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무엇을 보려고..(누가복음 7:24-28)

분당소망교회 2019. 4. 14. 07:42


 

 

무엇을 보려고..

 

 

누가복음 7:24~28(창립 20주년 감사예배)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간다.’ 우리나라 속담입니다. 큰 인물 하나만 나와도 그 집안사람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다 그 사람의 득을 입는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그러하고 하나님의 종이라는 목회자가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하나님의 종, 제대로 된 교회 하나만 나와도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세상 나라 다 크게 득을 입습니다.

 

너무나도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르기도 하시고 달래기도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보기도 싫었고 말하기도 싫으셨습니다. 400년간 이스라엘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종 선지자를 400년간 보내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이스라엘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간에 이런 일이 있으면 더 힘든 쪽은 부모입니다. 자식들이 이것을 잘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그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워서 말씀하시지 않았고 당신의 종도 보내지 않으셨지만 정작 더 힘든 것은 하나님 당신이었습니다.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았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결국 지고 마셨습니다. 큰 결단을 하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보내시려고 작정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이스라엘과 화해하려고 어떻게 하든 이스라엘과 이야기하고 그들이 잘못되는 것을 막고 복 내려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는 안 본다고 하셨지만 하나님이 너무 힘들어서 그 이스라엘과 화해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기로 하셨습니다.

이것이 부모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땅의 부모보다 더 하십니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야겠다고 작정하셨겠습니까?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기로 작정하셨는데 그 전에 먼저 하실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준비할 사람을 보내야하는데 제대로 된 사람을 보내야합니다. 자칫 잘못된 사람을 보내면 보낸 사람이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종노릇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낼까 고민 고민하시다가 한 사람 보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고민하신 까닭은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종노릇하라고 보낸 사람이 종노릇이 아니라 때로는 왕노릇 할 가능성도 있었고, 또 그 보낸 사람이 제대로 종노릇 했을 경우 사람들의 미움을 받습니다. 자기네들을 살리고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을 보냈는데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심지어는 비참한 죽임을 당할 수가 있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보낼까 고민하시던 하나님께서 아이 낳지 못하는 한 부부를 선택해서 아이 낳는 것부터 30년을 준비했다가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그 세례요한에 대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말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이쪽으로 흔들리기도 하고, 세상의 높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저쪽으로 흔들리기도 한다. 소위 유명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부드러운 옷, 화려한 옷을 입고 왕처럼 사치한 생활을 하고 있다.’

예수님 말씀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그런 유명한 하나님의 종, 잘난 하나님의 종들, 왕처럼 사는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나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읽으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뜻입니다. 무거운 얼굴로 그 말씀을 하신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 다음 순간 얼굴이 환해지시면서 다음 말씀을 하십니다.

저 세례요한을 보라, 저 세례요한 같은 목회자야말로 참된 하나님의 종이고 모든 선지자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종이다.’

인류 역사 내내 하나님께서 내내 찾으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되게 하나님의 종노릇 할 사람, 참되게 그리스도의 몸이 될 교회를 찾으셨습니다. 어쩌다가 그런 사람, 그런 교회를 찾으시면 한없이 기쁘시고 행복하셨습니다.

 

북 이스라엘 아합 시대에 온 나라가 깜깜할 때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 땅을 찾아 헤매시다가 디셉이라는 시골구석에서 한 사람을 찾으시고 한없이 행복하셨습니다. 그 사람 이름이 엘리야입니다. 과연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제대로 하나님의 종노릇 했다가는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두들 두려워하는 그 악한 아합을 찾아가서 죽음을 각오하고 경고했습니다. 같은 아합의 시대 때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왕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그 덕분에 그 선지자들은 늘 왕이 베푸는 호위호식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아닌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미가야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당신도 다른 선지자처럼 이렇게 이렇게 하시라.’ 말을 많이도 들었습니다. 바른 선지자가 그렇지 않은 선지자가 될 수 있나요? 참된 선지자가 거짓 선지자가 될 수 있나요? 많은 회유가 있었지만 미가야는 일체 거부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전했습니다. 그 말하는 것이 마치 고의적으로 왕이나 높은 사람들, 잘난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최고 유명 선지자에게 같은 선지자임에도 뺨을 맞기도 합니다. 결국 감옥에 갇힙니다. 감옥에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고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난 뒤에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생명을 바쳐서 전할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으셨습니다. 이제 당신의 아들 예수는 죽으셨습니다. 그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했습니다.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찾다가 하나님께서 사울이라는 사람을 보시고 이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죽인 사람이 바로 사울입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고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정확하셨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바울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된 사울은 복음을 위해서라면 돌에 맞아 죽을 뻔 했던 곳에도 다시 갑니다. 혹시 돌에 맞아 죽는 일이 있더라도 복음은 전해야한다. 지난번에 전하다 죽을 뻔했지만 터를 닦았으니 거기가 낫겠다고 생각하고 또 그쪽으로 갔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모든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심지어 성령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 가면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그래도 가겠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나는 복음 전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고 나는 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에게 부름 받은 사람이다. 돌에 맞든지 죽든지 어찌든지 간에 나는 가야한다고 예수살렘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잘한 것도 없고 도저히 위로를 받을 사람들이 되지 못했고, 한 것은 없고 거역한 것, 불순종한 것, 우상 숭배한 것밖에 없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기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당신의 종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세례요한은 백성들이 그렇게 원했지만 그렇게 바라는 위로는 하지 않고 대신 무섭게 책망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3:2)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0-12)

하나님께서 오랜만에 당신의 종을 보내셨으면 따뜻한 말씀도 좀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그대로 전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시민들에게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3:11) 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던 세리들에게는 정직한 세리가 되라, 법으로 정해진 것 외에는 세금을 거두지 말라라고 밉상 받을 소리를 했습니다. 또 당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던 군인들에게는 월급으로 만족하고 시민들에게서 강탈하지 말라,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검찰, 경찰 그리고 법원에 대해서 하는 말이 이런 말입니다.

세례요한이 책망한 것은 백성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해도 별 위험부담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무섭게 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고, 죽이고 싶으면 마음대로 죽일 수 있고 까짓것 하나님의 종 정도야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왕에게까지 경고하고 책망했습니다. 죽기에 딱 알맞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다 잡혀 가서 목이 베어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베인 목이 쟁반 위에 담겨져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옛날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나님의 종노릇 할 사람,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실은 그런 하나님의 종, 그런 교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도 있습니다. 제법 있습니다. 문제는 변질입니다. 괜찮던 하나님의 종이 괜찮던 교회가 잘 되면, 유명하게 되기만 하면 변질되어서 바뀌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자주 배가 파손하는 위험한 해안에 난파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한 작은 인명구호소 하나가 있었습니다. 움막 같은 보잘 것 없는 집이었고 인명구호소가 가지고 있는 것은 작고 낡은 배 한 척뿐이었습니다. 헌신적인 일꾼들은 불철주야로 난파선 구조를 합니다. 전력을 다 기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구호소에서 구출되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구호소 사람들에 의해서 구출 받은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일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돈을 인명구호소에 기부하기 시작합니다. 이 집은 점점 더 유명해집니다. 인명구호소는 점점 좋아지고 많은 회원들이 모이게 됩니다. 차츰 그 인명구호소는 인명구조에는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그 인명구호소는 모인 돈으로 일할 선원들을 고용하게 됩니다. 인명구호소의 분위기는 이제는 사교클럽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한 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반대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투표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투표결과 이대로 가자고 결정이 났습니다. 반대하던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인명구호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자 새로 시작했던 그 인명구호소도 처음의 구호소와 똑같은 길을 되풀이하기 시작합니다. 헌신적인 사람들은 또 다른 인명구호소를 시작합니다. 역사가 흐릅니다. 역사가 흐르는 동안 이 같은 일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해안에는 인명구호소에서 변한 사교장들만 남아있을 뿐 난파하는 배에 탄 선원들은 대부분 구조 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세상의 심판주이신 주님께서 교회를 향해서 책망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4-5)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버렸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 그리스도께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11) 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잠시가 아니라 죽도록 끝까지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닮아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치 말고 처음 모습 그대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교회가 책망 받는 가운데 정반대로 칭찬받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3:7-8)

우리교회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런 칭찬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3:8)

빌라델비아 교회 그리고 빌라델비아의 목회자가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은 것은 큰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킨 것이고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처음과 끝과 똑같이 마찬가지로 나간 것입니다.

 

우리 분당소망교회가 주님께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구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꼭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