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탕 먹이려고...? (사도행전 18:1-11)
골탕 먹이려고...?
사도행전 18:1~11
스트레스에 관한 한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 그 일에 관해서 자세히 아는 것 즉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일을 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고 하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일을 하는 것 그 둘 중에 어느 경우가 스트레스가 더 클까?’ 라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알고 일할 때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일할 때 어떤 것이 더 스트레스가 있을까요?
이것에 관해서 스트레스 분야의 세계적인 심리학자 이스라엘 슐로모 브레츠니츠가 실험을 했습니다. 군인들을 네 개조로 나누어 각각 20Km를 행군하게 했습니다. 1조에게는 앞으로 20Km를 행군할 것임을 미리 말하고 5Km에 이르면 5Km를 왔다, 앞으로 15Km 남았다, 그 다음 10Km에서도 15Km에서도 일일이 다 이야기해주었습니다. 2조에게는 일체의 계획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먼 거리를 갈 테니 단단히 준비를 하라는 정도만 일러주었습니다. 3조에게는 15Km를 행군한다고 말한 후에 14Km에 와서 계획이 바뀌었다. 앞으로 1km가 아니라 6Km를 더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4조에게는 맨 처음에 25Km를 행군할 것이라고 말한 후, 14Km를 행군한 다음에 계획이 바뀌었다. 목표가 25Km가 아니라 20Km이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11Km가 아니라 6Km만 더 행군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은 조는 앞으로 얼마나 가고 얼마나 남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1조였습니다.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조는 아무것도 모른 채 정처 없이 가야만 하는 2조였습니다.
알면 힘이 덜 들고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됩니다. 모르면 더 힘들고 마음에 부담이 더 많아집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일은 특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이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그 다음에 그러나 이 일의 의미가 어떤 것이고 이 일의 결과는 어떨 것이라는 것을 알면 힘이 들지 않습니다. 일이 무겁지 않고 가볍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마태복음 11장에서 내게로 와서 내가 주는 멍에, 내가 주는 짐을 지라고 말씀하시면서 겉으로 보면 내 짐이 무겁고 힘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주는 멍에는 편하고 내가 주는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짐과 멍에가 힘들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가벼운 것이라는 것을 알면 힘이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그리고 내가 한 일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면 고통스럽지 않고 수고스럽지도 않고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알면 도리어 그 일이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또 하고 싶어집니다.
기도가 그렇습니다. 기도의 의미, 기도의 결과를 모르고 하면 부담이 될 뿐이지만, 기도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하나님께 올라가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자꾸 기도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의 흉내만 내지만, 이런 사람들은 기도를 하고 또 하고 자꾸 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로 의미를 알면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집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을 본 유대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체포합니다. 그들은 종교지도자뿐만 아니라 나라의 지도자 역할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채찍질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지 말라, 예수의 이름을 입 밖에도 꺼내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채찍질당하고 석방된 사도들의 뒷모습입니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속상해하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는가 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고 분노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행5:41)
사도들은 자기네들이 한 일, 당한 일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고 그것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잣집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최고 학자 바울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향을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심지어는 먹고 사는 것조차도 어려운 절박한 지경에 처하게 됩니다. 피곤합니다.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특히 아시아에서 선교를 하다가 유럽으로 가고 난 뒤에 더 엉망이 되었습니다.
유럽에 오자마자 생긴 일이 그 유명한 빌립보 감옥의 일입니다. 억울하게 체포되어서 알몸으로 매를 맞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대체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이 정도는 압니다. 그런데 바울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거기에는 다소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럽으로 오게 된 계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아, 이제는 아시아에서 그만 전하고 유럽으로 가거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유럽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 바울에게 돌아온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고 챙겨주시지 않고 도와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골탕 먹이고 고생시키려고 작정하신 듯합니다. 유럽에서 출발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해서 고생이 이어졌고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데살로니가에 가서도 그랬고 베뢰아 가서도 그랬고 그 뒤에 고린도에서는 먹고 자는 것도 힘든 최악의 상황,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실까? 아마 여러분 가운데도 이런 일을 경험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옛날에 예수 안 믿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예수님 믿고 나니 일도 안 되고 어려운 일이 생기고 사업도 잘 안되는데 왜 그럴까? 대강 대강 믿을 때는 괜찮았는데 열심히 믿고 제대로 하려고 하니 이런 문제가 생기니....’
하나님께서 바울을 유럽으로 보내실 때는 희한한 방법을 다 동원하셨습니다. 환상을 보여주시고 계시도 보여주셨습니다. 그야말로 감격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자 하나님께서는 전혀 챙겨주지 않으셨습니다. 비참한 신세가 되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모르시는 듯 내버려두셨습니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럴 거면 왜 예수를 믿는가? 라고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게 말할 일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큰 어른일수록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대단히 귀중한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여, 나 때문에 흘리는 여러분의 눈물, 땀, 피는 결단코 헛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결단코 고통의 피와 땀, 눈물이 아니다. 그것은 필경은 여러분들의 영광이 되고 복이 될 것이고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의 면류관이고 영광이고 복이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 이 말씀이십니다.
일자체도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면 힘드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손해 볼 것도 같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바보가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겉으로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다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여러분들이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다 챙겨놓으셨습니다. 다 해놓으시고 여러분은 끝내기만 하면 됩니다. 바둑으로 말하면 끝내기 돌 한 두 개만 얹으면 됩니다. 좀 더 속된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다 차려놓으신 상에 여러분은 젓가락 숟가락만 올려놓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정도로 해 놓으십니다. 이것을 믿고 사십시오. 인생이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바울이 힘들고 처량할 때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9-10절) 하나님 당신이 다 해놓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순간순간마다 들으십시오. 힘들어도 눈물이 나면서도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하고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사십시오. 인생이 편합니다. 아마 여러분들 대부분이 그 원인을 잘 모르실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그냥 알았다고 하고 나면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그 무겁던 발걸음이 괜찮아집니다.
그러나 실제의 일을 보면 상당한 기간 동안 여전히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바울을 위로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아니나 다를까 바울로 하여금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했던 유대인들이 또 들고 일어납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12-13절)
또 고발합니다. 빌립보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담대해도 실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인생은 약해집니다. 힘듭니다. 매를 잘 맞는 사람도 막상 또 매를 맞는다고 하면 힘듭니다. 워낙 매를 많이 맞아서 아무것도 겁나지 않는다고 말을 해도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사람이 위축됩니다.
바울에게 또 이런 일이 닥쳤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십시오.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14-15절)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기각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냈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서 할 일이나 하라고 말했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해놓으신 것입니다.
힘들 때는 겁도 나고 걱정도 될 것입니다. 바울에게도 이 기간이 상당히 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나면 곧 끝납니다. 상당히 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거기다 바울을 고발한 유대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게 되면 여러분들은 신이 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17절) 회당장은 유대인들의 두목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여기에 기독교인들의 감동과 감격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렇구나 생각하고 겁내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십시오. 당당해야 여러분이 버팁니다. 아니면 초라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이렇게 인도하십니다. 여러분도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손해 보는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을 것입니다. 고통스러워 잠 못 드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위로해주시고, 그 잠 못 드는 일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러분을 우뚝 영광의 자리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놓으십니다. 이것을 알고 사십시오.
여러분들은 다만 순종하기만 하면 할 수 있는 만큼만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가라고 하시면 가면 되고, 돌아가라고 하시면 돌아가면 되고,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면 가만히 있으면 되고, 그 정도는 당하라고 하시면 당하면 됩니다. 이제 그만 하라고 하시면 그만 하면 됩니다. 시키시는 대로 하고 살면 됩니다.
인생이 어려운 것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내가 자꾸 이렇게 살고 저것을 하려고 하니 그렇습니다.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고 나보고 이렇게 하라고 그러시는구나 이것만 깨달으면 됩니다.
늘 문제는 내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 살면서 공부도 할 만큼하고 이런 일에 저런 일에 성공적으로 살았겠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니 저것이 문제되고, 저것을 생각하지 이런 저런 걱정이 됩니다. 사람이 초라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앞서지 마십시오. 절대로 하나님을 앞서지 마십시오. 뒤를 따라가십시오. 잠언서 3장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잠3:5-6) 라고 말씀하십니다.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인생이 무척 어려운 것 같지만 이렇게 살면 어렵지 않습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옛날에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인생 다리에 추가 달린 것 같았는데 갑자기 추가 없어지고 날아갈 것 같습니다. 이것을 한 번 경험해보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런 것을 경험해야지 진짜 예수님 믿는 것입니다. 그저 예배당에 나오고, 헌금하고 마는 것 이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것은 여러분들이 진정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이 가르침이 한 번 더 나타납니다. 바울이 아주 힘들 때 고린도에서 한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를 만나게 되는데, 이 부부가 나중에 목회자인 아볼로를 지도하게 됩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24-25절)
아주 잘하기는 하는데 무언가가 빠졌습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26절) 평신도가 소위 목회자를 가르쳤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목회자의 문제입니다. 목회 전문가인 목회자도 목회에 부족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목사님이고 신학공부를 했고, 신학훈련, 신앙훈련을 많이 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공부했어도 늘 부족한 것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배우고 또 배워야합니다. 나이가 들어 은퇴할 때가 다되어도 배우고 또 배워야합니다. 그런데 그 목회자는 누구로부터 배워야합니까? 신학자, 선배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 신학도 안한 일반 평신도에게도 배워야합니다. 이것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브리스길라 아굴라라 부부가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어떤 것을 연유로 말미암은 것인가?’입니다. 바울이 상황이 어렵고 힘들고 아주 초라한 형편이었을 때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만났고, 이 부부는 바울을 만나 신앙이 그만큼 성숙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어려운 상황일 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동역자입니다. 그것도 보통 동역자가 아니라 브리스길라 아굴라 같은 귀한 동역자가 바울에게 생겼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바울과 함께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동역자가 되었고 심지어는 바울이 외국으로 떠날 때 함께 갑니다. 집안 살림을 다 정리하고 바울과 함께 외국으로 이민 갈 정도의 귀한 동역자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 귀한 것이 무엇으로부터 출발했는지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돈 떨어지고 친구 떨어지고 주변사람 떨어져서 기진맥진하는 기가 막히는 상황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성경이 하고 싶으신 말씀입니다. 바울에 대해서는 잠시 가슴 아프셨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계획하시고 친히 바울을 그런 상황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혹은 특별한 일을 안 하고 그냥 신앙인으로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만은 꼭 알고 계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은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이것도 챙겨주시고 저것도 계획하신다는 것을 믿고 아십시오. 어쩌면 여러분들이 당한 힘들고 어려운 일, 어려운 상황들이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셨을 수도 만드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알면 힘이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힘들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힘들어 절절 맵니다.
부디 이렇게 하십시오, ‘아, 하나님께서 하셨구나!’
이렇게 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가진 것 별로 없어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있어도 가졌어도 높은 데 있으면서도 가지지 못하는 ‘멋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들었든 안 들었든 있든지 없든지 간에 이런 당당함, 멋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인생 살면서 있으면서도 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세상적으로 대단하면서도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도 그러나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얼마든지 멋진 인생을 살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해놓으셨다는 것을 믿고 멋지게 당당하게 한 번 살아보십시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