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엘리야의 능력 (열왕기상 18:25-38)

분당소망교회 2020. 7. 22. 08:37

엘리야의 능력

 

 

 

열왕기상 18:25~38 ═══════════════════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고 살아왔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흑인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흑인이 정권을 잡자 흑인들은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우리를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은 백인들에게 보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가장 큰 피해를 당한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만델라는, 백인들에 대한 보복은 나라는 물론이고 흑인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만델라는 옛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서서 투쟁하다 반역죄로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27년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 감옥에서 나왔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 남아공에서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자신의 주 지지층인 흑인들을 설득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관대함과 우리의 자제력을 백인들에게 보여주어 놀라게 합시다.’

만델라의 그 일을 두고 뉴욕 타임즈 토마스 프리드만은 지지자들을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며 나라를 이끄는 것은 쉽다. 무언가 나누어주며 이끄는 것도 쉽다. 정말 어려운 일이 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을 하자는 것이고 특히 자신의 지지층에게 그 어려운 일을 하자는 것, 이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권위는 그런 때 생겨나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목회자들에게 특별히 요청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신자들이 좋아할만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꼭 들어야할 말’, 교인들이 듣기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순수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십시오.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종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웬만한 용기를 가지고는 어렵습니다. 망할 각오, 죽을 각오를 하는 용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교우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이전의 어떤 왕보다 하나님께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범죄를 하니까 백성들도 따라서 죄를 지었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옛날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 최고 지도자들이 그렇게 할 때 처음에는 비난하다가 나중에는 자기도 따라하게 되고 나라가 다 오염되어서 그것이 잘못인지도 모릅니다. 최고의 지도자들 그 다음 지도자들, 특히 재판하는 법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합에 관해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믈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16:30-33)

뒤이은 말씀은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이렇게 하니까 백성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공히 아는 것이 있었습니다. 여리고에서는 건축하면 안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죄를 짓기 시작하고 온 나라에 신앙오염이 되고 나니 모두들 하나님의 말씀은 안 지켜도 된다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은 절대로 금하는 것이니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왕도 백성들도, 죄를 지어도 잘 살더라 괜찮더라 했습니다. 온 나라에 죄악이 가득했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라가 깜깜했습니다.

 

이럴 때 혜성같이 엘리야라는 이름을 가진 선지자가 등장했습니다. 왕 아합을 찾아가서 당신이 회개하지 않으면 앞으로 수년 동안 이 나라에 비는 물론이고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무섭게 선포했습니다.

이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너 빨리 도망가라.’ 그리고 길을 지도해주셨습니다. 요단강 시냇가로 가서 숨었습니다. 그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 유명한 까마귀 기적입니다.

다음에 다시, 시돈의 사렙다에 과부가 한 사람 있을 텐데 만나라고 지시하시고 또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과부에게 곡식 조금과 기름 조금 밖에 없었는데 기적을 베풀어주셔서 곡식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엘리야도 먹고 그 집 식구들도 살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도 주셨습니다. 죽은 아이에게 기도하자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입니다. 엘리야에게 하나님 말씀이 전해집니다. ‘가서 아합을 만나라’.

아합을 만나니 아합이 엘리야를 잔뜩 원망합니다. 당신 때문에 이 나라에 비가 안 내리고 망하게 생겼다고 합니다. 이때 엘리야가 그 악한 왕에게 겁 없이 한 마디 합니다.

그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 바알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왕이여, 어느 신이 참된 신인지 확인합시다. 당신이 섬기고 있는 바알 제사장들을 모으십시오. 나는 나 혼자 나갑니다. 그리고 송아지를 각각 한 마리씩 잡아서 나무에 올려놓고 각자 기도해서 바알의 신이 응답해서 불이 내려올지 하나님이 응답해서 불이 내려올지 불 내려주는 쪽이 참된 신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바알 제사장들이 다 모였습니다. 이 대결을 보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모였습니다. 이때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21) 이 말을 듣고서도 백성들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실상이 그렇습니다. 돈이 최고냐, 하나님이 최고냐 믿는 사람들이 대답하지 못합니다. 건강이 최고냐, 하나님이 최고냐 대답하지 못합니다. 자식이 최고냐 하나님이 최고냐 대답하지 못합니다. 돈도 건강도 자식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을 사람들이 믿지 못합니다.

 

드디어 갈멜산 대결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바알, 어느 신이 진짜 신인지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양측이 기도하는데 바알사제들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도 없습니다. 바알 제사장들은 큰 소리로 부르고 피가 흐르도록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정오가 지났고 저녁때가 이르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엘리야 차례입니다. 송아리 올려놓은 제단 주변에 도랑을 팠습니다. 큰 통 넷에 물을 세 번이나 부어서 제단 뒤에 그리고 제단 주변에 가득 물이 흐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기도하니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도 다 태웠습니다.

 

찬양곡 가운데 아주 좋은 꼭이 있습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엘리야의 하나님> 이라는 곡입니다. 그런데 하나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가사 중에 내가 지금 주 앞에 울부짖나이다그런데 들을 때마다 찬송 할 때마다 무언가 아쉽습니다. 여러분, 바알의 제사장들은 울부짖고 미친 듯이 소리 질렀지만 엘리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중하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게 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관념적으로만 아니라 확실하게 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지시하셨기 때문에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하든지 간에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아쉽게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도는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모든 마음을 다해서 기도해야하는데, 손바닥 비벼가면서 더 급하면 금식도 철야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꼭 굶어가면서 잠 안 자면서 기도해야하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참된 신인 것을 고백합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39)

그 고백을 대단하게 보지 마십시오. 보고 믿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지금은 잘 믿는 것 같지만 금방 꺼져버립니다. 없어지고 맙니다. 안 보고 믿는 믿음, 그것이 진짜입니다. 오래 오래 갑니다. 참된 믿음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 이제 비를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자 큰 비가 내렸습니다. 아합이 마차를 타고 궁궐로 돌아갑니다. 그 때 엘리야에게 또 다른 능력이 내립니다. 마차 타고 가는 아합왕 보다 뛰어서 가는 엘리야의 발걸음이 훨씬 빠릅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45-46)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대단한 능력, 대단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여기서 궁금하게 생각해보실 것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그런 능력과 그런 권세와 그런 은혜를 주셨는가?’ 입니다. 아합과 같이 못된 사람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대단합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한 일과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주신 은혜를 비교해보면 비교가 안 됩니다. 한 일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하게 큰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확하게 보아야합니다. 엘리야가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보도록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불신앙으로 가득 찼습니다. 신앙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혈연 공동체가 아닙니다. 우리처럼 한 민족의 피가 흐르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신앙으로 한 민족이 된 신앙공동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엮어진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즉 하나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인 이스라엘에 당연히 있어야할 신앙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신앙이라고 말하면 근본주의자니 광신자니 요즘도 성경을 그대로 믿는다는 등 별별 소리를 다합니다. 그런 하나님 신앙의 시대에 더구나 아합 같이 독재자가 통치할 때는 나설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모든 종들이 한결같이 왕이 듣기 싫은 소리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듣기 싫은 소리 한 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을 찾고 또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을 다니시면서 나를 위해서 갈 사람이 누구일지 찾았습니다. 나팔 부시면서 찾았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시골 디셉 마을에 엘리야라는 사람이 손을 번쩍 들고 나왔습니다. 그때 손들고 나선 엘리야는 그야말로 하나님께 기쁨과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아직 남아있구나과연 엘리야는 하나님 기대에 부응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넉넉하게 감당했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다 충성하는 그때 충성하는 것도 귀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순종할 때 순종하는 사람 그것도 귀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 그것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기도할 때 기도하는 것도 귀하지만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귀한 것, 정말로 특별한 것은 충성하나 할 사람 없을 때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순종할 사람 없을 때, 기도하는 사람 없을 때 기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귀합니다. 이제 먹고 살만하고 이것 저것 다 있는데 기도할 필요 없다고 생각할 때, 한국 초창기에나 새벽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이지 요즘 그렇게 할 필요 없다고 할 때에 기도하는 이런 사람들이 귀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눈에 캄캄한 밤에 빛나는 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사람을 찾고 다니십니다. 대단한 일을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큰 일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순종 안 할 때 아무도 기도 안 할 때, 자기가 하는 기도가 대단한 것이 되지는 않겠지만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할 때 하나님 얼굴이 환해지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싶어서 병이 나시는 분입니다. 시시한 것 말고 진짜 좋은 선물 주시고 싶어서 병이 나시는 분입니다. 누가 이것을 받아갈까? 그러나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헤매 다니고 계십니다. 일은 하나님 혼자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진짜 믿음과 진짜 마음을 가지고 나서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기 위해서 지금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없어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선물을 주기 위해서 진짜 충성하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세상이 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인간미도 없고 따뜻함이 없습니다. 예의도 없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배려도 없습니다. 정이 없습니다.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점점 맛을 잃어가고 있고 이미 상당히 잃어버렸습니다. 사랑이 없습니다. 교회라고 하면서 기도가 없습니다. 기도란 옛날 시대나 하는 것이지 그렇게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충성이 없습니다. 교회의 독특한 맛이 없습니다. 교회의 독특한 맛인 희생이 없습니다. 이런 소금기 하나도 세상에는 소금기 조금만 있어도 맛있습니다. 깜깜한 데 손톱만한 불 하나만 있어도 환해집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기독교 신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5:14)

밝게 해주는 빛, 맛나게 하는 소금, 사랑이란 빛, 충성이란 헌신이란 그런 소금,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맛을 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희생하고 여러분들이 충성하고 여러분들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층성하고 사랑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여러분들만 망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일을 해야 하는 소금임에도 불구하고 소금의 맛을 내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말씀을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

그 반대의 말씀을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5:21) 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즐거움,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은 세상이 빼앗을 수 없습니다. 절대로 훼손되지 않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하나님의 기쁨, 예수님의 즐거움은 훼손되지도 않고 빼앗기지도 않습니다. 그 즐거움에 여러분을 동참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한평생 사시면서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그 즐거움과 기쁨을 여러분들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