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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요한복음 19:25~27)

분당소망교회 2013. 6. 11. 10:21

어머니


요한복음 19:25~27


언젠가 TV에 아주 연세 드신 할머니 한 분이 나와서 붓글씨를 써내려가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어머님 전상서’.. 할머니 앞에는 다른 할머니 사진이 하나 놓여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사진을 보며 말씀합니다, “어머니, 사진을 보니 이제는 제가 더 나이가 많아 보이네요. 세월이 가면서 다른 건 다 잊어버리는데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새로워집니다.” 이 말을 하시는 할머니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할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할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40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의 연세가 102세였습니다.

저도 늘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특히 명절이나 어버이날이 오면 그리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심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제 스스로 병적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TV 장면을 보고 난 후에는 전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렇게 연세 드신 할머니도, 돌아가신 지 40년이나 지났는데도 마치 며칠 전에 돌아가신 것처럼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는데 제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 10년이 조금 지나고 제 나이 이제 환갑 조금밖에 넘었는데 제가 어떻게 그 슬픔을 이기고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마 제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리움은 앞으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할 것이고 죽을 때까지 어머니 생각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자식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존재성인가 봅니다.

오래전 어느 날 저는 오랜만에 어머니 손을 잡고 길을 걸었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할머니나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걸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슬펐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노쇠해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손을 잡았는데 감각으로도 어머니 몸무게가 너무 가벼워졌습니다. 많이 슬펐습니다. 어머니가 옆에 계시기 때문에 겉으로는 표시를 내지 못했지만 가슴 속에서 통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소리는 내지 못했지만 제 눈에서 나오는 눈물은 도저히 막을 수 없었습니다. 나를 낳으시고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절에 나를 기르시느라 이렇게 늙으셨다고 생각하면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너무도 행복해하셨습니다. 어머니 몰래 눈물을 계속 훔쳐내다가 잠에서 깼습니다.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저에게 너무도 큰 행복을 주었습니다. 꿈에서나마 잠시라도 어머니를 뵐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좋았던지 모릅니다.

오래된 대중가요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그리워 그리워 너무나 그리워서 꿈길에나 만날까 잠들어 봅니다. 고운 눈매 눈웃음진 그 님은 찾아와서 외로움에 지친 나를 어루만져 줍니다. 반가워 반가워 너무나 반가워 맺힌 사연 말 못하고 몸부림치며 꿈에서 깨일까봐 그 님이 가실까봐 옷소매 부여잡고 눈물만 흘립니다.』저는 어머니 꿈을 꾸고 나면 이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이 노래속의 ‘님’은 틀림없이 이성의 ‘님’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노래를 생각하면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그 꿈을 또 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죽으시면서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본문 27절 말씀입니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지금 예수님께서 어떤 상황입니까? 손에 못이 박혀서 십자가에 박혀 있습니다. 창에 찔려서 죽어가고 있는 고통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순간, 죽음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어머니 챙기는 것을 빠뜨리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고 어떤 면에서는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이 주님을 본받으십시오. 내 것, 내 문제, 내 자식 핑계로 부모님께 소홀하지 마십시오. 그런 자는 잘 되지 못합니다. 자기뿐만 아니라 내 어머니 내 아버지보다 먼저 챙기는 내 자식도 잘 안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내 것, 내 문제, 내 자식 문제는 다음으로 하고 먼저 여러분들의 어머니, 아버지를 챙기십시오. 그런 자가 잘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을 닮은 자를 좋아하십니다. 죽어가는 그 순간, 고통의 순간에도 어머니를 잊지 않고 제자에게 부탁했던 주님께서 주님을 닮아서 어머니, 아버지를 챙기는 여러분들을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에배소서 6장 2절과 3절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특별히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것은 내가 너희에게 약속하는 명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약속은 잘 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에게는 몇 명의 동생이 있었습니다. 최소한 남자 형제만 4명이 있었고 그 외 여자 형제도 몇 명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 자기 어머니를 동생들에게 부탁하지 아니하고 제자에게 부탁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었겠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동생들이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생들이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은 위험 때문입니다. 십자가 사형의 죄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인 주변의 인물들 특별히 그 가족들은 로마 당국이 가장 위험한 인물로 간주합니다. 이 이유로 동생들은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것은 아마 동생들은 형님, 오빠가 죽어가는 그 자리에 나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나오지 못하게 하셨다는 감이 분명하게 왔습니다. 큰아들은 그렇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너희들은 나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혹시 내 아들보다 더 험한 죽음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에게는 놀라운 사랑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그 어떤 두려움도 이길 수 있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 무엇도 어머니의 사랑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어머니의 사랑을 이길 수 없습니다.

6․25때의 이야기입니다. 남한의 어느 마을에 선량한 양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인민군들이 밥을 먹기 위해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밭 위에 자리를 펴고 앉았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 숨어서 무서워 벌벌 떨고 있을 때 한 젊은 아낙이 인민군들에게 다가가서 ‘야, 이놈들아 그것을 깔고 있으면 내 새끼들을 무엇으로 먹이란 말이냐? 당장 자리를 떨고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라고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인민군들은 죽을 줄도 모르고 큰소리치는 여인을 보고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자리를 챙겨서 떠나갔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는 강합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에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4:18)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에게는 이 사랑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다 쫓아냅니다.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에게는 절대로 변지 않는 사랑이 있습니다. 자식이 잘하든 못하든 간에, 잘난 자식이든 못난 자식이든 간에, 그 자식이 어리든지 컸든지 장성해서 이미 결혼을 했든지 간에 그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땅에 내려가서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천사가 지상에 내려왔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름다운 꽃입니다. 지금 우리 예배당에 들어올 때에도 꽃들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예쁜지 모릅니다. 그 꽃을 쳐다보고 있으면 정말로 행복합니다. 천사가 그것을 보고 이것이라고 생각하고 꽃 한 송이를 집어 들고 갑니다. 한참 들고 가다가 하나 또 보입니다. 방긋방긋 웃는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어린 아이들은 여러분들의 가장 큰 행복이고 보물입니다. 여러분이 혹 몸이 지쳤을 때 여러분들을 회복시켜주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어떤 것보다 좋은 선물이 어린 아이입니다. 내 아이, 내 손자뿐만 아닙니다. 지난번 라오스 나환자촌에 갔을 때 코가 없고 손이 뭉크러진 사람들 가운데 아주 어린 아이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귀여운지 넋이 나간 것처럼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천사는 그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린 아이의 웃음을 하나 손에 들었습니다. 또 한참 길을 가는데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해보였습니다. 천사는 엄마의 사랑을 손에 들었습니다.
천사는 이 세 가지만 가지고 가면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길을 걸어가는데 한참 걷다보니 맨 처음 집어 들었던 꽃이 그만 시들어버렸습니다. 시든 꽃을 하나님께 가지고 갈 수 없어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한참 가다보니 그렇게 예쁘고 순진하고 아름답던 어린 아이가 자라나서 맨 처음 보았던 천진난만하고 순결하던 모습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어서 천사는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기를 안고 행복해하는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남아 있습니다. 어린 아기 때 보였던 그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 아이가 제법 컸을 때에도 그 아이를 쳐다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똑같았습니다. 청년이 되었을 때 그 청년을 보는 어머니의 얼굴도 옛날 아기를 보던 얼굴과 똑같았습니다. 장성한 아들을 딸을 보는 그 어머니의 얼굴 역시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습니다. 천사는 처음 둘은 버렸지만 더 행복한 마음으로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좋아하실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하나님께 갔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내 자식이 어떻든지 간에, 내 자식이 어떻게 변했든지 간에 심지어 내 자식이 나를 배반하고 나에게 못된 짓을 하고 등을 돌렸다고 해도 어머니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어머니의 사랑을 너무도 잘 노래한 사람이 한 분 있습니다. 양주동 박사입니다. 자칭 국보 1호 양주동 박사는 말도 많이 했고 글도 많이 썼습니다. 양주동 박사가 한 말 가운데 또 쓴 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글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위에 주름이 가득
따위에 그 무엇이 높다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매년 이 노래를 부르는데도 부를 때마다 맘에 새롭습니다. 변함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말합니다. 자라서 청년이 되고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아이가 결혼해서 잘 살까?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까? 늘 생각합니다.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저는 이 가사를 볼 때 조금도 과한 표현이 아니라고 확신을 합니다. 어머니 사랑이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살을 못 깎겠습니까? 뼈를 못 깎겠습니까? 실제로 제 어머니는 그러했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도 그렇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이제는 육신의 어머니가 안 계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처음부터 기억에 없는 분들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육신의 어머니 외에도 어머니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이고 누가 내 동생들이냐?’ 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들이 내 형제요 자매요 내 어머니이니라’ 라고 대답도 친히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푸른 소망교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월요일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섬기는 일인데 그 어른들을 섬기는 우리 교우들을 볼 때마다 제가 마음이 좋습니다. 그 교우들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모릅니다. 섬기는 집사님, 권사님들에게는 모두가 남의 어머니이고 남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정성껏 모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차량이 없으므로 차를 가지고 가서 모시고 오고 식사대접을 하기 위해서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려고 모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 참 좋습니다. 저는 그 교우들이 복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은 잘 되고 잘 살 것이다, 건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어머니, 아버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있고 산 넘어 바다 건너에도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고 조금만 힘을 쓰고 눈을 들어보면 우리가 모실 어른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많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 부모를 공경하라’ 라는 말씀의 부모는 육신의 부모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 기독교의 어른들은 다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이런 분들을 공경하는 사람들, 내 육신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내 배우자의 어머니 아버지를 잘 섬기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잘 되고 건강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약속하시면서 명령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