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죽음과 같은 일...?(창세기 37:25-36)

분당소망교회 2019. 3. 7. 10:17

죽음과 같은 일...?

 

 

 

창세기37: 25~36 ════════════════════

 

 

배에서 일하던 선원 한 사람이 실수로 냉동컨테이너에 갇혀 있다가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 선원은 컨테이너 벽에 유리조각으로 자기가 느낀 고통, 죽어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해놓았습니다. 손과 발이 시시각각 얼어붙는 과정, 그리고 몸이 죽어가는 과정 하나하나 묘사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냉동실에서 시체를 발견했을 때 선원들은 두 번 놀라게 됩니다. 한 번은 동료선원이 냉동실에 갇혀죽은 사실에 놀랐고, 또 한 번은 그 선원은 전혀 죽을 이유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죽은 사실에 놀랐습니다. 냉동컨테이너 속은 별로 춥지 않았습니다. 추워서 얼어 죽을 만큼 추운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선원들이 냉동시스템을 확인해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냉동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선원은 얼어 죽은 것이 아니라 냉동실은 틀림없이 가동되고 있다, 냉동실 안은 당연하게 얼어 죽을 만큼 추운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죽었습니다.

 

야곱의 문제, 모두 끝이 났습니다. 외삼촌, 외사촌과의 문제도 끝이 났고, 형 에서와의 오래된 원한도 끝이 났습니다. 세겜에서 그렇게 사랑하는 딸이 몹쓸 짓을 당한 것, 처절한 복수하는 것 그것 때문에 야곱 집안 전체가 전멸 당할 뻔했던 위기 모든 것이 다 끝이 났습니다. 위기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렇게 성숙하지 않던 야곱 성숙의 문제도 끝이 난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많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나이가 들어도 성숙하지 않는 사람, 자식들이 자라서 그 부모보다 더 성숙한데 그 부모는 전혀 성숙의 단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성숙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신 것 같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그동안 늘 야곱 곁에 가까이 계시던 하나님께서 야곱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5:13)

 

야곱이 고향에 돌아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야곱에게 참으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죽음과 같은 일이 야곱에게 일어났습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죽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아들이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전혀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들이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그 자체가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특히 그의 네 아내 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자식이었습니다. 라헬은 지금은 이 땅을 떠나 더 이상 야곱 곁에 있지 않습니다. 그 야곱의 아내 라헬이 낳은 사랑스런 아들 요셉이 짐승에 물려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릅니다. 야곱이 멀리 양 치러 나갔던 형들이 잘 있는지, 양떼들은 잘 있는지 보고 오라고 요셉을 심부름 보냈습니다. 그 요셉을 형들이 미워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가까스로 제일 큰 형의 만류로 죽이지는 않고 구덩이에 집어넣고 그대로 두려고 하다가 이집트를 오가는 대상들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가축 한 마리를 잡아서 그 피를 요셉의 옷에 묻혀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아무래도 요셉이 짐승에게 변을 당한 것 같습니다.’ 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야곱이 견딜 수 없이 슬퍼합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요셉을 따라서 자기도 죽고 싶었습니다.

이런 슬픔을 누구도 위로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요셉을 그렇게 팔아넘긴 형들까지도 아버지를 위로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이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34-35)

 

요셉이 죽지 않은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어떠하든 간에 야곱에게 있어서는 요셉은 죽은 아들입니다. 확실히 죽었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죽은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많이 있습니다. 죽는 문제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일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먼저 오늘 여러분들에게 확실하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죽은 것 같이 눈에 보이고 곁에 없어서 이제 다시는 못 만나는 사람이지만 그럴 뿐이지 다른 모습으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야곱이 울고 또 울었던 것은 이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죽음 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끝났다,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이 일은 그 누가 해도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나보다 더 큰 고통, 나보다 더 큰 슬픔을 당한 사람이 누구인가? 잘못 알아서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야곱이 많이 슬펐을 것입니다. 많이 힘들고 슬퍼서 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인간인지라 그런 일을 당하면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리도 인간인지라 잠시는 슬퍼할 수가 있고 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가면 안 됩니다. 잠시 잠깐 후에는 얼른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합니다. 슬플 때, 아플 때, 고통스러울 때, 견디지 못할 때 땅을 보고 있으면 눈에 계속 보이는 것은 죽은 아들의 피 묻은 옷밖에 안 보입니다. 죽은 자식 무덤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을 보아야합니다.

골로새서 3장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3:1-2)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보면 달라집니다. 틀림없이 달라집니다. 반드시 달라집니다. 무언가는 달라집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것을 말씀해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전혀 보지 못하는 다른 세상, 특별한 것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죽고 난 후 천국에 가는 것 그것만이 복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 그런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복을 받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모르는 척 하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 겨우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는 것만 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천국에 데리고 가시는 것은 물론이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행복하도록 평화롭게 살도록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십니다.

 

엘리사 시대에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군대를 파견합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던 곳을 포위합니다. 엘리사를 모시고 있던 사환이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환이 엘리사에게 달려가서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저 아람군대가 우리를 뺑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사가 사환에게 얘야, 두려워할 것 하나도 없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라고 말하고 난 뒤 하나님, 이 친구 눈을 열어 보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 사환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주셨습니다. 엘리사 사환이 깜짝 놀랍니다. 자기들을 잡으려고 포위한 군사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많은 하나님의 군대가 자기네들을 보호하고 있는 놀라운 광경이 눈에 보인 것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에게 보여주셨던 것과 같은 광경을 여러분에게 보여주시는 광경이 있습니다. 그것이 36절 말씀입니다. 지금 야곱은 아들 요셉이 죽었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다른 것은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도 죽고 싶다, 내 아들 요셉을 따라서 죽고 싶다.’ 라고 펑펑 울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36)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아직 울고 있느냐? 아직 죽겠다고 괴로워하고 있느냐? 아직 이 원망 저 원망 불평불만하고 있느냐?’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셉은 죽지 않았다, 제대로 알아라, 다만 야곱 네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창세기 37장에서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큰 복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 다가 아닙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셉의 일은 아버지 야곱에게 있어서 처절한 비극이고 완전히 끝난 비극이었습니다. 짐승에게 물려서 비참하게 죽은 아들이 요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를 뿐이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속아서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큰 비밀을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세상 사람들이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이제는 끝이고 이것은 비극이고 이것은 참으로 슬픔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물론 요셉도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죽음의 길처럼 고달팠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저 멀리 이집트까지 질질 끌려갔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팔리는 그 과정은 정말로 죽음과 같습니다. 이 놈이 튼튼한가? 아닌가? 앞뒤로 보고 만져보는 등 온갖 일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로 힘들고 고달프고 비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잠깐 비극처럼 느껴지는 것일 뿐입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41:38-43)

이 말씀을 보십시오. 그 뒤에 전혀 다른 세상이 요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죽지 않았습니다. 다른 세상에서 잠시 고생은 있었지만 요셉은 멋지게 살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가장 잘 설명하는 곳이 있습니다. 시편 23편입니다. 그 중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라는 4절은 죽음의 길, 죽음의 길목을 정말로 제대로 보여줍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영어성경은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말하면 사망처럼 죽음처럼 보이는 골짜기다죽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속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처럼 골짜기일 뿐이지 조금 힘들고 고생되는 골짜기 일뿐, 그것도 잠시만 지나면 끝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23편 나머지 말씀 전부 다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죽음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먼저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황천을 다니면서 여기저기서 방황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국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시편 23편입니다.

그가 나를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23:1-3) 라고 말씀하시고 5절에서 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죽음이라는 원수가 나를 집어삼킨 것처럼 큰소리치면서 아주 당당하게 웃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 죽음이라는 원수 앞에서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죽은 그 사람이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라고 생각하면서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은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23:6)라고 고백하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라도 죽음과 같은 고통, 아픔, 슬픔 그리고 절망 속에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결코 여러분들이 아시는 그런 절망, 아픔 고통스러워할 것이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때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라는 36절 말씀을 보십시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될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요셉은 다른 세상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슬퍼할 일이 아니고 고통스러워할 일이 아니고 아파할 일이 아니고 원망스러워할 일이 아니라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 가운데 그런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합해서 하나님께서 멋진 일을 만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실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일을 하십시오.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원망하고 죽겠다고 소리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기만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