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종 예수그리스도’ (막 1:35-45 )

분당소망교회 2017. 4. 12. 16:02

종 예수그리스도

 

 

 

1:35-45  

 

예수님을 대단하게 흠모하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것. 예수님 가까이서 말씀 듣고 배우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에게 너무도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자기 집 다락방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흥분되었습니다. 자기 집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인다니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마침내 그 날이 왔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이 젊은이는 이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는지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다락방 문틈으로 다락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보았습니다. 다락방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찬식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일행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락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도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는지, 이번에는 무슨 일을 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옷 입을 사이가 없어서 두르고 있던 홑이불을 두른 채 그대로 예수님 일행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멀찌감치 띄어놓고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보니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졸고 있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여러 명의 무리들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 근처로 다가왔습니다. 평소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입을 맞추자 무리들이 예수님을 체포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도망갔습니다. 근처에 있던 이 젊은이는 무리들이 자기도 체포하려고 하자 혼비백산하였습니다. 집에서 나올 때 걸치고 있던 홑이불도 던져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갔습니다. 이 젊은이가 바로 마가입니다.

 

마가는 나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을 출발할 때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출발할 때는 함께 출발했지만 중간에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 문제 저 문제 일으키다가 결국 마가가 선교 여행 도중에서 일행에서 이탈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 일 후에 바울과 바나바가 다시 선교여행을 하려고 할 때 지난번 마가의 일로 둘이 다투는 일이 일어납니다. 바나바는 그래도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고 바울은 그런 사람은 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대했습니다. 두 사람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심한 언쟁까지 했습니다. 결국 마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결별하고 맙니다. 마가는 어떤 의미에서 문제아였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아 마가가 놀랍게도 아주 훌륭하게 아주 멋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전의 마가와는 완전 딴판의 마가가 됩니다. 전에 마가 때문에 그렇게 가깝던 바나바와 헤어졌던 바울이 나중에는 그 마가를 사랑하게 됩니다. 바울이 나중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바울 곁을 지키고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마가입니다. 이 마가를 바울이 그렇게 칭찬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4장에서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4:10-11)라고 말씀합니다. 말썽부리던 마가가 이제는 바울의 위로가 된 것입니다. 바울이 죽을 때가 다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꼭 보고 싶어 한 사람이 몇 사람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마가입니다. 바울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 중에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무익했던 사람이 이제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이제는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가의 그 성숙, 그렇게 훌륭하게 된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마가 어머니의 신앙과 신앙적인 삶의 모습이 마가를 그렇게 바꾸었습니다. 물론 마가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마가의 어머니는 도울 일이 있기만 하면 예수님과 교회를 도왔습니다. 잡히시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베푸셨던 성찬식 다락방이 바로 마가의 어머니 다락방이었습니다. 마가의 집이었던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 12장에는 야고보가 처형당하고 베드로가 처형당할 위기에 있을 때 감옥 속에 있던 베드로를 천사가 기적적으로 탈옥시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그것이 꿈인 줄 알았지만 길가에 나와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보고 꿈이 아닌 줄 알게 되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맨 처음 찾아간 곳이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예배당 건물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가의 집이었습니다. 마가의 어머니가 자기 집을 예루살렘 교회의 예배당으로 제공한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서 한 기도가 열매를 맺어서 그 마가가 된 것입니다.

기도의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 하나님을 향하여 사랑하는 아들딸을 위해서 한 기도, 어머니의 기도이든 아버지의 기도이든 기도가 있는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공관이라는 말은 같은 내용을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마가복음은 마가가 쓴 복음서로 다른 두 복음서 마태복음 누가복음과 다른 점이 제법 있습니다. 세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 마가복음인데 우선 마가복음은 책의 길이가 짧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일을 기록하기는 하지만 금방 오실 것이므로 자세하게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시면 직접 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짧게 기록했고 내용도 아주 간결하게 기록했습니다.

또 마가복음은 다른 공관복음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는 달리 첫머리에 예수님의 출생 내력 즉 족보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출생, 족보에 대해서 상당하게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마가복음은 아예 그것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마가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종으로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이 마가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귀한 인물,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 높은 신분이 아니라 낮고 천한 존재, 보잘 것 없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종에게 무슨 출생내력이 있으며 무슨 족보가 있습니까? 종은 종일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가가 강조해서 하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첫 시작인 1장은 서론에 이어서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례한 사람 세례요한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6)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세례요한은 특별한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좀 많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바로 그런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사람, 멋있는 사람, 유명한 사람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 우리 예수님의 세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는 그처럼 못난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험 당하시는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혹 지금 시험당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시험을 받습니까? 조금 부족한 사람, 신앙이 떨어지는 사람 그리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시험받습니다. 든든한 사람은 사탄이 건드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셨다는 사실은 그만큼 못난 사람이기 때문에 시험받았다는 것을 마가복음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 예수님은 그런 분으로 이 세상에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40일간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실 때 들짐승이 함께 했다고 마가복음은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13)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0일간 금식하는 동안 격려하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고 들짐승밖에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저도 과거 종종 금식을 했습니다만 기껏해야 일주일밖에 못하는데도 많은 준비를 합니다. 일주일 전부터 슬슬 굶기 시작하고 집에서는 동치미 국물, 죽을 만들면서 온갖 준비를 다합니다. 일주일하고 난 뒤에는 죽으러 갔다 온 사람처럼 온갖 것 다 하는데 우리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 하셨지만 도와주는 사람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들짐승이 함께 할 뿐이었습니다. 얼마나 못난 사람인가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제자 선택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16)라고 분명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부들을 제자들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19) 라고 그들도 어부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큰일을 하셔야하는데 큰일을 하시기 위해서 함께 일할 제자는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어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로 삼은 사람들은 어부라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도 대단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예수님 본인이 변변치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자들도 아주 평범한 사람들 정도밖에 삼지 못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예수님께서 변변치 못한 분이셨으면 그런 사람을 제자로 삼으셨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귀신 쫓아내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기 바로 전에 그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4) 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런데 사실 귀신들린 이 사람이 하는 말은 듣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들으시고 잠잠하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지금 그 일이 일어난 장소는 회당이라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서 다른 사람이 손도 못 댄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거룩한 분이라고 소리 지르면 어떻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대단한 분이라고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힘들이지 않고 광고할 수 있는 아주 멋진 기회였습니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TV에 목사님이 한 번 나오려고 하면 그 채널을 사기 위해서 한 달에 수만 불씩 지불합니다. 물론 목적은 선교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그 목사님 얼굴을 드러내려고 하는 일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관심 가지고 있는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선전해주는데 얼마나 멋진 기회입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는 그런 인물이 못되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이렇게 하십니다. 혹시 우리는 거꾸로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계속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34)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일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세상적으로 하지 않고 신앙적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하려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 병을 고치셨습니다.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가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30-31)

이날 예수님은 하루 종일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상담하신 후라 많이 지쳐 쉬려고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병든 베드로의 장모가 있었습니다. 쉬지도 못하고 그 베드로 장모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소문이 온 동네에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예수님은 또 쉬지 못하셨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잘난 사람은 쉬기도 잘 하고 놀기도 잘하는데 예수는 못난 사람이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을 통해서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종놈이 휴식은 무슨 휴식?’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벽기도하신 사실이 마가복음에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35)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사람들은 특히 제자들은 주님까지 새벽기도를 하실 필요가 있을까?’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일을 두고 예수님께서 아니다. 나도 기도해야한다. 나도 기도 없이는 별 수 없는 존재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새벽에 기도하셨다는 사실은 다른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시간까지 예수님도 기도해야 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없이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못하시는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마가복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새벽기도를 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제자 시몬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37) 라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으니 지금 제자들은 신이 났습니다. 제자들의 이 말은 이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영광을 받으실 때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을 잘 보십시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8)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그렇게 오래 나와 함께 있었으면서도 나를 모르느냐? 내가 무엇 때문에 왔느냐? 그런 영광을 받으러 왔느냐? 그것이 아니다. 나는 종으로 왔다.’ 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그런 자세는 문둥병자 치료할 때도 똑같았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간구하자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시면서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러자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졌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40-44)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나병환자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그 일을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였습니다. 그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게셨으나’(45) 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이 다릅니다. 이 모든 것으로 예수님께서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멋있는 사람, 잘난 사람이 아니라 종으로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독교 진리의 최고 핵심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는 마가복음 1045절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은 그 말씀을 삶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주님께서 이 시간에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여러분의 스승 예수가 그런 변변치 못한 종으로 살았다면 제자들인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더 작은 종, 더 못난 종, 더 변변치 못한 종으로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여러분은 자기 스스로를 똑똑한 사람, 잘난 사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사람은 일하다 보면 쉬는 것도 있어야한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은 쉬더라도, 세상 사람은 쉬더라도 종은, 기독교 신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힘들어도 고달파도 지쳐도 피곤해도 종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그 할 일이 먼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 여러분들은 일을 할 때 세상일이든지 하나님의 일이든지 여러분의 힘으로, 여러분의 능력으로 하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 인생이 힘듭니다. 고달픕니다. 이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고 어떤 일이든지 일할 때 하나님 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힘과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기도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자들이 세상 살 때 힘드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잘못 살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빼고 예수님 빼고 내 힘으로 살려고 하니까 고달프고 속상하고 힘든 일들이 많고 섭섭한 일들이 많고 부화 터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 특별히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얼굴,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교회 이름도 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 이름 내는 것은 좋을 것 그것도 안 좋습니다. 좋을 것 같지만 좋지 않습니다. 예수님만 하면 되고 하나님만 하면 됩니다. 교회라는 핑계를 가지고, 우리 목사라는 핑계를 가지고 은근히 내 이름, 내 얼굴, 나를 드러내려고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드러낼 것이 있으면 오직 하나님만 드러내고 볼 것이 있으면 오직 예수님 얼굴만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기독교 신자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마가복음 1장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실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사실 이것만큼은 잊으면 안 됩니다. 종으로 사십시오. 못난 사람으로 사십시오.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사십시오. 작은 사람으로 사십시오. 그러면서도 여러분의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높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귀한자리, 높은 자리까지 올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라는 이것만큼은 잊지 마십시오.

 

시편 91편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9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