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보초의 나팔 (마가복음 13:1~13)

분당소망교회 2018. 6. 1. 14:47

  

  

보초의 나팔

 

 

 

마가복음 13:1~13 

 

 

며칠 전 동아일보에 요즘처럼 민감한 시기에 오해받을만한 칼럼이 하나 실렸습니다. 요약합니다.

한 백작부인이 추기경에게 앙투아네트 왕비의 가짜 편지를 전달한다. 추기경은 속아 넘어간다. 장관 자리를 노리고 왕비에게 접근할 기회를 찾고 있던 추기경은 왕비 앙투아네트가 자기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고 착각한다. 백작부인은 왕비를 닮은 창녀를 데려와 추기경과 가짜 왕비의 밀회를 주선하기까지 한다. 백작부인은 추기경으로부터 여러 차례 돈을 받아 가로채기도 한다. 마침내 큰 사건이 터진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고 싶다는 왕비의 가짜 편지를 추기경에게 전달한다. 추기경은 왕비의 이름으로 고가의 목걸이를 주문한다. 왕비의 친필사인이라고 믿은 보석상은 추기경에게 목걸이를 보낸다. 돈이 들어올 때가 지나도 목걸이 대금이 입금되지 않자 보석상은 왕비에게 청구서를 보낸다. 일이 발각된다. 재판이 열린다.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진다. 창녀는 왕비의 대역을 자백한다. 가짜 편지를 쓴 백작부인은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앙투아네트는 그런 일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이 밝혀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재판결과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왕비에 대한 나쁜 소문들이 악의적인 신문과 팸플릿을 통해서 널리 퍼졌다.

이 희대의 사건이 4년 후 프랑스대혁명의 도화선이 된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라는 고약한 말을 앙투아네트가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은 루소의 고백록의 한 구절이다. 그러나 마치 앙투아네트가 이 말을 한 것처럼 악의적으로 선전되었다. 이 말 한 마디로 민중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왕비는 굶주리는 민중의 아픔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는 비정하고 철없는 왕비, 매일 밤 파티나 여는 사치와 향락의 왕비가 되어버린다. 소문은 점점 더 수위를 높여간다. ‘앙투아네트는 피에 굶주린 괴물이다. 방탕한 쾌락에 몸을 내맡긴 색정왕이다. 주의의 모든 여자들과 동성애를 즐기는 여자다. 나아가 근친상간까지 범하는 여자가 된다. 마침내 결정적인 패륜, 자기의 여덟 살 난 아들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말까지 퍼진다.

왕비가 마지막 재판에 불려나갔다. 국고탕진, 내란음모, 적과 내통 등 온갖 혐의가 씌워졌다. 미동도 하지 않고 자신의 혐의내용을 듣고 있던 왕비가 여덟 살짜리 자기 아들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마지막 죄목이 낭독되자 격한 감정의 동요를 보인다. 앙투아네트는 청중석의 여자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 말한다. “여러분은 저 말이 믿겨지시나요?” 청중석에 있던 여인들은 왕비에게 적대적인 여인들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왕비에 대해서 동정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왕비의 그 말을 들은 여인들은 왕비의 말을 듣고 입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흘 뒤 혁명광장에서 궁중의 환호 속에 앙투아네트는 처형된다. 앙투아네트가 단두대로 오르며 실수로 사형집행인의 발을 밟는다. 왕비가 깜짝 놀라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저 자신도 앙투아네트에 대해서 그동안 이런 저런 풍문들만 가지고 판단했습니다. 상당부분 오해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 이런 저런 문서들을 통해서 그 일들의 진실에 가까운 말들을 듣고 난 뒤에 미안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외국 사람이지만 많이 미안했습니다.

이글을 쓴 교수는 이런 때에 이런 글 정도를 쓸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상당한 용기입니다. 글 마지막에 그 교수는 이 말을 합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50만 명 이상의 목숨을 희생시켰다. 길로틴에서 처형된 사람만도 4만 명이 넘었다.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희생자들 중 80%이상은 귀족이 아니라 평민들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 저질 주간지에 나오는 것 같은 말들이 너무 난무합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소위 중요 신문사라고 하는 신문들도 마찬가지이고 방송 심지어는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방송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듣기에 너무 지저분하고 추합니다. 언론들이 이 나라 국민들을 3류가 아니라 4류도 아닌 5류 시민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현금 세계 유일한 어른인 프란체스코 교황도 이에 대해서 경고했습니다. ‘언론이 추잡한 스캔들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언론이 사실도 아닌 스캔들이나 추잡한 일을 보도하는 것은 심각한 병이다.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것은 죄이다. 허위정보는 미디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악의 문제이다. 허위 정보는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쪽에 있는 진실을 못 보게 만든다.’

기독교인들은 세상 말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너무 관심을 가질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말들을 그대로 그냥 믿을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가 말합니다. 그러다가는 정작 여러분들이 알아야할 것을 알지 못하고 들어야할 것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 하나뿐입니다. 자리도 이곳저곳에 세울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단 한 곳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 산 위 그 자리에만 세울 수 있습니다. 지금은, 예루살렘 성전은 없고 그 자리에 이슬람교의 사원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벽 일부만 남아있는데 이 벽이 그 유명한 통곡의 벽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세 번 지어졌습니다. 첫 번은 솔로몬이 지었는데 바벨론 침공 때에 바벨론군들이 다 파괴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귀환했습니다. 성전을 건축했는데 아주 소규모 성전이었습니다. 그것도 여러 번의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는 유대의 헤롯왕이 다시 건축했습니다. 46년간 웅장하게 건축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은 대단했습니다. 전체가 흰 대리석이었고 바깥 전면 전체를 황금으로 덮었습니다. 해가 떠오를 때는 눈이 부셔서 눈을 돌려야할 정도로 장관이었습니다. 규모는, 하나만 예를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이 수없이 많은데 그 기둥 하나만 보면 높이가 11미터이고 둘레는 세 사람이 팔을 돌려서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였고, 더 대단한 것은 그 큰 기둥 하나하나가 한 덩어리의 돌을 깎아서 만든 기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코너 스톤이라고 불리는 성전의 모퉁잇돌은 그 돌 하나 무게가 100톤이 넘었습니다. 이것은 불가사의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크기의 그 무거운 돌을 어떻게 운반했는지 사람들은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화려함이나 규모는 누가 보든지 간에 압도될 정도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 예루살렘 성전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런 성전은 없다, 이런 건물은 없다. 그리고는 희한한 것을 믿게 됩니다, ‘이 성전이 있는 한 유대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이 성전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 성전을 보고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1) 이때 제자들은 상당히 신이 나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면서 자랑스럽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달리 무시무시한 경고를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 성전이 파괴될 것이다. 그것도 완전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은 이스라엘이 완전하게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그런 가능성이 충분하게 있다, 어떻게 하든지 부디 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지 않도록,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은 성전의 크기를 자랑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정신 똑똑히 차려서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때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경고가 있을 때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합니다. 나라에 대해서 경고를 하시든지 혹은 여러분이 하는 사업에 대해서 경고를 하시든지 여러분의 가정에 대해서든 여러분 나름대로 저것은 우리 가정에 또 내 사업에, 이 나라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합니다. 그래야 안 망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33장에서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33:5) 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 살다보면 비극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연세가 조금 많으신 분들은 625의 비참한 참상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베트남 참전하신 분들은 베트남 참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나라의 위기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하는 사업, 가정에도 이런 위기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위기의 가능성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방지할 수 있겠는지, 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일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의 것과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세상의 말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으시고 정신 바짝 차려서 덕에 이 나라가 여러분의 사업이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아들이나 딸들이 그런 비참한 일들을 당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우선 그것은, 무엇보다도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 저런 다른 방법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일에 대해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그 말씀을 알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이 비극적인 일들,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것은 여러 가지가 많지만 이 말씀하시기 바로 전 12장에서 몇 가지 말씀하셨는데 그 예를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 번째 말씀하신 것은 포도원 농부 비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12:1-8)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주인, 나라의 주인, 내 기업의 주인, 내 가정의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리라’(12:9)

이것이 첫 번째 경고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의 주인, 내 사업의 주인, 이 나라의 주인, 내 가정의 주인, 내 아들과 딸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과는 전혀 다른 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여러분들은 알아야합니다.

 

두 번째,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할 것인가 하는 사안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로마 정부에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12:17) 라고 유명한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가이사는 로마정부를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순종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세상 나라에도 세상 법에도 순종할 것이 있으면 순종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의 법은 따를 수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법도 알고 제대로 지켜야하고 세상 법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주 명쾌합니다.

 

세 번째, 종교지도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12:38-39)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느 틈에 하나님의 종에서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으로 보냈는데 종 질을 하지 않고 왕 질을 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귀족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종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아니하고 왕의 특권, 귀족의 특혜 그것만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했습니다. 그런 종교인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교인들에게 경고를 보내십니다. 나라에, 가정에 또 어디에든 위기가 있을 때 그 무엇보다 더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런 위기가 있을 때 누구보다 먼저 정신을 차려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12:40) 라는 말씀입니다. 나라의 지도자들, 종교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로마의 침공이 시작되었고 유대는 망하고 맙니다. 불순종하면서 예수님 말씀에 귀를 열지 않는 것은 일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약 여러분들을 지도하고 있는 지도자들, 정치지도자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 불순종해서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가 기어이 전쟁이 일어나게 될 때에는 이렇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13:14-18)

할 수만 있으면 멀리 도망가고 절대로 예루살렘 성에 남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겨울이 되면 더욱 비참합니다. 전쟁이 겨울에 일어나면 얼어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름에는 풀뿌리나 먹을 수 있지만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백성들마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백성들은 순진합니다. 지도자들이 말하면 그 말이 맞는 줄 압니다.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말하면 그 말에 끌려갑니다. 그러다 망합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그보다 더할 수 없는 비참한 비극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평화정책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애를 쓰면 그럭저럭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끝내 평화정책을 거부하고 저항하였습니다. 로마도 많이 참았습니다. 참고 참다 주후 70년 로마는 그동안 유지하던 평화정책을 포기하고 무력정책으로 전환하여 예루살렘 성을 공격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역사가들은 이렇게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로마 장군 티투스의 이 공격은 인류역사상 가장 무서운 공격 중의 하나였다. 먼저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다. 예루살렘 성은 함락시키기 어려운 곳이었다. 산 위에 자리를 잡았고 종교적인 광신도들이 열광적으로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유대인들을 굶겨 죽이기로 작정한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은 극심한 기근에 처한다. 집집마다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과 여자들이 늘어져있었다. 젊은이들은 굶주림으로 몸이 퉁퉁 부어 유령처럼 거리를 비틀거렸다. 길이라는 길은 모두 시체로 가득했다. 죽은 시체가 너무 많아 묻을 엄두도 못 내었다. 다른 사람을 매장하던 사람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아예 자기가 먼저 관에 들어가서 죽을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슬퍼할 사람도 없었다. 눈물도 없고 슬퍼할 힘도 없었다. 심지어 어떤 여인은 젖먹이 어린이를 죽여서 불에 구워먹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함락 후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 성에 약탈하러 들어갔을 때, 성 안의 그 참혹한 광경에 너무 놀라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어떤 군인들은 성안의 그 비참한 광경을 보지 못해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참으로 놀라웠던 또 하나의 광경은 죽은 자들 모두 눈을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있었다는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성전이 자기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기 매문이다. 이 전쟁으로 유대인 110만 명이 사망했다. 산으로 도망가지 않고 성안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이 비극이 더 심해진 것이다. 나중에 로마 군인들의 약탈이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은 보물을 잘 감춘다는 소문을 들은 로마 군인들은 보물을 숨길만한 곳이면 다 뒤졌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예루살렘 성전을 쌓은 돌을 하나하나 지렛대로 다 들어내었다. 혹시 돌 사이에 보물을 숨겨놓았을까 해서였다.

 

바로 이것이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13:2) 라는 예수님 말씀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 비극의 일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후 40년 뒤입니다. 4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경고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그 경고를 믿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들, 종교 지도자들 모두 성전이 있는 한 우리에게 절대로 그런 일이 없고 성전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큰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작금의 일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정확하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면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며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왕상 9:3-9)

요약하면 잘하면 성전을 통해서 지켜주겠지만 잘못하면 이 성전까지도 부셔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불행이 거기에 있습니다. 잘못 알았습니다. 헛된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잘하면 성전을 통해서 지켜주고 구해줄 것이지만 잘못하면 여러분을 지켜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성전까지도 부셔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못된 말을 들은 것이 불행의 원인이었습니다. 들어야할 말, 사실을 듣지 않았고 듣지 말아야할 말, 듣고 싶은 말만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3장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4) 라고 묻자 예수님께서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5)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말 저말 한다고 그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들을 말만 들으라, 사실을 듣고 진실을 믿고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아니라 헛된 것을 듣고 헛된 것을 믿으면 돌아오는 것은 죽을 것뿐입니다. 결국은 망하는 것뿐입니다. 세상은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합니다. 역사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사실을 듣기 보다는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했습니다. 이 아이러니를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몰라도 여러분들은 잘 아십시오. 세상이 들어야할 말, 세상이 살 길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세상은 물론 예수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라도 예수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살 길은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망하지 않을 길은 그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망하지 않게 하는 길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들딸을 살릴 길 역시 이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에스겔서 33장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떤 나라에 적군이 쳐들어가게 한다면 그 나라 백성은 저희 가운데서 사람을 뽑아 보초를 세울 것이 아니냐? 그는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백성에게 비상 나팔을 요란하게 불 것이다. 그런데 그 나팔소리를 듣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다가 적군이 쳐들어와 칼에 맞아 죽은 사람이 있다면 그가 죽은 것은 자기 탓이다. 그 나팔소리를 듣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서도 보초가 비상나팔을 불지 않아서 백성들이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가 적군이 쳐들어와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은 자기 죄값으로 목숨을 잃겠지만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을 나는 그 보초에게 물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보초로 세운다. 너는 나에게서 경고하는 말을 받거든 그대로 일러주어라.’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