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
마태복음 13:1~9
남편 눈에 아내가 핼쑥하게 보였습니다. 잠자리에 들려했던 남편이 일어나서 양복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냅니다. ‘비상금인데 내일 혼자 뷔페에 가서 소고기를 먹고 오라..’고 말합니다. 남편이 준 만 원짜리 한 장을 들고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가에 물기가 보입니다. 자기는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합니다.
아내는 차마 그 돈으로 음식점에 가지 못합니다. 그 만원을 노인정 가시는 시아버지 손에 쥐어주면서 신세진 친구 분하고 약주라도 한 잔 드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시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을 힘겹게 끌어가는 며느리가 이렇게 마음을 써주니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만 원짜리를 들고 가서 노인정에서 실컷 며느리 자랑을 했지만 그 돈은 쓰지 않고 그냥 가지고 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돈을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둡니다.
설날 아침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합니다. 어린 아기가 이제는 훌쩍 자라서 내년에는 학교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장롱 속에 숨겨두었던 만 원짜리를 세뱃돈으로 손녀에게 내줍니다.
내년에 학교 들어가는 손녀는 엄마에게 책가방 값이 얼마인지 묻습니다. 손녀는 할아버지에게 받은 세뱃돈 만 원을 엄마에게 내밀면서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예쁜 책가방을 사달라고 합니다. 어린 딸의 마음을 읽은 엄마 얼굴에 웃음이 비칩니다.
이번에는 아내 눈에 남편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아침마다 싸는 도시락 반찬으로 신 김치 하나밖에 없어서 정말 미안했습니다. 아내는 조용히 남편의 양복 주머니에 딸아이가 맡긴 만 원짜리를 집어넣습니다. 거기다 메모를 하나 붙입니다. ‘내일은 맛있는 거 사드세요.’
남편에게서 나온 만 원짜리 하나가 온 식구를 돌아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만 원짜리는 그대로 돌아왔지만 그 만 원짜리가 온 식구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채웠습니다.
듣기만 해도 참 좋은 이야기입니다. 듣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가정이 이런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돈으로 행복을 만들지 못합니다. 세상의 다른 그 무엇으로 아내를, 남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좋은 집안이 있고 건강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런 집안, 그런 가정은 온 식구들이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를 배려합니다. 일이 있으면 위로해주고 감싸주고 달래주고 서로가 희생적이고 헌신적입니다. 이런 가정은 가정 자체가 건강합니다. 마치 가정이 인격체 같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런 집안, 그런 가정에는 치료가 있습니다. 집안사람들이 다 치료를 받습니다. 밖에서 상처를 받고 집에 들어오면 치료가 됩니다. 그 집안에 사람이 들어오면 이전에 문제가 있던 사람, 상처가 있던 사람도 치유가 됩니다. 상처 있던 사람이 며느리 사위로 들어오면 치료가 되어서 건강한 사람이 됩니다. 상처 있는 사람들이 이 집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치료가 됩니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상합니다. 왜 그런지 모릅니다.
반대로 병든 가정이 있습니다. 그런 집안은 건강한 사람이 들어가도 얼마 있지 않아 병들게 되어 환자가 됩니다. 전염병 같습니다. 그런 집안의 병, 상처는 건강했던 사람을 감염시킵니다. 식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러다 보니 상처에 민감하여 조그만 일이 있어도 상처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은 상처받지 않을 일도 이런 집안의 사람은 상처를 받습니다. 온 집안에 상처투성이입니다. 그리고 이런 집안의 사람들은 나가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어디가든지 상처를 줍니다. 교회에 나가도 교인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상처받았다고 말합니다. 늘 상처받는 사람은 자기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늘 상대방은 나에게 가해자이고 나는 늘 피해자, 피해를 당한 사람입니다. 상대방에게 나는 늘 당한 사람이고 나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진 남편을 데리고 병원에 갔습니다. 남편을 진찰한 의사가 남편을 내보낸 뒤에 아내에게 ‘오늘 저녁부터 제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댁의 남편은 점점 더 몸이 안 좋아지고 죽게 될 것입니다. 아침에는 정성껏 국을 끓여서 따뜻한 밥과 함께 상에 올리십시오. 집안 청소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먼지 하나 없어야합니다 남편 옷을 항상 다림질해서 입히세요. 그리고 남편에게는 집안 일 시키지 마세요.’ 라고 단단하게 당부했습니다. 의사 말을 듣고 진료실 밖을 나온 아내에게 의사가 뭐라고 말했는지 남편이 물었습니다.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곧 죽을 거래.’
이런 집은 늘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불평이 많고 불만이 많습니다. 나라에 대해서도 사회에 대해서도 이웃에 대해서도 부모에 대해서도 자식에 대해서도 남편, 아내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습니다. 불평이 많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부정적입니다. 긍정을 모릅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긍정적이고 괜찮은 사람이라도 안 좋은 면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부정적인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면이 반드시 있습니다. 조금씩은 다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부정적인 면밖에 볼 줄 모릅니다. 여러 사람이 있어도 그 중에서 안 좋은 사람들만 눈에 띄고 좋은 사람은 볼 줄 모릅니다. 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 속에도 좋은 면, 안 좋은 면이 있는데 좋은 면은 볼 줄 모르고 늘 안 좋은 면밖에 볼 줄 모릅니다. 더 나가서 이런 가정의 사람들은 아예 청개구리 짓을 합니다. 뭐든지 반대로 하고 거꾸로 갑니다. 청개구리가 엄마 말을 너무 듣지 않습니다. 뭐든지 엄마가 말씀하시면 거꾸로 합니다. 엄마는 죽고 난 뒤 양지바른 산에 묻히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청개구리 아들에게 부탁하면 거꾸로 할 것 같아 죽으면 냇가에 묻어달라고 반대로 말합니다. 어머니 생각에 그렇게 하면 산에 묻어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개구리가 엄마 말대로 냇가에 묻습니다. 그 후부터 비가 오기만 하면 청개구리는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 싶어 개굴개굴 운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정신 차릴 때가 있는데 꼭 시간이 늦고 난 뒤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난 뒤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때 알게 됩니다. 참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상처받은 가정, 상처가 있는 집안이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한 번 보십시오. 보면 참 예쁩니다. 도대체 걱정을 모르고 상처가 없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고 어둠이 없습니다. 별 것 아닌 것으로도 웃고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조금씩 어둡게 되고 부정적이 됩니다. 그러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가 바뀌어 돌처럼 굳어집니다. 누구든 나이가 들면서 자꾸 상처를 받고 부정적이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상처를 주는 사람이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참 희한합니다. 자기 부모에게 제일 많이 상처받고 형제에게 상처를 많이 받고 남편이 상처를 많이 줍니다. 아내가 상처를 많이 줍니다. 당사자는 잘 모르지만 아주 분명합니다.
상처를 받게 되면 잘 없어지지 않고 쌓여갑니다. 잊을 수는 있지만 사실은 의식에서 무의식속으로는 들어가게 됩니다. 그 무의식속에 들어간 상처들이 긁혀 다른 상처가 또 위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 상처들이 덧나게 되고 곪습니다. 나중에 심하게 되면 암이 됩니다. 마음의 암이 되기도 하고 육체의 암이 되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은 거의 3/4이 서로 통합니다. 육체적인 질환으로 말미암아 입원한 환자들을 조사해보니 75%가 정서적인 문제라고 밝혀졌습니다. 육체적인 병에 걸리면 육체의 병의 3/4은 정신적인 문제, 정서적인 문제가 원인입니다. 육체의 병을 고치려면 정신, 마음, 정서를 고쳐야합니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게 되면 상처받은 본인으로 끝나지 않고 주위사람들에게 감염시키고 전염시킵니다. 전염병과 똑같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상처받은 피해자가 되고 그 피해자는 그때부터 가해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드라큘라에게 한 번 물리면 자기도 드라큘라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드라큘라가 되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람을 무는데 왜 무는지도 모릅니다. 후회를 하면서도 또 물게 됩니다. 물리면 그 사람이 또 드라큘라가 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물면 그 사람도 또 드라큘라가 됩니다. 상처가 똑같습니다. 이 상처들은 금방 나타나지 않고 잠복이 됩니다. 의식세계에서 무의식세계로 들어가게 되어 잠복이 되고 잘 없어지지 않습니다. 나타날 때에도 언제 내가 그런 상처, 그런 아픔이, 그런 병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상처들, 아픔, 질환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날이 갈수록 내가 이상해집니다. 다른 사람과 자꾸 갈등을 일으킵니다. 드물게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부드러워지고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불평이 많아지고 불만이 많아집니다. 예전에는 TV를 보면서 웃기도 잘했는데 요즘은 뭐든지 못마땅해집니다. 저 깊숙이 있는 마음의 상처가 올라와서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이것 때문에 못마땅하고 저 사람은 저것 때문에 못마땅해집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자꾸 멀어지게 됩니다.
자녀들이 결혼할 때 집안을 많이 따집니다. 돈이 많은 집과 결혼하면 내 아들, 내 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생각하거나 상대방의 지위에 따라 내 집안도 같이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는 타산적인 이유로 상대방의 집안을 따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의미, 바른 의미도 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집안의 사위, 며느리가 들어오면 우리 집이 건강하지 못하게 되고 병들게 됩니다. 그런 집안, 가정을 보기 위해서 집안을 따지기도 합니다. 상처 있는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자식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아버지가 그러한 경우도 있지만 특히 어머니가 상처를 많이 줍니다. 상처 있는 어머니가 상처 있는 자식이 되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지금 자기가 상처에게 있는지 모릅니다. 하는 일들이 결과적으로 자식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본인이 그럴 의도를 가질 리가 없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딸에게 상처 주겠다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의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법률적 용어로 충분히 미필적 고의가 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는 그것이 상처가 되는 일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도 잘 배워야합니다.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내 생각대로 사랑하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입니다.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세상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고 심지어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리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이 다 주워 먹어 하나도 남지 않았고, 어떤 씨는 돌밭에 씨가 떨어졌는데 좀 자랄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뿌리가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열매가 하나도 맺히지 못했고, 가시덤불 위에 떨어진 씨는 처음에는 잘 자라다가 여기 저기 걸려 더 이상 자라지 못해 거기도 아무 열매도 없었고, 옥토에 떨어진 씨앗은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빠뜨리지 말고 볼 것은 마지막 말씀 ‘귀 있는 자는 들으라’(9절) 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각자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왜 밭마다 열매가 다릅니까? 똑같은 씨앗이 떨어졌습니다. 한 사람이 씨를 뿌렸습니다. 씨가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문제는 밭입니다. 밭이 문제인 것입니다. 밭이 좋아야합니다. 밭이 좋아야 씨가 잘 자라고 가정이 잘 되고 자식이 잘 됩니다.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마음 밭을 잘 가꾸고 가정 밭을 잘 가꾸어야합니다.
그러나 아실 것이 있습니다. 본래 좋은 밭이기만 하면 계속 좋은 밭이 되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좋은 밭이 나쁜 밭으로, 세상의 최악의 밭으로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레미야 4장 26절은 ‘보라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옛날에는 좋은 땅 옥토였었는데 황무지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애가 1장 1절은 그 슬픔을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굴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안 되었습니다. 괜찮은 집안, 참 좋은 가정이었는데 뚝 떨어져 형편없는 집안, 강제노동 하는 집안, 온갖 고생을 다 하는 집안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도 있습니다. 본래 나쁘고 안 좋았던 밭, 그런 가정, 그런 집안이 끝까지 가라는 법은 없습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즉 뽕나무밭이 푸른 밭이 되기도 하고 푸른 밭이 뽕나무 밭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을 에스겔서 36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폐하게 보이던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겔36:34-35) 형편없던 가정이 번창하게 되는 가정이 있습니다. 그런 집안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의 가정이 이런 가정, 이런 집안이 되었으면 정말로 좋겠습니다. 좋은 밭을 만들어야합니다. 좋은 집안, 좋은 가정을 만들어야합니다. 잘 가꾸어야합니다. 마음 밭을 잘 관리해야합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돈은 좋은 밭을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돌멩이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 밭입니다. 아버지의 마음 밭, 어머니의 마음 밭 이것을 먼저 갈아야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 좋은 밭이라면, 품성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냥 있으면 안 됩니다. 어느 날 안 좋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좋은 것을 가꾸어 나가십시오. 선한 일 하던 사람은 선한 일을 계속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조금씩 더 하십시오. 안 하면 없어지고 맙니다. 계속해서 잘 관리해야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 이웃을 잘 도와주는 사람은 중단하지 말고 이제는 되었다고 하지 말고 계속하시고 조금씩 더 하십시오. 감동되시면 조금은 힘들게 해도 되지만 그렇게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잘 관리해야합니다. 자꾸 그런 집안으로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옛날에 좋은 일을 하던 사람도 어느 틈에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정 밭을, 집안 밭을 황폐하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힘쓰고 애써야합니다. 말하는 것, 표현하는 것, 행동하는 것, 표정도 관리해야합니다. 밖에서 좀 안 좋은 있다고 할지라도 집안에 들어가면 웃으려고 애를 써야합니다. 그것이 자식에게 이어져 갑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자꾸 웃으십시오. 안 되면 드라마 보고, 오락 보고라도 웃으십시오. 노력해야합니다.
그리고 아내 되는 여러분들은 좋은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편에게 복종해야합니다. 성경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즘에 그런 말을 하다고 핀잔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천년, 만년 가도 바뀌지 않습니다. 아내들은 그것만 생각하지 말고 그 다음 말씀도 생각해야합니다. 성경은 그 다음 말씀으로 남편에게 아내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자의 최고 행복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돈 많이 버는 것, 세상의 지위가 높아지는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지 못해도 됩니다. 돈 때문에 혹은 다른 것 때문에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하려고 하는 그 마음이 남편에게 있어서 최고의 행복이라는 것을 남자들이 알아야합니다. 돈 때문에 행복해지는 아내들은 별로 없습니다. 급한 불 끄고 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내 아내를 행복하게 할까? 그렇게 고민하면 아내가 행복한 것보다 내가 더 먼저 행복하고 더 많이 행복하게 됩니다.
자식들의 최고 행복은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공경할지, 부모님을 기쁘게 할지 애를 쓰는 것입니다. 꼭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애를 쓰는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합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은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로라의 남편은 로라가 보기에 참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라는 신물이 났습니다. 남편은 자주 집을 떠났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늘 술을 마셨습니다. 로라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이혼하려고 합니다. 자기의 결혼생활과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이혼하려고 하다가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다행히도 친구가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는 마지막으로 목사님을 만나보라고 권합니다. 목사님을 만나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친구의 말대로 목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목사님에게 자기 남편에 대해서 40분간 온갖 욕을 다 했습니다. 목사님은 아무 소리 없이 로라의 말을 들었습니다. 로라의 말 마지막에 목사님이 한 마디 했습니다. ‘혹시 남편을 한 번이라도 용서해본 일이 있습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로라는 목사님 방에서 나왔고 이런 쓸데없는 만남을 다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목사님의 말씀이 자꾸 귀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용서해봤느냐?’ 그 말을 잊어버리려고 머리까지 흔들어보았지만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일주일 동안 로라는 목사님 그 말씀을 계속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로라는 놀라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망가진 인생을 예수님에게 맡겨보자고 결심하게 됩니다. 이혼 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남편의 모든 일들을 다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남편 사랑하는 법을 배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남편은 트럭운전 기사였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며칠 만에 집에 들어왔는데 어느 날 집에 들어온 남편은 깜짝 놀랍니다. 집안이 바뀌었습니다. 너무 평화로웠습니다. 아내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며칠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또 다시 귀신같은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섯 달이 지나도록 아내는 같았습니다. 다섯 달이 지나고 난 뒤 남편은 아내가 만났던 목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목사님, 제 아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과거에 너무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고백했습니다. 남편도 바뀌었습니다. 아내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난 뒤부터 남편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소중함을 인정하였습니다. 전에는 화가 나면 남편에게 말도 안 하고 얼굴도 안 돌렸지만 이제는 화나는 일이 있으면 화를 내지 않고 남편을 미워하지 않고 자기 마음을 그대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도 옛날과는 다르게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 가정이 평화롭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60장 15절은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사람에게 역사하시고 가정에 역사하십니다.
좋은 밭, 가정 밭, 집안 밭, 내 마음 밭이 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영적 일광욕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그늘진 곳에서는 농작물이 자라지 않습니다. 해가 잘 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곳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사람의 마음 밭도 똑같습니다. 영적인 해가 비춰야지 마음 밭이 좋아집니다. 영적인 해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12: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빛이신 예수님께 나가고 또 나가는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당에 와서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오랫동안 예배를 귀하게 여기고 중요하게 여기면서 예배를 드린 사람은 마음 밭이 다릅니다. 심으면 잘 납니다. 틈만 나면 예수님께 가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있으십시오. 성경을, 찬송을, 기도로 예수님과 있으십시오. 여러분 마음속에 빛이 비칩니다.
체릴이라는 학생 집안 이야기입니다. 학생이 자랄 때 장식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어서라!’는 내용의 일종의 가훈이었습니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온 집안 식구들 마음에 그 장식판의 말이 각인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조금도 양보하지 말고 절대로 남에게 지지 말고 일어서라는 뜻입니다. 좋은 의미로 보면 적극적으로 살라는 내용이었지만 이 장식판은 체릴 가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지지 말고 싸워서 이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체릴의 아버지가 그 첫 번째로, 한 치도 양보를 안 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에 미안하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체릴의 아버지가 사업에 성공했는데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사업에 성공하다 보니 자기가 사는 방법이 잘 한 것으로 생각하고 아내와 자식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한 것입니다. 온 가족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밤낮 싸웠습니다. 조금 더 속된 말로 하면 죽을 때까지 서로 싸웠습니다. 아무도 양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상황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체릴이 교회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여러 학생들에게서 자기 집안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양보하고 이해하고 좋은 말, 긍정적인 말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체릴은 한 평생 자기 집에서는 그것을 못 보았습니다. 체릴은 그 이유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즉각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새로운 마음으로 집안을 둘러보니 맨 처음 걸리는 것이 그 장식판이었습니다. 그 장식판이 자기에게 늘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 같았고 그것이 싫었지만 수십 년간 보다 보니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체릴은 이제는 그렇게 안 살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형제들 간에 싸움이 있을 때 체릴은 얼른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네가 옳으니 용서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체릴을 다른 형제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찌하든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체릴은 그때까지 어머니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그때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학교 갈 때에도 닭살 돋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를 안고 축복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년이 되었습니다. 집안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식구들의 말이 바뀌었고 부정적인 말이 사라졌습니다. 긍정적인 말이 집안을 채웠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양보하기 시작했습니다. 맨 먼저 체릴의 여동생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체릴의 오빠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형제들의 삶이 다 바뀌었습니다. 그해 크리스마스 때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날 자기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수십 년 동안 그 집안 가장 가운데 중심된 자리에 달려있던 그 장식판을 떼어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은, 예수님은 어떤 밭이든지 다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밭, 여러분의 집안의 밭, 사랑하는 딸 아들의 마음 밭을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3:10-11)
빛을 비추십시오. 여러분 마음 밭에,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 예수님의 빛, 성령님의 빛을 비추십시오. 어느 틈엔가 아름다운 밭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아름다운 가정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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