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너에게 구원이....
눅 17:11-19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영수증 사진 한 장이 실렸습니다. 미국 텍사스 주에 있는 한 식당 테이블에 남겨진 영수증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영수증 금액 부분에 0.37이라고 적혀있었고 그 아래 팁이라는 부분에는 500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음식 값은 37센트 우리 돈으로 하면 400원이고 팁이 500달러, 55만원이라는 말입니다. 즉 이 식당을 찾은 그 손님이 400원짜리 물 한 잔 마시고 55만원의 팁을 남긴 것입니다.
이 식당의 종업원 케이시 시몬스는 한 젊은 여자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손님은 메뉴를 보더니 37센터짜리 생수를 주문했습니다. 그 손님은 생수를 마시면서 한동안 식당 냅킨에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그런 후에 종업원에게 불러 계산서를 받은 뒤 생수 값 37센트 그리고 팁 500불을 카드로 계산하고 사라졌습니다. 그 손님이 떠나고 난 테이블 위에는 500달러 팁이 적힌 계산서와 함께 냅킨에 적힌 편지가 놓여있었습니다.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바로 전날, 이 종업원이 근처에 있는 채소가게에서 물건을 산 뒤 계산대 줄 끝에 섰습니다. 그런데 옆줄에 있던 한 할머니가 매우 우울한 표정으로 서 계셨습니다. 그 종업원은 할머니에게 “할머니 무슨 일이 있습니까? 무어 도와드릴 일이 없습니까?” 라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종업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위해서 재미있는 농담도 건네고 마지막에는 할머니가 산 채소 값 17달러도 대신 내드렸습니다. 500달러 팁을 남긴 젊은 여성은 그 할머니의 딸이었습니다. 종업원이 그 할머니를 채소 가게에서 만났던 날은 할머니 남편이 세상을 떠난 3주기 날이라고 합니다.
냅킨의 마지막 부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제 어머니의 1년 중 가장 슬픈 날을 당신은 가장 행복한 날로 바꾸어주셨어요. 당신은 제 어머니에게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십니다.‘ 라는 말도 해주시고 어머니가 극구 사양하는 데도 어머니가 산 채소 값까지 대신 내어주었다더군요.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이후 어머니께서 그토록 환하게 웃은 날이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감사를 한 딸이 참 멋있고 그리고 그런 감사를 만든 종업원도 멋진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분들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황량한 세상을 이런 기쁘고 마음 푸근한 것으로 만들어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마을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자기네들의 나병을 고쳐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멀리서 소리 지르는 모습에서 열 명 나병환자들의 절박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일반인들과 가까이 할 수가 없습니다. 법에 그렇게 규정되어있고 전염 가능성이 있다하여 사람들이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들에게 가장 빨리 상하는 것이 성대입니다. 그래서 목소리를 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저 멀리서 큰 소리로 소리 지른 것입니다.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너무도 절박했습니다. 그 열 명의 나병환자들의 간청에 예수님께서 나병을 즉시 고쳐주시고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병이 다 나았다는 판단을 제사장들이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나병환자로서는 끝이고 이제부터는 정상인입니다.
그 후, 나병 고침을 받은 열 명 중 한 명만 감사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그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병 치료받은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큰돈을 벌고 사업이 잘 되는 것, 자식들이 잘 되는 것 다 대단한 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리 그것이 대단하고 큰일이라도 구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열 명 나병 환자 중 아홉 명은 예수님을 만나기는 했어도 구원을 받지는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저런 모양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정작 받아야할 최고의 복,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가장 큰 복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복 받아서 어려운 문제가 해결 나는 것, 충분히 살만하도록 재력이 생기는 것, 자식들이 잘 되는 것, 다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최고의 복은 아닙니다. 최고의 복은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어떤 것입니까? 물론 먼저 죽고 난 뒤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고 난 뒤뿐만 아니라 죽기 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이 땅에서 살면서 최고의 평화를 누리고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냥 가버린 아홉 명이 참으로 딱한 것은 그들은 나병 치료가 전부 다 인 것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은 많습니다. 경제문제가 있는 사람은 경제문제만 해결되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한 병에 걸린 사람은 병만 나으면 전부 다 인 것으로 생각하고, 자식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자식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진짜 복을 받아야합니다.
이제 아홉 명을 생각해봅니다. 돌아가서 예수님께 고맙다는 인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가서 인사만 했으면 이미 병도 나았고 다른 좋은 이것저것을 다 받았을 텐데 왜 그 아홉 명은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몇 가지만 보겠습니다.
가장 큰 문제인 나병문제가 다 해결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을 만날 필요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찾아가나? 이런 생각을 했을 수 있습니다. 당장 아쉬운 문제가 해결되면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다로 치면 아이들이 노는 찰박찰박 얕은 곳밖에 못가고 바다의 깊은 곳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다 되는 것으로 여기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정말로 복잡합니다.
혹 이런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나 뵙기는 해야 하는데, 빈손으로 갈 수가 없어서 나중에 무엇 조금 생기면 들고 찾아뵙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틀림없이 찾아뵙기는 하는데 우선 급한 다른 문제들부터 처리하고 천천히 찾아뵙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전부다 핑계일 뿐입니다. 정말로 바보 같은 핑계입니다. 그들에게는 정말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꼭 찾아가고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떤 이유가 있어도 찾아갔을 것입니다. 마음속에 뜨거움이 넘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라는 말씀인데, 그 말씀은 예수님의 탄식입니다.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열 명인데, 그 중 아홉 명은 감사가 없고 하나밖에 감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탄식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의 그 탄식은 2,00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또 하나의 큰 문제를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이방인이라고 말씀하신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사람입니다. 즉 감사할 것이 가장 적은 사람만 예수님을 찾아와서 감사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또 다른 탄식이 있습니다. ‘내가 더 준 사람, 더 사랑한 사람, 더 아낀 사람, 더 베푼 사람, 더 큰 복, 더 많은 복을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감사함이 적다..’는 예수님의 탄식입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감사는 감사할 것이 있고 없고, 내가 감사할만한 뭘 받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감사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큰 복을 받고 아무리 대단한 은혜를 받아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받은 것이 하나도 없어도 감사합니다.
이제 여기서 하나 확인해봅니다. 부모님들로부터 적게 받은 자식들이 부모님께 더 감사하고 못 받은 자식들이 부모에게 더 효도하는 이 문제는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씁쓸하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감사할 형편이 되지 못해서 감사하지 못하는가? 아니면 감사하지 않기 때문에 감사할 형편이 되지 못하고 늘 고만고만하게 아쉬운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라는 생각입니다
감사가 곧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감사하기 위해서 돌아온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감사하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아홉 명은 감사가 없는 것 이전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자기네들이 그 무서운 나병에서 나은 것이 예수님 덕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가정이 이렇게 편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병이 나은 것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나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자기네들이 그 무서운 나병에서 나은 것은 예수님 덕분이 아니라 다른 것 예를 들어서 지금까지 좋은 약을 먹은 것이 드디어 약 효과가 발휘해서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감사의 의미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돈이 모자라서 여러분에게 받으려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나는 받은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부모님께 감사가 없는 것은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나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 없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반대로 감사한다는 것은 받은 것이 있다는 고백입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은 실제로 받았든지 아니든지 간에 나의 모든 것은 부모님께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부모님 덕분입니다. 그 어려운 가운데서 저를 공부시켜주시고 그 힘든 가운데서 이렇게 길러주시고 좋은 것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같이 부족한 사람이 이렇게 가정을 가지게 되었고, 저렇게 이쁜 자식을 가지게 되었고, 큰돈은 아닐지라도 이런 재산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이런 마음입니다.
여기서 생각해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감사입니다. 여러분이 부모님께 감사하면 부모님은 정말로 행복해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은 좋아하십니다. 어떤 형태로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너무도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하여 부모님이 행복하면 부모님만 행복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여 하나님께서 행복하시면 하나님만 행복하시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행복은 여러분의 행복으로 이어지고, 하나님의 행복은 여러분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십니다. 행복할 여건까지 만들어주십니다. 땅의 부모님에게는 한계가 있어서 그렇게 못하시지만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행복하시고 기뻐하시면 여러분들에게 아끼실 것도 없고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감사할 상황이 오고 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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