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장
마태복음 4:1~11
그리스 신화에 히드라라는 무서운 괴물이 등장합니다. 머리가 아홉 개인 물뱀입니다. 이 히드라를 세상의 어떤 장수도 죽일 수 없었던 까닭은 이 괴물의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서 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르면 자를수록 머리가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신화의 영웅 헤라클래스가 이 괴물을 죽이러 갑니다. 워낙 강한 히드라이기 때문에 천하무적 헤라클래스도 갈 때 조카를 동반자로 데리고 갑니다. 헤라클래스가 조카에게 당부합니다. “히드라는 물뱀이다. 불에 약할 것이다. 내가 히드라의 머리를 자르거든 너는 불을 준비했다가 그 잘린 머리 자리를 재빠르게 불로 지져라.”
히드라를 만난 헤라클래스가 대결을 벌입니다. 머리를 하나 자릅니다. 조카는 시킨 대로 잘린 머리 자리를 재빨리 불로 지져버립니다. 과연 히드라의 머리가 잘린 곳에서 더 이상 머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헤라클래스는 이런 식으로 머리를 차례로 잘라 히드라를 처치하는데 성공합니다.
한 신화학자가 말합니다. ‘히드라라는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히드라는 하나의 관문이다. 그 사람이 과연 영웅의 그릇이 되는지, 영웅에 걸맞은 용기, 지식,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만든 테스트이다.’ 그 학자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의 해석을 빌립니다, ‘히드라는 욕망이고 그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솟아나는 히드라의 머리는 욕망의 불꽃이다. 헤라클래스가 히드라를 정복했다는 것은 그의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욕망의 그림자를 정복했다는 뜻을 지닌다.’
따끔한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인간이 마귀와 싸우지 않고 마귀가 약속하는 떡, 마귀가 제공하는 세상의 지배권, 마귀가 준다고 하는 신의 가호를 획득하는 순간 그는 마귀의 노예가 되고 만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에 가셔서 시험을 받으십니다. 먼저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그 후에 마귀가 시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시험은 돌을 가지고 떡덩이를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돌은 천지에 널려있습니다. 아무 돈이 들지 않습니다. 수고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돌로 떡덩이를 만들라고 마귀가 말합니다. 두 번째,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갑니다. 성전 경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셔서 당신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도록 보호해주실 것이다. 그러면 성전 경내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야라고 환호할 것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내게 엎드려 절하라, 그러면 내가 천하 만물을 당신에게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내용들을 볼 때 맨 먼저, 사탄이 인간을 시험하는 방법은 정말로 단조롭다, 옛날에 했던 방식 그대로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될 때 맨 처음 있은 사탄의 시험은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시험입니다. 그 시험이나 인류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신약의 처음, 예수님께 대한 마귀의 시험이 성격이 거의 같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하와의 눈에 비친 선악과의 모습을 성경은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다.’ 선악과가 먹음직하더라, 보암직하더라, 탐스럽다는 말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첫머리인 본문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들이 하와의 눈에 비친 그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돌로 수고도 아니하고 떡을 만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고맙다고 인사하고 신으로 대접할 것입니다. 그 높은 성전꼭대기에 뛰어내릴 때 하늘의 천사가 받치는 멋진 광경, 마치 슈퍼맨처럼 배트맨처럼 멋진 모습을 연출하는 그 광경은 정말로 탐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마귀가 주겠다고 했을 때 듣기만 해도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것이 천하만국과 그 영광입니다. 모두 대단합니다. 힘들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먹을 것을 제공할 수 있는 것, 내 수고와 내 돈은 하나도 들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고 감사와 칭송을 받는 것, 정말 괜찮습니다, 할 만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봐주는 것, 그리고 천하만국과 그 영광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것들, 보암직한 것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 모두가 정말로 괜찮고 탐낼만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요한1서 2장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2:15)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좋은데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한다고 아주 겁나는 말씀을 하십니다. 만약 그런 것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하십니다. 그 까닭을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6)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받을 만해서 한아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 다른 말로 하면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인간이 쉽게 유혹될 수 있는 기본적인 욕심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으로부터 받았던 시험, 그 유혹이나 예수님이 마귀로부터 받았던 그 시험 그리고 사도요한을 통해서 말씀하신 그 세 가지가 다 같은 내용입니다. 성경을 그것을 말씀하시면서 그것들은 모두 세상 즉 마귀들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의문을 가질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똑똑한 마귀가 사람들을 유혹할 때 왜 ‘레퍼토리’를 바꾸지 않고 똑같은 것으로 시험하고 유혹할까? 수천 년 전에도 2천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똑같은 것으로 유혹하고 시험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똑똑한듯하지만 사실은 똑똑하지 않고 멍청해서 그럴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마귀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수천 년 동안 사람을 시험하고 수많은 성공을 해보았습니다. 수천 년 전의 그 방법으로 사람을 시험하니 넘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을 이런 방법으로 시험하고 유혹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레퍼토리를 바꿀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또 앞으로도 우리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넘어지는 것은 모두 그 세 가지 유혹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짚어봅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기도 한 것들, 이런 것들에 사람들이 다 넘어가더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돈 버는 것, 쉽게 무엇을 이루는 것, 손해 보지 않는 것, 수고를 하지 않고 되는 것, 수고하지 않고 무엇을 이루는 것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다 넘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 세상의 조그마한 영광이라도 있으면 이것 때문에 넘어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체적인 정욕 다른 말로 하면 육체의 쾌락입니다. 안목의 정욕 즉 ‘눈’의 쾌락입니다. 옛날에는 안목의 정욕이라고 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안목의 정욕 때문에 어머 어마한 수의 젊은이들 그리고 어린아이들까지도 쓰러지고 넘어지고 부서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생의 사랑 즉 자기 자랑입니다. 이 세 가지에 다 넘어갑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것을 이기지 못하여 완전한 낙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참으로 안타깝고 속이 상하는 것은 충분히 위대할 수 있는 사람이 이것을 넘지 못해서 사그라지고 마는 일들을 일으키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참 괜찮은 사람인데 그만 여기에 넘어갑니다. 참 괜찮은 젊은이였는데 그만 그 중 하나에 걸려 넘어가고 맙니다. 더 이상 크지 못하고 쪼그라들고 사그라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이기시고 위대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시험당하시게 한 이 일을 보이시면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넘어가야한다!’
1절에서 성경은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이 시험을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안 받아도 되는 예수님께 이 시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 여러분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넘어진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넘어졌고 앞으로도 이것 때문에 넘어질 것이다. 위대한 사람들은 이 시험을 넘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시험받으신 것에서 눈여겨 볼 것이 있습니다. 그 시험, 그 유혹의 시점은 언제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에게 실제적으로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신 것은 세례 직후에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고 난 후입니다. 하늘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자라 하시니라’(마3장 16절)
인간 예수님으로서는 큰 감격입니다. 큰 영광입니다. 그 시간 바로 다음에 시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도 이런 일이 있을 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이 일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어마어마한 대결을 벌입니다. 엘리야는 혼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벌여 엘리야가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처단합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비오기를 기도합니다. 3년 반 동안 오지 않았던 비가 엘리야가 기도하자 비가 왔습니다. 엘리야가 하늘에 떠 있는 주먹만 한 구름을 보고 왕에게 빨리 비를 피하라고 했습니다. 왕이 엘리야의 말대로 마차를 타고 달려가는데 하나님의 권능으로 엘리야가 마차보다 더 빨리 갑니다. 대단한 능력입니다. 대단한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엘리야에게 준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다음에 아합의 아내 왕비 이세벨이 자기가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처단했다고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 소식을 엘리야가 듣습니다. 그런 말, 그까짓 것이야 ‘그 엘리야’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여주는 엘리야의 당시 모습은 전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열왕기상 19장은 엘리야가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 떨며 급히 도망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하나님, 나 이제 그만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말을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초라한 모습입니다.
그 대단했던 엘리야가 어쩌다 이런 초라한 몰골이 되었는가? 왜 이렇습니까? 이것을 어떤 사람은 ‘파동의 법칙’이라고 설명합니다. 큰 일 치르고 난 뒤 나타나는 여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큰일을 하고 난 뒤 그 다음에 허무와 허망한 것이 가슴 속에 다가옵니다. 이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나’라는 자기의식입니다. 자기 스스로는 ‘나’를 의식을 했든지 안 했든지 간에, 그것은 상당히 문제를 일으킵니다. 항상 ‘나라는 것’이 들어가면 이런 문제가 생겨납니다. 누구든지 똑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고 자랑하고 싶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보는 마음, 이럴 때 마귀가 찾아와서 유혹한다는 사실을 잘 아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시험받으실 당시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난 후 극도로 시장하셨을 것입니다. 1주일만 금식해도 먹는 것밖에 안 보입니다. 돌덩이가 떡덩이로 보입니다. 공중에 통닭들이 돌아다니고 평소에 먹지 않던 것들까지 생각이 납니다. 40일간 금식했는데 어떠하셨겠습니까? 인간 예수님에게 극도의 시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모든 시험이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언가 뒷받침이 되어야합니다. 따라오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무언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화려한 출정식도 있어야합니다. 이럴 때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필요가 가득합니다. 극도로 시장합니다. 활동하기 위해서 도와주는 사람이라든지 기타 여건이 절박한 상태입니다. 이런 때에 마귀가 예수님께 다가왔고 예수님을 시험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표현하기 어렵지만 여러분들을 흔들어대고 여러분들을 미혹하는 그것이 바로 사탄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사탄이 있다 없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너무 악한 일을 한 사람, 너무 못된 일을 하는 사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탄이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가 그런 일을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는 멀리 벗어납니다. 사탄이 아니면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그렇게 수많은 유대인들을 그토록 잔악하게 죽인 일들은 인간이라면 할 수 없다, 그것은 사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시점을 기가 막히게 잘 압니다. 여러분이 놀라운 영광을 받고 붕 떠 있을 때, 절박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간절한 소원, 간절한 필요가 있을 때를 사탄은 절대로 놓치지 않고 쳐들어옵니다. 조심해야합니다.
여러분이 영광 받으시고 큰 일을 했을 때 항상 ‘아니오, 나는 무익한 종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환경을 주시고 여건을 주시고 그런 기회를 주시고 그런 자리를 펴주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지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입니다. 이럴 때 세상이 편합니다. 이럴 때 행복합니다.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울 때의 행복은 아주 잠깐 기분이 좋을 뿐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저야말로 무익한 종입니다. 제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는 하나님이 아시지 않습니까?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한 번 그런 일을 해본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절박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생 살다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소원합니다. 이것만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저것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간절한 소원 가질 것이 아닙니다. 너무 간절한 소원, 지나친 소원이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내 주변을 힘들게 하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망합니다.
북 이스라엘 왕 아합이 그러했습니다. 모든 것은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궁궐은 큽니다. 자기 가지고 있는 다른 땅도 많습니다. 그런데 궁궐 앞에 있는 조그마한 포도원이 탐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나이가 들었든지 안 들었든지 애들 말대로 뭐에 하나 꽂히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기어이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합과 그 집안이 망했습니다. 아합이 죽고 난 뒤에 흘린 피를 개들이 핥았고,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피뿐만 아니라 살점까지도 개들이 먹고 말았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부자였습니다. 당시 모두가 가난했을 때 재산이 많았습니다. 그런 재산에 더하여 사람들의 존경도 받고 칭찬도 받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면 안 됩니다. 가진 재산도 귀했고 존경도 받고 싶고 칭송도 받고 싶었습니다. 다 가지려고 하다 보니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남편이 죽고 3시간 만에 아내도 죽고 말았습니다. 집안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나한테 꼭 있어야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뒤에 가서 한 번 보십시오.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번에는 꼭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가만히 보니 없어도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딸, 내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면서 보고 계십니다. 필요하면 채워주십니다. 꼭 필요하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받으실 만하기만 하다면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여러분이 나서지 마십시오. 너무 간절하게 소원하지 마십시오. 이것을 꼭 이루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보고 계심에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보다 먼저 나서서 내가 이것을 해야겠다고 덤비면 많은 경우에 받기는커녕 이미 받고 얻고 소유한 것까지도 다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다시 아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너무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여러분들에게 필요할까? 이 사람에게 어떤 것이 꼭 맞을까? 이 사람에게 어떤 때 주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계십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내 하나님은 나에게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십시오. 그 다음은 다 하나님게 다 맡기십시오. ‘하나님, 여기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했습니다. 이제 뒤로 물러갑니다. 하나님, 다 알아서 하십시오’ 그러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시 노래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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