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지금 그 다음, 또 그 다음 (마태복음 14:1-11)

분당소망교회 2019. 11. 8. 10:23




 
                                                  지금 그 다음, 또 그 다음



마태복음 14:1~11═══════════════════



여러 연구들을 종합하면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못한 사람, 불행한 사람들의 실상은 이렇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 여건이 되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불행한 사람들,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여건 때문에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조금 풀어서 말하면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즐거운 일들만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불안, 걱정, 근심 두려워할만한 일들이 많다. 그러나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행복하게 산다. 까닭은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한다면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왜 똑같은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불행하게 살아가는가? 좀 미안한 말이지만 불행하게 살려고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의 차이는 아주 단순합니다. 생각하는 습관의 차이입니다. 태어날 때, 자랄 때 환경이나 여건 문제보다도 자라나면서 어떤 습관이 형성되었는지 이것이 그것을 좌우한다는 말입니다.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은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조그마한 일만 있어도 탓을 합니다. 때로는 자기 탓을 하기도 하지만 거의 대체로 다른 사람 탓을 합니다. 아내 탓하고 남편 탓하고 나라 탓하고, 주변 이웃 탓하고 회사의 높은 사람들, 동료들을 탓합니다. 그냥 지나쳐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로 만들어서 스스로 문제를 둘러쓰고 삽니다. 줄낚시를 예로 들면 여기도 저기도 전부 다 낚시 바늘을 걸어놓고 그런 문제를 덮어쓰고 사는 것입니다. 작은 일을 점점 더 크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문제가 큽니다. 특히 이런 분들은 불안감이 많습니다. 늘 일들을 불안하게 생각하게 불안감을 키워나갑니다

성경에 헤롯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인데, 맨 처음 등장하는 헤롯은 헤롯 대왕입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헤롯 왕은 아주 포악했고 심한 의심증이 있었습니다. 나이 먹을수록 포악도 의심증도 점점 더해갔습니다.
이 자리에서 잠깐 멈추고 다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연세 잘 드십시오. 젊었을 때 괜찮다가 점점 추하게 나이 드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젊었을 때는 시원찮았는데 세월이 가면서 점점 더 좋아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추해지는 것이 아니라 또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변해갑니다.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합니다.
헤롯대왕은 나중에는 ‘살인 노망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반역이 의심된다면 즉각 처형했습니다. 처형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암살을 자행했습니다. 일반 다른 사람들이 암살된 것은 물론이고 자기 아내를 암살시켰습니다. 장모, 처형도 암살했습니다. 자기 아들 셋도 암살시켰습니다.
헤롯은 당연하게 백성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했습니다. 힘 있다고 무섭다고 존경합니까? 이런 사람일수록 더 존경받고 싶지만 사람들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헤롯은 어떻게 하면 존경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백성들에게 성전을 잘 지어주면 자기를 존경하겠다고 생각하고 멋진 성전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성전 짓는 기간이 무려 46년간이었습니다. 불가사의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성전을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하지 않고 헤롯 성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백성들은 헤롯을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헤롯대왕은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었습니다. 70세 가까이 되었을 때 아주 악랄한 명령을 내립니다.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사람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어 놓고, 자기가 죽을 때에 감옥 속에 있는 존경받는 사람들을 다 처형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들의 죽음에 사람들이 울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가 죽고 난 뒤에 시민들이 울어주면 좋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울어줄 것 같지 않아 이처럼 희한한 방법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헤롯대왕이 그토록 죽이려고 했던 것도 그 어린 아기 예수님이 자기 자리를 빼앗아갈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다음에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릅니다. 헤롯대왕은 예수님 탄생하시고 난 뒤 얼마 있지 않아서 죽었습니다.
헤롯은 죽기 전에 나라를 셋으로 분할하여 세 아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는 헤롯 아켈라오라는 아들에게 주고, 갈릴리 동쪽은 헤롯 빌립이라는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은 헤롯 안디바라는 아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오늘 1절에 나오는 분봉왕 헤롯은 이 헤롯 안디바입니다.
헤롯 안디바는 자기 아버지에게 아주 못된 것을 많이 이어받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젊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좋은 것을 배우십시오. 부모님들에게 사실 모자라는 부분도 있고, 괜찮은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모자라는 부분은 닮지 마시고 좋은 점만 닮으십시오. 이러려면 부모님들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비난하면 비난할수록 점점 더 배워갑니다. 부모님들의 좋은 부분을 칭찬하십시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덜 좋은 사람, 나쁜 사람도 있는데 비난하면 비난하면서 배워갑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욕하면서 그대로 닮아간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좋은 것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는 헤롯대왕의 못된 것만 많이 이어받았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본래 나바티아라는 상당히 큰 아랍 왕국의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이 헤롯 안디바가 동생이 살고 있는 로마를 방문했다 동생의 아내를 보고 정신이 나갔습니다. 그 동생 이름이 빌립입니다. 그는 빌립의 아내 제수씨를 보고 너무도 미인인 것에 마음이 빼앗깁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지 온갖 궁리를 하고 유혹합니다. 한편 제수인 헤로디아는 헤롯의 권력이 탐이 났습니다. 자기 남편은 돈은 많은데 권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데, 권력 있는 남편의 아내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헤로디아는 권력이 탐이 났습니다. 헤롯 안디바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결국 헤롯 안디바는 자기 아내와 이혼을 하고, 헤로디아는 자기 남편과 이혼하여 제수와 시숙이 결혼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일은 헤롯 안디바가 제수인 헤로디아와 결혼하고 난 뒤의 일입니다. 헤롯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대단한 소문이었습니다. 천형이라는 나병환자를 쉽게 고치고,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는 중풍환자도 말 한마디에 고치고, 맹인이 보고 벙어리가 말하는 것은 일 같지도 않게 하시고, 손 마른 사람이 평생 마른 손으로 살았는데 손이 완전히 펴지도록 했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 소문을 들은 헤롯이 듣자마자 단 번에 저 예수는 지난번에 내가 처형한 세례 요한이 환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헤롯이 그렇게 생각한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헤롯과 헤로디아가 그렇게 결혼한 것에 대해서 세례요한이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세례요한이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은 존경하는 세례요한이 왕을 비난하자 자신들도 왕과 왕비를 비난하였습니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헤롯 안디바에게 까지 들리고 그 아내도 알게 됩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헤로디아는 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기회만 되면 세례요한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두고 있었는데, 헤롯의 생일잔치가 벌어질 때 헤롯의 아내 헤로디아는 세례요한을 죽일 기회로 삼았습니다. 헤로디아에게는 헤롯과 결혼할 때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살로메이고 상당히 미인이었습니다. 당시 나이가 열여섯, 열일곱 정도 되었는데 상당히 성숙했습니다. 헤롯은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차지한 욕심에 그치지 않고, 의붓딸 살로메까지 탐을 냅니다.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만나면 욕심이 점점 더 증폭되어갑니다. 헤로디아는 헤롯왕의 욕심을 이용해서 세례요한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딸 살로메가 헤롯에게, 잔칫날 내가 만약 아빠가 좋아하는 춤을 추게 되면 내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겠는지 물었습니다. 살로메는 헤롯으로부터 흔히 말하는 것처럼 나라 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살로메는 잔치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혼을 쏙 빠지게 하는 관능적인 춤을 추었습니다. 춤을 끝낸 살로메는 어머니 헤로디아와 모의한 대로 헤롯에게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했습니다. 쟁반에 담아서 달라고 했습니다. 이 부탁을 들은 헤롯 왕은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다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고민한 까닭은 자기도 죽이고 싶었지만 세례요한을 처형하면 그를 선지자로 추앙하고 있는 백성들의 원성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틀림없이 들어준다고 살로메에게 약속했습니다. 거기에 살로메를 차지하고 싶은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세례요한을 처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충성스런 종 세례요한의 인생은 그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합니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동생의 아내와  결혼한 사람, 권력자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 멀쩡한 남편을 버리고 남편의 형과 결혼하고 거기다 하나님의 종을 그렇게 악독하게 처형한 헤롯과 그 아내 헤로디아가 끝까지 행복하게 살았을까?’ 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빌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을 볼 때 혹은 세상의 일을 볼 때 단면만 보지 말고 길게 보십시오. 실제로 여러분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길게 보십시오. 일도 사람도 길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헤롯과 헤로디아는 끝까지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는 헤롯이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해서 아내와 이혼했을 때, 아랍의 왕인 장인이 딸의 이혼소식에 크게 분개했습니다. 사위와 전쟁을 벌입니다. 나바티아라는 왕국은 상당히 큰 왕국이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헤롯은 비참하게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습니다. 로마군대가 목숨만은 건져주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온갖 치욕과 수모를 다 당했지만 분봉왕이라는 자리는 겨우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생깁니다. 헤롯 대왕으로부터 나라를 이어받은 세 아들은 모두 왕으로서의 지위를 받지 못하고, 로마 황제로부터 일개 영주에 불과한 분봉왕의 지위를 받았습니다. 당시 왕과 분봉왕은 그 지위에서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납니다. 그 세 아들 중에서 요단 건너를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빌립이 죽습니다. 로마 황제는 그 자리에 헤롯가의 아그립바라는 사람에게 주는데, 분봉왕이 아니라 정식 왕이라는 직위를 주게 됩니다. 그 사실을 헤롯의 아내 헤로디아가 듣게 됩니다. 아그립바는 헤로디아의 친 오빠였습니다. 헤로디아 생각에 자기 오빠와 결혼한 올케는 정식 왕의 아내이고, 자기는 힘들게 힘들게 해서 새로 결혼하였는데도 분봉왕의 아내였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남편을 졸랐습니다. 헤롯이 아내의 등살에 견디지 못했습니다. 많은 뇌물을 준비하고 로마에 가서 황제를 만나겠다고 모든 채비를 차리고 있을 때, 헤롯 안디바의 그 일을 왕으로 임명받은 아그립바가 전해 듣게 됩니다. 아그립바 또한 나 이외 다른 사람이 왕이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자기만 왕이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분봉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터라, 선수를 쳐서 로마 황제를 만납니다, 헤롯 안디바가 황제에게 반역을 꾀하려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로마 황제는 아그립바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헤롯 안디바는 모든 지위를 다 빼앗겼습니다. 영토와 재산이 다 몰수되고 귀양을 가게 됩니다. 헤로디아와 함께 귀양지에서 처량하게 최후를 마감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잠언 5장 22절에서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고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에 생각해볼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그렇게 충성스럽게 하다가 오로지 하나님의 일만 하다가 비참하게 죽은 그것도 목이 잘려서 쟁반위에 목이 담긴 세례요한을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렇게 충성스러운 종의 인생을 과연 그렇게 끝나게 하고 마시는가?
실제로 우리 눈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십시오. 이 세상에 있는 육체의 일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세례요한의 생명은 절대로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서 70년, 80년 100년 살아가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세례요한은 헤롯에게 있어서 계속해서 살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세례요한은 살아있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서 그 눈을 크게 부릅뜨고 헤롯을 늘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언젠가는 세례요한이 나를 무섭게 후려칠 것이고 나는 세례요한에게 크게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삽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난 뒤에 즉각적으로 드디어 세례 요한이 예수를 통해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례요한은 헤롯에게 살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헤롯에게 뿐만 아니라 또 당시뿐만 아니라 이천년 동안 수십억의 기독교 신자들에게 살아있습니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살아있습니다. 세례요한이라는 존경스러운 이름으로 살아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세례 요한은 기독교인들의 뇌리에 아름다운 사람, 귀한 사람, 참된 하나님의 종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참된 하나님의 종, 무엇보다도 세례요한은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참된 하나님의 종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훌륭한 자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5:26-27)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무너져가고 있는 한국교회를 생각했습니다. 먼저 저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께 죄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너무도 못난 하나님의 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입으로만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그렇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그리워집니다. 또 한편으로는 기대도 됩니다. 세례 요한과 같은 다음 귀한 목사님들이 좀 나서서 한국 교회를 끌어가고 우리 분당소망교회도 끌어가주시기를 바랍니다. 세례요한같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여러분 모두의 사랑을 받으면서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이끌어갈 목사님을 그리워하고 기대해봅니다.
 
인생은 현재의 인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이후의 인생이 훨씬 더 길고 계속됩니다. 인생은 절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전도서 12장은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4) 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심판하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