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도하라
누가복음 11:5~13
예수님은 자주 기도하셨습니다. 혼자 기도하실 때도 많았고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실 때도 많았습니다. 틈마다 때마다 기도하셨습니다. 이른 새벽에도 기도하셨고, 밤늦은 시간에도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능력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기도하신 것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직접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9:2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가지 능력과 이적들은 예수님 당신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내 능력,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다, 내가 기도로 하나님께서 요청했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기 때문에 그런 능력, 이적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끝내시자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에게 기도 좀 가르쳐주십시오.” 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는데 첫 번째 가르치신 것이 주기도문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기도 그리고 모든 것을 망라한 기도, 완벽한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에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십니다.
이스라엘 지방에서 여행은 더운 낮은 피하고 주로 저녁에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있던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시간을 기억하십니까? 제일 뜨거운 낮 12시 경에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그때는 다른 사람들은 물 길러 나오지 않습니다. 하도 덥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예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 시간에 나왔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여섯 번째 남자를 만나서 살고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낮 12시경에 우물에 물 길러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당시 여행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집에 도착하는 것은 주로 밤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의 비유는 이처럼 밤늦은 손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한 손님이 여행하다가 밤늦게 친구 집을 찾아왔다. 오신 손님은 식사를 하지 못해서 아주 시장하다. 그러나 그 집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밤늦게 찾아온 친구 손님을 맞이한 주인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밤이 늦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웃에 있는 다른 친구 집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지방에 보통 가정은 문을 잘 닫지 않습니다. 닫지 않을 때는 내 집은 방문해도 좋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닫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니 내 집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뜻입니다. 제주도 전통 가옥도 그렇습니다. 가옥의 출입구에 대문이 없습니다. 대신 대문 자리에 정랑이라고 하는 세 개의 기다란 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양쪽 벽 두 기둥에 구멍이 세 개씩 뚫려있어서 정랑을 거기다 걸치게 됩니다. 정랑이 하나도 그 구멍에 걸쳐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 집에 와도 좋다는 뜻입니다. 하나만 걸쳐 있으면 지금 집에 없지만 그러나 멀리 가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면 돌아올 것이라는 뜻이고, 두 개 걸쳐있으면 돌아오기는 하는데 조금은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으니 급하신 분들은 돌아가시고 덜 급한 분들은 기다리면 저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 개가 걸쳐있으면 아주 먼 곳에 가 있으니 기다려도 소용이 없을 것 같으니 다음에 오라는 뜻입니다. 또는 이 시간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니 집 방문을 삼가달라는 뜻입니다.
이번 라오스, 캄보디아를 방문 중 나환자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사바나켓이라는 지방의 시빌라이 나환자 마을입니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버스를 고속으로 달려서 다섯 시간 가량 갔습니다. 타켁이라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가량 갔습니다. 거기서 사륜구동차량을 하나 구했습니다. 길이 험해서 이륜구동 차량으로는 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륜구동 차 한 대와 나환자 마을에서 나온 경운기 한 대를 타고 갔습니다. 출발해서 한 30분쯤 되었는데 우기라 길이 패여서 사륜 차량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경운기 한 대가 더 왔습니다. 경운기 두 대에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탔는데, 우리 측 사람들과 라오스 중앙정부의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마을 중간 지방 관리, 나환자 마을을 관할하는 지방 정부 관리들 이런 사람들이 합해서 한 열 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거기다 나환자 마을에서 나온 사람들과 경운기 운전사, 안내하는 사람들로 다 찼습니다. 길이 정말로 험했습니다.
에티오피아에 가보신 분들 에티오피아 길이 참 험한 것을 알 것입니다. 에티오피아 극빈가정 방문할 때는 그 길이 너무 험해서 아예 차가 갈 수가 없었습니다. 걸어서 가는데 30~40분 정도 걸어가는 거리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계곡이 있습니다. 지진이 났는지 화산 때문인지 원래 길이 있었는데 길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아마 비가 와서 패여서 그런 듯했습니다. 그 길을 돌아 돌아서 가는데 길마다 가시덤불은 왜 그렇게 많은지요. 가시덤불을 헤치고 양을 찾으러 다니는 목자 이야기.. 그 길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의 그 길은 이번 나환자 마을로 가는 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걸어서 한 30분~40분만 가면 되는 길이었습니다만 정말 시간도 많이 걸렸고 험했습니다. 곳곳에 비가 내려 침수가 되어 길이 강이 되어서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이 열 군데가 훨씬 넘었습니다. 열 댓 번은 그런 강을 넘어간 것 같습니다. 가다가 도저히 앞을 나갈 수가 없어 경운기를 뒤로 돌려 다시 다른 길로 간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경운기가 강물에 막히고 또 강물 속에 진흙이 있어서 경운기 앞바퀴는 엄청나게 큰데도 그 바퀴가 진흙에 막혀 더 나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진흙탕에 내려서 밀고 갔습니다. 길이 심하게 파여서 경운기가 전복할 것 같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경운기가 넘어질까 경운기 잡고 힘을 주는 바람에 팔이 오랫동안 힘들었습니다. 그 길을 두 시간 반을 갔습니다. 돌아와서 옷을 벗어보니 온 다리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습니다.
이번 라오스 나환자 마을 방문 목적은 우리 교회가 부탁받은 여섯 군데 나환자 마을 중 시빌라이 마을의 생활 시설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부탁 하나는 전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등도 켜고 TV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기는 태양광입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서 전기에 연결시켜서 전구를 켜기도 TV를 보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마을 공동수도시설을 설치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관정(管井)의 물을 수도로 먹을 수 있도록 밑에 나무를 크게 쌓고 그 위에 대형 저주소를 설치했습니다. 관정에 모터펌프를 설치해서 물을 뽑아서 저수조 속으로 넣습니다. 거기다 수도파이프를 연결시키고 밑에 수도꼭지 시설을 해서 물을 받아먹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여성들이 편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을 퍼 나르는데 아주 애를 먹습니다.
이런 일을 할 때에도 공산국가는 우리가 해주고 싶다고 마음대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 다 계약을 해야 합니다. 마을 주민들과만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 사람들, 지방정부 사람들 그리고 마을 대표들이 와서 전부다 서명을 해야 합니다. 미리 어느 정도 조치를 하고 갔습니다. 이번에 그 일이 귀했던 것은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공사는 돈이 제법 들어가는 큰 공사였는데 이 공사만큼은 외부의 인력을 쓰지 말고 나환자 마을의 젊은이들을 일당으로 쓰라고 부탁했는데 그 부탁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우리 기술자 한 사람과 나머지 전부 다 그 나환자 마을의 젊은이들이 했는데 의미가 컸습니다. 나환자 마을에는 음성 나환자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불러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들을 공사하는 오랜 기간 동안 불러서 일을 시키는 것에 참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나환자 마을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도착하고 나니 정말로 ‘드디어’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나환자마을은 일반인들은 못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담을 쳐놓고 나환자 마을사람들만 출입합니다. 도착하여 나환자 가정을 둘러보았습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것을 보고 싶어 집에 들어갔습니다. 대부분 나환자 마을은 2층 가옥입니다. 기둥을 세워서 1층은 아무것도 없고 2층에 주택을 짓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2층 주택에 가보았는데 물론 방 한 칸입니다. 거기서 온 가족이 모든 생활을 다합니다. 에티오피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에티오피아는 주로 1층이었는데 에티오피아 가정에 들어가면 참 딱합니다. 쾌쾌한 냄새가 나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어둡고 3평 정도 집에서 사는데 더운 나라일수록 애를 많이 낳아 식구가 많습니다. 남편도 없는 가정이 많습니다. 어쩌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애를 낳고 또 나갑니다. 돈도 보내주지 않습니다. 한 가정에 보통 다섯 명, 여섯 명 아이가 좀 많은 곳에는 10명 정도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가정은 1층이기 때문에 거기에 양도 들어오고 염소도 들어와서 아예 같이 삽니다. 라오스 나환자 마을은 2층이라 양과 염소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대신 닭들이 같이 삽니다. 닭들이 그 높은 곳에 날아와서 아예 자기 집인 양 살아갑니다. 온 가족들과 닭들과 같이 삽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의 가정,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이웃의 친구를 찾아간 집이 바로 그런 집니다. 방 한 칸에 여러 식구들이 살고 있어서 밤에 잘 때는 온가족이 바짝 달라붙어 잡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해바라기 이불을 쓴 적이 있습니다. 오래 전 북한에도 해바라기 이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해바라기 이불은 가운데 다리를 모으고 둥글게 둘러서 누워 잘 때 덮는 이불입니다.
이스라엘도 더운 나라라고 하지만 일교차가 심해서 밤에 잘 때 그렇게 잡니다. 거기에 양도 들어오고 염소도 들어와서 같이 잡니다. 이처럼 한 칸 방 속에 여러 식구들이 같이 자는데 이럴 때 한 사람이 밤중에 일어나는 것은 자는 모든 사람들을 다 깨우는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가 없는 친구가, 그 모든 사정을 다 알면서도 찾아가서 친구에게 부탁했다. ‘여보게 친구, 저 멀리서 찾아온 친구가 너무 시장해서 우리가 무언가 대접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자네가 좀 도와주게.’ 친구사이라는 것만 한다면 도저히 일어날 상황이 아니지만 그 친구가 부탁하는 것이 너무 간절하고 절절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러할진대 그 어떤 친구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절절한 심정으로 기도할 때 얼마나 잘 들어주시겠는가?”
오늘 말씀의 요지를 한 번 보십시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요지는 8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간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데 한 번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으니 되었다, 이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출근부에 도장 찍듯이, 카드 긁듯이 기도했다, 이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청이라는 말로 표현하십니다. 이 간청을 다시 설명한 말씀이 9절 말씀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라는 말씀은 성경의 원문인 헬라어는 ‘아이테오’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 말씀은 ‘요구하다’, ‘요청하다’ 라는 의미도 있지만 빌려준 것을 돌려 달라, 맡겨 둔 것을 돌려달라고 하는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간청이라는 말씀은 기도할 때 그저 구걸하듯이 사정하듯이 빌듯이 무엇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 것을 다시 돌려 달라, 당연하게 돌려주어야하는 것을 돌려달라는 듯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원문인 헬라어로는 ‘제테오’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찾는다, 구한다는 뜻도 있지만 아주 귀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하든지 찾아야하겠다는 갈망을 가지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찾는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할 때 한 번 해보는 기도, 대강하는 기도가 아니라 정말로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 꼭 이것은 있어야 되겠습니다.’ 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문을 두드리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크루오’ 입니다. 이것은 집안에 있는 사람이 혹시라도 듣지 못할까 하여 문이나 벽을 세게 치고 두드린다, 때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점잖고 소위 고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기도할 때 기독교인은 간절한 심정으로 간절하고 강하게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말씀하시는 것이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라는 11절 말씀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생선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생선과 뱀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생선 대신 뱀을 주는 아버지가 있겠는가? 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12절은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큰 전갈은 움츠리면 달걀과 비슷하여 잘 구별하기 힘듭니다. 달걀인줄 알고 아이는 받았는데 그것이 전갈이더라, 이런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느 아버지가 그렇게 하겠는가? 그런 아버지는 아무도 없다. 더구나 세상의 어떤 아버지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간절한 심정으로 절절한 심정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우리 부탁을,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는가?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어떻게 기도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라고 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그 방법대로, 그런 마음으로, 그런 태도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구하면 반드시 받을 것이고 찾는 사람들은 찾아낼 것이고 그런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열릴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약속을 하십니다. 그냥 한 번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내가 응답하겠다, 열어주겠다, 받게 해줄 것이다, 찾아내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3절에서는 아주 특별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 주십시오. 열어주십시오. 찾게 해주십시오.’ 라고 했는데 뜬금없이 왜 성령입니까? 이때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그런 모습, 그런 자세, 그런 태도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몇 가지 부탁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하나님께서 영으로 함께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때가 되면 아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계시면서 여러분들의 필요한 것을 일일이 공급해주시고 채워주시고 여러분이 필요하면 순간순간마다 계시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모든 것으로 다 채워주신다, 여러분의 모든 삶을 주님께서 최고로 인도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기도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비교해보십시오. 지금까지 기도하시고 어떤 응답을 받으셨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응답하겠다는 차이를 한 번 보십시오.
이번 라오스 방문 때에 우리 교회의 일원으로 공사하던 분이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나환자 마을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말만하는 공산당이 싫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싶습니다.’ ”
공산당원들은 예수님을 못 믿도록 되어있습니다. 공산당이 하나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이 되려면 기독교 신앙을 버려야하고 기독교인이 되려면 공산당원 자격을 버려야합니다. 그 사람들이 ‘말만 하는 공산당이 싫다, 이제는 예수당으로 옮기겠다.’ 라고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에티오피아를 위해서, 북한을 위해서, 라오스, 중국 선교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열매를 눈으로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만 아주 작은 열매가 조금씩 보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열매들이 아마도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이것을 상상하시고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귀한 열매들을 나중에 천국가게 되면 다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특별한 것으로 치하해주실 것입니다. ‘참 잘 했다.’ 여러분에게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