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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작은 자들아!(마태복음 8:23~27)

분당소망교회 2013. 8. 2. 13:53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태복음 8:23~27


‘흐르는 시냇물에서 돌을 치워버리면 시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 서양 속담입니다. 흐르는 물을 가로 막는 돌들이 있기 때문에 시냇물은 흘러가면서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은 종종 그리스인들에게 환난의 풍랑을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런 풍랑을 보내시는 까닭은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을 그냥 두면 노래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노래를 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환난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한 방편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환난이 왔을 때 더 강해지고 믿음을 굳게 세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이 올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에서 한 배에 탔습니다. 풍랑이 심하게 몰아쳤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로 뱃사람들이라 풍랑에 익숙한 전문가들입니다. 그러나 그 날은 워낙 풍랑이 거셌습니다. 전문가들인 제자들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풍랑가운데서도 주무십니다.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를 구해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능히 무서운 풍랑을 잠잠하게 하실 수 있는, 풍랑 가운데서도 자기들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으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7절 말씀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27절) 27절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알기는 아는 것 같은데 확실하게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믿는다고 말하기도 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제대로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 살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고 어려운 일이 있고 환경이 아무리 안 좋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당당할 수 있는 존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담대할 수 있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일이 조금만 있으면 못난 사람들처럼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움을 가지는 까닭은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지지 못해서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인 기독교인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똑같이 겪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맨 처음 고향을 떠날 때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길을 나서라고 말씀하시면서 갈 곳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냥 시키는 대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 그대로 그냥 그 말씀 따라 그냥 길을 떠났습니다. 그저 하나님만 믿고 인도해주신다는 것만 생각하고 그렇게 따라가다 보니 어느 덧 가나안에 잘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걱정도 되고 겁이 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의 그 믿음만 있다면 하나도 걱정하거나 겁낼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에 아브라함에게서 처음 믿음 그것은 어디에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대로 있다간 굶어죽겠다고 생각하고 이집트로 내려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때에 아브라함에게 흉년과 기근을 해결해주는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이때까지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하나님은 그저 갈 길을 인도하시고 지도하시는 것만 하시는 하나님일 뿐이었습니다.

이 초라한 믿음은 이집트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집트에 갔더니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또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 걱정거리는 세상에 걱정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환경에 그런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또 우리 가족에, 경제에 문제가 생겨서가 아닙니다. 내 마음에 걱정거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갔을 때 아브라함의 아내가 다른 여자, 다른 아내들보다 더 예뻤던 것 같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것이 걱정거리였습니다. 이러다간 이집트 사람들이 아내를 빼앗기 위해서 자기를 죽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당신은 내 동생이라고 하고 나를 오빠라고 부르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에게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제대로 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양만 있었고 감정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 믿음만 있을 뿐 참된 믿음은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안 되겠다고 판단하시고 아브라함을 단단히 교육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자기가 한 거짓말 때문에 아내를 이집트 왕 바로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여기서 잘 아실 것은 아브라함의 아내를 바로가 빼앗아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빼앗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서 아내를 빼앗아서 바로에게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너 아직 그것밖에 하지 못하니? 너 한번 당해보아라. 그리고 이제는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알아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에야 아브라함은 내 힘으로는, 내 머리로는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셔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로서는 내 힘만 가지고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배운 것이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경험한 것도 아무것도 아니구나, 나로서는 탁월한 선택이고 탁월한 판단이고 탁월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일어서십니다. 바로와 그 집안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는 혼이 났습니다. 바로가 얼마나 혼이 났던지 아브라함을 불러 야단을 칩니다. 왜 나에게 그런 거짓말을 했는가.. 아브라함이 아내라고 정직하게 말했다면 데리고 오라고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다 아브라함의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곧바로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보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제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까지 길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먹고 살 것이 없을 때 먹고 살 것을 주시고 이런 저런 경제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도 해결해주시고 건강 문제나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 전부 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얼마나 제대로 알게 되었는지 증명하는 것이 성경에서 줄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과 동행하던 조카 롯과 분가할 때의 일입니다. 둘 다 목축업자였기 때문에 땅을 분배해야 됩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대단히 넉넉한 모습을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네가 오른쪽 땅으로 결정하면 나는 왼쪽으로, 네가 왼쪽으로 결정하면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겠다고 말합니다. 목축업자에게 있어서 목축에 필요한 땅만큼은 절대 양보하거나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우리가 보기에 너무도 쉽게 그 땅을 양보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자기에게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땅이야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주실 수 있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기만 하면 얼마든지 비옥한 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조카 롯이 전쟁에 휩쓸렸다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훈련시킨 군사를 이끌고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서 출동하게 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그때 출동할 때 이끌고 간 군사 숫자를 318명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성경이 그렇게 아브라함의 군사 숫자를 분명하게 적시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롯을 포로로 끌고 간 적들은 한 집안의 군사, 한 나라의 군사 정도가 아니라 다섯 나라 연합군을 무찌른 강력한 군대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뻔히 아는 아브라함이 318명의 군사만 데리고 조카 롯을 구하겠다고 덤벼들 수 있었던 것은 자기 군사를 믿은 것이 아니라, 무기를 믿은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나는 어떤 전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 이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실제 세상의 전쟁이든지 경제의 전쟁이든지, 건강의 전쟁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 제대로 된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믿음의 최고조는 이삭을 바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곳이든지 간에 이런 일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준비하여 새벽 일찍 출발했습니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그 일 그 자체는 이해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시키신 나의 하나님, 그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무엇을 하시는지 잘 알지 못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무엇을 시키시든지 순종해야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드디어 아브라함은 아주 멋진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모든 크기를 훌쩍 뛰어넘는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넉넉한 아브라함, 자신감이 넘치는 아브라함, 당당한 아브라함, 온전한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봅니다. 조금 힘들고 어렵다고 하여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이집트로 내려가야겠다고 당장 결정했던 초라한 믿음, 자기 살기 위해서, 자기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길 수도 있는 거짓말을 만든 비겁하기 짝이 없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런 멋진 모습의 아브라함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이집트에서의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 게 된 믿음 때문입니다.
부디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들이 정녕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셨다면 여러분에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하나님께 고백하시고 마음 문을 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마음 문 앞에 기다리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여러분 마음속에 들어가셔서 여러분의 모든 삶과 여러분의 인격을 주장하시고 도와주십니다. 부디 주님을 두고도 무서워서 벌벌 떠는 제자들의 믿음을 넘어서십시오. 여러분 눈에 예수님이 보이지 아니하고 주무시는 것 같아도 믿음을 가지고 아브라함처럼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이 당당한 그리스도인. 멋진 신자가 되기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 경제문제든지 건강문제든지 자식의 문제이든지 간에 어떤 일에서든지 승리를 거두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