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각별하게 강조하시는 이웃이 있는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사랑은 더더욱 할 수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4-46)
여러분을 힘들게 한 사람, 괴롭힌 사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미국 TV드라마가 있습니다. 백악관 이야기입니다. 대통령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통령만 아니면 자기가 대통령이 될법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원의장입니다. 그 하원의원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속상해서 틈만 나면 승계 받은 대통령을 아주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스겔서 18장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18:20)
마침내 이 하원의장의 정치생명이 확실하게 끊길만한 치명적인 비디오테이프가 발견되어 대통령 손에 전달됩니다. 그 하원의장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던 대통령 주변 사람들 모두 다 그 테이프를 이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하원의원의 생명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은 혼이 나봐야 한다고 생각들 합니다. 그 테이프를 손에 든 대통령은 많은 생각을 합니다. 생각 끝에 나는 이 테이프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원수 같은 하원의장을 추수감사절 자기 집 행사에 초청하여 추수감사절 선물로 박스를 건내면서 “원본과 일체의 사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은 6장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6:27-28)
일본의 한 유명작가가 현시대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 특히 사회 시스템을 꼭대기에서 핸들링하고 있는 사람들이 갈수록 점점 비상식적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나쁜 시대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차갑고 가시 돋친 날카로운 말들만 이 세상에 넘쳐난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서로 마음을 위로하고 천천히 함께 생각해보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초조해하지 맙시다. 우리 차나 한 잔 하면서 천천히 지혜를 함께 모아봅시다. 이런 말들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레위기 19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19:18)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큰 일이 있고 잘못된 일 시끄러운 일이 있을 때,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책임지라고 할 것이 아니라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거나 조금 더 나아가서 ‘제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요?’ 라고 하는 이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래 전의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 이 노래 부르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 우리말 제목으로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입니다. 가사가 좀 길지만 너무 좋은 가사라 다 적어보았습니다.
‘당신이 심신이 피로하고 작게만 느껴져서 눈에 눈물이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 줄게요. 나는 당신 편이예요.
힘든 시기가 닥쳤지만 주위에 친구도 없을 때, 내가 엎드려 험난한 물살 위에 다리가 되어드릴게요. 내가 엎드려 험난한 물살 위에 다리가 되어드릴게요.
당신이 무일푼이 되어 거리로 나앉게 되어 견디기 어려운 밤이 찾아오면 제가 당신을 위로해드리고 당신 편에 서 드릴게요.
어둠이 몰려와 주위에 온통 고통으로 가득 찰 때, 내가 엎드려 험한 물살 위에 다리가 되어드릴게요. 내가 엎드려 험난한 물살 위에 다리가 되어드릴게요.
당신의 마음을 편히 해드릴게요. 항해를 멈추지 마세요. 당신의 마음에 소중한 그대입니다. 계속 나가세요. 당신에게도 환하게 빛날 때가 찾아올 겁니다.
당신의 모든 꿈들이 지금 다가오고 있답니다. 그 꿈들이 빛나는 모습을 보세요. 만약 동행이 필요하면 내가 당신 뒤를 따라 항해할 겁니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이 노랫말을 지은 사람은 참 멋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노랫말의 뜻을 알고 부르는 사람들도 다 멋있는 사람들입니다. 시끄러운 세상, 다 책임을 돌리고 야단만 치고 불평만 하고 원망만 하는 세상에 ‘내가’ 다리가 되어보십시오. 최고의 지혜가 여기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