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오늘 선택하라 (열왕기상 3:1-9)

분당소망교회 2019. 10. 29. 14:04


 

 

 

오늘 선택하라

 

 

 

열왕기상 3:1~9 ═══════════════════

 

 

근래에 특히 감옥에 간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전직 대통령 두 분이 감옥에 들어갔고, 과거에 내로라하던 대단한 양반들이 많이 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또 앞으로 감옥에 들어갈 사람도 많을 것 같고, 구금기간이 끝나 감옥에서 나온 분들 가운데서도 다시 감옥에 들어갈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에게 고전이 되다시피 한 경구가 하나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는 정치인들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교회도 가정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차 하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담장 위를 걷는 존재들입니다.

 

다윗 시대가 끝나고 솔로몬 시대가 시작 되었습니다. 솔로몬 시대는 시작되자마자 전성기를 이룹니다. 솔로몬 시대가 시작하자마자 전성기를 이룬 까닭은 솔로몬 때문이 아니라 그 아버지 다윗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현재 정치인들이 잘한 것이 아니라 무언지 몰라도 다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만한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오늘을 누리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전성기는 당시 세계 최강국 이집트 왕 딸과 결혼할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조그마한 나라입니다. 조그마한 나라의 왕이 최강대국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이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일천번제는 흔히 알고 있듯이 제사를 천 번 드린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정황과 기간을 따져봤을 때 솔로몬이 천 번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일천번제는 천 마리의 가축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렸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네 소원을 들어줄 테니 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솔로몬이 제가 아직 경험이 일천하므로 나라를 잘 섬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라고 아주 멋진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아주 좋은 대답을 했기 때문에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영화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까지는 웬만한 기독교 신자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번제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최고의 지혜를 주셨는데, 그 지혜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솔로몬의 재판을 그 예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을 보실 때 이 말들을 그냥 볼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이 말씀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세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솔로몬의 처신을 보십시오. 처신이 좋지 않았습니다. 2장까지는 이스라엘 솔로몬 시대의 기반을 다집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3장 들어오자마자 솔로몬은 이집트와 사돈관계를 맺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집트는 이방나라입니다. 이방나라와 결혼관계를 맺는 것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십니다. 이방사람들과 결혼하면 신앙이 흔들리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출발하는 이스라엘에게는 이방사람들과 결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그런 일을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왕이 앞장서서 저질렀습니다.

 

또 하나는 산당에서 제사 드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2),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을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3),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4)라고 계속해서 산당에서 제사 지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산당이란 가나안 사람들이 이방신에게 제사 드린 곳입니다. 물론 솔로몬은 그 산당에서 이방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그럴 수 있겠지만 알아야할 사람, 지도자들은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산당에서 이방신들에게 제사 드리던 곳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 드린다는 것인데, 물론 이방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싫어하실지 좋아하실지 생각해야합니다. 성경은 금방 그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3) 라는 말씀을 보면, 산당에서 제사지낸 그것은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떤 사람 혹은 여러분 가운데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산당이든 어디든 하나님께 예배만 드리면 되지 않는가?’ 맞는 말 같습니다. 일리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조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 이럴 수도 있다, 저럴 수도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질 기준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셨는가?’ 이것입니다.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그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욱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들은 많은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자기 혼자뿐만 아니라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이 나라 백성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야했습니다.

 

신약의 고린도 교회에 논란이 생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는가? 그 안에 귀신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는데 기독교 신자들은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라고 하는 반면, 또 어떤 교인들은 그 우상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돌멩이이고 나무 조각일 뿐인데, 그런 나무 조각, 돌멩이 앞에 바쳤다는 것에 무슨 해가 있겠는가, 먹어도 된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 그럴 듯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아무 것도 아닌 우상 앞에 바쳤던 음식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해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우상도 그렇고 음식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일에 대해서 올바른 신앙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 결과만 보고 자칫 오해하고 실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아예 우상에게 바친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덧붙여 바울은 말합니다,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8:13)

이 논리는 말은 맞지만 맞는다고 다 하는 것은 아니고, 이것저것 생각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혜롭다고 하는 솔로몬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백성들이 어떨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실지 싫어하실지 생각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백성들도 산당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라는 2절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 다음 일입니다. 그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넘치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솔로몬이 조금 잘 한 일이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하나님께 소원을 할 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소원을 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한 소원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잘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솔로몬이 한 일이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까? 천 마리의 양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 하나님께서 네 소원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셨을 때, 정치 잘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대단합니까? 별 것 아닙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고 최고 지도자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정치 잘 하는 것, 나라의 왕이라면 지도자라면 이렇게 합니다. 천 마리의 양으로 제사를 드린 것도 생각해보십시다. 혹시 자기 개인 돈으로 양을 천 마리 사서 제사를 드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개연성은 상당히 적고 나라 돈으로 천 마리를 사서 제사를 드렸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것을 누가 못하겠습니까? 솔로몬의 자리에 있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생각 정도야 하나님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고, 아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나라의 왕인데 천 마리 양을 사서 제사를 못 지내겠습니까? 왕이라면 지혜를 주셔서 정치를 잘 하게 해달라고 마땅하게 이런 소원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마치 무엇에 속으신 것처럼, 무엇을 모르시는 것처럼 죄송한 말씀이지만 바보처럼 솔로몬이 한 그것을 그렇게나 좋아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왕상3:10-13)

대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속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속으시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다 알고 계시면서 속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심을 통해서 강력하게 솔로몬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솔로몬아, 너 참 잘 했다. 네가 어떻게 천 마리나 가지고 나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고 정치 잘 하는 지혜를 구하니 정말로 너 대단하다. 그런데 솔로몬아, 그 정도만 말고 진짜로 잘했으면 좋겠다.’ 이것을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감동하시는 것 같이 하시면서 진짜 감동될 만한 행동,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정말로 감동하시고 더 놀라운 선물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처럼 강력하게 이처럼 특별한 것으로 소원하신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행동은 형편이 없습니다. 나라가 안정되자마자 살만하자마자, 부도가 끝나자마자 하는 짓이 불신앙의 짓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했습니다. 이방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어떻게 회사가 잘 돌아가니, 건강해지니 그렇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먼저 할 수 있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산당에 제사지낼 만큼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실지 싫어하실지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한편의 왼쪽에는 무거운 불신앙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른쪽으로도 약간 괜찮은 것이 있습니다. 나랏돈이든 자기 돈이든 천 마리의 양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왕으로 당연한 소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원을 물었을 때 정치 잘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이런 선한 모습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비중을 한 번 보십시오. 왼쪽에 불신앙의 비중, 오른쪽에 신앙 같은 약간 예쁜 비중 둘 중 어느 것이 큰 것 같습니까? 비중은 천지 차이가 납니다. 왼쪽이 너무 무겁습니다.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왼쪽을 안 보시는 것처럼 오른쪽만 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마음속에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습니다. 담장 왼쪽은 교도소 안이고 오른쪽이 밖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솔로몬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데, 비뚤비뚤 걸으면서 몸이 자꾸 왼쪽으로 기울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조금 더 비뚤어지면 완전히 교도소 가고 망하는 길로 갈 것 같아서 하나님께서 급한 마음에 솔로몬을 부르십니다. ‘솔로몬아 정신 차려라. 왼쪽으로 가는 경향이 있구나, 오른쪽으로 가면 내가 큰 복을 주겠다.’ 그런 말씀입니다.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라는 14절 말씀이 바로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래 오래 지혜와 부와 귀와 영화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아, 부디 왼쪽으로 비뚤 비뚤 가지 말고, 비뚤비뚤 해도 오른쪽 오른쪽으로 가거라. 바르게 해라, 잘 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지금 그와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침탈과 625 전쟁으로 정말로 아무것도 없던 나라였습니다. 형편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나라,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런 나라에 하나님께서 이처럼 복을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셨는가? 흔히 교회에서는 그 이유를 우리 기독교 믿음의 선배들의 기도, 땀과 흘린 피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 한국교회가 그렇게 열심히 선교하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어느 기독교 국가가 그 정도 선교하고 복음 전하지 않습니까? 순교한 사람도 대한민국보다 월등히 많은 나라가 많습니다. 일본도 복음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조금 더 열심이었는지 몰라도 다른 나라도 기독교 국가로서 이정도 열심히 하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한국 기독교가 기도도 많이 하고 땀도 많이 흘리고 피도 많이 흘렀습니다. 다른 나라가 하지 않는 새벽기도도 했습니다. 또 열심히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조금은 부어주실 수 있다고 인정하십시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만큼 주실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주셨을까요? 솔로몬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가 시작을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한편으로는 탐욕이 있습니다. 목사들이 탐욕이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꾹꾹 누른 욕심이 나중에는 터질 듯이 넘쳐 나와서 감당하지 못합니다. 수치스러운 일들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걱정이 많이 되십니다. 다른 나라보다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새벽기도도 하지만, 왼쪽으로 보니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으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중보기도를 하다가 결국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개인의 탐욕이 있고 교회도 탐욕이 있습니다. 그저 자기 교회만 키우려고 합니다. 목사는 더 합니다. 하나님이 걱정이 되십니다. 그럼에도 조금 잘 하는 것이 있다고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쏟아부어주셨습니다.

잘해서 그렇습니까? 예뻐서 그렇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대한민국 기독교 교회, 대한민국 교회, 목사들 왼쪽으로 욕심을 위해서 탐욕을 위해서 갈 것이 아니라, 부디 오른쪽으로 더 열심히 하고 더 바르게 하라, 그러면 지금까지 준 것은 물론이고, 오래 가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더 큰 것을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 속에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내가 바라는 대로 하지 않고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가게 되면 교회뿐 아니라 이 나라에 주었던 모든 것을 빼앗겠다는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 상당히 왼쪽으로 갔습니다. 기독교의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은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TV나 신문에서 보신 것처럼 대한민국 교회가 완전히 왼쪽으로 나가떨어지고 이제 몇 가닥만 남아있습니다. 교회가 망하면 이 나라는 망합니다. 이것은 거의 틀림없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아합 시대에 왕궁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나라가 바알신앙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걱정스러워서 엘리야라는 당신의 종을 찾으셨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일갈을 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릴 것인가? 하나님이 참신이시면 하나님을 따르고, 바알이 참신이라고 생각되면 바알을 따르라고 선택을 촉구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최고의 형통한 사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모인 그 자리에서 마지막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이거든 여러분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또는 여러분들에게 있는 이 땅 가나안에서 섬기는 신이든지 여러분이 섬길 자를 선택하십시오. 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여호수아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한 그 외침은 여호수아가 왜 그렇게 형통했는지, 어떻게 성경에서 최고의 형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정확하게 보여 줍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여러분의 가정이 아직도 신앙과 불신앙 가운데서 머뭇거리고 있습니까? 말로서는 머리로서는 생각으로서는 신앙 그러나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불신앙을 택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그 가운데 계십니까? 여러분은 아직도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망설이고 있습니까? 어떤 때에는 잘하다가 어떤 때는 못하다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촉구하고 계십니다. 어디로 갈 것인지? 오른쪽으로 갈 것인지 왼쪽으로 갈 것인지, 신앙으로 갈 것인지 불신앙으로 갈 것인지,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지 세상을 선택할 것인지 대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아십시오. 내가 확실하게 하나님 편에 서게 되면 하나님도 확실하게 내 편에 섭니다. 여러분이 확실하게 하나님의 편에 서면 하나님도 여지없이 여러분 편에 서십니다. 믿노라 하는 대도 이상하게 하나님께서 내 기도 안 들으시고 내 소원 안 들으시고, 쉽지 않는 길을 계속해서 주시는 것은 혹시 여러분이 분명하게 하나님 편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주실지 말지 망설이시고 또 이 사람에게 주어야 할지 저 사람에게 주어야 할지 망설이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다시 말씀을 들으십시오. 확실하게 하나님 편에 선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확실하게 그 사람 편에 서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