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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교인들 (빌립보서 1:3~11)

분당소망교회 2018. 8. 9. 15:42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교인들

 

 

 

빌립보서 1:3~11 

 

 

소매치기로 3번에 걸쳐 30년간 복역한 전문 소매치기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여인을 만납니다. 그 남자를 만난 여인은 그에게 선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인은 자기가 그의 삶을 돌이키기 위해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남자를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남자의 여동생도 오빠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그 소매치기에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소위 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두툼한 돈뭉치를 틀림없이 손에 넣었음에도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전에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던 일이었습니다. 또 남의 지갑을 성공적으로 낚아챘는데 열어보니 빈 지갑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남의 지갑에 돈이 어느 정도 들어있다는 것까지도 다 알았고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틀림없이 성공했다고 하는 그 때에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경찰이 바로 뒤에 있었습니다. 식겁을 하고 포기했습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치 신비하고 엄청난 힘이 자기를 끄는 것 같았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두 여인의 기도가 이처럼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에는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난 후 마치 자동판매기에 돈을 넣고 금방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듯, 믿지 못하고 기도의 능력을 생각하지 못하고 기도를 중단하곤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잔뜩 준비하고 있는데 그만 포기하고 말아버립니다. 이런 일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최고의 기도를 받은 교회 그리고 교인들이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입니다.

사도바울 일행이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선교의 일이 도무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 일행은 즉각 그것은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길이 아니라 저 길이라고 생각하고 갔지만 그 길로 가 봐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동쪽으로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갔지만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북쪽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지만 거기서도 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혹 처음에 놓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서쪽으로 갔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점점 더 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 바울이 밤중에 꿈을 꿉니다. 유럽 마케도니아의 한 사람이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울과 일행은 그 꿈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유럽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계시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바울 일행은 그동안 선교하던 아시아를 떠나서 유럽으로 들어갔습니다. 유럽에서 맨 처음에 도착한 도시가 빌립보였습니다. 그때 세운 교회가 오늘 본문의 빌립보교회입니다.

 

이 빌립보 교인들이 자기들의 믿음의 아버지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바울을 도울 수 있을지 의논을 하다가 그들 중 한 사람을 로마에 보내서 감옥 속에 계신 바울을 섬기게 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한 사람을 정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물질, 돈을 들려서 로마로 보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파송을 받은 그가 도착해서 바울에게 물질도 드리고 아예 거기 주저앉아서 바울을 섬기게 됩니다.

바울은 그동안 너무 힘들고 고달픈 감옥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 빌립보 교인들의 손길로 말미암아 큰 위로를 받고 실제적으로도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 일을 기회로 로마 감옥에 갇혀있던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이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최고의 감사 그리고 최고의 축복기도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제가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지금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또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기도한다는 고백을 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 좋았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처럼 못난 사람이 저렇게 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를 보면 아무리 봐도 저런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데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나로 하여금 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이런 교인들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종도 행복하고 하나님도 행복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그 당사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하면 여러분의 가족들이 행복합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위해서 바울은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만이 아니라 어떤 기도를 하든지 기도할 때마다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서 목회할 때에는 물론이었지만 그곳을 떠나서 다른 데서 목회를 할 때에도 빌립보 교회만큼은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늘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14절에서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이라고 밝혔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간구한다는 표현을 합니다. 어떤 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참 좋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편지로 자기가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이 정도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기 전까지 빌립보 교인들은 이전에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 바울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기도할 것이라는 정도는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기도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내 기도를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못하든지, 알고 있든지 모르든지 기도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되십시오. 이런 사람들은 복을 받는데 자기가 왜 복을 받는지 모릅니다. 이상하게 복을 받습니다. 자식들이 잘 되고 하는 일이 잘 됩니다. 내 능력만으로는 이 정도로 사업이 될 수 없는데 사업이 너무 잘 됩니다. 우리 재주로는 그럴 수 없는데 아이들이 잘 큽니다. 일이 풀려갑니다.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한 채 신기하게 그런 말을 했다 싶을 정도로 관계가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도 정작 자신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부족하지만 저 자신도 그러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참으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저는 압니다. 이것이 저 자신 때문에 받은 복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께서 제가 예뻐서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다 저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의 기도 덕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냥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교회 교우들의 기도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기도하시는 분들은 정작 자신의 기도가 얼마나 능력 있고 권세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저는 알고 그 기도가 실제적으로 저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위해서 또 주일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누군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지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들 덕분에 교회에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부족한 종에게도 선물, 복을 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이전에 섬기던 교회의 교우들도 생각합니다. 또 지금은 이 나라를 떠나서 해외에 가서 사는 교우들 그 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그 기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이런 저런 연유로 알게 된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저는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그냥 겸손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압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기도에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저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랑하는 저의 가족들, 집안사람들도 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분들의 기도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더 많이 느끼는 바는 기도에는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시는 분들이 여기까지 알면 더 좋겠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서 간구한다는 표현,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간구한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그렇게 많은 공부를 하고 그런 위치의 전부를 다 포기하고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충성했습니다. 자기 목숨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위험에도 복음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종이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바울이 기도하면 얼마나 흔쾌히 응답하시겠습니까?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저 아이가 이제는 누구를 위해서 기도할까? 내가 저 아이가 기도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무슨 은혜를 베풀까? 무슨 복을 줄까?’

 

이와 관계해서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보 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바울의 편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7) 라는 말씀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서 여러분들이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내 머리 속에 내 가슴속에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가슴 속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자주 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당소망교회 20년 동안 늘 제 마음에 있는 분이 몇 분 계십니다. 그 중 한 분으로 김미혜라는 이름을 가진 권사님이 계십니다. 제가 개척 준비할 때 마음이 몹시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연로하신 이 할머니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차를 마시는 동안 저절로 제 마음 속에 힘든 마음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 할머니를 만나서 힘든 것을 때 말씀드리고 난 뒤 일어설 무렵에 권사님, 힘든 마음을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권사님은 정색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목사님이 나에게 그런 말씀 안 하시면 누구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이 나이 들도록 오늘까지 살려두신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런 일마저 없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더 이상 살려두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 할머니 권사님이 돌아가신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권사님은 그때 그 얼굴, 그 표정 그대로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립습니다. 이렇게 사람 마음속에 그리고 하나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바울은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7) 라고 말씀합니다. 이때 은혜란 직분 혹은 사역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사명은 사도직입니다. 바울은 여러분들이 내 선교하는 일, 내 사도직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서 목회할 때에도 빌립보 교회를 떠나서 멀리 있을 때에도 빌립보 교인들은 늘 바울과 함께 바울의 모든 일에 참여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느꼈습니다. 구체적으로 7절에서 나의 매임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빌립보 교인들이 자기와 함께 감옥에 있음을 느꼈습니다. 물론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힐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감옥에 함께 있을 수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군대에 가면 어머니가 그 아들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멀리 해외에 공부하러 갈 때 돈만 보내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머니가 아버지가 그 딸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싶지만 대화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로 있으면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궁금한 일이 있어서 하나님께 묻고 싶은 일이 있을 때에도 정말로 마음이 있고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대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통을 당할 때 여러분이 진정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내가 그 고통을 대신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고통이 감소될 수가 있습니다. 저 사람의 슬픔을 가져오면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슬픔이 감해집니다. 눈물이 감해집니다.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바울에게 그렇습니다. 항상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변명함’(7) 이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힌 후에 모두 다 선교에 참여했습니다. 바울이 선교를 너무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지금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제일 힘들어할 것이 선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가슴아파한다는 것을 빌립보 교인들은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맨 처음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울의 소식이 전해왔을 때 모두 다 가슴아파했습니다. 믿음의 아버지께서 고통을 당한다고 가슴아파하다가 생각한 것이 이 상황에서 바울이 우리들에게 정말로 바라는 바를 하기로 생각했습니다. 당연하게 선교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빌립보 교인들이 발 벗고 선교에 나섰습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1:14) 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고맙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기뻐하실 것입니다.’ 라는 바울의 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늘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가슴 속에 있을 수밖에, 기도 속에 축복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정 마음으로 동참하게 되면 반드시 따라가는 것이 있습니다. 행동이 따라갑니다. 마음만 있는 사람은 실제에 있어서도 마음 그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말만 있는 사람은 행동이 따라가지 않고 정말로 마음이 있으면 행동이 따라갑니다. 몸도 따라갑니다. 어떤 형태로든 몸이 움직이게 되어있습니다.

 

하나 더 따라가는 것이 있습니다. 물질이 따라갑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떠나갈 때에도 다른 곳에서 선교할 때에도 늘 바울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왔습니다.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4:14-16) 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여러분들이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 했습니다. 복음의 시초에 주고받는 것으로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여러분 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한 번뿐만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냈습니다.’ 라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두 번이 별 것 아닌 것 같습니까? 요즘이야 송금하고 싶으면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 돈을 보내려면 보내는데 훨씬 더 많은 돈이 듭니다. 사람을 구해서 돈을 들고 가야합니다. 두 번 보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이들은 사람을 보내고 돈도 보내고 필요한 물질도 보냈습니다. 행동도 따라가고 물질도 따라간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가 말했습니다.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자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머니가 따라가지 않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열리면 주머니도 같이 열린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21절에서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이 가면 마음이 따라갑니다. 희한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가면 물질이 함께 가도록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이런 아름다운 마음은 믿음의 아버지인 바울에 대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다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참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복받을만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귀하게 여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그 마음은 항상 동일했습니다.

유대지방에 큰 흉년이 생겼습니다. 유대에 있는 예루살렘 교인들이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지방에 있는 기독교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인들을 돕기 위해서 구제헌금을 하게 됩니다. 그 소식을 빌립보 교회도 듣습니다. 그들도 구제에 같이 나섰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빌립보 교회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보다도 형편이 더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그때 빌립보 교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밝히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8장에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조목조목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표현은 이러합니다.

첫 번째, 빌립보 교회 교인들의 형편은 극심하게 가난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구제에 참여했습니다. 두 번째, 빌립보 교인들이 그 구제에 참여한 것은 누가 강제했거나 하라고 권유해서가 아니라 그 분들이 자원해서 그 일에 참여했습니다. 세 번째, 자원으로 참여하는 데에도 그냥 자원 정도가 아니라 간절하게 우리도 그 일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참여하게 된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그들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구제 헌금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이 조심스럽게 말렸습니다. 잘못하면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런 귀한 일에 참여하는 것은 정말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우 여러분들은 지금 흉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보다 더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을 제가 압니다.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기독교 교인들이 다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마음만 해도 좋습니다. 기도만 해주셔도 좋습니다. 참여하지 마십시오.” 라고 조심스럽게 말렸습니다. 그러자 빌립보 교인들은 오히려 바울님, 그러지 마십시오. 우리도 제발 참여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만류할 수가 없었습니다. 네 번째, 빌립보 교인들은 그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다른 넉넉한 교회보다 더 크게 참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1-5)

이런 사람들은 말리지 못합니다. 말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말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도 못 말립니다. 우리가 말릴 이유가 없습니다. 한 두 번은 말할 수 있지만 끝까지 말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때가 되면 하나님이 너무 챙기신다고 생각될 정도로 챙기십니다.

 

이런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서 바울이 축복합니다. 먼저 자기가 빌립보 교회를 축복하면서 내가 축복하는 것이 나만의 축복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한다는 것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라고 8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도 하나님도 여러분을 이렇게 좋아합니다.’ 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기분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이 좋아하시면 그 사람에게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 사람의 좋은 것이 됩니다. 지금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 ‘하나님께서 너무 너무 좋아하십니다.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그 옆에 계시는 우리 예수님이 여러분을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라는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9-11)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라는 말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 여러분,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서 노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인들을 보면서 기분 좋아서 노래하십니다. 이 광경을 눈으로 한 번 그려 보십시오. 최고 중의 최고, 풍성 중에서 풍성, 충만 중에서 최고의 충만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받은 축복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축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4:19)

이 말씀을 크리스찬 뱅크’, ‘기독교인들의 금고(金庫)’라고 말합니다. 이 금고는 여러분들에게 물질 조금 주고난 후 그것을 아껴 쓰고 지키려고 애써야 할 정도의 복이 아니라, 현대의 말로 한다면 한도가 없는 무제한 캐시카드를 줘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마음대로 찾아 쓰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여러분, 신앙 생활 하려면 이 정도의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고 기독교 교인으로 살려면 이 정도로 살아보십시오. 아무 걱정할 거리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 경제문제, 그리고 건강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는 사람, 늘 하나님의 가슴 속에 하나님의 뇌리 속에 기억되고 기도 속에 있어지는 사람, 예수님께서 가운데 계시는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 중보하실 때마다 여러분의 이름을 거론할만한 사람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