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 (창세기 46:1-7)

분당소망교회 2020. 7. 21. 13:18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

 

 

 

창세기 46 :1~7 ═══════════════════

 

 

마더 테레사의 초창기 일이라고 알려진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거룩한 꿈을 갖게 된 테레사 수녀가 선배 수녀에게 말했습니다. “수녀님, 저는 3페니로 고아원을 세우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3페니는 현재 환율로 단순 환산하면 50원이 채 안 되는 돈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선배 수녀가 웃으며 말합니다. “테레사 수녀님, 3페니를 가지고는 고아원을 지을 수가 없어요. 3페니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테레사 수녀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말합니다. “알아요. 그러나 3페니와 하나님의 도움이 있다면 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한평생 주님과 함께 한 테레사의 그 꿈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그 많던 문제가 다 끝났습니다. 20년 전 원수가 되었던 형 에서와의 문제, 참 골치 아픈 일이었습니다. 형제간이었지만 원수도 보통 원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죽이겠다는 원한이 가득했던 형 에서와의 문제도 다 끝났고, 외삼촌과의 문제도 끝이 났습니다. 참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냥 외삼촌이 아니라 자기 아내 넷 중에 두 아내의 아버지인 장인이었습니다.

또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서 곡식 구하러 이집트로 자식을 보냈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식 하나가 인질로 붙들렸습니다. 이전에 그렇게 사랑하던 아들 요셉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던 야곱은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트라우마가 다시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 모든 문제가 해결 났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사랑했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냥 살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초강대국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는 꿈같은 소식도 듣습니다. 아직도 꿈만 같은 요셉의 소식을 이제 눈으로 확인하러 떠납니다. 그것이 꿈이 아니라 생시인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 요셉이 보낸 황금마차입니다. 그 황금마차를 타고 야곱은 이집트로 출발합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이스라엘에서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드린 제사가 어떤 제사였는지 성경에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를 받으시고 기분이 좋으셨는지 최고의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답은 모두 다섯 가지였는데, 다섯 가지 하나 하나가 모두 야곱이 가장 원하던 응답이었습니다.

첫째는,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집트에서 너의 집안은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그것을 내가 해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망하지 않고 너의 집안이 큰 민족이 되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제일 바라고 바라던 것으로 하나님 당신께서 야곱과 함께 이집트로 같이 내려가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네 번째로는 반드시 너를 인도해서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오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고향도 없어지고 완전히 타국민이 되어서 이민 살이 해야 하기 때문에 집안이 없어지는 일이 있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있는 야곱에게 그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 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너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손으로 네가 눈감을 때 너의 눈을 감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야곱에게 있었던 당장 가장 두렵고 또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집트로 내려가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가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들이 살아있다고 하니 확인하러 가는데 다른 가족들은 그냥 두고 자기하고 다른 아들 한 둘과만 가서 요셉을 만나고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오는 것이 맞는지 걱정이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로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 많은 식구들을 다 데리고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지금 가나안에 흉년이라서 어렵긴 하지만 이 식솔들을 다 데리고 갔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온갖 궁금하고 두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야곱에게 트라우마가 하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옛날에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호되게 당한 일이 생각났습니다. 야곱 나이 열다섯 살 때까지 아브라함이 살아있었으므로 당사자인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직접 듣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가나안에 든 흉년 때문에 이집트로 내려가서 살려고 했다가 아내를 동생이라고 했다가 가정이 파괴될 뻔했던 그 위기의 사건이 과거에는 나와 별로 관계없는 사건이었고 할아버지만의 일이었는데 이제는 할아버지의 그 트라우마가 자기에게로 내려왔습니다. 나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친히 대답해주셨습니다. 야곱이 하나하나 꺼내서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야곱의 그 깊은 속을 다 아시고 하나하나 대답해주셨으니 이것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옛날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이집트에서의 그 위기의 순간을 야곱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를 동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그럼 잘 되었다. 자네하고 나하고 처남매부지간이 되자그리고는 사라를 궁궐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야소리도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가 끌려간 궁궐 담벼락에 기대앉아서 말 한마디 못하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처절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을 것이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잊어버렸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너무 지치면 기도도 안 되고 찬송도 안 됩니다. 기도하면 되고 찬송하면 된다고들 합니다. 옳은 말이고 정답이지만 너무 힘들고 지치면 그것조차 잘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꼭 그랬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무섭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은 궁궐밖에 있는데 하나님께서 궁궐 안에 들어가셔서 바로의 집을 뒤흔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너 아브라함의 아내에게 손대기만 하면 네 집안을 박살내겠다, 빨리 돌려주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무섭게 하셨던지 바로가 그야말로 식겁을 했습니다. 바로는 사람들을 불러서 빨리 아브라함을 찾아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궁궐밖에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더니 바로가 크게 화를 내면서 당신 때문에 나 죽을 뻔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가?” 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습니까? 이런 말을 들을 때 나같이 실수 많은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해주시면 정말 좋겠다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야곱도 그런 일을 체험하기는 했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도망 나왔을 때였습니다. 외삼촌이 뒤늦게 알고 사람들을 데리고 추격했습니다. 내일이면 붙들려서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는 그 밤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외삼촌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몰랐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궁궐 속에 들어가셔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외삼촌에게 나타나셔서 똑같이 역사하셨는데 아브라함의 일과 똑같습니다. “너 라반, 야곱이 잘했든지 못했든지 한 마디도 하지 말라.” 이 말씀을 외삼촌에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야곱은 당사자인 외삼촌에게 들었습니다. 정말로 감격했습니다.

또 이런 일도 경험했습니다. 20년 전에 원한을 사서 원수가 되었던 형 에서를 만날 수밖에 없었을 때였습니다. 두렵고 겁이 나고 떨립니다. 워낙 안 좋게 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때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만난 그 사람이 군대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사자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가 군대를 데리고 볼일이 있는가보다 생각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난 후 형 에서를 만나러 갔습니다. 무척 떨렸습니다. 형 에서를 멀리서 보고 큰절을 하고 뇌물을 보냅니다. 한참 가다 절하고 또 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옛날 팥죽으로 장자를 사서 자기가 형이 되었는데도 뭐라고 합니까? “내가 형님을 뵈니 하나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지금 누가 형입니까?

그런데 너무나도 겁났던 그 일이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형이 야곱을 보자 쫓아와서 사랑하는 동생으로 안아주었습니다.

그때 야곱이 깨닫게 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풀렸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을 때, 올 때 하나님의 사자들이 군대를 끌고 가는 것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자들이 에서에게 야곱에게 손대지 마라!’ 외삼촌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자의 말씀을 듣고 에서가 동생을 붙들고 안은 것입니다. 야곱은 그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집트로 가는 길에는 그럼에도 또 겁이 납니다. 겁나는 사람은 이래도 저래도 겁이 납니다. 형은 형입니다. 외삼촌은 외삼촌으로 피붙이고 두 아내의 아버지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이집트는 그와는 다릅니다. 전혀 낯선 사람들이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만가지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거기서 무슨 변을 당하지는 않을까? 아내와 자식들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힘들게 모은 재산을 몽땅 빼앗기고 거덜 나서 빈털터리가 되어서 돌아오게 되지는 않을까? 나이 일백 삼십에 험한 꼴 당하지는 않을까? 눈 곱게 감고 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야곱에게 관건은 딱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가나안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 것처럼 이집트에서 지켜주시겠는가? 옛날에 하나님께서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지켜주셨듯이 나를 지켜주실 것인가? 온갖 생각으로 골몰해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최고의 답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집트 가는 길에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볼 때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옛날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 똑같이 이집트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똑같이 흉년 때문에 이집트로 가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과 결과는 세 사람 모두 다릅니다.

먼저 할아버지 아브라함 때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을 때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한 믿음의 사람이었는데도 하나님께 묻지 않고 그냥 갔습니다. 그냥 갔다가 호되게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구해주셨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바쁘시게했습니다. 함부로 하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 아버지 이삭 때입니다. 똑같이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삭도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출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어떻게 보셨는지 한 번 짐작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만히 보니 저것은 아닌데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예 미리 나타나셔서 이삭에게 가지 말라고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가지 않고 여기서 그냥 살면 내가 너와 함께 하겠고 너에게 복을 주겠다.’ 라고 당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이렇게 보았습니다. 미리 좀 챙겨주어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아예 내려가지 못하게 막아주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내려가지 않았고 그 일은 없었던 것으로 끝났습니다.

 

야곱도 똑같은 흉년 때의 일입니다. 이집트는 풍년이라 풍성했습니다. 거기다 야곱에게는 지금 이집트에 일이지하 만인지상의 총리 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보낸 황금마차도 대기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이집트로 가야할 이유, 갈 여건이 충분하고 완전하게 갖추어졌습니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기독교인들이 크게 조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간혹 무엇을 보더라도 하나님 뜻이 분명하다고 판단될 그때에 하나님 뜻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기도도 아니 하고 그냥 혼자 알아서 하는 일이 있는데, 이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잘 아십시오. 옳다고 하더라도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마음 바꾸시면 어려운 문제가 생겨납니다. 하나님 쳐다보지 않고 내 머리로 내 지혜로 내 경험으로 내가 판단하는 것으로 할 때 걱정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모든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물어보지 않아도 하나님 뜻이 분명할 것 같은데, 충분히 하나님 뜻이라고 확인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때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물었던 이 야곱, 하나님께서 그 야곱의 제사를 받으시고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 친구가 이제 저 정도 믿음이 되었구나.’ 하나님께서 더 이상 단련을 시키지 않고 고생을 시키지 않아도 될 정도의 수준에 올라와 있는 야곱을 보고 하나님께서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대답해주셨습니다. 내가 함께 가겠다고 약속해주시고, 내가 이런 복 저런 복을 주겠다고 멀리까지 다 약속해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을 보면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던 야곱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은 할아버지보다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신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가질 관심은 그랬던 야곱이 어떻게 이렇게 성숙한 야곱이 되었는가?’ 라는 것입니다. ‘어떻게라는 질문에 분명히 답이 될 만한 말이 있습니다. 야곱 이름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주셨습니다. 너 이제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에는 도둑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 너 지금껏 사람들하고 씨름 많이 했지? 이제부터는 나와 씨름하자. 너 이름을 바꾸고 평생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으로 살라!’고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름을 받고서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세상 붙들고 사람 붙들고 씨름했습니다. 여전히 세상이 좋았고 자기 머리가 대단한 줄 알았습니다. 자기 재주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과 씨름은커녕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서 잘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머리가 좋은 것, 환경이 좋은 것, 좋은 학교에 들어간 것 그것이 꼭 복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 하나만으로 복이 되지 않습니다. 잘못되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화가 될 수 있습니다.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확실하게 아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세상과 씨름하는 동안 행복이 없었습니다. 평안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넷이나 있었고 자식이 열서너 명이나 됩니다. 재산도 넉넉했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행복이 없었습니다. 대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딸이 그 몹쓸 짓을 당하게 되고, 위기에 쫓겨나가는 일들도 있었고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픔이 있었고 슬픔이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아픔, 슬픔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가질 것 다 가졌고 전부다 풀렸는데 왜 행복이 없고 왜 평화가 없는지 고민합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 고민하다가 고민이 깊어지면서 야곱이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 많은 재산, 별 것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되는 것 별 것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재주도 좋았습니다. 능력도 좋았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별 것 아닌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야곱이 드디어 자기 이름을 찾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기 시작합니다. 한 번 씨름했더니 점점 강하게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합니다. 마침내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사람, 언제나 함께 하는 사람, 이제는 아예 붙어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야곱이 어떻게 그런 성숙한 사람,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아서 묻지도 않는 것까지 대답을 받고 응답받는 사람이 되었는가?’ 라는 것에 대한 하나님이 주신 답입니다.

 

세상과 씨름 그만 하십시오. 거기서 돌아서십시오. 세상과 씨름해서 승리해 봐야 남는 것이 없습니다. 남는 것 같은데, 남은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평화가 없고 행복이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돌아서서 이제 하나님과 씨름하십시오. 하나님과 기도로 씨름하십시오. 기도하고 또 기도해보십시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이미 평안이 있습니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행복이 있습니다.

기도로 씨름하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반드시 행복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3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