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착각인가 사실인가? (창세기 49:22~26)

분당소망교회 2019. 4. 14. 07:41

  

착각인가 사실인가?

 

 

 

창세기 49:22~26

 

옛날 중국 주나라에 손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말을 감정하는 실력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당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늘의 말을 다스리는 별이 있다, 그 별의 이름은 백락이다.’ 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는데 사람들은 이 손양을 백락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 한필을 팔려고 시장에 나가서 말을 메어놓았습니다. 사흘 동안 거들떠보는 사람이 하나 없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번뜩 멋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말 감정의 대가 손양을 찾아갔습니다. 간곡한 어조로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꼭 부탁드립니다. 시장에 한 번 나오셔서 저의 말 둘레를 한 바퀴만 돌아주십시오. 그렇게만 하시고 그냥 가시면 됩니다.” 손양은 말 주인 부탁대로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 사람의 말 둘레를 한 바퀴 돌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갔습니다. 소문이 일시에 퍼졌습니다. 백락이 저 말을 눈여겨보았다는 소문이었습니다. 팔리지 않던 그 말의 값이 당장 열 배나 뛰어올랐습니다. ‘후광효과혹은 광대효과라고 합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서 이집트에 곡식 구하러 아들을 보냈던 야곱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옛날에 죽었던 요셉, 이미 죽은 지 한참 된 그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살아있고, 더구나 그 요셉이 이집트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가 되어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요셉이 자기 가족들을 이집트로 초대합니다. ‘이미 기근 2년 동안 많은 고생을 하셨고 앞으로 5년 기근이 더 있을 텐데 얼른 이집트로 들어오십시오.’ 요셉의 초청을 받아 온 집안 식구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이민을 갔습니다. 한 일흔 명 되었습니다.

야곱이 이집트로 간 지 어느덧 17년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나이가 들어 이제는 이 땅을 떠날 때가 가까워진 것을 압니다. 자식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열 두 아들을 불러모아놓고 맏이 르우벤으로부터 시작해서 열 두 아들 하나하나를 축복하는데 오늘 본문은 요셉을 위한 축복으로 그 내용이 대단합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아들딸들 잘 되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 땅의 수많은 아들딸을 위한 기도가 올라오는데 그 중에서 특이한 기도, 이 기도만큼은 하나님께서 듣고 잊어버릴 수가 없는 특별한 기도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너무 특별해서 하나님께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 받아 적어놓을 정도의 기도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냥 하던 대로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면 꼭 이런 기도는 들으실 것 같다는 기도는 다릅니다. 기도를 하여도 생각을 하면서 기도해보십시오. 먼저는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좋아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대강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들으시고 다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합니다.

 

야곱이 요셉을 위해서 한 기도가 어떤 기도인지 보도록 합니다. 먼저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22) 라고 말합니다. 무성한데 그 무성함이 샘 곁에 있는 나무의 무성한 가지 정도라고 말합니다. 샘에는 늘 물기가 있습니다. 물이 직접적으로 공급되지 않아도 샘에는 물기가 있기 때문에 그 곁에 있기만 하면 늘 공급을 잘 받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지들은 무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무성함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22) 라고 말씀합니다. 너무 무성해서 내 집에 다 있지 못하고 담을 넘어서 남의 집까지 가지가 뻗힐 정도였다, 다른 말로 한다면 그 나무에 열매가 맺혔는데 그 집안 식구들이 다 먹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 있는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그 집에 심긴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만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축복기도를 들으시고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저런 기도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어서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23, 24)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 또한 22절 기도에 못지않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원수가 있고 대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만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무너뜨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요셉을 미워해서 요셉에게 활을 쏘았는데, 요셉이 워낙 막강하고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화살이 요셉 근처에 하나도 오지 못하고 다 땅에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거기다 반대로 요셉이 쏘는 화살은 워낙 정확해서 요셉이 쏘는 것마다 백발백중 목표물에 도달하더라, 그 화살은 워낙 힘이 있어서 그 화살을 맞고 쓰러지지 않는 대적이 없다 고 말합니다. 요셉이 한 번 화살을 들고 쏘기 시작하면 그 요셉 앞에 견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축복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야곱은 요셉이 어떻게 그런 복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가 그렇게 풍성하고, 워낙 막강해서 대적할 사람이 없고 요셉이 누구를 한 번 보았다고 하면 무너뜨리지 못할 사람이 없는 복을 받았는데, 그런 복이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해서 당연하겠지만 야곱은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멈추고 생각해보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대단해도, 내가 아무리 재산도 많고 능력도 많고 힘이 많고 재주도 많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산해진미로 쌓여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여기저기 쌓여놓은 재물을 제대로 쓸 수도 없습니다. 잘한다고 자식에게 물려주어도 그것이 전부 다 독이 되어서 자식을 망치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그렇습니다. 반대로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집안에서 돌봐주는 사람이 하나 없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도와주시면 위대한 사람이 되고 놀라운 일을 한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이런 축복을 받아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되었고 앞으로도 더 될 것이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 백성들을 가나안 앞까지 인도해갔습니다. 거기서 모세가 죽었습니다. 모세의 역할을 여호수아가 물려받았습니다. 오랫동안 모세와 함께 다녔던 여호수아였지만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이끌어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위대한 어른, 모세도 그렇게 힘들어하셨는데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두려워서 겁이 나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이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을 뭉뚱그려서 말하면 이렇습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적이 엄청나게 많은데 아무도 너를 대적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쉽게 무찌를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그 말씀을 하시면서 그 말씀의 근거를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모세가 참 대단했지? 위대했지? 너는 도저히 못 따라갈 것 같지? 그런데 모세가 어떻게 위대했는지, 모세가 어떻게 그렇게 대단했는지 아느냐? 모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모세와 함께 했기 때문에 모세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너 여호수아와 함께 한다면 너도 모세 못지않게 위대한 사람,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모세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다. 내가 함께 하기만 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하면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습니다.

 

형통이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는데 형통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두 사람 있습니다. 한 사람은 요셉이고 또 한 사람은 여호수아입니다. 요셉도 참 형통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 아들을 요셉의 생애와 같이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걸릴 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 요셉이 열일곱 살에 노예로 끌려갔고 그리고 13년이 지나고 나서 소위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어떠했습니까?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모세 밑에 있을 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 가라 하면 가면 되었고 오라 하면 오면 되었습니다. 나중에 자기가 최고 사령관이 되었을 때는 풀리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최고로 형통한 사람은 주저 없이 여호수아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본론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축복하면서 그 근거를 말하는 야곱의 말에 어패가 있습니다.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24) 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전능자, 반석, 목자 모두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어떤 하나님이라고 말하는가요? 그 말 앞에 수식어로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이라고 붙어 있습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자기입니다. 지금 요셉이 그렇게 복을 받는 것은 내 하나님 덕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려고 하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 ‘너의 하나님이 너를 그렇게 사랑하시므로 너의 하나님 때문에 네가 그렇게 복을 받았다.’라고 말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야곱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까? 야곱의 어디를 보아도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태어나기 전부터 예쁜 구석이라고 없었습니다. 태어나기 전 엄마 배속에서 형과 싸워서 엄마를 힘들게 했고, 나올 때도 먼저 나오려고 형의 발목을 붙들어 엄마가 아애를 먹었습니다. 태어나서는 욕심만 부렸고 집안 분쟁만 일으켰습니다. 자기 집안 분쟁뿐만 아니라 외삼촌 집에서도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야곱은 늘 이렇게 살면서 자기가 좋고 편할 때는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야곱이 어떻게 나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더구나 요셉이 어떤 사람입니까? 복을 받고 복 위에 또 복을 받고 형통하고 하나님께서 무척이나 사랑하시는 사람이 요셉입니다. 그런 요셉 앞에서 야곱이,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기도 쉽지가 않을 텐데 어떻게 나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다음 말은 더 가관입니다. 야곱이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26) 라고 말합니다. 나의 축복이 너의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축복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감히 아브라함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소위 말한다면 내 아버지 이삭보다 할아버지 아브라함보다 내 후광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야곱이 지금 큰소리 치고 있는데 야곱이 지금 완전히 착각하고 있습니까? 완전히 헛소리하고 있습니까? 여기서 정확하게 아실 것이 있습니다. 야곱은 절대로 착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절대로 헛소리하고 있지 않습니다. 야곱은 확실히 믿습니다. 나는 이것을 확실히 믿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말합니다,

내 한평생 비록 하나님 앞에 못된 짓만 했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일만 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하실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한 번도 미워하시지 않으셨고 한 번도 떠나신 적이 없었다..’

늘 나를 챙기시고 사랑하셨다, 내가 본가에서 아버지와 형에게 그렇게 못된 짓을 했을 때, 외삼촌 집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여기저기서 잘못할 때마다 하나님은 한 번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때마다 찾아오셔서 챙겨주셨다, 심지어는 외삼촌과 외사촌이 나를 쫓아와서 내가 큰 변을 당할 텐데 그때 하나님께서 막아주셨다.’

하나님께서 말려주신 것을 보면 정말로 대단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야곱의 외삼촌에게 너 내일 야곱을 만나거든 아무 소리 하지 말아라.’라고 그냥 말씀했다면 외삼촌도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저렇게 못된 짓을 한 야곱을 가만히 두면 안 되니 손 제대로 봐야 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까지 다 생각하시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선악 간에 야곱에게 한 마디도 하지 말라.’ 즉 잘했든지 못했든지 간에 한 마디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막힐정도입니다.

 

형이 군사 400명을 데리고 야곱을 만나러 왔습니다. 400명이나 데리고 야곱을 환영하러 왔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손 좀 단단히 보려고 오는 것입니다. 20년이나 지났지만 에서에게는 화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을 향해 가다 보니 화가 자꾸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화가 없어지고 오래 전 어렸을 적 함께 했던 사랑하는 동생만 남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께서 주무르셨습니다. 야곱도 에서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에서의 화를 가라앉히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원수로 대하고, 사업할 때 거래하는 사람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면 여러분은 너무 힘쓸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만져주십니다.

야곱이 그것을 알았습니다. ‘정말로 죽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내 인생이 이럴 수 있었는가? 내가 그렇게 못된 짓만 하고 하나님도 찾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를 찾으시고 미리 챙겨주셨다, 그 정도인데 만약 내가 하나님께서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얼마나 기쁘게 들으시겠는가?’ 이것을 안 것입니다. 기도도 안 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챙겨주셨는데 내가 기도하면 틀림없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잘 해야 하나님께서 챙겨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거래이고 영업입니다. 아버지와 자식 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 같이 야곱을 챙겨주셨습니다. 아십시오. 믿음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거래가 아닙니다. 영업을 잘 해서 돈 버는 것과 다릅니다. 여러분이 예뻐서 사랑받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렇든 저렇든 이것은 내 아들이고 딸이라고 챙겨주시는 것이 부모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랫동안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늘 불평, 불만, 불순종 거기다 나중에는 우상숭배까지 했습니다. 지독하게 못되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난을 당합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하나님 사랑을 받을 길은 없다고 생각하고 완전히 절망 속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보내서 이스라엘아, 어찌하여 내가 너희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 어찌하여 내가 너희들의 기도는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 그런 소리 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너희들이 물에 빠지게 되면 내가 물속으로 쫓아 들어가서 여러분을 건져낼 것이다, 만약 여러분에게 불이 나서 화염이 여러분을 휩싸게 될 때는 내 몸으로 여러분의 몸을 보호해주겠다, 만약 여러분들이 죄를 지어서 수사관에게 신병을 인도할 일이 있을 때는 너희들 대신 다른 사람들을 내주고 너희들은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예뻐서 그랬습니까? 다시 아십시오. 예쁜 구석은 없었습니다. 잘 한 것도 하나 없었습니다. 야곱도 그랬고 이스라엘 민족도 그랬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이스라엘은, 야곱은 하나님의 자식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자신 있게 큰소리치는 것이 이것입니다. ‘나는 부족하다, 정말로 부족하다, 나는 못한 것이 너무 많다, 잘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내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 세상을 운행하시는 세상의 주인이신 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고 그 아버지는 나를 정말로 지극히 사랑하신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님을 나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가 기도하면 들으신다.’ 이 믿음이 확실하게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 기독교신자들이 제일 강하게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말씀이 이것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복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잘 하는 것이 있습니까? 예쁜 구석이 있습니까?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었더니 더 잘 먹고 잘 살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를 크게 짓기만 하려고 하고, 사람들만 모으려고 하고, 하나님 말씀이 아닌 다른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더 잘 누리고 오래도록 누리려고 별별 행패를 다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만한 건수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놓고 기도해야합니까?

하나님 우리는 부족합니다. 정말로 잘못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 아닙니까?’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 대한민국에는 진짜로 아버지로 모시고 있지도 않고 제대로 인정도 하지 않지만, 그러나 적어도 이름으로, 말로만이라도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여든, 아흔 노인들까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잘 믿든지 못 믿든지 이런 사람이 천만 명이 넘는데 하나님, 이 나라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도하려면 이렇게 기도해야합니다. 북쪽에 있는 사람들, 더 위에 있는 사람들, 동쪽, 남쪽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자기 나라만 전쟁이 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든 별 상관 하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이들 앞에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누구에게 잘 보이시렵니까? 여러분도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강아지처럼 꼬리 흔들어대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돌아온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누구를 의지해야합니까? ‘하나님, 우리는 잘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복을 받았음에도 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그저 교회만 잘 지으려고 하고 목회자들은 어떻게 하든 이름이나 내려고 하고, 이 재산 저 기득권을 자식들에게 넘겨주어 내 자식들만 잘 살게 하려고 한 것 용서해주십시오.’ 그런 노래가 찬송가 545장입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이 노래를 꼭 죽을 때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도 해야 합니다.

3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할 터이니

영광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내가 부족하여도 천국이 나를 영접할 텐데 영접하는 까닭은 그 하늘나라 주인이, 하늘나라 임금이 내가 잘 믿든지 못 믿든지 간에 입만 열만 부르는 예수님이 천국의 주인이고 임금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잘해서 받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런 하나님을, 그런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나를 받아주신다는 말입니다.

 

야곱의 착각이 아닙니다. 신자의 착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를 정말로 사랑하시고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신자의 권세, 신자의 능력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더 잘해야 하나님께서 주시고 예쁘게 해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믿는가? 내가 정말로 믿는가?’ 이 믿음이 얼마나 강한가에 따라서 신자의 권세도 신자의 능력도 달라집니다. 야곱은 이것 때문에 그렇게 당당하게 큰소리치면서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야곱의 축복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드릴 말씀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정말로 내 아버지라고 믿습니까? 말만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버지라고 믿습니까? 너무나 사랑하시는 아버지, 물속에서도 불속에서도 건져주시는 아버지임을 믿으십니까?’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할 때가 없어서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오면 몸이 얼음덩이가 되어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아버지가 항상 방안에 누워계셨습니다. 제가 추운데서 공부하고 돌아오면 저를 이불 속으로 부르십니다. 옷도 제대로 안 입으신 아버지는 그 속 몸으로 제 언 몸을 녹여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더 하십니다. 예수님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잘하면 더 좋겠지만 제대로 믿으면 더 좋겠지만 혹시 그것이 좀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다, 그 아버지는 나를 너무 사랑하신다는 것만 믿으면 됩니다. 이렇게만 하면 여러분의 기도는 그 누구보다도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