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야곱의 시작 (창세기 25:19~26 )

분당소망교회 2018. 10. 21. 14:40

   

 

야곱의 시작

 

 

 

창세기 25:19~26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영국의 런던이 첫 번째로 폭격을 받았습니다. 폭격을 받은 그 이튿날 런던에 있는 모든 언론계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언론인이 제안했습니다. ‘여러분, 영국 언론은 사회에 대하여 아주 예리한 비판적 안목을 가진 언론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판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전시입니다. 언론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합니다. 비판은 나중에 하기로 합시다. 희망을 선전하고 희망의 기사를 씁시다.’ 런던의 모든 신문기자들은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실었습니다. 군대에 출정하는 젊은이들의 늠름한 모습도 보도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지도자들의 희망찬 메시지가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과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러 예배당에 모인 여인들의 모습이 신문의 첫 면을 장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영국이 바뀌었습니다. 영국 국토 전체는 한 순간에 변했습니다. 영국민들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희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승리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나이 마흔 살이 되어서 리브가와 결혼했습니다.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자식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내 리브가를 임신하게 하셨습니다. 임신한 아내가 복통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다시 이삭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왜 그렇게 복통이 심했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아이를 낳았습니다. 야곱 그리고 형 에서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야곱의 인생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야곱이 출생한 이 짧은 이야기로 하나님께서 기독교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가르치십니다. ‘신자들은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지 기도해야한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 예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불임입니다. 불임은 의학적으로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치료 가능한 불임도 있고 가능하지 않는 불임도 있습니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임신을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애를 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기독교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불임이 치료가능하든 가능하지 못하든, 아이를 낳기 원하든 원하지 않던 어떤 것이든 간에 그런 일이 있을 때 기도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자 이삭이 하나님께 아이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꺼번에 두 아들을 주셨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자식을 못 낳았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기도했는지에 대해서 사무엘상 1장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사1:10-11)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의 종으로 바치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뒤를 이어서 아들 셋을 더 주시고 딸을 둘 더 주셨습니다.

심지어 그 무서운 죄를 지은 가인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가인도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 기도를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 이전 하나님은 가인이 죄를 지었을 때 여러 차례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끝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이 가인에게 심판을 명하셨습니다. 그제야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던 가인이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던 가인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받아주셨습니다. 창세기 4장에 그것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가인이 동생을 죽이고 난 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4-10-12)

하나님께서 심판을 말씀하시자 그제야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신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4:13-14)

하나님께서 그 호소를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에 받으시지 않을 것 같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4:15)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지켜주신다는 표를 주셨습니다. 이런 가인 같은 사람의 기도도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아실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대체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들어주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이것은 기억해야합니다. 내가 간절하게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만큼은 어떻게 기도하더라도 또 어떤 사람이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들어줄 수 없는 확실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하나님께서 참으로 사랑하시는 당신의 종 바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약한 사람,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힘든 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경우는 상당히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많이 사랑하셨습니다.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우리가 보아도 바울은 너무도 충성스러웠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뒤로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입니다. 그 바울이 몸에 큰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틀림없이 간질병인 것 같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종이 자기 문제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 성도들에게 여러 어려운 일들이 있는데 그런 일을 젖혀놓고 하나님께 내 필요한 일을 먼저 들어서 응답해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로 주의 백성들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생각하는 하나님의 종이라면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하나님의 종 바울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세 번이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시는 당신의 종임에도 불구하고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바울이 간구한 것은 바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하려고 간구했습니다. 병이 낫게 되면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더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더 잘 감당할 수 있겠다고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냉정하게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내가 지금까지 너에게 베풀어준 그 은혜만 하면 되었으니 그것만 받고 끝내라는 말씀입니다. 너무 야박하시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문제 하나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 대해서 당신의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태여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이 있으면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고, 기도하지 않아도 들어주실 것은 들어주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께는 당신의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을 때가 있고 또 하나님이 뜻이 계신다면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아도 일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독특한 도그마입니다. 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설명할 때 그들이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아이러니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따로 다 정해져있다 하더라고 그러나 기도해야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놀라운 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놓으신 당신의 뜻을 바꾸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는 당신이 정하신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을 신학적 용어로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우리 보통의 시간은 크로노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정하신 시간 카이로스’, 즉 당신의 시간에 따라서 일들을 진행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 정하신 당신의 시간 카이로스까지도 바꾸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그렇게 하십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여러분이 기도하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일지라도 창조주이신 하나님, 옛날에도 창조하시고 지금도 창조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창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은 여러분이 기도하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을 일어날 수 있게 하십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사람을 보내서 너 죽을 것이니 정리하라고 통보하셨습니다. 그 통보를 받은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심하게 통곡하면서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왕하20:3) 라고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이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에게 죽을 것이라고 통보하고 돌아가는 하나님의 종이 성읍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를 불러서 다시 돌아가서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왕상20: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결정하신 하나님의 뜻, 이미 정해놓으신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를 바꾸신 것입니다.

 

심지어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가운데서도 너무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줄 알면서도 그 뜻을 바꾸어달라고 기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가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모세입니다. 모세가 광야를 지날 때 므리바의 물에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습니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나 모세가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죽을 때가 다 되어서 모세가 하나님께 이제 곧 죽을 것이니 한 번만 가나안 땅을 보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느라 죽을 고생을 다했습니다. 이 정도 되면 한 번 들어주실 법도 한데 하나님께서는 박절하게 거절하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라, 너는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고 딱 잘라서 말씀하셨습니다. 산 위에 올라가서 보기만 하라, 올라가서 보고 그것으로 끝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딱 맞아서 너무도 좋아하시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눈에 선한 당신의 종 다윗도 그런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밧세바와 우리아의 일로 하나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셔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너의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아이가 병에 걸렸습니다. 점점 심해졌습니다. 다윗은 자기 아들이 병든 것, 점점 심해지는 것 그것이 자기에게 내리시는 형벌이고 그 아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냥 기도하는 정도가 아니라 칠일동안 먹지도 아니하고 자지도 아니하고 기도했습니다. 철야에 금식기도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좋아하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그 아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사랑하시던 모세, 다윗의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기도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삭은 자식 문제를 두고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기도 응답받는데 있어서 꼭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자식을 달라고 기도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응답받았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아주 의도적으로 강조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삭의 나이입니다.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20) 라는 말씀으로 그가 마흔 살에 결혼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26) 라고 한 말씀을 더 붙이셨습니다. 20년 만에 자식을 낳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언제부터 기도했을까요? 이것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이삭을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알게 하십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보기 위해서 자기 종을 저 멀리 바벨론까지 보냈습니다. 거기서 며느리감을 데리고 오라고 보냈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일입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려서 며느리감을 구해서 돌아오는데 그때는 언제 도착할지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마 몇 달은 걸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이때 이삭의 아내감을 데리고 올 때의 광경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24:63)

이것은 이삭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때를 맞추어서 나가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늘 기도했다는 말씀입니다.

 

기도의 사람 이삭이 자식을 위해서 기도한 기간은 20년입니다. 이삭은 기도하자마자 혹은 기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응답받은 것이 아닙니다. 응답받지 못한 세월이 20년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도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잠깐 기도하고 응답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때로는 내가 응답하지 않을 것 같아도, 내가 응답하지 못할 일 같아도 그러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아들들이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22)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히브리 원어로 짓눌러서 뭉갠다, 으깬다는 뜻입니다. 복통이 심하게 일어났다는 말씀입니다. 아프면 약을 구해서 먹고, 의사를 만나서 진료도 받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의 사람 이삭은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22)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어떤 것을 물었는지 그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찌할꼬를 히브리 원어를 보면 아노키 마라고 말합니다. ‘아노키입니다. 그리고 는 의문대명사로 무엇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을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아내가 저렇게 힘들어 하는데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이 있을 때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내가 아프면, 남편이 병들었으면, 자식에게 일이 있으면 경제적인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하나님께 물으라는 것이 여러분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묻는 것은 꼭 응답을 받기 위해서 혹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위해서 간절하게 간구했을 때 기도에 응답받는 것, 그것이 곧 진짜 응답은 아니라는 것, 이것은 알아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말로 여러분에게 좋은 것인지 행복을 줄 것인지 그 반대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 있든지 어떤 경우이든지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는 까닭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자체가 대답이고 응답이고 여러분에게 복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그 사람이 복된 사람이고 기도하는 그 자체가 복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삭의 기도로 나중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야곱이 태어났습니다. 이삭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전쟁의 위협이 여전합니다. 전쟁 위협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들이 여러분 앞에 늘 있습니다. 나라의 문제, 경제문제, 가정의 문제, 자식의 문제 등 문제가 늘 끊이지 않습니다. 왜 이런 문제들이 끊어지지 않는지 혹시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그렇게 사랑하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은 문제가 끊어지고 문제가 없는 것이 여러분에게 꼭 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짜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완전하게 없어지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은 영원토록 여러분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든지 가난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을 다 없앨 수 있으신 하나님께서 없애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진짜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에게 기도하는 복, 그 사람들을 도와주는 복, 나눠주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에게 복입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최고의 것으로 응답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