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악한 인생..’
창세기 47:1~20
미국의 두 대학이 공동으로 아주 흥미로운 연구를 하나 했습니다. 소의 기질과 그 소고기의 맛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입니다. 소 가격이 어느 정도 될 지는 소를 잡아봐야 알 수 있으므로 살아있을 때 맛이 좋은지 아닌 지 즉 생우의 가격을 정하기 위해서 그 연구를 한 것입니다. 소의 성질을 측정하고 그 소를 도축했을 때 고기의 맛 정도를 쟀습니다.
대상은 쉰여덟 마리의 송아지였습니다. 두 번에 걸쳐서 연구를 했는데 한 번은 송아지 젖 뗀지 이십 일째 그것을 잡아서 질긴지 아닌지 연구했습니다. 그 다음에 젖 뗀지 구십일 때 한 번 더 측정했습니다. 구십일을 살려두고 그 동안 성질이 어떤지 보고 그것을 잡았을 때 소고기 질이 어떤지 보는 것이었습니다.
성질은 이러한 방법으로 연구했습니다. 축사를 빠져나가는 소 중에서, 급해서 빨리 빠져나가는 소, 천천히 느긋하게 빠져나가는 소, 그다음에 사람이 접근할 때 달려드는지 아니면 달려들지 않는 온순한 소인지 보았습니다. 또 하나는 축사에 담을 머리로 들이받는 소, 아니면 들이받지 않는 온순한 소인지 등 다섯 단계를 조사했습니다.
연구결과는 이렇게 나왔습니다. ‘소의 성질이 급하고 성질이 좋지 않을수록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었다, 반대로 성질이 온순할수록 육질이 좋았다.’
이 연구로 소시장에 있는 사람들이 소를 잡지 않고도 소의 가격을 매길 수 있었습니다. 성질이 좋은 소는 생우를 높은 가격에, 성질이 나쁜 소는 낮은 가격이 형성되었습니다.
사람도 연구해보면 비슷하게 나올 것 같습니다. 성질이 어떤가에 따라서 ‘사람의 맛’을 측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맛’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좋고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또 재미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성하는 의미로 자신을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성질이 좋은지 그렇지 않으면 성질이 완악하고 못 되서 아내, 자식들을 힘들게 하고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아닌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멋진 인생, 아름다운 인생이 있고 영 안 풀리는 인생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맛이 없는 인생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쩌다가 그랬다, 운이나 재수다, 환경 탓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자기가 만든 결과, 열매로서 그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오랜 세월 쌓아온 결과로 나타난 것뿐입니다.
혹시라도 지금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충분히 세상말로 하면 ‘팔자’를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런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내 아내가 나로 말미암아 행복해지고 내 자식들이 나로 말미암아 행복해지게 하는 사람,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내 부모님들이 나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기교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잘 가꾸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전체가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자기를 험악한 인생,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는 이집트에 이주 와서 이집트 왕을 만났을 때 한 소리입니다. 이집트 왕이 “댁의 연세가 얼마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야곱이 한 그 대답은 참 의미가 있습니다. “내 나이 일백 삼십이지만, 참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야곱의 그 말이 맞습니다.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참으로 험악한 인생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 형이 받을 축복을 대신 받는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 결과 형의 미움을 받아서 저 멀리 타관에 이십년 동안 머슴살이 하는 떠돌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재주도 좋았습니다. 형의 명분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 재주를 잘 부렸습니다. 외삼촌 집에 있을 때 돈을 벌기 위해서 별별 재주를 다 부렸습니다. 외삼촌의 그 많은 재산 상당 부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말미암아 야곱은 또다시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외삼촌, 외삼촌 집의 사람을 피해서 다시 서둘러서 야반도주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십년 전에 그렇게 가슴 아프게 했던 형 에서가 그 원한을 잊지 못해서 군사 400명을 데리고 출동했다는 소식에 밤잠 한 숨 못 자는 일이 있었습니다. 남의 동네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사랑하는 딸이 몹쓸 일을 당하는 고통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아내가 넷이 있었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아내는 라헬이었습니다. 다른 세 아내와 바꾸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여자들과는 비교가 안 되게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하필이면 그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던 아들이 있었습니다. 열 두 아들 중 정말로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다른 아들들 눈치도 보지 않고 요셉은 특별히 옷을 지어서 입힐 정도로 사랑했던 요셉이 심부름을 보냈는데 그만 짐승에게 찢겨 죽고 말았습니다.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야곱은 그 아들은 틀림없이 지옥에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는데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는가?’ 그 때 야곱은 그 아들이 보고 싶어서 차라리 나도 지옥에 가서 요셉을 만나겠다고 할 정도로 슬퍼했습니다. 모진 인생 죽을 수가 없어서 살았습니다. 그 아들 요셉 대신에 하나 있는 라헬이 낳은 아들 막내 베냐민, 그 아들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을 또 다시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는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인생이 죽음보다 못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야곱의 130년 인생은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야곱은 본래 아주 뛰어난 사람입니다. 비상한 사람입니다. 머리가 좋았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재산을 자기 앞으로 돌릴 때 재주를 생각해보십시오. 신풍나무, 살구나무를 갖다 대니 양들이 다 자기 것이 되었습니다. 자기 양들은 튼튼하고 외삼촌 양들은 비실비실했습니다. 머리가 뛰어났습니다. 아는 것도 많았습니다. 집념도 강했습니다. 라헬을 아내로 삼겠다고 생각하고 7년 동안 열심히 했습니다. 7년을 수일처럼 보낼 정도로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첫날밤을 지내고 보니 라헬이 아니었습니다. 7년을 더하면 라헬을 주겠다는 외삼촌에게 일주일 만에 아내를 ‘가불’ 받았습니다. 미리 결혼하고 7년 더 일 하기로 했습니다.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서 총 14년을 일했습니다. 이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만 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믿음도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형을 피해서 도망하다 들판에서 잠을 자다 꿈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깨어서 ‘하나님, 나를 지켜주시면 평생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겠습니다. 십일조도 제대로 바치겠습니다.’ 라고 맹세했습니다. 믿음도 괜찮았고 집념도 강했고 머리도 좋고 아는 것도 많았습니다.
이런 야곱이 왜 그렇게 험악한 세월, 험악한 인생이 되었습니까? 까닭이 있습니다. 너무 똑똑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똑똑하고 잘나고 많이 알고 집념도 강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기는 모자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즉 야곱은 스스로 자기 인생을 얼마든지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자기 인생에서 자기가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정 급할 때 하나님을 찾았지만 보통 때는 하나님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필요 없는 존재였습니다.
형의 손길에서 벗어나서 외삼촌 집에서 편안하게 살 때 장가를 네 번이나 가면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살림도 제법 크게 이루었습니다. 재산도 모을 만큼 모았습니다. 20년 동안 그렇게 살면서 그 들판에서 그렇게 하나님께 맹세하고 다짐했던 그 신앙 그 믿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런 야곱에게 외삼촌과 어려움이 생겼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섭섭하다는 소리를 한 마디도 아니하시고 ‘벧엘로 돌아가거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외삼촌과의 문제, 형과의 문제도 다 해결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해주셨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라도 알아야하는데 야곱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다가 살만하면 멈추고 거기 살았습니다. 더 좋으면 땅을 샀고 또 좋으면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야곱은 살만하기만 하면 어느 순간 하나님은 자기에게 없는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은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험악한 인생, 편안한 인생의 결정은 외부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환경에 따라서, 또 내가 행복하게 살겠다, 평화롭게 살겠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여기에 따릅니다.
야곱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겸손함이 없었습니다. 이런 인생을 살 것인가 여러분도 결정해야합니다. 내가 힘쓰고 애쓰지만 나에게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한계 된 존재이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없고 따라서 충분히 책임질 수 있고 충분히 능력 있는 존재에게 나를 맡기고 살아가겠다고 생각하는가 여기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삽니다. 야곱의 인생은 자기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이것을 잘못 알고 잘못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없었고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고 자기가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그렇게 못되게 속여가면서 축복받은 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아무 소용없습니다. 진짜 축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형에게 미움 받아서 부모를 떠나 도망하는 신세, 머슴살이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 인생인 사람은 이렇습니다. 재산이 많으면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좋을 때가 좀 있을 뿐입니다. 더구나 남을 속이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얻은 재산이 과연 복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세상의 주인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결단코 그렇게 되지 못합니다. 못되게 해서 모은 재산은 하나님께서는 훅 불어버리십니다. 그 재까지 날려버리십니다. 야곱은 그것 때문에 또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재산을 많이 가지고 가나안에 들어왔지만 가나안에 기근이 오니 그렇게 모은 그 많은 재산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곡식이 없는데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전쟁이 일어나면 가진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베냐민 문제도 그렇습니다. 곡식을 사려면 베냐민을 이집트로 보내야합니다. 다른 자식들이 베냐민을 꼭 데리고 올 테니 보내달라고 했을 때 야곱은 죽어도 보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베냐민은 내가 지킨다, 내가 이 아들만큼은 지킨다, 내 아내 라헬도 못 지키고 요셉도 못 지켰는데 이 베냐민만큼은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는데 베냐민을 지킬 수 있었습니까? 못 지켰습니다. 그 아들 베냐민을 지키려고 하다가 가지고 온 결과가 무엇입니까? 온 식구가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결국은 자기가 지키려고 했던 베냐민을 이집트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뛰어난 머리, 많은 지식으로 똑똑했습니다. 대단한 집념이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모자랄 것이 없는 야곱, 그러나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 자기가 하나님이 되었다가 130년 험악한 세월을 살고 말았습니다.
야곱과 아주 비슷하면서 그러나 정반대의 사람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는 사람, 록펠러입니다. 재산을 보면, 록펠러 재산을 현재의 가치로 따지면 미국 최고의 부자 빌게이츠보다 2.6배가 많았습니다. 록펠러가 죽기 직전의 재산은 미국 전체 부의 1.53%에 달했습니다. 회사 내에 십일조를 계산하는 전담하는 직원만 수십 명에 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록펠러는 독실한 기독교 사업가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이 록펠러가 변합니다. 돈이 많아지면서 점차 미국인이 가장 증오하는 기업인이 되고 맙니다. 록펠러에게 붙은 이름 ‘잔혹한 독점 자본가, 무수한 기업들을 희생시킨 악덕 기업가’였습니다. 실제로 록펠러는 노동자를 착취했습니다. 록펠러의 부가 노동자를 착취한 부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노조를 탄압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주식으로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확장했습니다. 주가조작을 했습니다.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습니다.
이러던 록펠러가 극적으로 인생전환을 합니다.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악덕기업가 록펠러가 위대한 자선가 록펠러로 바뀝니다. 록펠러 연구소,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페니실린, 녹색 프로젝트로 수많은 사람들이 록펠러에 의해서 건져집니다. 제3세계에 식량난이 상당부분 록펠러에 의해서 해결되는 엄청난 사회공헌을 합니다.
록펠러가 이렇게 극적으로 변한 데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악덕기업가는 행복하지 못합니다. 록펠러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갖가지 병이 찾아왔습니다. 기관지 등 여러 가지 병들, 신경계통의 병들, 위 병, 몸이 극도로 쇠약해집니다. 쉰다섯 살이 되어서 록펠러는 머리카락이 빠집니다. 몸이 오그라드는 희한한 병에 걸립니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꾸부정하게 됩니다. 완전히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 많은 재산을 가진 록펠러가 하루에 먹은 것은 비스킷 몇 조각, 물 몇 컵밖에 없었습니다. 검사 결과 이제 1년밖에 더 못산다고 합니다. 록펠러가 절망에 빠집니다.
이 록펠러가 어느 날 휠체어를 타고 병원 복도를 쓸쓸하게 거닐다가 공허한 눈으로 창밖을 쳐다보게 됩니다. 그때 록펠러에게 보인 것이 두 가지였다고 합니다. 하나는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늘 보는 하늘이 푸르다는 것을 록펠러는 그날 비로소 알게 됩니다. 악덕으로 돈을 버느라 하늘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는 병원 복도 벽에 걸린 액자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이러던 어느 날 병원 복도 저쪽에서 울면서 애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선생님, 틀림없이 갚겠습니다. 제발 딸을 지켜주십시오. 딸을 입원시켜주십시오.” “저도 매우 안타깝습니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병원에도 규정이 있습니다.” 병원당국자 목소리 같았습니다. 그 말을 들을 록펠러가 비서를 시켜서 뒤로 그 아이의 입원비를 지불하고 입원하도록 했습니다. 나중에 그 아이가 건강하게 되어서 퇴원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 순간 록펠러 가슴 속에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록펠러가 결심합니다. ‘다 주어야 되겠다.’ 록펠러의 나눔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55세였고 1년이 있으면 죽을 것이라고 했으니 56세면 죽을 록펠러가, 악덕기업가에서 선한 하나님의 사업가로 바뀌면서 97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했습니다.
꼭 아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겸손하게 이것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이 인정은 말로만 머릿속으로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인정하십시오. ‘그렇구나, 내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어느 날 여러분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다 늦습니다. 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없습니다. 야곱은 이런 세월을 130년 살면서 험악한 세월을 살았고 험악한 인생이 되었지만, 록펠러는 그때 바로 바뀌었습니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삶으로 바뀌어서 건강한 사람, 행복한 기업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힘으로는 내일이 아니라 한치 앞도 보지 못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하나님, 책임질 능력이 있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최선을 다하면서 지금도 나중에도 책임지시는 그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은 오류가 없습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완벽하게 여러분을 인도하십니다. 나중뿐만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지금 모든 환경과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평화로 인도하실 수 있고 나중에는 평화의 나라로 완전하게 인도하십니다.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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