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없을지라도
하박국 3:9~19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냥 한 번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모든 일에 감사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도,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때에도, 지금까지도 힘들었고 앞으로 희망이 없고 더 어려운 일이 예상되는 가운데에서도 기독교인은 감사해야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들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가운데서 진정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것은 일반 평신도뿐만 아니라 특별한 하나님의 종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우면 감사가 되지 않습니다. 감사해야한다는 당위 명제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실제로는 되지 않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말기 무렵에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하여 나라의 쓸 만한 사람들은 모두 다 포로로 끌고 가버렸습니다. 이스라엘 통치자들은 지금까지 정치를 제대로 못해서 나라의 유능한 사람들을 전부 다 끌려가게 만들어놓고서도 남아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푸근하게 감싸줄 생각을 못하고 도리어 압제하고 착취했습니다. 힘없는 백성들은 권력자들 그리고 가진 사람들의 횡포로 도탄에 빠지게 되었고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를 보고 하나님의 종들이 비판하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돌이키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종들을 잡아 무자비하게 처형시키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국가말기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나라가 망하는 시국까지 오고 만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모든 사람들이 타락하고 나라 전체가 엉망이 되고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종 선지자 하박국이 하나님께 안타깝게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왜 이 나라를 그대로 두십니까?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까?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이 하나님께 당돌하게 대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악한 사람들을 그냥 두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니까 저들은 자기네들이 잘 하는 것 인줄 알고 점점 더 악해지지 않습니까?’
드디어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좋다, 알았다 네가 그렇게 소원하는 대로 내가 이제부터 조치하겠다. 그런데 내가 이제부터 조치를 시작하면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이다.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크게 만들어서 이스라엘을 싹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대답을 들은 하박국은 너무도 두렵고 떨렸습니다. 이미 유다는 맞을 만큼 맞았고 터질 만큼 터졌고 견딜 만큼 견디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형벌로 치시겠다고 하니 겁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고 두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놀람의 정도에 대해서 하박국의 ‘창자가 흔들렸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박국의 입술이 떨렸습니다. 뼈가 썩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다음 하박국의 태도입니다. 이전의 하박국을 보면 그의 당돌함은 더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우리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그럴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것은 아닙니다.’ 라고 대들 것 같았는데 하박국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정반대였습니다. 그 당돌하던 하박국의 입에서 놀라운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무섭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성경의 이 부분을 여러 차례 읽으면 읽을수록 하박국의 이 감사의 고백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입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진실로 감사합니다. 우리가 터지고 깨지고 더 망하더라도 좋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가슴은 이미 평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부러운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럴 수 있는가? 우리도 제발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다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앞으로 더 어려운 일, 일이 안 풀릴 것 같은 더 무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여러분 속에 이미 평화가 가득하고 평안이 가득하고 감사가 가득하다면 우리가 겁낼 것이 있겠습니까?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럴 수 있을까요?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으로서만 가능합니다. 결심할 수 있습니다. 결단할 수 있습니다. 애를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가슴 속에서 역사하셔야만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힘들여서 감사하겠다, 찬양하겠다고 결심하지 않고 결단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감사하게 되어있습니다. 노래하게 되어있습니다. 얼굴이 활짝 펴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가슴 속으로 가득 차도록 되어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여러분도 이것이 가능합니다.
환경은 그야말로 환경 일뿐입니다. 일은 그야말로 일뿐입니다. 여러분을 힘들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사람일뿐입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의 감사의 마음을 흔들 수 없고 여러분 속에 있는 평화를 흔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셔서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시고 감사를 주신다면 그 감사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제 성령님을 초청하십시오. 여러분 가슴 속에 성령님을 초청하십시오. 여러분 가정 속에 성령님을 초청하십시오. 성령님은 여러분의 초청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성령님께서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 마음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가정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음 문을 여시고 가정 문을 여시도록 우리 주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음 문을 여십시오. 가정 문을 여십시오. 그리고 성령님이 오시기를 소원하고 간구하십시오. ‘성령님, 저에게 오시옵소서, 저의 영혼 속에 오시고 저의 인격 속에 오시고 제 인생 속에 들어오시옵소서. 충만하시옵소서. 성령님 우리 가정 속에 들어오시옵소서 충만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아내 남편 내 사랑하는 딸에게 충만하시옵소서. 부르기만 하면 성령께서 들어오십니다. 반드시 오십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지금까지 여러분을 괴롭히던 두려움, 공포 다 사라집니다. 걱정과 불안 초조가 이상하게 없어집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여러분들의 가정은 두려움, 근심, 걱정 대신에 평화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하나님, 고맙습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다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 시간 가슴을 열고 성령님을 초청하십시오. ‘내 가슴을 엽니다. 성령님 들어오시옵소서. 우리 가정을 엽니다. 성령님 들어오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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