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성도(聖徒) (마태복음 6:16-21)

분당소망교회 2019. 2. 20. 08:23


성도(聖徒)

 

 

 

마태복음6:16~21

 

 

나라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먼저 경제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들 가운데 3년을 말하면서 3년이 골든타임인데 3년 안에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주 어렵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전쟁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3년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난다면 3년 안에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는 말입니다.

나라가 망한다면 무슨 일로 망할 것인가?’ 라는 것이 망국론입니다.

위대한 영웅으로 불리는 인도의 간디도 망국론을 말했습니다. 나라를 망치게 하는 죄악으로 간디는 일곱 가지를 듭니다.

첫 번째는 원칙 없는 정치입니다. ‘정치에는 법이라는 원칙이든 양심이라는 원칙이든 아니면 적어도 상식이라는 원칙이 있어야한다. 그럼에도 어떤 원칙도 없이 개인과 집단의 이익에 의해 흔들리는 정치가 나라를 망치게 하는 제1의 죄악이다.’

두 번째는 도덕 없는 상업입니다. ‘사람을 돈을 벌어야한다. 그러나 돈을 벌 때 지켜야할 윤리가 있고 돈을 쓸 때 사회에 대한 책무가 있다. 돈이 소중할 수 있는 것은 그 돈이 사회에 유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죄악은 노동 없는 부입니다. ‘땀을 흘려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땀을 흘리며 돈을 모을 때 사회가 밝아진다. 투기, 뇌물, 탈세 또는 상속 등으로 재산을 얻는 사람이 늘어나면 나라 전체가 어두워진다.’

네 번째 죄악은 인격 없는 교육입니다. ‘참다운 교육은 차가운 두뇌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기르는 것이다. 건전한 비판 능력도 가르칠 뿐 아니라 약하고 모자라고 부족한 자들을 가슴으로 품어줄 수 있는 포용력도 가르쳐야한다. 이타적인 삶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이며 또 이타 그 자체가 행복인 것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야한다.’

다섯 번째 죄악은 인간성 없는 과학입니다. ‘과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인간 사회를 파괴하고 인간을 파멸시키는 과학이라면 그 과학은 이 땅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여섯 번째는 양심 없는 쾌락입니다. 좋은 표현으로 하면 즐거움과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 된 욕구이다. 그러나 그것이 양심을 벗어날 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고 그 사회를 망가뜨리게 된다. 결국은 자신도 망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일곱 번째, 마지막으로 어쩌면 여기에 가장 포인트를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에 관한 것입니다. 희생 없는 신앙입니다. ‘자기희생 없는 위선적 종교는 나라를 망친다.’

 

예수님 가르침의 진수인 산상수훈 두 번째인 마태복음 6장은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그 세 가지는 세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외식, 위선입니다. 두 번째는 재물, 돈입니다. 세 번째는 염려, 걱정입니다. 이 세 가지 모두가 기독교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것들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어떤 자세를 가지는가에 따라서 참된 기독교인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모였을 때 참된 교회가 되고, 그런 사람들이 이루는 기독교라야 참된 기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외식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외식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겉을 장식한다, 바깥을 꾸미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위선이 더 편하게 이야기됩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이것을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이유 때문에 할 것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제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기도, 금식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구제를 하라,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하게 기도해야하고 필요하다면 금식기도까지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그 좋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나팔을 불지 말라’(2)

5절에도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에는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그런 것들은 하라, 하되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하라, 진심으로 그런 것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향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구제에 대해서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3-4)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른다는 정도가 된다면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게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6) 라고 말씀하시고, 금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17)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는 것, 진심으로 하는 것이 바로 제대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의 목적은 기독교인들을 인격자로, 소양 있는 자로, 품성이 좋은 사람으로 가르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윤리에 관한 강의가 아닙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과 핵심을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성경은 도덕 윤리를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당연하게 결과로 도덕도 따르고 윤리도 따르고 인격도 따르게 되지만 그것이 제1목표가 아닙니다.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 가지 말씀 모두에 있습니다. 4절에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곧 하나님 앞에 하라는 것입니다. 자랑하는데 사람에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랑하라고 하십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내 아버지’(6)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 보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금식에 대해서도 은밀한 중에 계시는 내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18)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은밀하게 보시는 내 아버지, 그 아버지께 금식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자들의 모든 행동, 행위,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까지도 대상이 하나님입니다. 사람을 만나도 항상 그 사람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일을 하면서도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봐 주십시오.’ 이것은 괜찮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야기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했으니 복 좀 주십시오.’ 이것도 괜찮습니다. 제발 사람 앞에서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 전서에서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보시고 여러분들의 인격도 향상시키고 자질도 높아지게 하십니다. 고품위 사람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이 세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그 세 가지 말씀 중에 공히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4),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 18절 마지막에도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말씀하십니다. 똑같은 말씀인데도 예수님은 각각의 말씀에 빼놓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갚으신다는 말씀은 헬라 원어로는 아포 디도미입니다. 원어를 직역 그대로 하면 조금 더 이해하기 좋습니다. 되돌려준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하나님께서 부채를 지신 것처럼, 마치 맡아서 보관하고 계시는 것을 되돌려주시는 것처럼 반드시 갚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틀림없이 갚아주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신이 갚아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은밀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면 내가 그 모든 기도를 응답하겠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금식기도를 했으면 반드시 그 금식기도에 응답해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 더 이 세 군데에 다 있는 말씀으로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세 군데에서 되풀이해서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사람 앞에서 한 사람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말씀하시고, 5절에서도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 앞에서 기도한 사람, 사람 앞에서 구제한 사람, 사람 앞에서 금식기도한 사람에 대해서 16절 마지막에도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 사람들의 기도, 구제, 금식은 하나님과 상관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아무리 귀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알지 못하신다, 상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대신 사람에게는 안 보이고 은밀하게 구제한 사람들, 은밀하게 기도한 사람들, 은밀하게 금식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린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들어주시고 갚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재물과 돈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실제 여러분들에게 가장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주머니가 구제받은 사람은 진실로 구제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주머니가 구제받지 못한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먼저 재물, 돈에 대해서 조심할 것은 기독교 신자들은 돈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기 돈도 그렇지만 남의 돈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고 돈을 어떻게 써야한다는 등 함부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애를 쓰지 않는 것도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돈에 대해서 돈은 나쁘다 부자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 말씀도 부자가 잘 믿기 어렵다는 말씀이지 부자가 나쁘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도리어 성경은 돈은 귀한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많이 벌어서 저축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심지어 데살로니가 후서 3장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 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인들은 열심히 일해야 하고 열심히 사업해야한다는 뜻입니다.

돈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 본 뜻은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사업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도 올리고 재산도 많이 모아라.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벌고 모은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인가? 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이 그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그렇게 열심히 해서 번 돈, 그렇게 쓰지 않고 모은 돈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도리어 해가 됩니다.

나발이라는 사람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재산이 많았습니다. 넉넉했습니다. 좋은 일을 넉넉하게 해도 넉넉하게 남을 수 있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직간접적으로 자기에게 도움이 되었던 다윗에게 못된 말을 했습니다. 그러다 몸이 굳어서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손 하나 대지 않았습니다. 돈 때문에 몸이 굳어서 죽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힘든 시절에 교회에 넉넉하게 헌금하려고 할 정도로 재산이 있었지만 돈 때문에 하나님께 거짓말해서 남편이 죽고 세 시간 만에 그 아내가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돈, 재산에 관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19-20)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창조하시고 폐하실 수 있는 예수님께서 직접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으로 가기 전에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있을 때 바나바가 어떻게 살았는지 사도행전 4장은 기록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 그 이유는 밭과 집 있는 사람들이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 교회에 바쳤다. 교회는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바나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바나바가 그런 일에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바나바는 이후에 세계를 다니면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빌레몬서의 빌레몬 또한 그랬습니다. 자기 집을 하나님께 예배 장소로 드렸습니다. 그 시절에 자기 집을 예배당으로 드리는 것은 오는 사람들의 먹고 마시는 것까지 챙기는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하루 종일 예배당에 삽니다. 그러면서 먹고 마시는 것 챙겨주는 일을 빌레몬은 잘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빌레몬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가난하던 시절에 자기 재산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같은 교우들만 도운 것이 아니라 교회 나오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도와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은 교인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잘 도와준다는 소문을 듣고, 교회란 그런 것이구나, 기독교란 그런 종교구나, 기독교인이란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그렇다면 우리도 그런 기독교인이 되자, 기독교를 모셔야 되겠다, 그런 기독교회에 나가야되겠다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빌레몬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짜 기독교신자입니다. 찬송 잘하는 것 좋습니다. 성경 많이 아는 것 좋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전혀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과 행함이 함께 하는 그것이 진짜 믿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많은 재물이 저 사람 인격이 고매하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저 사람이 진짜 신자인지 아니면 무늬만 신자인지 판가름하는 가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21),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24)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재물을 바르게 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 것 같습니까? 예수님께서 그것은 한 마디로 염려와 걱정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중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제대로 써야할 곳에 쓰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람 살아갈 때에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계획도 해야 하고 대비도 해야 하고 준비도 하고 모아도 두고 쌓아도 두고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해서 어떤 일이 있을 때 하나를 제대로 지켜나가도록 대비해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계를 넘는 것입니다. 전쟁도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더 준비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준비해야합니다. 문제는 한계를 넘는 것입니다. 그것 걱정하다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건강염려증이라고 있습니다. 의학자들은 말 표현에 의하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다 못해 스스로 병을 만들어 앓는 경우,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징후를 과장되게 해석해서 자신이 심각한 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병입니다. 상당히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건강염려증 때문에 할 일을 못합니다. 앞으로는 건강염려증보다 노후 염려증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의학자들이 100년 산다 혹은 120년 산다고 하니 내가 언제까지 살지 몰라 그 모든 것을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흔히 얼어 죽었다고 하는 저체온증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시체를 정리 하다 보니 침대 밑에서 달러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고 합니다. 돈을 깔고 얼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노후 염려증 때문에 돈을 깔고 돌아가신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 같습니다.

 

정도의 한계가 있습니다. 정도를 넘어서 과다하게 염려하고 쌓아두려고 하다 보니 아무것도 못합니다. 인생을 살지못합니다.

지금 누리지 못하면 나중에 못 누립니다. 지금 감사하지 아니하면 나중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지금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나중에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기부를 대단히 많이 한 부자가 한 말이 있습니다. ‘재산은 거름과 같아서 쌓아두면 썩은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뿌려주면 많은 것들을 자라나게 한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알아야합니다. 어느 정도는 내가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강도 자식 키우는 것도 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가게 되면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 건강을 조금 얻은 사람은 더 건강해지려고, 재산을 조금 모은 사람은 더 많이 모으려고, 자식을 잘 키운 사람은 더 잘 키우려고 합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이 한계에 대해서 잘 알아야합니다

 

주님께서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27)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문제는 사실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자꾸 내가 해야 하겠다 생각합니다. 그것은 불신앙의 증거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습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잘 붙드십시오. 쉽지 않지만 잘 붙드십시오.

열심히 하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하십시오. 그러나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26),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0-33) 이 말씀을 받으십시오.

 

신자들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을 성도(聖徒)라고 말합니다. ‘구별되었다, 다른 사람이다.’ 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삽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노력도 하고 힘도 쓰고 애를 쓰고 준비도 하고 대비도 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이 성도이고 이런 사람이 참된 기독교인입니다.

 

하나님이 챙겨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각별하게 더 잘 챙겨주시고 지켜주시고 공급해주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이지에 대해서 성경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 라고 말씀하십니다.

체험을 한 번 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이것을 알고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행복을 누리는 정말로 능력 있고 권세 있는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을 하나님도 보고 싶어 하시고 저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