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귀한 것은....
열왕기상 6:2~13
옛날 영화 하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960년대 중간쯤 나온 영화인 듯합니다. 제가 본 것이 아마 그때쯤인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찾아보았는데, 나오기는 하는데 다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어차피 영화는 픽션이니 제 머리 속에서 좀 각색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것을 나누는 것이 낫겠다 싶어 제 머릿속에 있는 그 영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막 끝났을 때, 미모의 여인이 자전거를 타고 있는 어린 아이를 만납니다. 아이 아빠는 당시 인기 절정의 테너 가수였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필요하던 남자와 전쟁으로 약혼자를 잃은 여인 두 사람은 결혼을 합니다. 어느 날 여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전사한 줄 알았던 약혼자였습니다. ‘신문을 보고 당신이 결혼한 것을 알았다. 나는 전쟁 중에 부상을 당했다. 여전히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기다린다. 우리 옛날로 돌아가자. 어느 날 몇 시 어디로 나오라. 우리 함께 떠나자.’
참으로 공교롭게도 전화가 혼선이 되는 바람에 남편이 두 사람의 통화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너무도 애틋한 사연을 알고는 막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만나기로 약속한 두 시간 전에 남편의 연주회가 시작됩니다. 공연을 하는 남편은 자기 아내가 공연장에 오는지 오지 않는지 그것만 기다려집니다. 다른 것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아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참 후 애를 태우고 있던 남편이 공연장에 나타나는 자기 아내를 보게 됩니다. 남편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무대에 올라가고, 한 곡, 두 곡 아리아를 부를 때마다 청중들은 열광합니다. 그러나 연주회 중반 무렵, 한참 연주 중인 남편의 눈에 아내가 가방을 들고 조용하게 일어나는 모습이 보입니다. 마침 그때 남편이 부르는 노래가 물망초입니다.
「날 잊지 말아라, 내 마음에 맺힌 그대여, 밤마다 꿈마다..」관중들은 성악가의 그런 사연을 모릅니다. 떠나가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처절한 가슴을 안고 눈에 눈물을, 가슴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남편, 아무것도 모른 채 관객들은 감동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성악가에게 뜨겁게 브라보를 외칩니다. 노래가 끝나자 청중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화려한 무대 조명이 꺼지고 남편은 힘없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누워서 엄마,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이가 엄마가 어디 갔느냐고 엄마를 찾습니다. 아빠는 아이를 달래며 자장가를 부릅니다. 슬픔에 잠겨있던 아이가 갑자기 환한 얼굴로 아빠 뒤를 향해 ‘마마’ 하고 소리칩니다.
오래 전 옛날 이 영화는 저에게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 후 저에게 아주 짓궂은 질문 하나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랜 세월동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아내가 돌아온 것이 남편을 사랑해서였을까? 아니면 어린 아들 때문이었을까?
가끔 하나님도 짓궂으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지 4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습니다. 건축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버지 다윗이 준비해둔 것 때문이었습니다. 넉넉한 건축비, 건축자재 그리고 이웃 나라 두로 왕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그 성전이 소위 솔로몬 성전입니다.
솔로몬 성전에 있어서 아주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라는 7절 말씀입니다. 그만큼 솔로몬이 성전 건축에 정성을 다하였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이 성전 외부 공사를 다 마쳤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더 많은 힘과 시간이 걸리는 내부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 말씀이 솔로몬에게 내려왔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라는 11절 말씀부터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어보면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지금 한참 성전건축을 하고 있는 솔로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무언가 마땅치 않다는 심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하나님 마음이 불편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러서 그 큰 공사를 하고 있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솔로몬에게 ‘솔로몬아, 너 참 귀한 일을 한다. 내 성전을 건축한다고 하니 고맙다. 더구나 성전 속에서 망치 방망이 연장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정성스럽게 하니 더욱 고맙다. 그런데 솔로몬아, 나는 성전건축을 대단하게 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했다,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고 귀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공사비와 재료비의 거의 대부분이 아버지 다윗이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습니다. 노동력은 국민들의 부역으로 다 감당했습니다.
‘이에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 가운데서 역군을 불러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만 명이라’(왕상5:13) ‘솔로몬에게 또 짐꾼이 칠만 명이요 산에서 돌을 뜨는 자가 팔만 명이며 이 외에 그 사역을 감독하는 관리가 삼천삼백 명이라’(왕상5:15-16) 라는 말씀을 보면 전부 국민들의 부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웃나라 두로 왕이 흔쾌하게 좋은 목재 그리고 뛰어난 기술자를 보냈는데 그것도 솔로몬 때문에 보낸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 때문에 보냈습니다. 다윗은 이미 죽었지만 다윗을 보고 보낸 것입니다.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의 신하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으니 이는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왕상5:1)
물론 솔로몬도 보탰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탰다고 하더라도 솔로몬이 보탠 모든 것은 국민이 낸 세금입니다. 세금 내면서 좋아할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내 돈 아닌 남의 돈, 국민들의 노동력,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한다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자주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생색은 자기가 다 냅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문제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정말로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 정말로 국민들을 사랑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돈을 써도 괜찮습니다. 쓸 수도 있습니다. 국민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또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쓴다면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하는 것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인가? 국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인가? 이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 그러나 솔로몬은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고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속된 말로 한다면 입만 가지고 성전건축을 한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 너는 성전 건축을 단지 하나의 일로 그것도 너의 아버지가 시켰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하는 것 같구나.’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 씁쓸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너는 네 아버지 다윗과는 무언가 많이 다른 것같이 느껴지는구나.’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 성경 속에서 들립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을 보겠습니다. 힘들게 왕이 되었습니다. 나라 안의 문제, 나라 밖의 문제를 다 정리하고 난 뒤에 맨 처음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20년 동안 시골 개인 집에 방치되어있던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늘 빨리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와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가 나라가 안정이 되자마자 자기 왕궁으로 하나님의 궤를 모시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다윗은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모릅니다. 궤가 여섯 걸음 옮길 때마다 제사를 지냈습니다. 다윗이 기뻐 춤추는 모습을 국민들이 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국민들이 보든 말든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한없이 기뻐서 춤을 추는데 옷자락이 들려서 속살이 다 보일 정도로 기뻐하면서 춤을 추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다 보십니다.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저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하셨을 것이고, 매우 기쁘셨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 일은 하나님이 시키신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종이 와서 부탁한 것도 아닙니다. 다윗 마음속에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한 건축은 이전에 자기 아버지가 부탁했습니다. 하나님께 자기가 성전을 짓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안 된다, 네 아들이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하고 아들 솔로몬이 건축할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준비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것이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요, ‘나의 기도’가 될 때 비로소 귀한 것이고 가치가 있습니다. 건축을 아무리 잘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건축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면 귀한 것입니다. 헌금을 아무리 많이 해도 의미가 없는 헌금이 있고, 형편이 되지 않아서 다른 사람보다도 월등히 적게 해도 그러나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의 예배, 찬송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들 모든 봉사가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심정으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을 하나 하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토록 솔로몬이 정성을 다해서 짓고 있는 성전 그 자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한 마디도 칭찬을 안 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왕상6:11-12)
보통 약간의 칭찬을 하고, 그 뒤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라는 12절 말씀을 다른 번역 성경에서는 ‘네가 짓는 이집 말인데’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조금 더 다른 말로 표현하면 ‘네가 지금 건축한다고 하니 내가 하는 말인데’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말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말씀을 하시기 위한 ‘말머리’로만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건축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솔로몬아, 나는 성전, 예배당, 교회 건물 그런 건축 좋아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 건물 짓는 것, 성당 건물 짓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제들이나 목사들 그리고 극히 일부의 신자들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시기 까지 했습니다. 맨 처음 다윗이 하나님의 집, 성전을 건축해야겠다고 하였을 때, 하나님의 종 선지자가 듣고 그런 일이라면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선뜻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너 빨리 가서 다윗에게 전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삼하7:4-7)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만약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정말로 좋아하신다면 누구에게 하라고 하셨을 것 같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누가 해주기 바라겠습니까? 누구든지 자기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해주기 원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을 좋아하셨다면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다윗이 그것도 자기가 지으려고 할 때 말리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렇게 사랑하는 다윗과는 크게 다른 길로 간 솔로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 다음 하나 또 짚어볼 것은 하나님께서 성전건축 중에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 내용입니다.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12-13절)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시면서 눈여겨보실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과 그 축복하는 이유, 근거가 무엇인지입니다. 솔로몬이 지금 짓고 있는 성전 때문에 내가 약속을 지켜주고 복을 내려주겠다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보십시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옛날 사랑하시던 하나님의 사람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다 지켜주겠다. 그리고 내가 이스라엘에 있으면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근거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그 근거를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12절)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건축을 잘했으니 또는 앞으로 건축을 잘하면 이라는 말씀은 일체 하지 않습니다.
다시 확인하실 것은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은총과 관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전을 얼마나 대단하게 지었든지,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었든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칭찬하든지 간에, 성전건축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어떤 큰일을 하고 어떤 위대한 일을 했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헤롯이 46년간 지은 대단한 성전에 가셨습니다.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에 포함되는 그 예루살렘 성전에 제자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자랑스러웠습니다. “선생님, 얼마나 대단합니까?” 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는지 성경 그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24:2)
이 말씀에는 두 가지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미래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잘못 살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성전을 내가 부숴버리겠다는 말씀이고, 또 하나는 성전 자체는 아무 귀한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귀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에 나옵니다.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고’,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이라고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하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입니다. ‘너희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면’입니다. 건축이 아니라, 돈을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잘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를 사랑하면 내가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해주겠다, 약속도 지키고 복도 내려주고 너희들과 함께 하면서 너희 나라 이스라엘을 지켜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살아계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살아계신 부모님에게는 찾아뵙기도 하고 때때로 봉투도 드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챙기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 다 괜찮습니다. 그러나 아실 것은 그 자체는 우선 고맙고 좋을지 몰라도 별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님께 정말로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가? 아내를 정말로 사랑하는가?’입니다.
오늘 새벽에 사무실에 나와서 이런 말, 저런 글을 보다가 어쩌다 5월에 나오는 ‘어머님 노래’ 가사가 적힌 글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다 한 분이 ‘내가 어머니 계실 때 왜 그렇게 못했던가?’ 라고 땅을 치면서 후회하는 글을 썼는데, 글을 가만히 읽어보면 그 분이 효도를 못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효도를 잘 했을 것 같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느냐? 정말로 사랑하느냐? 입니다. ‘고맙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이런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배드리는 것, 헌금 하는 것 다 좋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행복은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셨든지 살아계시든지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할 때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하는 거기에 행복이 있고, 아내에게 늘 고맙게 생각하는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행복은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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