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시 23:1-6
딸이 어렸을 때 일입니다. 엄마랑 마트에 갔는데 엄마가 잠깐 아이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때 아이가 온 마트를 돌아다니면서 엄마를 찾는데 다른 아이들 같으면 ‘엄마, 엄마’ 하고 부를 텐데 이 아이는 자기 엄마 이름을 부르면서 찾았습니다. 나중에 찾고 난 뒤, 엄마 이름을 부르면서 찾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때 아이는 ‘마트 안에 엄마들이 여러 명 있는데 엄마라고 부르면 내가 어느 엄마를 부르는지 어떻게 아느냐? 엄마 이름을 불러야 엄마가 나인지 알 것 아니냐?’ 라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자기 목소리를 못 알아듣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자기 딸 목소리, 더구나 잃어버린 어린 딸 목소리를 못 듣는 어머니가 있겠습니까?
양을 치는 목자들은 자기 양을 너무도 잘 압니다. 양은 모습이 비슷하여 분별하기 참 힘듭니다. 심지어 양과 염소도 구별하기 힘듭니다. 우리나라 양은 염소와 워낙 다르기 때문에 구별하기 쉽지만 지역에 따라 양과 염소가 비슷한 곳이 많습니다. 양의 목소리도 비슷합니다. 그거나 목자들은 다 압니다. 비슷하게 생긴 양들 가운데 어떤 양이 자기가 기르는 양인지, 여러 양들이 소리를 낼 때 어느 소리가 자기가 기르는 양의 목소리인지 너무도 잘 압니다. 그리고 목자뿐만 아니라 양도 마찬가지로 자기 목자를 잘 압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양들이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자기 목자를 따라간다, 그러나 양들은 자기 목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르면 따라가지 아니한다, 따라가지 아니할 뿐 아니라 도망간다’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을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10:4-5)
양들은 상당히 예민합니다. 그리고 또 소심합니다. 자기 방어 능력이 거의 없다보니 소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들은 환경이 아무리 좋고 편안한 곳에 있어도 자기 목자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초조해합니다. 반대로 환경이 안 좋고 다소 불편할지라도 또 다른 양들과 알력이 있고 갈등이 있고 심지어는 못 된 양들이 자기를 괴롭히는 일들이 있어도 자기를 돌봐주는 목자가 옆에 있기만 하면 편안해 합니다. 잘 놀고 잘 쉬고 잠도 잘 잡니다.
어린 아이들이 잠자다 깰 때 곁에 엄마가 없으면 그냥 웁니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 엄마가 있기만 하면 만지는 것도 아니면서 보기만 하고 확인하고 또 잠이 듭니다. 엄마가 옆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아이는 편안한 것입니다. 잠을 잘 잘 수 있습니다. 양이 꼭 그렇습니다. 자기 목자가 곁에 있기만 하면 편안해합니다.
양에게 있어서 목자의 존재란 대단한 것입니다. 좋은 목자가 나한테 있다는 것만으로도 평안해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지켜주는 존재, 나를 돌보아 주는 존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모든 인간이란 신을 소유하고 신에게 속해지고 싶은 본능,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존재가 나에게 있다는 이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고 건강할 수 있습니다. 알고 믿으십시오.
양을 칠 때 중요한 수칙이 있습니다. 같은 장소에 오래 있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자리에 오래 있게 되면 양은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자들은 양을 많이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실제로 실천에 옮깁니다. 목장도 큰 목장을 하지 않습니다. 뉴질랜드나 호주에 나가서 목장을 보면 땅은 넓은데 목장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여러 목장들이 같이 있는데 다른 양들을 키우는 목장이 아니라 같은 양들을 키우는 목장입니다. 단지 칸을 나눈 것입니다. 크지 않은 한 목장에서 지내다 틈틈이 다음 목장, 다음 목장으로 옮겨갑니다. 같은 목장에 오래 있게 되면 혹 기생충이라든지 안 좋은 것으로 목장이 오염되면 전체 목장이 못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갈 데가 없어지므로 이렇게 여러 개로 나누어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목장이 오염되어도 또 다른 목장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들이 먼 거리를 이동할 때가 있습니다. 여름에는 덥기 때문에 산 위쪽에 있는 산간 목장으로 가고 가을 겨울에는 마을 목장으로 내려오는데 그 거리가 상당히 멉니다. 그런데 그 먼 길을 한꺼번에 가지 않습니다. 한꺼번에 가면 목동들은 아주 수월할 것입니다. 거리를 정해두고 매일 조금씩 옮겨갑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목동들은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야합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것이며 거기 가게 되면 물은 어떻게 공급받고 꼴은 어디서 먹게 할 것인지 미리 준비를 다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맹수가 나타나는데 맹수는 아무 데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 목자는 그것을 잘 알아야합니다. 양들을 노리는 맹수들도 자기네들이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거기서 양들을 노립니다.
양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모기와 파리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문제가 됩니다. 힘들게 괴롭히고 병들을 많이 일으킵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아무데나 여기저기 다 있는 것이 아니라 출몰하는 데가 따로 있습니다. 등산 많이 가신 분들은 날파리나 모기들이 나타나는 곳이 있는 것을 경험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산을 계속해서 가는 사람들은 그 곳을 피해서 가기도 합니다. 목동들도 계획을 다 세워야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목자들은 모든 노력을 다 합니다. 목장을 나눌 때 그냥 칸만 질러두고 울타리만 쳤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기생충이나 벌레 등이 다음 목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다 해야 합니다. 또 목장이 여러 개이기 때문에 큰 목장 하나만 있으면 씨를 뿌리면 되고 비료도 같이 뿌리면 되는데 목장마다 따로 씨앗을 뿌려야하고 비료를 주어야하는 등 상당히 힘든 문제가 많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산간목장, 마을목장 왔다 갔다 하는 그 길에도 어디에 물이 있는지 어디에 꼴이 있는지 어디에 맹수가 나타나는지 파리, 모기는 어디에 많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 다른 목동들이나 선배목동들로부터 정보도 받아야하고 배워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힘도 들고 애도 많이 써야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일을 위해서 목자들은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합니다.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한 순간도 양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는 것과 똑같습니다. 양치기는 누워서 책을 읽고 음악이나 듣는 것 같지만 어림없습니다. 계속 쳐다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으로 조치를 취해야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양치기가 편하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잠을 자지 못하는 일들이 많고 몸살 나는 일들도 많습니다.
성경에 ‘나는 양의 문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문일까요? 목장에는 문이 따로 없습니다. 사람 키 길이만큼 울타리가 없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 문입니다. 거기에 목동이 누워 잡니다. 목동이 문입니다. 자다가도 부스럭 소리만 나도 깹니다. 이처럼 잠도 제대로 못잡니다.
그러나 그 일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선한 목자들은 기꺼이 감당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습니다. 목동들이 그렇게 양을 사랑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강아지를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양들도 그렇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를 보면 그야말로 안고 싶고 다해주고 싶은데 목동들이 양을 칠 때 자기 양에 대한 마음이 이와 똑같습니다. 양에 대해 목동들은 그런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다윗이 양을 칠 때 자기가 양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삼상17:34-35)
이 말을 들으면 거짓말 같습니다. 어떻게 사자나 곰하고 싸울 수 있을까? 그러나 사실입니다. 우리도 내 손자 손녀가 물려갔다면 가만히 둘 것 같습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가 죽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손자 손녀를 살리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목동들이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사자와 곰과 싸웠다는 것은 자기가 대단한 싸움 실력이 있어서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내 새끼 양이 물려가는 그 꼴을 눈 뜨고는 보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내 생명을 잃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죽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냥 있지는 못한다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이처럼 사랑합니다.
목자들이 이처럼 양을 사랑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것이 모든 목자들에게 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한 목자만 그렇습니다. 정말로 양을 사랑하는 목자들만 그렇습니다. 목자들 가운데서도 선한 목자가 있고 월급만 생각하는, 나만 생각하는 목자가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을 보면 알 것입니다. 선거 때는 인사도 많이 하지만 정말로 나라와 국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이 기회에 말씀드립니다. 투표 제대로 하십시오. 이 나라에 소위 믿는 사람들이 25%나 된다고 하니 믿는 사람들만 제대로 투표하면 괜찮습니다. 학연, 지연 이런 것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또 하나 말씀드립니다. 기독교인들이라고, 교회에 나간다고, 신자라고 그냥 찍어주는 것 아닙니다. 이름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목동들도 양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월급만 생각하는 목동들이 제법 있습니다. 이런 목동들은 맹수가 나타나면 자기만 살려고 양들을 버리기까지 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요한복음 10장에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요10:11-1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라고 다 똑같은 목자가 아닙니다. 나라의 지도자라고 다 똑같은 지도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 지도자라고 해서 다 똑같은 교회 지도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선한 목자가 있습니다. 정말로 나라에 좋은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골라서 잘 투표하시기 바랍니다.
목자들 가운데는 정말로 착하고 선하고 양을 사랑하는 목동들이 있는데 그들의 모든 헌신과 희생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양들에게 종종 안타까운 일들이 생깁니다. 병이 생깁니다. 우리도 아이들을 키울 때 모든 노력을 다함에도 병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면 부모들은 병원에 가기도 하고 절절 멥니다. 방법이 안 생깁니다. 양들은 기생충에 감염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힘듭니다. 요즘은 좋은 약들이 나와서 조금 덜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관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양들이 맹수에 잡혀먹는 일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리고 길 잃어버리는 일들도 많습니다. 목동들이 이처럼 관심을 가지고 애를 쓰는데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양이 목동에게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목동들이 양을 데리고 다닐 때 같은 길을 똑같이 가지 않고 종종 다른 길로 갑니다. 조금 멀고 힘들지라도 다른 길로 인도하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이번에 올라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올라갈 때 같은 길을 가다보면 풀을 밟아서 못쓰게 됩니다. 또 양들이 풀을 먹는데 잎만 먹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길을 가다보면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까지 다 먹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에 풀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힘들더라고 목동들은 양들을 끌고 다른 길로 돌아서 가는데 거의 대부분의 양들은 잘 따르지만 가끔 말을 듣지 않는 양들이 있습니다. 이런 양들이 문제입니다.
또 양들 중에는 스스로 머리가 좋아서 목자가 인도하는 곳보다 더 좋은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양들이 있습니다. 가다가 더 좋은 풀이 있을까하여 목동들이 인도하는 대로 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가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기도 하고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아무리 풀이 좋아도 못 먹는 풀이 있습니다. 양들은 그것을 모르고 먹고 병이 나기도 합니다. 말을 안 듣기 때문에 병이 나기도 하고 잘못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도 먹지 못할 물이 있습니다. 구혈 같은 것입니다. 바위에 물이 고여 있으면 거기에 기생충 알이 있습니다. 그것을 먹게 되면 알들이 애벌레가 되어 몸의 양분을 다 먹습니다. 양들은 그것을 모르고 그 물을 먹다가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모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양들은 틈틈이 털을 깎습니다. 양들 중에 그것이 싫어서 도망가는 양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가다가 문제가 생깁니다. 요즘은 자주 머리를 감습니다만 예전에는 오랫동안 감지 않아 머리가 떡이 집니다. 그러다 머리빗으로 빗으면 엉겨서 애를 먹는데 양들에게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양들의 털을 깎을 때는 이런 연유로 털을 깎기도 합니다. 간혹 목동의 말을 듣지 않고 뺑소니치는 양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깁니다.
또 양들 중에 욕심 많은 양들이 있습니다. 조금 좋은 꼴이 있으면 힘없는 양들을 밀치고 먹고 다른 데 가서 또 그렇게 먹습니다. 그렇게 계속 먹다 보니 다른 양들은 못 먹지만 이 양은 살이 많이 찝니다. 문제는 이렇게 살이 찐 양들은 생산성이 떨어져 새끼를 잘 낳지 못합니다. 그리고 혈관이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병이 많이 생깁니다. 그리고 자기 때문에 다른 양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됩니다.
목동들은 양들을 목욕도 시키는데 그것을 싫어하는 양들이 있습니다. 양은 털이 많으므로 털 밑에 벌레가 벌레가 번성하게 되므로 목욕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벌레가 생기면 가려워서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면 양들은 손이 짧아 스스로 긁을 수 없기 때문에 몸을 여기저기에 문지릅니다. 그리고 그 벌레를 다른 양들에게 옮깁니다. 이런 양들 때문에 문제가 생겨납니다.
목동이 시키는 대로, 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양들이 제법 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목동 생활을 한 분이 아주 특별한 경험담을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기르던 양들 중에서 아주 멋진 암양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아주 튼튼했고 몸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똑똑했습니다. 똑똑한 것이 좋기는 하지만 너무 똑똑하면 조금은 문제이긴 합니다. 제대로 똑똑하든지 적당하게 똑똑하면 되는데 쓸데없이 머리가 좋은 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참 예뻤습니다. 이 목동 말에 의하면 두 눈은 맑고 밝았고 빛이 났다고 합니다. 거기다 아주 귀엽고 예쁜 새끼까지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양이 자기를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고약한 양이었습니다. 이 목자가 보기에 그 예쁜 양은 항상 불만이 가득한 양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다른 모든 양들을 합친 것보다 이 한 마리 양이 훨씬 더 자기를 골치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양의 이름을 나중에는 ‘Mrs. 겟바우트’ 라고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나돌아 다니는 양이란 뜻이라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 양은 울타리를 자주 올라갔습니다. 울타리가 조금만 다르거나 조그마한 구멍이 있어도 그곳을 잘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울타리 밖의 풀이 좋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밖보다 안쪽이 훨씬 더 좋았지만 그 양은 그것을 모르고 나가는 것입니다. 양이 도망가면 며칠 동안 찾아다닙니다. 여기저기 찾으로 헤매니 목동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찾고 보면 어디 가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여 바짝 마르고 더럽게 되어 있어 참으로 불쌍했습니다. 가두어서 가꾸어 놓으면 또 도망갔습니다. 더 큰 문제는 에미가 그러니 새끼들도 따라서 울타리를 넘어가고 울타리에 조그마한 구멍이 있으면 구멍 밖으로 도망가는 경향이 생겨났고 나중에는 다른 양들까지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점차 자기가 기르는 양들 전체, 목장 전체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목동이 고민을 하게 됩니다. 참고 참고 견디고 견디다 결국 결단을 하게 됩니다. 더 이상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합니다. 결과는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목동이 칼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걸리는 시간은 1초도 안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그 예쁘고 튼튼하고 아름답던 Mrs. 겟바우트 양의 생명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장의 문제도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똑똑한 양은 그런 양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좀 미련스럽고 못나 보이지만 자기 목자가 끄는 대로 따라 가는 양, 자기 목자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양, 이런 양이 정말로 똑똑한 양입니다. 까닭이 있습니다. 자기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자기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똑똑한 양은 이 소리 저 소리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접어두고 그저 목자만 따라가고 목자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양입니다. 이런 양들이 정말로 행복합니다.
사람도 좋은 목자를 만나야합니다. 여러분은 일단 좋은 목자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만났다고 해도 가슴 속으로부터, 내 영혼으로부터, 내 인격으로부터 전부 다 하나님, 예수님을 진정으로 나의 목자로 삼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이미 겉으로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꼭 부탁드릴 것은 모습만 아니라 가슴으로 인격적으로 전인격적으로 목자로 삼으십시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좀 아니다 싶어도 그냥 따라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직접 말씀하시든지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말씀하시든지 하나님 말씀이라면 그냥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 안 그리고 기독교 밖에서 공히 인정하는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23:6)
이런 다윗이었기 때문에 최고의 복을 받았고 성경 안팎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최고의 존경을 받았고 수천 년 전에 죽었지만 지금도 수십억의 인류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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