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인생 최고의 보물 (마가복음 5:1~15 )

분당소망교회 2017. 6. 29. 10:45

 

 

 

 

인생 최고의 보물

      

 

마가복음 5:1~15   

 

조지는 신장암 때문에 두 개의 신장 중 하나를 잃었습니다. 수술 당시 담당 의사는 수술이 아주 잘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몇 개월 뒤부터 남아있던 나머지 신장에도 암세포가 차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조지는 의사들로부터 길어야 3주라는 선고와 함께 암이 너무 많이 진행되었고 넓게 퍼졌다는 말 그리고 남은 인생 주변 정리 잘 하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조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서 조언을 받았습니다. 자기에게 생긴 암의 원인, 자기가 어떻게 살았기에 그런 병이 생겼는지에 대해서 조언을 듣고 자기 생각을 종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그 문제들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자 컨디션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검사를 해봤습니다. 제법 컸던 암세포가 상당히 많이 줄었습니다. 더 열심히 그렇게 살았습니다. 6개월이 지난 뒤에 미국 국립 암센터에서 검진했습니다. 결과 암세포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까지 조지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완벽한 건강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일을 위해서 조지가 특별히 한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조지는 그저 여러 사람들의 조언 그리고 자기가 생각한 것들을 종합해서 몸이 원하는 것, 내 몸에 가장 균형 잡힌 삶이 무엇인지 그것만 생각하고 힘쓰면서 살았습니다. 조지는 질병이란 우리 몸과 우리 인생에 무언가 결핍되어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표지판이다. 특히 암은 우리 삶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사태가 매우 불안정하고 깨지기 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건강을 해치는 인간의 결핍 그리고 불안정을 불러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들이 많이 있지만 종합하면, 우리 인생의 결핍, 불안정을 불러오는 최대의 요인을 한 마디로 말하면 잘못된 삶, 잘못된 삶의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 또 하나는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햇빛, 햇볕입니다. 사람들은 싸고 돈이 안 드는 것, 이런 것은 귀하게 생각하지 않고 돈이 많이 들고 힘이 들어야 효과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햇빛, 햇볕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햇볕을 잘 쪼여야합니다. 그리고 잠을 충분하게 그리고 제대로 자는 것입니다. 하나 더는 좋은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중병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 한 분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환자의 병이 상당히 심했는데 그 의사의 치료로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환자에게 남아있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의사의 강력한 경고 그리고 권고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끊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의사가 병을 고쳐주면 뭐하나? 또 병이 날 텐데……라고 한탄조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병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경제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소용이 없습니다. 또 경제문제를 만들어냅니다. 가정문제 역시 해결됩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습니다. 또 다시 가정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자녀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 이야기입니다. 심한 정신병자가 공동묘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동묘지는 우리처럼 평평한 땅이 아닙니다. 우리는 묘지라도 아주 평화스럽습니다. 이스라엘은 언덕입니다. 바위에 굴을 파서 동굴을 만들고 거기에 시신을 넣어두고 돌로 입구를 막아둡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돌문 뒤에 시신이 있는 것입니다. 장사 지낸지 얼마 되지 않으면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신이 돌문 바로 뒤에 있는 것이고 죽은 지 좀 시간이 되었으면 썩어가는 시체가 있을 것이고 오래 되었으면 다 썩고 뼈만 남아있을 것입니다. 무시무시합니다. 어른들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본문은 그곳에 사는 귀신 들린 사람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중에는 유심히 보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 속에 있는 귀신에게 나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들은 귀신이 자기를 괴롭게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저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6-7)

성경은 이 일 앞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였음이라(8) 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 예수님께서 나오라고 말해도 나오지 않고 그대로 두라고 부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른 보면 예수님께서 실패하신 것 같습니다. 나오라고 하셨는데 귀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 아실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하나님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아주 재미있게 보는 영화가 있습니다. <>시리즈입니다. 저는 몇 번 되풀이해서 보았고 앞으로도 또 볼 예정입니다. 주인공 이라는 사람은 모든 방면에서 대단한 실력자입니다. 본을 잡으려고 미국 정보기관의 최고실력자들이 총동원되지만 잡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정보기관이 감시하고 있던 CCTV에 본의 얼굴이 찍힙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정보기관의 책임자가 실무자에게 드디어 걸렸다. 이제 잡게 되었다. 본도 실수할 때가 있구나.” 라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본을 제대로 잘 아는 실무자가 아닐걸요? 본은 절대 실수하지 않습니다. 본은 실수도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절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눈에 실패로 보이는 것들도 다 의도를 가지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일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실패가 아닙니다.

이 정신병자가 정신병에 걸린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옛날 이 사람이 군대로 말미암아 큰 충격,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충격이 너무 크고 상처가 너무 깊어서 이 사람 머리에는 다른 것은 다 사라지고 그것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충격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이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전부 다 옛날에 군대에게 당했던 그 상처, 아픔, 충격과 관련됩니다. 이 환자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흔히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보는 것과 다릅니다. 흔히 사람들은 귀신이 들어왔다. 아니면 분열증이다.’ 라고 말하는데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람에게 제일 급박하고 중요한 문제는 군대로 말미암아 생긴 상처와 충격을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귀신이 쫓아내어도 또다시 들어옵니다. 그것이 정신분열의 문제라면 정신분열을 치료해주어도 또 다시 정신분열증이 생깁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그 문제에 접근하셨습니다.

 

요즘 경제 문제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런 문제가 일어난 이유를 근본적으로 알아야합니다. 그냥 보충만 해주면 또 다시 문제가 생기고 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건강문제, 가정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한 사람의 일을 두고 이 세상의 많은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눈에 보이는 그것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고 큰 문제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의 이름을 물으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물으셨습니까? 몰라서 물으셨습니까? 여기서 예수님의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이 귀신인지 아니면 정신병자 본인인지 아무 상관없습니다. 이런 데 관심가지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질문하신 까닭은 그 정신병자로 하여금 자기 문제의 근본이 무엇인지 스스로 다시 한 번 확인하도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9)라고 물으시자 정신병자는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10) 라고 대답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자기의 모든 문제가 군대로 인해서 생긴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확실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이 문제만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장애를 크게 나누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실적인 장애입니다. 또 하나는 심리적인 장애입니다. 사실적인 장애는 좀 쉽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만 제거하면 장애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경제 문제를 예를 들면, 어떤 사건이나 사고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 단순하게 그 문제 때문이라면 보충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부모님 혹은 다른 사람이 도와주면 됩니다. 사고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많습니다. 단순한 사건, 사고 때문에 몸을 다쳤으면 그 문제만 해결해주면 됩니다. 시간만 지나면 해결됩니다. 그런데 심리장애는 쉽지 않습니다. 겉으로 문제, 모든 장애를 다 없앤다고 하더라도 심리의 장애를 제거하지 않으면 또 다시 생겨나게 됩니다. 가정의 문제가 또 생겨나고 부부 문제가 또 생겨나고 경제 문제가 또 생겨나고 육신의 건강 문제가 또다시 생겨납니다.

시골 마을에 바자회가 열렸습니다. 한 농부가 메추라기를 팔고 있는데 메추라기 열 마리를 다리에 끈을 묶고 각각을 가운데 세워둔 쇠막대기 묶어두었습니다. 이 메추라기들이 쇠막대기를 중심으로 해서 오른쪽으로 돌다가 다시 왼쪽으로 계속 돌아갑니다. 한 신사가 그 광경을 보다가 메추라기가 너무 불쌍해서 그 농부에게 메추라기를 샀습니다. 다리에 묶인 끈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메추라기들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날아갈 수 있지만 자기네들은 묶여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묶여있는 것과 똑같이 왼쪽으로 돌다가 또 오른쪽으로 계속 돌았습니다. 신사가 저 멀리 쫓았습니다. 주루룩 저 멀리 날아간 메추라기들은 거기서 똑같이 그렇게 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심리적인 장애입니다. 코끼리 훈련시킬 때에도 이렇게 합니다.

 

본문의 정신병자는 심리적인 장애입니다. 본인 생각에 자기에게 귀신이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자기에게 들어온 귀신은 보통 귀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호락호락하게 나갈 정도의 귀신이 아니라 자기를 옛날에 그렇게 비참하게 유린했던 어마어마한 군대라서 웬만한 사람은 그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말로 그런지 아닌지 그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이 사실이 됩니다.

 

이와 유사한 것이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입니다. 플라시보 약은 약효가 없는 가짜 약으로 진짜 약이라고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기망이고 일종의 사기입니다. 그런데 환자에게 복용시켰을 때 아무런 효험이 없어야할 그 약이 상당히 효과가 자주 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를 내는 것은 거의 다 설탕물입니다. 설탕물을 예쁘게 만들어서 특효가 있는 약이라고 속입니다. 그런데 진짜 그 병을 위해서 연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약보다 효력이 더 있을 때가 많습니다. 심리적인 문제, 혹은 심리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는 플라시보 처방은 얼른 생각하면 사기이고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의학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의학계에서 사기를 연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플라시보 효과는 약에 대한 환자의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효력이 강해집니다.

 

이 정신병자에 있어서 자기에게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군대가 자기에게서 나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설사 치료되었다고 할지라도 자기에게서 군대가 나갔다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정신병은 또 다시 재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점점 더 심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12:43-45)

그 정신병자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 내쫓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 그것을 해결해 주어야합니다.

 

이것은 정신병자뿐만 아니라 그리고 육체적인 질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우선 당장 급한 것만 모면하려고 합니다. 인생 사는 것도 마찬가지로 실패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왜 내가 인생 실패하고 일이 해결되지 않고 잘 풀리지 않는지 생각해야하는데 당장 이 사람 저 사람 찾아가서 도움을 구하면서 그 문제만 해결하려고 합니다. 조금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문제는 또 다시 생겨나고 점점 더 심해집니다. 마치 한 귀신 나갔다 일곱 귀신 데리고 들어온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되풀이됩니다. 인생 선배들의 실패를 또다시 하게 됩니다. 이것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 환자 열 명이 절박하게 부탁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일반인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소리를 질러야합니다. 나병환자들은 목이 상했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지 못합니다. 그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애처롭게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나병이 나을 테니까 제사장에게 보이고 다 나았다는 증명 받아서 오라고 보냈습니다. 가다 보니 이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다 나았습니다. 그 중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열 명을 치료해주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당신 이외의 아홉 명은 다 어디 갔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병이 나았다고 떠나버린 열 명 중 아홉 사람은 나병은 나았지만 그 다음 더 큰 문제는 해결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즉 구원은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 구원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권세, 능력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이 가지는 평화를 누리는가? 누리지 못하는가? 라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 이것은 얻지 못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같은 나병 환자였던 나아만은 달랐습니다. 나병을 치료받기 위해서 저 멀리 시리아에서 이스라엘까지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박대를 받고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시리아에서는 대단히 귀한 인물, 큰 인물인데 얼굴도 한 번 비추지 않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민 했습니다. 화가 나서 돌아가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여기까지 왔는데 못할 일이 무엇입니까? 더 어렵고 힘든 일도 했는데 요단강에 가서 몸 씻는 일을 왜 못합니까?’ 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모두 돈만 들이려고 합니다. 수고하고 힘써서 해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엘리사는 간단하게 씻으라고만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마만이 씻었더니 나았습니다. 완치되고 난 뒤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와서 제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알겠습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여호와 하나님 이외는 제사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라고 맹세했습니다. 나아만은 나병도 나았고 그보다 천만 배 더 소중하고 귀중하고 복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병만 치료해서 문제가 해결 될 것이 아닙니다. 돈 버는 것이 귀합니다. 병 낫는 것이 좋습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 좋습니다. 어렵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좋습니다.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잠시 기분은 좋지만 그것이 행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곧 행복은 아닙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통계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어떤 나라인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1인당 국민 총소득이 102610달러, 유엔 개발계획의 인간 계발 지수 세계 1, 영국의 레가튼 연구소가 발표하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 평가에서 6년 연속 1, 어느 나라일 것 같습니까? 노르웨이입니다. 노르웨이는 어떤 면에서든지 간에 지구상 가장 잘 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노르웨이가 영국의 새로운 경제 재단이 발표한 국민 행복지수의 순위가 29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위는 남미의 코스타리카입니다. 코스타리카의 1인당 국민 총소득은 당시 9,550불이었습니다. 노르웨이의 1/10도 안 되었지만 이 나라가 가장 행복한 나라,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라는 통계입니다. 행복은 삶의 환경, 여건, 조건과 비례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환자의 이 일을 통해서 정확하게 보여주시는 것이 병 낫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전부라면,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면 예수님께서 귀찮게 이것저것 하지 않고 다른 때 하셨던 것처럼 이 사람을 낫게 하고 돌려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병 낫는 것보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몸이 낫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치신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세상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참된 행복, 참된 만족, 참된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선 당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있어야 어떤 문제가 있어도 극복해나가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주시기 원했던 것입니다 .

 

우물가의 여인이 그랬습니다. 그 여인은 결혼을 다섯 번 했습니다. 아마 이 여인은 상당히 미인이었던 같습니다. 당시 남자는 돈만 있으면 장가를 몇 번 갔지만 여자들은 그렇게 못했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다섯 번이나 했으니 이런 저런 남자와 살아보기도 했을 것이고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다 살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행복과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남자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결혼도 안 했습니다. 이 여인, 이렇게 빼어난 미모를 가진 여인에게 남은 것은 아픔밖에 없었습니다. 부끄러움밖에 없었습니다. 이 남자, 저 남자와 헤어질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픈 가슴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이 물 길어오는 시간에 물 길러 오지 못하고 아무도 나오지 않는 뙤약볕이 쬐는 한 낮에 물 길러 나옵니다.

그 어떤 데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행복을 찾지 못하고 해결되지 못했던 여인의 문제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모두 다 해결되었습니다. 당시 물동이 하나는 굉장히 소중했습니다. 그러나 물동이도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전에 이 여인은 사람들을 아예 안 만났습니다. 이제는 이 여인이 사람들을 만납니다. 내가 이런 분을 만났다, 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리를 하려고 사람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영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천사와 같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취미는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선한 일을 하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식당에 들어갔는데 여종업원이 우울하게 보였습니다. 여종업원에게 위로 차 내가 며칠 전에 복권을 샀는데 복권이 당첨되면 당신에게 반을 주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 복권은 아내와 함께 샀습니다. 복권이 당첨되었습니다. 이 남자는 고민 고민 하다가 25억을 그 여종업원에게 주었습니다. 남편과 달리 욕심이 가득 찬 아내가 이혼을 청구했습니다. 남자는 이혼소송에서 패합니다. 남편의 모든 것과 그 여종업원에게 주었던 것까지 전처가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 엄청난 돈을 다 빼앗기고 난 뒤에도 남자는 도리어 행복해하면서 그 여종업원에게 나는 당신을 얻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두 사람이 얼마나 착한지, 착한 두 사람이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져 여기저기서 격려가 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냥 격려만 오지 않았습니다. 격려 카드 속에 큰돈은 아니었지만 돈이 얼마씩 들어있었습니다. 카드가 엄청나게 싸였습니다. 직장도 잃어버리고 돈도 다 잃어버린 착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게 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 이야기가 우물가의 여인 이야기와 유사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나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행복하다, 진짜 행복을 얻었다는 신앙인의 간증 같습니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도 너무 비슷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을 만난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데 만난 예수님께서 어마어마한 선물을 주셨다는 신앙 간증과도 너무 닮았습니다. 영화 제목은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