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사울의 첫 단추 (사무엘상 13:5~15 )

분당소망교회 2018. 3. 23. 10:49

 

 사울의 첫 단추

 

 

 

사무엘상 13:5~15

 

 

언젠가 중앙공원에 강아지 사진이 찍힌 전단지가 곳곳에 붙어있었습니다. 제목은 강아지를 찾습니다.’ 이었습니다. 색깔은 어떤 색이며 어떤 종류의 강아지이며 이름까지 강아지의 명세를 정확히 적었습니다. 잃어버린 장소와 그 밑에 호소문이 있었습니다. 참 절절한 호소문이었습니다. ‘살려주세요. 7년 동안 가족처럼 지낸 강아지입니다. 유기견이 아닙니다. 제발 불쌍히 여기셔서 연락주세요. 혹시라도 강아지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제발 연락 주세요. 부탁입니다.’ 그 다음 말이 더 절절합니다. ‘일곱 살이나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아플 일만 있어 돈만 들 것입니다. 사례금 100만원

그 호소문에 간절함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 강아지를 혹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너무 예뻐서 자기가 키우고 싶고 안 돌려주고 싶다 하더라도 그 호소문을 보고서는 안 돌려줄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돌려주면 여러 사람이 행복합니다. 먼저 강아지 주인이 행복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한 사람은 반드시 행복합니다. 거기다 돈 100만원까지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것은 꼭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호소에 여러분이 응답하셔서 화답을 받게 되면 하나님은 정말로 행복하십니다. 하나님은 강아지 한 마리 찾는 것도 없이 행복하십니다. 그 까닭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호소에 응답하면 여러분이 행복하고, 여러분이 행복한 것을 보고 하나님이 행복하시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사례비 아닌 큰 선물을 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100만 원 정도가 아닙니다.

딱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호소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의 호소를 잘 들으실 수 있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호소하는 그 호소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과한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나귀를 찾으러 다니던 사울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뜻밖에 왕이 된 사울에게 정치적 기반은 너무도 약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하나님께서 챙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정치적 입지를 챙겨주신 일은 참 기묘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암몬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공포의 도가니 속에 빠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이 된 사울의 마음속에 의분이 일어나도록 만드셔서 사울은 대단한 포고를 발표했습니다. 이 나라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하는 일에 만약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소가 도살되듯이 처단될 것이라는 것인데,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 나라의 위기에 나 좋으라고 피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다면 소 잡듯이 잡아버리겠다는 무서운 포고입니다. 사울의 이 대담한 포고에 온 백성들이 하나같이 다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 전쟁은 간단하게 끝이 났습니다. 암몬은 처절하게 패배하고 이스라엘은 통쾌하게 승리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암몬은 바보같이 괜히 이스라엘을 침공했다가 된통 당하고 뿔뿔이 다 흩어지고 만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도 물론 다소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사울 입지만 굳건하게 되었습니다.

얼른 보면, 암몬은 괜히 쳐들어왔다가 그렇게 된 것 같지만 암몬은 괜히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사울의 입지, 사울의 정치적 기반을 든든하게 해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다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왜 이렇게 챙기셨을까요? 사울이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사울이 대단하게 잘한 것이 있어서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 백성들, 그 사람들을 사랑해서입니다. 왕 노릇 잘해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행복하고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도록 하라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그렇게 챙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울이 왕 노릇 잘해서 이스라엘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이 세상의 주인은 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나에게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 간절한 호소를 다시 한 번 사무엘을 통해서 재차 당부하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하나님께 순종하라. 그러면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평화를 누릴 것이고 사울의 왕 자리는 계속해서 확고히 이어져나갈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망할 것이다, 이스라엘도 망하고 사울도 망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통해서 다 보고 배우도록 말씀하시고 난 뒤 다시 한 번 사무엘을 통해서 확인교육을 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울의 모든 운명은 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사울은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왕으로 내정하신 것, 기름 부으신 것, 제비에 뽑힌 것, 왕으로서의 입지가 튼튼하게 된 것 전부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사울 자신이 해야 합니다. 사울이 자신이 자기 운명을 만들어나가야 하고 앞날을 만들어 가야합니다. 물론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사울이 자기 운명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앞날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이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울의 운명을 결정하실 것입니다.

 

사울의 운명에 결정적인 계기가 옵니다. 사울 자기가 첫 단추를 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번에는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제법 자신만만했습니다.

이것을 기회로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나라의 위기에 대해서 기도를 해주십사 부탁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큰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이 자리의 여러분 가운데 제일 많이 두려워하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더 두려워하는 일이 이 나라 대한민국에 생길 것입니다. 무섭습니다. 남는 것이 없습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없습니다. 배운 사람, 덜 배운 사람이 없습니다. 조국을 버리고 도망가는 재주 좋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도 평생 조국을 버렸다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처절한 유린이, 강단에서 말할 수 없는 유린이 이 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편안하게 설마라고 생각하겠지만 세계의 전쟁 참화를 당한 모든 사람들이 설마 하다가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막상 전쟁에 돌입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사람들이 겁을 먹고 뿔뿔이 흩어집니다. 여기저기 숨고 피난하고 도망합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병사들도 주눅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나라의 최고지도자 사울이 즉각적인 행동에 들어갑니다. 맨 처음에는 제법 잘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 제사장 사무엘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사무엘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이 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지만 약속한 날이 되었음에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은 남아있던 병사들마저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사울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이러다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나라가 망하겠으니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제사입니다. 제사라도 드리면 백성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멋진 아이디어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사를 집전할 사무엘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문제가 되었습니다. 제사장이 없으면 제사를 지낼 수 없습니다. 그 다음 순간 곧바로 사울이 그 별것도 아닌 제사를 자기가 대신 지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얄궂은 일이 생깁니다. 사울이 제사장 대신 제사를 지내자마자 그렇게 기다리던 사무엘이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사무엘이 사울이 제사를 지낸 것을 알고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선포를 했습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13-14)

참 무서운 선언입니다. 제사 한 번 지냈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서운 선언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빠뜨리지 말고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14) 라고 인사명령을 발표했는데, 여러분이 생각할 것은 이 인사명령을 사무엘이 언제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겠는가? 입니다. 언제 받았겠습니까? 사무엘이 와서 사울이 제사장 대신 제사지낸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언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다 준비하시고 어떤 사람을 챙겨두었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거기다 사무엘이 말한 것을 앞뒤 일들을 통해서 보면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10)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성경을 가만히 읽어보면 사무엘이 마치 사울이 자기 대신 제사 지내기까지 기다린 것 같습니다. 사무엘은 제사가 끝나고 난 뒤 도착하여 노발대발했습니다. 거기다 사무엘이 도착한 날은 아직 약속한 날이 지나지 않고, 약속한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우리처럼 밤 12시가 하루가 아니라 해지는 것이 하루의 마지막입니다. 그렇다면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일부러 아주 늦게 쯤 도착한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약속한 날이 칠일간이나 있는데도 그 안에 도착하지 않고 마지막 날 거의 목에 찰 무렵에 도착한 것은 사무엘이 늦장부린 것이 아니라 무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한 테스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보시니 괜찮았습니다. 쓸 만 했습니다. 저 사람 같으면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을 맡길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왕이 되게 하시고 입지도 튼튼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사울이 과연 이 모든 것을 다 소유했으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왕 노릇 제대로 할 것인지, 바르게 할 것인지, 신앙을 제대로 가지고 갈 것인지 궁금하셨습니다. 과연 믿을만한 사람인지, 당신의 일을 함께 할 사람인지 알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내가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주었다. 그것은 세상의 주인은 나 하나님이라는 것을 네가 알고, 그 나를 네가 경외하고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 받은 복은 비교도 안 되게 큰 것을 받을 것이다. 너도 행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행복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부디 나를 잘 알고 나에게 순종하라. 만약 네가 내 말을 무시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너는 나에게 버림받을 것이고 왕 자리에서 쫓겨날 것이고 네가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행에 빠질 것이다.’ 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너를 왕으로 세웠는가? 내가 어떻게 너의 흔들리는 입지, 아무것도 없던 정치적 기반을 든든하게 해주었는가? 내가 얼마나 기묘하게 채웠는가? 이 모든 것을 나 하나님이 한 것을 네가 잘 알고 나를 경외하라.’ 라는 것을 알게 가르치셨습니다.

혹시라도 하나님, 제대로 못 배웠습니다.’ 라는 말을 할까 하여 이것을 구체적으로 사무엘을 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삼상12:14-15)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못 깨달았다는 말을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백성들도 듣고 왕 사울도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삼상12:24-25)

사무엘이 늦장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늦장은 사무엘이 부린 것이 아닙니다. 사울을 테스트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시였습니다. 내가 가라고 할 때까지 가지 말고 기다리라, 이제 가라고 하면 가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울이 이 하나님의 이 호소에 대해서 제대로 응답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울도 행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도 행복하셨을 것입니다. 거기다 왕의 기반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엄청난 것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 하나님의 테스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제사는 제사장이 집전해야한다는 것은 너무도 엄격한 명령이고 법입니다. 그런 제사를 사울이 제사장 대신 지내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그것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울이 제사장 대신 제사를 지낸 데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울의 불신앙 선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온갖 소리를 다 했을지라도 사울 속에 있는 가슴의 신앙이 선언된 것이 바로 자기가 제사를 대신 지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명령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선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법, 명령 따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란 존재는 나에게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누가 이런 말을 직접 하겠습니까? 삶이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이것을 대놓고 선언한 것입니다.

 

두 번째, 더 무서운 것은 불신앙의 선동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하나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즉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이스라엘이라는 신앙 공동체, 교회의 최고지도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백성들 앞에서 보란 듯이 하나님의 법을 거역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법,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나처럼 하나님 법을 무시해도 됩니다. 하나님을 무시해도 됩니다.’ 라는 선동입니다.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부터,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한 선동이 바로 사울의 그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만큼은 도저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에서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양치기를 했던 토론토 대학의 석학 필립켈러에게 가슴 아픈 추억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기르던 암양 한 마리 일입니다. 그 암양은 자기가 기르던 양들 중에서 가장 멋진 양이었습니다. 잘 생겼고 튼튼했고 몸집은 아름다웠습니다. 머리는 영리했습니다. 얼마나 똑똑한 양이었는지 모릅니다. 두 눈은 맑고 밝았습니다. 털은 빛났습니다. 거기다 아주 귀엽고 튼튼한 새끼까지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그 암양에게 큰 결점이 있었습니다. 불만이 많은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주 도망갔습니다. 여기저기서 방황했습니다. 그래서 필립켈러가 그 암양의 이름을 미세스 겟어바우트라고 지었습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색시라는 말입니다.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그 암양 한 마리가 다른 모든 양들보다 더 많은 문제를 만들었고 양치기를 더 골치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그 암양은 울타리를 자주 빠져나갔습니다. 머리가 좋아서 울타리의 어디가 약한지 어느 쪽을 뚫으면 될 것인지 잘 알았습니다. 울타리를 빠져나가는 그 암양에 대해서 필립켈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울타리 안은 바깥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풀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 암양은 풀이 모자라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지 않는 버릇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죽도록 고생만 하고 돌아옵니다. 돌아올 때는 바싹 말라서 돌아옵니다. 그런데도 며칠만 지나면 또 빠져나가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다 진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자기만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자기 새끼 양들을 데리고 같이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필립켈러는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거기다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다른 양들까지 데리고 울타리를 빠져나간 사실입니다. 필립켈러는 그것은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극형에 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칼을 목에 대었습니다. 아주 간단했습니다. 그것으로 그 양의 생명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왕 초기부터 하나님 앞에 큰 실패를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실패,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책망 받는 실패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실패를 잘 보면 참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책망, 무서운 선언을 보면 우리가 정말로 감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실패한 사울을 책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싫으시면 아무 소리 안하십니다. 쳐다보지도 않으십니다. 말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책망하시고 무서운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직 하나님께서 사울을 완전하게 버린 것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최소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었습니다. 기회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아직 버리지 않았다, 다음에 또 그러면 정말로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사울의 앞날이 아직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아서 왕으로서의 자리를 빼앗긴 것이 아직은 아닙니다. 이제 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텐데 그 기회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너의 인생이 결정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합니다.

책망을 받았을 때 그 책망의 의미를 알아야합니다. 좀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의미를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잘 아십시오. 맞았다고, 책망 받았다고 속상해서 뒤를 돌아설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시고 나에게 기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에스겔서 18장은 말씀하십니다.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18:21-22) 하나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