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무엘상 4:1~11
1920년대 미국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던 허버터 하인리히씨는 근무하는 동안 수많은 사고를 접하면서 사고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관심을 가지고 75,000건의 사고를 정밀하게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사고와 관련해서 중요한 패턴 하나를 찾아냅니다. 그것이 일명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불리는 1:29:300의 법칙입니다. 그 패턴은 산업현장에서 큰 재해가 발생했다면 그 전에 그와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작은 재해가 이미 스물아홉 건 있었고, 같은 원인으로 사고가 날 뻔 했던 일이 그 전에 이미 무려 삼백 건이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산업재해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사고를 무시하고 방치했기 때문에 즉 수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재해라는 것입니다.
건강이 이렇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건강에 경고가 여러 번 있습니다. 일반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고가 일어나게 되면 우연하게 생각하지만 정말로 우연한 사고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고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여러 가지 연구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 이와 똑같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하시기 전에 반드시 여러 차례 경고를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면 우리들에게 심판을 내리시지 않으면 좋을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완전하게 멸망하고 파멸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아십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리 심판하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무엘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 엘리에게 여러 차례 경고를 보내셨습니다. 먼저 당시 대제사장이던 엘리에게 직접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서 경고하셨습니다,
‘어째서 너는 나를 무시하느냐? 나에게 드리는 제사를 업신여기며 무시하는 일을 하느냐? 어떻게 너는 나보다 너의 자식을 더 귀하게 여기느냐? 내가 너와 너의 가정, 너의 집안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그렇게 넉넉하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어떻게 그렇게 너 자신만 챙기려고 하느냐? 그렇게 계속하다가는 망한다.’
경고하시면서 어떻게 망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엘리가 하나님의 경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자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사무엘을 통해서 똑같은 경고를 다시 한 번 하셨습니다.
그 후 무서운 사건 두 가지가 발생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은 나라가 망할 정도로 전쟁에서 대패합니다. 블레셋과 전쟁했는데 1차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스라엘 군사 4,000명이 전사하게 됩니다.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결론은 저 멀리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오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사기충천했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오지 않아서 패배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궤까지 모시고 왔으니 틀림없이 승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블레셋 진영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전쟁 결과는 예상과는 정반대로 이스라엘이 참패를 당합니다. 이스라엘 군사 30,000명이 전사했고 믿고 믿었던 하나님의 궤까지 적군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라가 완전히 망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사건은 엘리 집안이 파멸하는 것입니다. 파멸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을 이제 보실 것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엘리의 두 아들 제사장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습니다. 엘리는 자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대제사장 엘리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대패를 했고 하나님의 궤가 적군 이스라엘에게 빼앗겼고 두 아들이 한꺼번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던 중 앉아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졌는데 그때 엘리의 목이 부러져서 엘리도 결국 죽습니다. 그때 엘리의 며느리가 출산 때가 가까웠습니다. 출산 때가 다 된 며느리가 전쟁에 지고 하나님의 궤도 빼앗겼고 남편은 죽고 시아버지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 심한 진통을 겪고 아들을 낳습니다. 그 며느리는 죽기 전에 자기 아들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며느리는 죽어가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두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사건은 두 개이지만 가르치는 진리는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대패했습니다. 군사 34,000명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나라가 망했다고 보아야합니다.
전쟁에서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왔을 때의 광경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5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전쟁에 개입하셔서 이스라엘이 진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이겼습니다. 1차 전투 때는 하나님의 궤가 멀리 있었기 때문에 안 도와주셨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궤가 왔으니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도우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별 것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대단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본문 7절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라는 말씀은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는 망했다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게 늘 승리를 주었고 적군들에게는 패배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8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쟁을 해보니 이스라엘이 졌습니다. 그것도 대패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전혀 능력을 발휘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전혀 역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여기에 대한 중요한 이유를 보아야합니다. 여러분의 실제 삶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무언가 역사하실 줄 알았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능력이 없는 것처럼 아무 일도 안 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생각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가? 다른 이유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해야합니다.
이스라엘이 그 전쟁에서 대패한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는 곳에는 역사하시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못 쓰십니다. 못 쓰신다는 표현이 적확한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힘을 쓰시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는 하나님께서 아예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는 곳에는 하려고 해도 못하시도록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성이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 죄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을 하나님의 사자로 인정하지 않은 죄입니다.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1차 전투 때 패배하여 군사 4,000명이나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패배의 원인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상당히 신앙적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도 여기서 실패할 가능성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신앙으로 출발했지만 계속 신앙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신앙으로 출발했다가 인생으로, 인간으로 가게 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인가? 왜 도우시지 않았는가?’ 이것을 하나님의 종에게 물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종이란 존재는 여러분에게 대접을 잘 받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직접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물어도 잘 듣지 못할 때 그 종을 통해서 하나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지도를 받게 하기 위해서 세우신 사람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 종에게 물었어야하는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종을 전적으로 무시했습니다. 자기네들이 결정하고 말았습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3절)
이 말씀 중에서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기까지는 참 좋지만 이어지는 말씀들은 겉으로는 상당히 신앙적인 것 같지만 그 내용이 문제입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 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신앙적인 것 같지만 내실 신앙이 아닌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중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실패하고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신앙의 모습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교회도 많고 교인들도 많고 교회 능력도 많고 돈도 많습니다. 그런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교인들 숫자가 문제가 아니고 교회 숫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가 얼마나 건물을 잘 짓는가? 이것 역시 문제가 아닙니다. 내용이 없습니다. 한국 교인들은 성경도 많이 압니다. 옛날에 대한민국 기독교신자들이 알고 있던 신앙지식보다 몇 배씩 더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신앙지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믿음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잘못은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신앙적으로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 그렇게 나라를 망하도록 하실 만큼 큰 죄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통해서 ‘그렇다, 큰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왜 그렇게 큰 죄인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보내신 종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의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그곳을 떠나버립니다. 그 나라를 떠나고 그 가정을 떠나고 그 교회를 떠나버리십니다. 도저히 더 이상 있지 못 하십니다. 이것을 눈으로 잘 보아야합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산다, 신앙생활 한다는 이것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중심적으로 정말로 하나님을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아니하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봅니다.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는 신앙공동체입니다. 하나의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들도 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교회의 지도자인데 왜 하나님의 종에게 묻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입니다. 먼저 결을만 내리면 불신앙과 교만 때문입니다. 하는 모습, 하는 말들은 다 신앙적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불신앙이 있었고 교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묻기는 물어야한다고 거의 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제사장인 엘리 제사장은 백세가 가까웠으니 연세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노망기도 조금 있었습니다. 그런 어른에게 현실에 돌아가는 일을 묻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제사장이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나라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계시를 내리시지 않을 것이 틀림없으니 그런 종들에게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사무엘에 묻자니 사무엘은 열 두 살이었습니다. 사무엘은 괜찮고 정말로 하나님의 종인 것 같기는 하지만 이런 문제를 묻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 핑계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을 하나님의 사자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도를 받기 싫었습니다. 나 이외 다른 사람을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 노릇을 어느 정도 하게 되면 믿음이 제대로 갖추지 않은 사람에게 항상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대통령 재임 3~4년 정도 되면 반드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신문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습니다. 뭐든지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종을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도 듣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습니다. 좋은 말로 우리지 우리가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대장이 되고 싶고 나 외에 아무도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셨습니다. 아시고 미리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조치를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3:19)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삼상3:20)..
백두산에서부터 한라산까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 이스라엘 지도자들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더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삼상3:21)라고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것이 4장 1절 첫머리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 이하의 말씀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이후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4장 어디에도 연결되는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내가 이스라엘에 세운 나의 종!’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알았을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대제사장에게도 제사장들에게도 사무엘에게도 묻지 않고 말았습니다.
엘리 집안이 몰락했습니다. 파멸했습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했습니다. 망해도 이렇게까지 망할 수가 없습니다. 대제사장인 엘리가 죽었습니다. 그의 두 아들 제사장이 한꺼번에 죽었고 며느리까지 죽었습니다. 아이는 태어나자 말자 그 날로 천애의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날까지 엘리의 집안은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날부로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최고의 집안에서 가장 비참한 집안으로 몰락하게 됩니다.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삼상2:31-34)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삼상2:36)..
무섭게 그리고 아주 구체적으로 경고하셨습니다.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집안으로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경고하시기 이전에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서 이렇게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아서 이런 변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엘리 집안의 파멸의 원인과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참패한 원인은 똑같습니다. 엘리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을 하나님의 사자로 여기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하는 말을 별 볼일 없고 이름 없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무시했고 또 나이 어린 하나님의 종이라고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별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을 엘리에게 직접 보내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엘리는 그 경고를 듣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아마 ‘내가 명색이 대제사장인데 감히 별 것도 아닌 당신이 어떻게 내 앞에서 그럴 소리를 하느냐?’ 라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면 당신이 아니라 나에게 직접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상당히 많습니다. 대제사장 노릇, 최고의 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이런 문제가 반드시 생겨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소용이 없자 어린 사무엘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은 그대로 다 이야기했습니다. 엘리는 이때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라는 말을 했습니다. 상당히 신앙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차라리 이런 말을 못하는 사람이 낫습니다. 조금 신앙이 있다고, 적어도 내가 할 노릇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아니하는 것 이것이 어느 정도 신앙이 있다는 사람, 직분자에게, 지도자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엘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제사장 노릇을 오래 하다 보니 이미 대제사장의 자리를 뛰어넘어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대패한 것, 엘리의 집안이 파멸한 것 이 두 가지의 일은 모두 보잘 것 없고 볼품없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도저히 인정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의 사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대리인으로 인정하지 아니하는 교만과 불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우리가 지도자인데…, 우리가 나라의 어른인데…, 우리 나이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 경험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생각만 하다가 나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대제사장 엘리는 ‘내가 대제사장인데…’ 라는 이것 때문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항상 궁극적인 책임은 최고 어른에게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의 책임과 의무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최고 어른인 대제사장 엘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무시하고 ‘나!, 나!’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내가, 내가’ 라고 말하고 있다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엘리 대제사장의 그것이 이스라엘 지도자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최고지도자의 가장 큰 죄입니다. 나만의 죄로 끝나지 않고 이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최고 어른 대제사장 엘리 그리고 나라 지도자들의 불신앙과 교만이 이스라엘 전체의 불신앙이 되고 이스라엘 전체의 교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현실적인 문제를 한 번 생각해봅니다. 대제사장 엘리가 왜 사무엘의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대제사장 엘리라면 충분히 이런 저런 개연성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고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혹시라도 대제사장의 자리를 사무엘에게 빼앗길까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자리는 참으로 좋은 자리입니다. 대접도 잘 받고 사람들이 다 존경해주는 이 좋은 자리를 비록 행실이 좋지 못하지만 자기 아들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서 사무엘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금의 일들을 보면 이런 일들은 충분히 있을 가능성이 있고 현재의 여러 일들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추측에 대해서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대단한 중요한 진리를 다시 하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욕심을 부리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욕심을 부리면 나라가 망합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욕심을 부리면 교회가 망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미 어느 정당이 거의 망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뚜껑을 열어보니 이스라엘이 대패하듯 참패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교만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내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할까 하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보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면 그 고통이 나라의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교회가 잘못되면 교인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못 참으십니다. 당신이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의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너무나 가슴아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의 교인들이 고통당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십니다. 그러므로 그 책임을 반드시 묻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교회의 지도자에게 반드시 묻습니다. 오늘 엘리 집안의 파멸이 대표적인 예로 나타납니다.
지도자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바로 서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지도자들의 책임이 무섭습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어둠의 영들 소위 사탄이 가장 노리는 것이 바로 지도자들이고 특히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어느 곳의 지도자들이든 지도자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합니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은 더 정신 바짝 차려야합니다. 무엇보다 기도해야합니다. 내 힘만으로는 파멸시키려고 하는 악한 세력들, 어둠들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자기 가족의 기도만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함께 기도해야합니다. 여러분들이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 지도자들, 목사와 장로님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없으면 교회 지도자들이 무너지고 교회 지도자들이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집니다. 겉은 아닌 것 같아도 속은 이미 썩고 무너진 교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썩고 무너진 교회에서 흘러간 물은 다 썩은 물입니다. 가정이 썩고 나라가 썩습니다. 당장은 죽지 않을 수 있지만 끝내는 죽게 되어있고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볼 줄 아는 눈을 여러분이 가져야합니다.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종교지도자들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귀하게 여기라는 말은 잘 대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종교지도자들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신 나의 목자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대리인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이 부탁은 부탁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탁보다 훨씬 더 강한 것입니다. 귀 있는 사람들은 들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것이 곧 여러분을 위한 것이고 여러분의 사랑하는 딸들과 아들을 위한 기도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종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의 종들 말씀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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