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행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24:1~9
자식에 대한 부모의 걱정은 자식의 일생동안 계속됩니다. 태어나기도 전 태속에 있을 때부터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걱정이 있습니다. 정상으로 태어날지 걱정이고 태어나면 또 여러 가지 걱정이 많습니다. 학교 다닐 때 쯤 되면 그때도 또 나름대로 걱정이 있습니다. 다 커서도 마찬가지로 잘못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고, 다 크고 나면 어떤 며느리가 어떤 사위가 우리 집에 오게 될지 걱정이 참 많습니다. 자식들이 이것을 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늦게 본 아들 이삭을 장가보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아브라함의 집에 있는 종 가운데 총 책임자를 불러 며느릿감을 구해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종에게 전부 다 알아서 하는데 단 하나 이 동네 말고 내 고향으로 가서 며느릿감을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가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지시를 받은 아브라함의 종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해도 힘들 텐데 내 고향에 와서 구해오기만 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좋다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하라고 하니 얼마나 걱정이 많겠습니까? 이 지시를 받은 아브라함의 종이 아브라함에게 이런 저런 말로 걱정하니 아브라함이 그 종에게 아주 특별한 말을 했습니다.
‘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자네보다 앞서 보내실 것이네’
이 말은 자네는 걱정할 것 하나도 없고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 가면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내 며느릿감을 보게 될 것이고 그 며느릿감을 데리고 오기만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이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라는 7절 말씀입니다.
우선 이 일을 볼 때 사람들은 당장 아브라함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전적으로 위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부러울 것입니다. 어느 정도 믿음으로는 이런 일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너무도 믿고 너무도 확실하고 분명하게 이 일을 할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맡겼을 것입니다.
사업이나 혹은 다른 일에 있어서 여러분의 손발이 되어서 여러분 마음으로 대신 일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참 부러운 일입니다. 먼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복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십시오. 하나님이 주셔야합니다. 뭐든지 어떤 말만 하면 알아서 처리하고, 부정직한 것이 없고 잘못된 것이 없는 여러분의 마음과 똑같이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은 여러분에게 복입니다. 특별히 그런 사람이 여러분의 아내가 되고 여러분의 남편이 되면 정말로 큰 복입니다. 그런데 이미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갔다면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은 한계가 없습니다. 얼마든지 기존의 여러분의 아내와 남편을 그런 사람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때로 그런 역사를 하십니다. 첫 번째는 여러분들이 이런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복은 그런 사람이 곁에 있든지 없든지 관계없이 모든 일을 최고로 챙겨주시는 하나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을 소유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만 하면 이런 저런 사람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챙겨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필요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순간순간 그때그때마다 보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가운데서도 이미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복, 진짜 받을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그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뭐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고 그 하나님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주머니에 돈이 아무리 많이 쌓여있어도 그 돈이 여러분 주머니에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 돈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그런 하나님이 있어도 그런 하나님이 내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있든지 관계없이 인생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최고의 사람을 보낼 수 있고 안 좋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통해서 좋은 것으로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43장에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야곱이란 오늘날로 말한다면 기독교인들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너는 내 것이다, 너는 내 자식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줄까, 무엇을 챙겨줄까, 저 아이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까?’ 여러분보다 걱정이 더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식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사43:3-4)
언제 어디서나 나는 내 자식을 보호하고 챙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속에서도 챙길 것이고 불 가운데서도 함께 하시면서 당신의 자식들 바로 기독교인들 여러분들을 챙겨주시고 보호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사4:3) 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잘못한 것이 있어서 법 관리자들에게 내어줄 것이 있으면 내가 내 자식들 대신 다른 것을 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이집트를 내주겠고 구스와 스바를 내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각별하십니다. 그냥 대강 챙겨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불공평하지만 당신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입니다. 어디서든 나는 내 자식들, 내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신데 만약 챙겨 주어야할 것이 있다면 얼마나 챙기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이것을 안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내 일생을 이렇게 챙겨주셨으니 내 아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챙겨주실 것이라고 믿고 아무 걱정할 것 없다,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600년 후에 태어난 모세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이것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조그마한 일에도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집트를 빠져나와서 홍해 앞에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앞에는 홍해로 가로막혀 있고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갈 데가 없고 뒤로는 이집트가 있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이집트에 있는 것이 차라리 낫다, 괜히 나와서 고생시킨다고 불평, 불만 원망의 소리를 했습니다. 어떤 하나님이 계시는지, 그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며 어떻게 챙기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알았습니다. 잘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14:1) 라고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여러분들이 이렇게 큰소리 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에게 혹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아내 되신 여러분들이 ‘당신은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보십시오.’ 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멋집니까? 이런 멋진 아내가 되십시오. 기도 조금 하고 주일 빠지지 않고 다닐 정도에서 끝나지 말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큰소리 칠 수 있습니다. 자식들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인생인지라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걱정해야합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있으면 대강 걱정하고 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너의 앞길을 챙겨주실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이 계신다.’ 이 정도 큰소리 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기독교신앙을 하는 사람입니다.
모세의 그 당당한 선포에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화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믿음대로 역사하셨습니다. 홍해를 마른땅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 여러분들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입니다. 늘 보고 계시다가 이제는 나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즉각 나서서 필요한 일들을 다 하십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야곱입니다. 야곱의 예를 자주 보는 이유는 성경에서 야곱을 보면 오늘날 기독교인들과 너무 닮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성경을 보면 참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일생에 대해서는 자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는 아버지와 형을 속였습니다. 평소에도 좀 못되게 했지만 결정적으로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런 악한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너무 악하게 했기 때문에 형이 동생을 죽이겠다고 작정합니다. 형을 피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삼촌댁으로 도망을 가야하는 야곱에게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있었을 것입니다. 이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라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까지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때까지도 자기가 먼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단지 하나님의 사람인 정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당신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아들 딸 낳고 여러 아내와 함께 한동안 잘 지냈습니다. 그러다 아주 심한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또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아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집도 아닌 이역만리 떨어져있는 곳이고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전부 다 외삼촌 편이므로 만약 자기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처자식을 두고 어떻게 할지 두려움에 빠져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갈 길을 지도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그 이십년 동안 하나님을 한 번도 찾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챙기셨습니다. 당신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외삼촌 몰래 도망쳤습니다. 늦게 안 외삼촌이 7일간 맹추격을 했습니다. 야곱 가까이 거의 다 와서 내일이면 붙들릴 판인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외삼촌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악 간에..’ 즉 누가 잘했든지 잘못했든지 따지지 말고 야곱에게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야곱을 챙기십니다. 불공평하다 싶을 정도로 챙기십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는 불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에게는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불공평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당신의 자식입니다.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삼촌의 일이 다 끝났음에도 그동안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다보니 야곱에게 생각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형에게 한 못된 일입니다. 그때 형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으니 틀림없이 아직도 그 원한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돌아가야 할 상황이므로 야곱은 형에게 사람을 보내 20년 만에 동생 야곱이 형님을 뵈려한다는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전하러 갔던 사람들이 얼굴이 하얗게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주인님께서 하신 그 말을 전하러 갔더니 형님은 이미 군사 400명을 데리고 주인님을 찾아서 나섰다고 합니다. 큰일 났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두려움이 가득 차 밤에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계시지 않고 일을 하셨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사람을 보내기도 전에, 그 생각을 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창32:1-2)
하나님의 군대가 새까맣게 오고 있었습니다. 형 에서가 군사를 400명이나 데리고 올 것을 아셨기 때문에 혹시라도 야곱이 그 소식을 들어도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400명 군사보다도 훨씬 더 강한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너는 그런 사람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 에서에게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오기만 하면 손볼 것이라고 400명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냥 마중 나가려고 했다면 몇 명만 데리고 나가도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영이 에서를 만지자 에서가 가지고 있던 원한도 없어지고 미움도 없어지고 화도 다 풀렸습니다. 화병도 다 풀렸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화병이 있습니까? 성령님께 맡기십시오. 성령님이 치료해주시면 이상하게 없어집니다. 당하고 속상한 일은 그대로인데 상처가 없습니다. 아픔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야곱이 이것을 알 리가 있습니까? 이것을 모르는 야곱은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전략을 짰습니다. 야곱은 늘 이랬습니다. 그의 전략은 네 사람의 아내 중 덜 사랑하는 아내부터 앞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혹 당하더라도 제일 사랑하는 아내만을 챙기겠다고 생각하고 라헬을 맨 뒤로 뺀 것입니다.
저 멀리서 형님이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오자 그때부터 절을 했습니다. 설날에 어른들에게 세배하듯이 큰 절을 합니다. 가까이 가면서 또 절을 했습니다. 7번이나 땅에 엎드려 큰 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형님에게 아직 원한이 있나 형님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형님은 자기가 생각했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형님은 쫓아와서 야곱을 안고 ‘야곱아 고생이 얼마나 많았느냐? 일찍 돌아오지. 내가 너 미워한다고 오래 미워하겠느냐?’ 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이때 야곱은 자기의 전략이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 만져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려주십니다. 잘못된 자식의 마음을 바꾸어주고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 미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야곱은 이때까지 몰랐지만 여러분들은 아십시오. 하나님께서 손을 쓰시면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지금도 이런 일이 있으면 그 하나님을 아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다, 내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모세의 후계자가 된, 이스라엘의 총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이 백성들을 어떻게 인도할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적들이 계속해서 있을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불평이 많고 불만이 많고 틈만 나면, 일만 생기면 원망하려고 하는 노예출신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인지라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혹시 여러분들은 충분한 까닭이 있어서 불만을 가지고 불평하고 원망한다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이것은 노예근성이고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불만을 터뜨리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은 전부 다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간에 잘못되게 하고 형제간에 또 주변사람들과 잘못되게 하는 것, 이것은 어둠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끌고 갈지 걱정이 많습니다. 걱정 정도가 아니라 잔득 두려움에 쌓여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셨습니다. 이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한껏 격려하셨습니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수1:2-4)
겨우겨우 끌고 가는 정도가 아니라 이 백성들과 함께 그 모든 땅을 차지하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얼마나 격려가 되겠습니까? 또한 네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게 해주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수1:5-6)
그리고 말로만 여호수아를 격려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홍해를 가르듯이 요단강을 갈라서 이스라엘 배성들을 건너가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후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첫 관문 가나안 첫 성인 여리고성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또 여호수아를 챙겨주셨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 전쟁은 상대방이 있는 진짜 전쟁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겁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어떻게 챙겨주셨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수5:13-14)
자기 혼자 온 것이 아니라 군대를 데리고 온 군대대장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만 하신 것이 아니라 군대까지 데리고 와서 너 앞서서 전쟁할 것이라는 것을 여호수아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사야 52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사52:12)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인 한 하나님은 여러분 앞에서 여러분을 지키시고 뒤에서도 챙기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 기독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첫째는 여러분들의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 당신의 자식들을 챙기시는 하나님이다, 보호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라고 알고 믿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정말로 여러분들이 알고 믿었으면 당연하게 나타나는 결과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일들이 있을 때 두려워하고 놀라고 겁먹고 걱정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담대합니다. 강합니다. 얼굴이 펴집니다. 얼굴 찌푸리며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걱정만 하면서 어떻게 할지 잠도 자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잠도 잘 자고 얼굴이 활짝 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종에게 그렇게 큰소리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그가 그 사자를 그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라는 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전염됩니다. 여러분 가까이 있는 사람들 특별히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전염됩니다. 불신앙도 전염됩니다. 혹시 자녀들 가운데 신앙 때문에 걱정 끼치는 일이 있으면 얼른 저것은 바로 내 거울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내가 그런 불신앙, 잘못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내 아이가 저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이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분의 자녀들은 좋은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그 믿음을 전염 받습니다. 그대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아브라함의 고향에 도착했습니다.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거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낙타를 성 밖 우물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10-11절)
이때 종은 희한한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12-14절)
우리 주인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에게 그런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에는 하나님도 꼼짝 못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믿음에는 꼼짝 못하십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15절),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종이 마주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게 하기를 다하고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긷는지라’(16-20절)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종의 믿음 그대로, 아브라함의 믿음 그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여기서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 기독교인들에게 일반적으로 베풀어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 먹고 사는 것 그리고 위기가 있을 때 최소한 챙겨주시는 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하십니다. 당신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복, 놀라운 은총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그 믿음이 더 각별하면 각별할수록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런 것 받지 못합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주십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최소한의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주십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특별한 은총은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장 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난 후 18장에서는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있기만 하면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기독교신자라고 하면서, 나는 믿노라 하면서도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놀라운 역사를 행하실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런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도 믿었고 하나님도 믿었지만 그러나 인간인지라 그때까지 조금은 의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21절)라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그는 정말로 우리 주인의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실지 궁금해 하다가 확인하고 난 후 깜짝 놀라서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우리 주인의 하나님은 정말로 세상의 주인이 맞는다는 것을 깨닫고 깊이 감사했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26-27절)
이제는 확실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인의 하나님은 정말로 이런 하나님이구나, 우리 주인이 말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런 하나님을 제대로 아셨다는 것을 알고 자기도 믿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믿게 되면 그 믿음을 혼자 가슴 속에 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반드시 전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40절) 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48절) 라고 말씀 그대로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처럼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가슴 속에 감사와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우리 주인이 말씀하셨던, 우리 주인님이 믿는 하나님은 과연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항상 지키고 챙기고 인도하십니다. 나는 이번에 그것을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습니다.’ 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 누구에게나 이런 역사를 하십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제대로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제대로 감사하지도 않은 야곱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챙기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만약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처럼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얼마나 사랑하시고 지키시고 챙기시고 보호해주시겠습니까? 확인하십시다. 하나님은 여러분보다 앞서서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필요하면 천사를 보내시고 천군을 보내시고 군대를 보내셔서 여러분의 길을 준비하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제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각자 하나님께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는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을 믿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주인이시고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내 길을 인도하시고 지도하시는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을 믿습니까?
두 번째, 여러분이 그 믿음을 가슴 속에만, 마음속에만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내, 남편, 자식들에게 말할 수 있습니까? 진정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흘러가도록 되어있습니다. 흘러나오도록 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도록 되어있습니다. 표현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아브라함의 종이 했던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습니다.’ 라는 간증을 여러분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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