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귀 있는 자는 (마태복음 13:1-9)

분당소망교회 2019. 11. 8. 10:21




귀 있는 자는



마태복음 13:1~9  ═══════════════════


사람들 가운데 지질이도 안 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해도 안 풀리고 저것을 해도 꼬이고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도무지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당연하게 자괴감에 빠지게 되고 ‘내가 흙수저라서 이럴 수밖에 없는가보다.’ 라는 신세 탓도 나옵니다.
며칠 뒤에 개봉될 한 영화에 우리나라 최상류층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사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대사들 중에는 흔히 흙수저라고 불리는 이들로 하여금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백 날 땀 흘려봐야 피 한 방울 못 이긴다.’ 또 ‘사람이고 말이고 씨가 좋아야 된다.’ 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피 그리고 씨는 물론 상류층의 피이고 상류층의 씨를 말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니다 밭이 좋아야한다.’ 라고 그와 정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씨 뿌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이 들고 다니면서 직접 씨를 흩어 뿌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씨앗이 잠긴 자루를 노새 위에 걸치고 부대에 구멍을 조금씩 냅니다. 사람이 노새를 몰고 위 아래로 갈 때 씨가 조금씩 흘러나옵니다. 두 방법 다 씨앗이 날립니다. 여기저기 흩어질 수 있습니다. 흩어진 씨앗이 길가에도 떨어지고 돌밭에도 떨어지고 가시덤불에도 떨어지고 좋은 땅에도 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가지고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4-8절)
씨는 천국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고 밭은 그 말씀을 듣는 각 사람의 마음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어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을 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18-23절)

여기서 잘 보실 것이 있습니다. 뿌려진 씨는 모두 똑 같습니다. 단지 씨가 떨어진 곳인 땅, 밭이 다를 뿐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똑 같은 말씀, 똑같은 씨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밭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결과가 천지차이로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다 주워 먹어버렸고, 돌밭에 떨어지니 잠시 잘 자라다가 곧바로 말라버렸고, 가시 떨기 밭에 떨어진 씨는 자라다가 기운에 막혀서 시들어버렸다, 옥토만 결실을 맺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라는 9절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뜻은 여러분의 밭은 어떤 밭이냐? 길가 밭이냐? 가시떨기 밭이냐? 돌밭이냐? 만약 여러분들의 밭이 그런 밭이라면 속히 좋은 땅, 옥토로 바꾸라는 명령이십니다. 만약 나의 이 말을 듣고도 끝까지 마음 밭을 고치지 않으면 평생 아무 결실도 얻지 못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명령이고 경고입니다.

오래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들아’ 라는 말이 크게 히트 쳤습니다. 본문의 주님의 말씀을 그 표현방법을 빌어서 말한다면 ‘문제는 마음 밭이야, 이 사람들아’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저렇게 애를 쓰는데도 왜 열매가 맺히지 않는가? 자식이 잘 안되고, 경제가 잘 안 풀리고, 집안이 풀리지 않습니다. 건강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열심을 다해서 웅덩이를 파는데 물이 모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오늘 주님께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 하나 그 경우를 들어서 해결책을 주십니다.
첫 번째는 길가입니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시멘트 바닥같이 마음 밭이 단단하게 된 밭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런 밭은 모양은 밭 같지만 전혀 밭이 아닙니다. 무엇이 들어와도 아예 받아들여지지 않고 받아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소위 잘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정말로 경건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순전히 하나님 일만 하고 사람들하고 안 어울렸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세례요한을 두고 귀신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셔서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잡수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자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저렇게 하면 저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소위 잘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 잘 나려고 하면 진짜 잘나고 어중간하게 잘난 사람은 되지 마십시오. 자기도 폐허가 되고 다른 사람들도 폐허로 만듭니다. 그 사람에게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 사람도 마음에 안 들고, 저 사람도 마음에 안 들고 나중에는 아내는 물로 자식들도 마음에 안 듭니다. 마지막엔 자기 자신도 마음에 안 듭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하는 말을 들어봐라.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는구나. 그래서 우리가 슬피 울어보았더니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는구나.’ 아무것도  통하지 않습니다.
단단한 마음을 바꾸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마음 밭을 완전히 바꾸어야합니다. 속된 표현을 하면 마누라 이외에는 전부 다 바꾸어야합니다. 다른 사람 말, 다른 사람의 생각을 거부하는 대신 자기 생각을 거부해야합니다. 자기를 거부해야합니다. ‘내 생각이 틀렸다, 내가 아니다’ 이것을 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이 세상을 겨우 겨우 기어가면서 사는 딱한 인생이 됩니다. 갈아서 엎어버려야 합니다. 다 바꾸십시오. 마음 밭이라는 기계를 전부 바꾸어야합니다. 

둘째는 돌밭입니다. 돌밭은 팔레스타인의 흔한 땅입니다. 흙 바로 밑에 돌과 같은 석회암이 깔려있는 밭입니다. 마치 시멘트 바닥 위에 흙을 얇게 올려놓은 듯한 밭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밭일수록 처음에는 씨가 아주 잘 자랍니다. 흙 밑에 있는 돌에서 열기라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곳에서 씨앗이 빨리 발아가 되고 풀, 나무로 자라게 됩니다. 사람으로 치면 하나님 말씀 한 마디만 들으면 얼른 감동받고 은혜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속이 돌밭 같은 사람입니다. 싹이 나오고 뿌리를 내리려고 하니 뿌리가 내리려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귀어도 뿌리가 내리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끝나고 말라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희한한 특성이 있습니다. 사람 잘 사귀고 감동을 잘 하는데 조금만 일이 생기면 곧바로 이전의 친절, 배려, 아끼는 마음이 다 사라져버립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20-21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 지 세 가지로 지적하십니다. 하나는, 흙이 너무 얇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흙 밑에 돌이 있다는 것이고, 마지막은 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문제는 하나만 해결하면 됩니다. 흙 밑에 있는 돌을 제거하면 됩니다. 그러면 흙도 많아지고 자연적으로 뿌리도 많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감동도 잘 되고 처음에는 사람들과 잘 사귀고 친절하기도 하는데, 무언가 일도 안 되고 사람 사귀는 것도 제대로 안 될 때에는 내 속에 돌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돌을 제거해야합니다. 마음속에 돌같이 단단한 고집이 있습니다. 내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의 뜻은 틀리다는 완악한 마음 그리고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교만할만한 사람’에게는 교만이 잘 없습니다. 속된 표현을 하면 ‘쥐뿔도 없는 사람’이 교만합니다. 밑에 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그 밭을 바꿀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과 의견이 다르면 얼른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이것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저 사람의 생각이 맞을 수 있고, 저 사람의 의견이 나보다 더 옳을 수 있다, 이것부터 생각해야합니다. 이러면 인생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옛날에 요셉을 만났던 이집트 왕 바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당시 이집트는 세계 최강대국이었고, 바로는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신과 같은 존재인 이집트 왕이 요셉을 만났을 때 요셉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감옥에서 막 나왔습니다. 이집트 국민도 아니고 가나안에서 팔려서 온 노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노예 앞에 최고의 신 같은 이집트 왕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 ‘이렇게 귀한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 있겠는가?’ 이런 말이 쉬울 것 같습니까? 겸손의 극치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지혜입니다. 그러면서 요셉에게 ‘내가 자네보다 높은 것은 이 왕 자리뿐이라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정도 되어야합니다. ‘정말 왕’ 같습니다. 이것을 바꾸어야합니다. 완악함을 버리고 교만함을 버리고 나를 낮추어야합니다.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 하나님만이 옳다는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세 번째, 가시떨기입니다. 헬라어로 ‘아칸다’라고 하는데,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사계절 볼 수 있는 잡초와 같은 가시떨기입니다. 가시떨기 밭의 땅은 상당히 좋은 땅입니다. 잡초는 다른 씨앗보다 힘이 있기 때문에 좋은 땅을 차지해버립니다. 이 가시, 잡초가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22절)
이 말씀을 헬라 원어로 보면, 세상은 헬라말로 ‘아이온’인데, 여러 가지 뜻이 있겠지만 본문에서는 ‘끊임없는’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를 끊임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이 걱정 끝나면 저 걱정을 하고, 저 걱정 끝나면 또 다른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 재물의 유혹을 헬라 원어로 하면 ’아파테 투 플루투‘ 이고, 유혹의 ’아파테‘는 속임, 기만을 의미합니다. 재물은 돈이라고 해도 좋고 그냥 재물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돈, 재물의 기만, 속임 즉 신기루라는 말씀입니다. 돈 많이 모으면, 돈 많이 벌면 행복할 것 같은데 그것은 다 신기루이다, 헛것이다, 그것 때문에 인생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자기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들, 내 아내도 행복하게 못하는 바보 같은 인생, 속은 인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염려, 돈 욕심에서 벗어나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염려, 재물 욕심 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해보지만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거미줄에 감기듯이 감깁니다. 욕심이 자꾸 생갑니다. 염려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염려가 됩니다. 수면제를 먹으면서까지 잊어버리려고 하는데 걱정이 생기고 또 생깁니다. 그런 염려나 욕심은 어둠이고, 어둠은 여러분의 힘으로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얼른 아십시오. 여러분의 힘으로는 절대로 못 이깁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못 이깁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염려 욕심을 몰아낼 수 있습니까?
제가 아주 오래 전에 교회학교에서 ‘반사’를 할 때, 어린 아이들에게 ‘우리는 세상의 빛, 우리는 세상의 빛, 어둠을 몰아내는 환한 빛이란다.’ 라는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사실 빛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빛이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빛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면 내 속에 빛이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속의 빛 때문에 어둠이 물러난다는 것입니다.
어둠, 염려, 욕심을 물리치는 길은 내 속에 있는 예수님,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 주님의 빛으로 쫓아내야합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면 됩니다. 더 가까이 하십시오. 더 찾으십시오. 그러면 자동적으로 어둠이, 욕심이 물러가고 염려가 물러가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길가와 같이 씨가 접촉도 할 수 없는 마음, 뿌리가 내릴 수 없는 돌밭 같은 마음, 온갖 염려와 욕심으로 가득한 떨기나무, 가시떨기밭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그런 밭에는 아무리 좋은 씨, 아무리 많은 씨를 뿌려도 열매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밭을 얼른 바꾸십시오. 옥토로 바꾸어야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