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기 계시
출애굽기 7:1~6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집중력도 많이 떨어집니다. 나이가 들면 특히 접촉사고가 많이 납니다.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산만해집니다. 이것 생각하고 저것 보다가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심해지면 건망증인지 치매의 전조현상인지 걱정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지는 원인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했고 많은 답이 있습니다.
최근에 아주 상식적이고 도전적인 답이 현대적 실험을 통해서 제출되었습니다. 나이 들어 기억력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은 머리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입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콘코디아 대학 연구진이 심리학저널에 실험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단순히 뇌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기보다 불필요한 기억이 뇌에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연구진은 또,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과거의 불필요한 정보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한다, 이것이 기억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연구진이 그 다음으로 연구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이 든 사람이 기억력을 높이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연구결과 그것은 마음을 비우는 심리적 대청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 들어 외국어를 배우고 악기를 배우는 것이 마음 청소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더 근본적이고 최고의 대답을 제공하십니다. 야곱의 후손인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종살이했습니다. 시작은 야곱 때였습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이집트로 이민을 갔습니다. 처음엔 요셉이 이집트 총리로 있을 때였으므로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죽고 난 뒤에는 점점 더 차별받기 시작하여 마침내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그 기간이 약 400년입니다. 히브리 민족들의 고통이 점점 더 심해집니다. 견딜 수 없어서 ‘자기네들의 신’인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보고 계시다가 이제는 히브리 민족을 구원해야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준비시켜두었던 모세를 불러 이집트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라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말했다는 말을 전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말씀을 하시면서 ‘그러나 네가 가서 그렇게 말해도 이집트 왕은 내 백성 히브리민족들을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집트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고 강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라고 참 희한한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이집트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집트 노동력의 상당한 부분인 히브리 노예들을 보내면 나라가 휘청할 것입니다. 노동력에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당신이 이집트 왕 바로의 마음을 그렇게 만들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설마 그럴 리가 있는가 생각됩니다. 만약 어둠의 세력, 악의 세력이 그렇게 말했다면 이해가 됩니다. 당연하게 그렇습니다. 어둠의 세력, 악의 세력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편한 것, 잘 되는 것을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무언가 하나님께서 잘못 말씀하셨거나 모세가 잘못 들었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한 두 번 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같은 말씀을 아주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이집트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준다고 약속하고서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보내줄 듯 줄 듯 하면서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단단하게 하고 난 뒤에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열 번 가까이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중요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럴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는 하나님, 거기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그러셨을까?’
두 가지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만 그렇게 했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럴 능력이 없으므로 미리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신앙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곧바로 해방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상당기간 고생하고 난 뒤에야 해방시켜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겠다, 그러나 간단하게 해주지는 않겠다, 힘들고 어렵게 많은 고생을 하고 난 뒤에야 해방시켜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거기에는 하나님께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충분히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사람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런 생각을 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서 상당한 분이고 대단한 분이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헛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별 것이 아니라고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우리 신, 이집트 신이 낫다, 산에 가서 나무 돌멩이 보고 기도하는 것이 낫다, 이스라엘의 신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독교 신앙이란 심리적으로 철학적으로 믿는 것이지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더할 것입니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그 수백 년 동안 히브리민족들은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우리 이집트의 신은 위대하다, 너희 이스라엘의 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이집트 신을 믿는 우리는 너희들의 주인이 되고 이스라엘의 신을 믿는 너희들은 우리들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닌가?’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같은 말을 자꾸 들으면 처음에는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하다가도 오래 듣다보면 그럴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 다음에는 맞는 것 같다, 맞는다고 넘어가게 되어있습니다.
워싱턴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신호등의 빨간 색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방향을 틀어가면서 여러 가지로 묘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아까 여러분이 신호등을 보셨는데 신호등 색깔이 노란색인 것 같지요? 아마 제가 노란색을 보여드렸을 것입니다.” 이 말을 오랫동안 몇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한참동안 그렇게 묘하게 말하고 난 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노란색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실험결과를 두고 로프터스 교수는 ‘인간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작고 미묘한 형태에 의해서 손쉽게 오염되고 왜곡된다.’
이것을 제일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물건 파는 사람들이고 정치가입니다. 묘하게 이용합니다. 그리고 선량한 백성들은 잘 속습니다. 계속해서 엄청난 돈을 들여 이런 작업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동안 이집트 노예로 살아오면서 이 소리를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이제 곧 이집트 왕 바로가 여러분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그러나 실제로는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보고 히브리 민족들은 ‘이 정도의 일도 제대로 못하시는 하나님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 최고의 신이라고 믿고 있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보다는 이집트 신을 믿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인간은 아주 개인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일이 있을 때 아무리 선량하고 대단한 사람들이라도 항상 나와 연관시켜서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도움이 되지 않는지 그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존재입니다. 대단한 사람이라도 정도만 다를 뿐이지 다 그렇습니다.
히브리 민족들의 그런 생각은 이미 사실로 나타난 적도 있었습니다. 맨 처음 모세와 아론이 이집트 왕 바로에게 찾아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라고 말하자 이집트 왕 바로가 웃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누구인가? 나는 그런 존재 모른다. 그가 어떤 말을 했든지 내가 그 말을 들을 이유가 있는가? 너희들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살 만하고 여유가 많아서 그런 것인가?” 라고 말하면서 히브리 민족들에게 똑같은 재료를 주지 말고 재료를 구해서 일하고 명령했습니다.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 짚을 주지 않았습니다. 들판을 다니면서 풀들을 구해 벽돌을 만들어야했습니다. 히브리 민족들은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계신가? 하나님이 능력이 있는 분이신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존재인가?’
여기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도 이것을 뻔히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뻔히 아시면서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 난 후 실제 실패가 계속 되었습니다.
첫 번째 물을 피로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 개구리가 나타났습니다. 이가 생기고 파리가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우박을 내리고 메뚜기를 보내고 흑암을 내렸음에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아홉 번째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히브리 민족들, 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의 능력을 의심하게 될 것이고 이런 저런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셨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나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신이다, 나는 내가 한 번 하려고 마음 먹은 일은 하고야만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 내 자식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보호한다, 챙겨준다’ 이것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이방인들까지도 다 알기 원하셨습니다.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인 줄 알리라’(출7:5)
이것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한 가지 커다란 걱정이 있었습니다. 한 번 만에 히브리 민족을 얼마든지 출애굽 시킬 수 있습니다. 홍해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민족들이 그런 구원을 받게 되면 당장은 감동하고 감격하여 온갖 소리를 다 할 것이지만 조금만 지나고 나면 다 잊어버릴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자기들을 구원시켜주고 해방시켜주시고 출애굽하게 해주시고 풍요하게 해주시고 자유민이 되게 하신 하나님마저도 새까맣게 잊어버릴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얼마나 환호합니까?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하나님께서 해주셨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마저도 잊어버립니다. 다 내가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경 곳곳에서 그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내가 열심히 해서 이렇게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걱정하시는 것은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 번 양보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시켜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그것은 하나님만 좀 섭섭하시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찾아와서 인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약간 섭섭할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행 자체라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보통 때는 물론이고 명절 때도 부모님을 찾지 않고 여행가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들에게 불행으로 돌아갑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사람들, 부모를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잘 될 것 같습니까? 간혹 그러면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보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부모를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나를 챙겨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어디엔가 문제가 일어납니다. 행복을 잃어버립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가 닳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 하나님을 잊지 말라’ 하나님이 무엇이 아쉬워서 그렇게 안타깝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 사람 저 사람 찾아와서 인사하는 것 그렇게 대단합니까? 자식들이 찾아와서 인사하는 것이 대단합니까? 별 것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는 신 중의 신이다, 내가 여러분들을 해방시켰다, 내가 여러분들을 낳았다, 키웠다, 공부시켜주었다. 오늘 여러분들이 누리는 것은 다 나 때문이다.’ 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계속해서 ‘이것을 잊지 말아라, 나를 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고, 평화로울 수 있고 지금 누리고 소유하는 것을 계속해서 누리고 소유할 수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6:10-13)
24절과 25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신명기 8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1-14)
하나님이 왜 염려하십니까? 당신 때문에 염려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 때문에,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께서 염려하십니다. 계속해서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으니’(신8:14-16) 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게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신8:18-20)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행복하고, 계속해서 평화를 누리고, 계속해서 풍요롭게 살고, 계속해서 많은 것을 누리고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오래 행복하고 얼마나 평화로운가? 기독교 신자들, 그리고 기독교 신자들의 자식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인간의 기억입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감사하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그 기억이 자꾸 사라지게 됩니다.
영어나 외국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온 조사결과입니다. 최초로 학습한 내용은 학습 직후 10분 후부터 망각 프로세스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잊어버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70%가 망각되고, 한 달이 지나면 맨 처음에 학습한 것, 맨 처음 받은 정보의 80%정도가 인간의 뇌에서 소멸된다고 합니다.
망각곡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인간의 뇌에 남아있는 기억의 감소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가 세운 가설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공부하고 학습하고 정보를 받고 난 뒤 그것을 기억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오랜 시간 동안 정보를, 그 학습을 다시 떠올릴 수 있고 계속해서 소유하고 유지할 수 있지만, 반대로 배운 공부를 얻은 정보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때 시간의 지남에 따라서 학습과 정보가 손실되는 정도가 심해졌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에빙하우스는 좀 딱딱한 학문적인 표현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당 요소를 기억하는 데 필요한 일보다 더 많은 일(좋은 의미에서 더 많이 애를 쓰고 더 노력하는 것)을 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과잉학습(좋은 의미에서 과잉학습)을 달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과잉학습은 더 이상 정보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을 보장한다. 과잉 학습된 요소의 망각 곡선은 안정적이다.” 또 “망각곡선의 그래프는 사람이 며칠, 몇 주에 걸쳐서 배운 새로운 지식이 의식적으로 학습한 지식을 복습하지 않는 한, 급속하게 줄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에빙하우스는 인간의 감소하는 기억을 늘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기에 따라서 적정한 시점에 계속해서 복습하라.’
때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대해서 제때에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오랫동안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주 여러분이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을 나 몰라라 하시는 듯 그냥 내버려두시기도 합니다.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왜 그러실까요? 이제 여러분이 이런 일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만약 간절하게 기도할 일이 없는데도, 절박하게 아쉬운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두실까요? 그런 사람도 오랫동안 고통 받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실까요?
또 하나 생각하실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 있을 때, 특히 여러분의 고통이 오랫동안 지속될 때 하나님도 함께 고통을 당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어려우심에도 불구하고 속히 해결해주시지 않는 까닭은 무언가 하나님께 이유가 있어서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무언가 뜻이 있다, 하나님께 이유가 있다, 내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힘들게 내버려두실 때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과거 이스라엘이 그러했습니다. 당하고 또 당했습니다. 고통 받고 또 고통 받았습니다. 나라는 나라대로 외국으로부터 늘 수난 당했습니다. 약탈당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내부의 악정으로 가진 사람, 힘 있는 사람에게 시달리고 시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내버려두셨는가? 이스라엘의 선량한 시민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당하게 하셨는가?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한 선지자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마지막 무렵의 선지자 호세아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1-3)
요약하면 ‘우리가 이렇게 고통당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을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찾아가자, 그러면 산다!’ 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데에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을 아는 것만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다.’ 이것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다, 세상의 주인이시다’ 이것을 고백하기만 하면 다 믿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도 압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의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2장은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라고 말씀하십니다. 귀신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벌벌 떤다는 말입니다. 기독교 신자들보다 더 합니다.
물론 그것도 알아야하지만 여러분들이 알 것이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 것은 실존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나와 그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존재이신가?’ 이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나를 너무도 사랑하신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그저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서 내가 이렇게 하면 나중에 천국에 데리고 가시는 하나님 정도가 아닙니다. 너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땅에 계시면서도 못해주실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아들을 주신 분인데 다른 것을 아끼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주실 정도로 나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다고 하면서도 이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당신을 찾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시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명절에 자식들이 안 오면 섭섭합니다. 오면 좋습니다. 명절이 아니라 다른 때에 찾아오면 또 얼마나 좋습니까? 명절에 자식들의 선물이 꼭 필요할까요? 부모가 되면 필요 없습니다. 자식 얼굴만 보면 됩니다. 손만 한 번 잡아보면 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아가면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너무나 좋아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히11:6)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그 하나님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존재에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죄를 짓게 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이런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갈까?’ 여러분들이 죄를 지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대단히 큰 죄를 지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대단히 깨끗할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는 별 차이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렇습니다. 대단하게 선하게 살아도 하나님 보시기에 별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있었든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용서해주십니다. 작은 죄를 지어서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큰 죄라서 하나님께 나가봐야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인간 눈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 눈에는 다 똑 같습니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께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오기만 하면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합니다. ‘나는 네가 죄 지은 사실도 모른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 나에게는 길이 없고, 내 경제 문제는 더 이상 길이 없다, 끝도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길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 길을 꼭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을 여러분에게 주시는지 아닌지는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는 길이 있다는 그것만 알면 됩니다. 어떤 길이든 길이 있다, 아무리 불가능해도, 우리 눈에는 아무리 길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는 있다, 이것만 알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대로 이 길로, 저 길로 인도해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런 길로 인도하실만한 사람 같으면 그 길로 혹은 저 길로 이끌어주십니다. 믿고 기다리십시오.
아모서 5장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4-6)
하나님께는 길이 있습니다. 길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거기에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 살길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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