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
시편 23:1~6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자던 곳 아닌 다른 곳에서는 잠들기 힘들어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행할 때 베개를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다 큰 청년들 가운데서도 베개를 들고 다니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무언가 내가 있던 곳의 익숙한 무엇이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현상입니다.
양들이 그렇습니다. 양들은 아주 소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지 제대로 쉬기도 하고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외부로부터 두려움입니다. 이상한 소리가 조금만 들려도 양들은 불안해합니다. 외부침입으로부터 두려움이 해소되어야 양들은 쉴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양들이 얼마나 느립니까? 그래서 모든 맹수들이 다 양을 노립니다. 양을 보기만 하면 자기 밥이기 때문입니다. 양은 워낙 느리기 때문에 도망갈 도리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다른 양들과의 긴장문제가 해소되어야 양은 편안하게 쉴 수가 있습니다. 늘 긴장하고 조금만 부딪쳐도 힘들어합니다. 양들이 참 착하고 순하지만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도 유난히 예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전혀 관계없는 말을 했는데도 자기와 연관시키거나 무슨 소리를 조금만 듣게 되면 힘들어 하고 잠을 자지 못하고 심지어 그것 때문에 병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것보다 훨씬 심한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데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다 심지어 ‘소설’을 쓰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많이 힘듭니다. 양들이 이렇게 늘 긴장합니다.
세 번째는 장애물들로부터 해방되어야합니다. 양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파리입니다. 우리도 등산할 때 날파리들이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날파리들도 큰 것, 작은 것, 소리 내는 것, 소리 없는 것 등 여러 종류들이 많습니다. 제가 대여섯 시간 걸리는 산을 등산할 때는 가끔 시편에 나오는 것처럼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얼굴이나 코에 바릅니다. 그러면 벌레들이 덜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양들도 이런 날파리들을 피하느라 계속 고개를 흔들어댑니다. 파리가 왜 얼굴 앞에서 뱅뱅 소리를 대면서 왔다 갔다 하는지 아십니까? 코에 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이 있어야지 알들이 자라고 애벌레가 되므로 물이 있는 곳에 알 낳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콧속에 늘 물이 있기 때문에 코앞에서 뱅뱅 도는 것입니다. 양들은 본능적으로 피하고 머리를 흔들어 댑니다.
또 기생충이 있습니다. 기생충이 몸속에 들어가게 되면 양들은 참 괴롭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의료선교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구충제입니다. 이런 저런 치료를 받는 모든 환자들의 마지막 코스는 구충제코스입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학교에서 회충 몇 마리 나왔는지 확인하고 보고도 했습니다. 해외선교 때는 사람들에게 물과 함께 구충제를 먹게 하고 마지막으로 기도해줍니다. 구충제는 일반 영양제를 몇 번 먹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먹어봐야 기생충이 다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구충제를 직접 드리기도 하고 그곳의 교역자들에게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먹이라고 맡겨두기도 합니다. 양들도 기생충 같은 장애물들이 없어야지 제대로 살 수가 있습니다.
네 번째는 결핍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는 먹는 것입니다. 좋은 풀을 많이 먹어야 양들은 쉴 수가 있습니다. 배고프면 잠도 못 잡니다. 그 다음에는 마시는 물입니다. 사람들도 그렇고 양들도 물이 모자라면 몸이 무언가 이상하고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몸이 느끼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편안하게 쉴 수가 있고 잘 자랍니다.
세계적으로 대규모 양을 사육하는 곳은 대부분 다 건조한 나라입니다. 그 중에서도 건조한 지역에서 양들을 많이 기릅니다. 건조한 지역이라야 양이 잘 되는 이유 중 첫 번째는 양의 번식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에티오피아에 가면 애들도 많고 양들도 많습니다. 건조한 지역이 번식률이 좋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질병에 강합니다. 습기가 많으면 병이 많습니다. 세 번째는 건조한 지역에는 기생충이 적습니다. 산에 올라갈 때 산이 건조해지면 날아다니는 벌레들이 별로 없습니다. 습기가 많을 때는 벌레들도 많고 기생충도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건조한 지역에서 양들이 잘 자라는데, 문제는 그런 건조한 땅에는 풀이 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양을 기르는데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양을 기르는 데는 물이 상당히 많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을 가리켜서 걸어 다니는 물통이라고 합니다. 사람 몸은 체중의 70%가 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양도 똑같이 체중의 70%가 물입니다. 그러므로 양을 기르는 덥고 건조한 지방에서는 자칫 탈수가 되어 몸에 물이 모자라게 됩니다. 꼭 탈수병에 걸려서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편치 않고 몸에 무언가 기분이 좋지 않은 증세가 나타납니다. 여행할 때나 산에 갈 때 갈증을 느낄 때에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갈증이 나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마셔주어야 합니다. 갈증을 느낄 때는 이미 늦습니다. 그때는 물을 보충해보아야 별 소용없습니다. 마시고 한참 있어야 갈증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몸이 갈증을 느끼는 것은 몸에 수분이 모자라고 나서 한참 지나고 난 후이며, 또 갈증을 느끼는 것은 실제로 몸에 필요한 물의 양보다 훨씬 적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증을 해소하는 것 정도로만 물을 마시다간 탈수증에 걸리게 됩니다. 훨씬 많은 물을 마셔야합니다.
물이 부족하면 모든 것에 영향을 줍니다. 물은 의식적으로 자꾸 마셔주어야 합니다. 물이 부족하게 되면 감기에 많이 걸립니다. 목과 코로부터 감기가 많이 오고 그 다음에는 안구건조증이 많습니다. 양들도 물이 부족하면 이와 똑같이 코, 목, 눈이 안 좋습니다. 양을 기르는 곳은 대체로 덥고 건조한 지역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사는 양은 다른 어떤 가축보다 더 많은 물을 마셔야합니다. 물을 제대로 마시지 않은 양은 건강하지 못하고 병이 나고 새끼를 많이 낳지 못합니다.
문제는 양은 의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 몸이 물이 부족함을 느끼고 마셔야하겠다는 이런 의식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물이 보이면 마시고 보이지 않으면 마실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또 다른 동물들은 물을 찾는 기술이 있지만 양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나쁜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큰 병에 걸려서 죽을 고생을 하든지 최악의 경우에는 병들어 죽습니다. 양은 내가 마실 수 있는 물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새들은 내장길이가 짧아서 나쁜 것을 먹어도 바깥으로 빨리 빠져나가지만 양은 되새김질을 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합니다. 양은 물이 보이지 않으면 마실 생각을 못하다가 물이 보이기만 하면 그 물이 어떤 물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마십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겨납니다.
건조한 지역에는 땅에 물이 잘 고이지 않습니다. 구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위에 움푹하게 파인 것을 말합니다. 구혈의 물에는 백발백중 기생충 알이 있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 물을 마시고 숙주가 되어달라고 본능적으로 거기다 알을 낳습니다. 그 물에는 병균이 많습니다. 마시면 거의 다 병에 걸립니다.
양은 대체로 착해서 한 마리가 앞에서 가면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쭉 따라갈 정도입니다. 그러한 양들 가운데 마시라는 물은 마시지 않고 꼭 마시지 말라는 물을 마시는 양들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 몇 번은 괜찮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큰 탈이 나게 되는데 얼마간 괜찮다보니 아예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는 이런 사람이 없어야합니다. 조금 내 마음에 덜 든다할지라도 따라가고 순종할 줄 알아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다가 탈이 납니다.
그런데 양은 자신의 능력, 자신의 힘으로서는 이 모든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합니다. 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목동들밖에 없습니다.
먼저 목초의 문제를 생각해봅니다. 건조한 지역에는 좋은 목초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드문드문 있습니다. 그 목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목장을 만들어 목초를 따로 가꿀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건조한 지역에 좋은 목장을 만들기 참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목동들이 어마어마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피와 땀이 어리고 그 결실로 좋은 목장이 됩니다. 목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땅을 깊이 파서 땅속에 있는 자갈을 다 빼내고 그 속에 깊이 거름을 집어넣고 그 위에 씨를 뿌립니다. 그 땅에 맞는 목초가 각각 따로 있습니다. 그것을 잘 연구해야 좋은 목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목동들은 대체로 고용인입니다. 주인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경우에 품꾼입니다. 양의 주인들이 좋은 목동을 구하기 위해서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전에 어떤 목장에서 일했는지 보면 된다고 합니다. 전에 했던 목장 풀이 좋으면 좋은 목동인 줄 알고 고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고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에티오피아의 자립사업의 일환으로 양을 사준 적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젤두 지방의 몇 극빈 가정에 시범사업으로 양을 사드렸습니다. 그때 예순 두 마리의 양을 스무 가정에 나누어 드렸습니다. 한 가정에 평균 세 마리 나누어드린 것입니다. 3년이 지난 금년에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예순 두 마리의 양이 3년 간 총 이백일흔아홉 마리가 되었습니다. 기르다가 죽은 양도 있었습니다. 마흔두 마리가 죽고 남은 양이 이백서른일곱 마리였습니다. 맨 처음 우리가 사 준 예순두 마리의 네 배 가까이 되었습니다. 처음 양을 받은 스무 가정은 본래 받은 예순 두 마리 양을 다른 스무 다섯 가정에 나누어주었습니다. 나머지 백일흔다섯 마리의 양을 가졌는데 한 가정에 평균 아홉 마리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시골에서는 양 다섯 마리면 그럭저럭 부자라고 합니다. 아홉 마리이니 상당한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 젤두 지역은 해발 3,000미터가 됩니다. 에티오피아도 낮은 지역이 있지만 우리가 가는 아디스아바바는 해발 2,000미터라 몸이 약한 사람은 어질어질하여 약을 먹기도 해야 합니다. 거기서 1000미터 더 올라간 젤두 지역에서 양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분들이 정성을 다 하여 양을 길렀습니다. 자기 자식처럼 키워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양들을 키우려면 목장이 있어야하는데 극빈가정에는 목장이 없어서 쉽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양을 기르는 목동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먼저 어디에 풀이 많고 어디에 좋은 풀이 있다는 것을 사전답사를 하고 데리고 가야합니다. 그 자리에 다른 목동이 먼저 먹이면 또 다른 곳을 찾아내야합니다. 가까이 있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멀리 나가야합니다. 들에서 양을 칠 때 특히 조심해야할 것이 독 있는 풀입니다. 이것은 치명적입니다. 대개 각자 집에 양이 세 마리 혹은 많아야 다섯 마리인데 그 중에서 한 마리가 죽으면 큰 재산이 날아가는 것입니다. 독초로 양을 잃게 한 사람이 품꾼 목동이라면 쫓겨나고 아들이라면 큰 야단을 맞게 됩니다.
가끔씩 이 양들 가운데 더 좋은 풀을 먹으려고 하는 양, 또 평소에 먹던 것 말고 다른 풀을 먹으려고 욕심부리는 양들도 있다고 합니다. 신앙인들도 똑같습니다. 신앙인들 가운데 새로운 것, 특별한 것, 더 좋은 것 있는가 여기저기 순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아십시오, 해 아래 새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해 아래 새것이 있는지 알고 여기저기 찾아다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별 사람 없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 백 사람이라도 내 아내, 내 남편 한 사람보다 못합니다.
양도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감사하게 살아가야합니다. 양들 중에 꼭 그렇지 않은 양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초를 먹고 탈이 나고 죽기도 합니다. 양은 독초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목동이 있어야합니다. 이런 목동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목회자 역할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성경 신약을 보면 앞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가 있고 다음에는 서신서가 있는데 서신서는 대부분 이단에 관한 글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단이며 어떻게 대처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교회에는 항상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대체로 안 그렇지만 신앙인들 가운데 이상한 것을 좋다고 먹고 병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물의 문제도 양들은 해결하지 못합니다. 목동들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가면 마실 물이 있는지 목동들만 압니다. 2박 또는 3박 정도의 긴 산행을 하는 산에는 물이 잘 없기 때문에 사전에 여러 정보를 통해서 어디에 물이 있는지 알아두어야 합니다. 이전에는 산 관리인들이나 산을 잘 아는 사람들한테 물었지만 요즘은 인터넷만 잘 검색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합니다. 지리산을 종주할 때 이런 일이 많습니다. 지리산의 산에는 별로 물이 없고 대피소 근처에 물이 있습니다. 대피소는 일곱 여덟 시간 아홉 시간을 가야 있습니다. 물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필요할 때는 산에 익숙한 안내원들의 안내를 받아야 됩니다.
양들에 있어서 물이 그렇습니다. 양들은 아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목동들이 잘 안내해주어야 합니다. 양들이 물을 공급받는 원천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샘이고 개울입니다. 이것이 제일 좋지만 샘이나 우물은 잘 없습니다. 샘이 있다 하더라도 아주 드물고 샘마다 주인이 있습니다. 함부로 마시지 못합니다. 때로 우물이나 개울을 찾아도 쉽게 접근하지 못합니다. 우물을 예를 들면 우리나라 같은 우물이 아닙니다. 그런 곳에서는 우물을 아주 깊고 넓게 팝니다. 우물 밑에까지 사람이 내려가야 합니다. 우물 안에 빙빙 돌아 내려가는 길을 만듭니다. 목동들은 그 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서 물을 떠와 양들에게 먹여주어야 합니다. 쉽지가 않습니다. 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낭떠러지에 개울이 많아서 양들은 못 내려갑니다. 목동들이 내려가서 물을 길어와 양들에게 먹여주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더운 여름이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 일을 목동들이 다 해야 합니다. 목동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공급원은 풀입니다. 풀에 수분이 있기 때문에 풀을 많이 먹으면 됩니다. 그러나 아침 일찍 나가지 않으면 풀은 말라버립니다. 풀이 말라 수분양이 적어집니다. 그러지 않아도 적은 양의 풀에 물기가 마르면 더욱 힘들어집니다.
세 번째 공급원인 이슬은 양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공급원입니다. 때로는 한 몇 달 동안 제대로 된 우물이나 개울에서 물을 마시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이슬로 수분을 채워야합니다. 이슬은 해가 뜨면 없어집니다. 아침 일찍 나가야하는데 양들 스스로는 일찍 나갈 수 없습니다. 목동들이 부지런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 양들을 데리고 들판에 나가야지 수분이 있는 풀을 먹을 수 있고 풀에 맺혀 있는 이슬을 먹을 수 있습니다. 목동들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양들 가운데 목동을 따라 우물이나 개울로 잘 가다가 간혹 말 안 듣는 양들이 있습니다. 먹으면 안 되는 독초를 먹는 양들도 있고 안 좋은 물을 마시는 양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제지할 수 있는 것은 목동밖에 없습니다. 목동들은 아이들을 챙기는 것처럼 양을 챙겨야합니다.
군 시절 대규모 훈련 때의 일입니다. 1주일씩 하는 훈련에서 주로 야간행군을 했습니다. 어느 야간 행군 때 같이 쭉 길을 따라가던 중 앞의 병사 하나가 대열을 빠져 나갔습니다. 소변보러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병사가 그대로 걸어가서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행군은 계속되었습니다. 한참만에 그 병사가 돌아왔습니다. 모두들 총을 걱정했습니다. 총을 잃어버리면 영창에 가기 때문입니다. 전방 영창은 후방 영창과 달라 한 일주일만 있으면 죽고 싶을 정도입니다. 다행히 그 병사는 총은 들고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철모가 없어졌습니다. 전방에서는 철모 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다음 날 아침 그 병사가 철모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철모를 쓰지 못한 누군가가 있어야하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군대입니다. 그때 저도 큰 경험을 했습니다. 밤새 행군 후 아침까지도 행을 계속했습니다. 갈증이 아주 심했습니다. 수통에 물은 하나도 없고 물을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낮이 되어 도로로 행군하는데 그 옆에는 개울이 하나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제가 졸병이라 누구에게 부탁할 수도 없고 지나간 아이에게 수통을 주면서 물을 떠달라고 하니 아이가 떠왔습니다. 급히 뚜껑을 열고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고참이 제 물통을 빼앗아 물을 땅바닥에 다 부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때 고참이, 그 물을 마시면 죽는답니다. 그때는 야속하기만 할 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도 맞는 말입니다. 그때 그 물을 마셨다면 아마 큰일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양을 기르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양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언가 불안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헤매는 양들이고 다른 하나는 편안하게 자든지 쉬든지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다니는 양들이라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여건 속에서도 늘 무언가 불안하고 불만이 가득하고 불평이 많고 원망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경이 부족함에도 편안하게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늘 고맙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같이 보이는 사람에게도 나보다 못한 것이 반드시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인생이란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만족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만족하고 감사하고 살아갑니다.
그 차이가 무엇인 것 같습니까? 인생 주체입니다. 내 인생을 누가 꾸려 가는가에 따라서 같은 환경 속에서도 힘들어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똑같은 상황에서도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갈라집니다. 내가 내 인생을 꾸려나가려고 하면 너무 힘듭니다. 늘 무언가 내가 준비해야 하고 해야 할 걱정이 늘 많습니다. 고민을 안고 살아가야합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렵습니다. 내가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체로 삼고 내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여건 속에서도 때로는 남보다 더 못한 환경 속에서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의 목자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습니다.
내 자식 문제도 하나님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속이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다 키우고 지키려고 하니 힘듭니다. 할 만큼 하고 난 뒤 하나님께 맡기면 아이도 잘 큽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머니가 너무 똑똑해서 다 키우려고 하니 애가 숨이 막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크지 못합니다.
내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사람은 이런 일 저런 일에 넉넉합니다. 돈이 없어도 넉넉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돈이 있어도 번데기처럼 졸아 있고 돈을 쓸 줄도 모릅니다. 늘 두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께서 챙기신다, 내 아들 내 딸 하나님께서 챙기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넉넉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은 사람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노래 부를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이 썼습니다. 다윗이 이 시를 쓸 때 아주 나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계속해서 따라다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환경 속에서 이 시를 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신다, 내가 양을 그렇게 챙겼듯이 나를 챙기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넉넉함으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1-2절) 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노래를 한 다윗은 환경이 좋을 때 정말로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이 있는 곳에서 시를 쓴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면 아무리 황량한 벌판이라도 그곳이 바로 나에게는 푸른 풀밭이고 쉴만한 물가라는 것을 알았고 실제로 그렇게 누렸습니다. 이것이 진짜 신앙인에게 주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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