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든 저러든
빌립보서 1:12~21
한 언론인이 논어를 말했습니다. ‘군자는 의로움에서 깨치고 소인은 이익에서 깨친다.’
정치인들이야 본래 그렇지만 그래도 그동안 나라의 최고 책임자들은 최소 겉으로 만이라도 군자인 양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나라의 최고 책임자라는 사람들이 ‘군자인 척’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온갖 고통에 힘들고 지친 국민들을, 깜깜하기만 한 다음 세대를 너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표 또 표, 오로지 정권 또 정권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정신 번쩍 들게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25:48-51)
또, 정반대의 말씀도 하셨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마24:45-47)
예수님께서 오늘 또다시 그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왕보다 한참 더 높은 진짜 왕이 계신다. 진짜 왕은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시다가 때가 되면 무섭게 심판하시고 정확하게 보응하신다.’
선교를 하고 있던 바울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아마 로마 감옥인 것 같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먼 곳에 있는 빌립보 교회가 사람을 보내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필요한 물건도 보내고, 또 그 사람이 바울 옆에 있으면서 섬기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보냈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온 빌립보 교회 사람으로부터 교회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그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빌립보 교인들 거의 대부분이 바울을 좋아했고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하듯 모두 다 바울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따르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교인 중 몇 명이 바울을 반대하고 적대시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니었지만 속으로 바울을 향해서 온갖 못된 소리를 다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신만 지도자냐? 우리도 지도자다. 당신만 잘났느냐? 나도 당신 못지않은 사람이다.’ 라는 말 등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는 항상 따르는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잘났고 훨씬 더 존경받을 사람이 확실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 나름대로 온갖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바울을 향해서 온갖 비난을 다 해보았습니다. 바울을 깎아내리면 자기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다닌 적이 없다. 따라서 바울은 사도가 아니다. 또 아무리 보아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면 어련히 바울을 챙겼겠는가? 사랑하시지 않으니까 옥에 갇혀도 그냥 두셨지..’ 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에게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간질병이 있었던 것은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간질병은 병중에서 아주 좋지 않은 병입니다. 드러내놓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병입니다. 오늘날로 한다면,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병입니다. 그들의 말은 ‘그렇게 추한 병이 낫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바울은 진짜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간질 뿐만 아니라 눈에도 심한 안질도 있었습니다. 눈을 제대로 뜨지를 못했습니다. 흉한 눈이 바울의 얼굴 전체를 흉한 얼굴로 만들었습니다. 외모도 형편이 없었습니다. 키는 많이 작았습니다. 눈은 찢어졌고 코는 매부리코이고 다리는 안짱다리이고 머리는 보기 흉한 대머리였습니다. 게다가 글은 어느 정도 썼지만, 설교하는 것도 그냥 말하는 것도 너무 시원치 않았습니다. 바울은 무엇 하나 자기네들보다 나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이 바울은 그렇게 인정하고 존경하고 따르면서도 자기네들은 인정조차도 안 해주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네들을 외면까지 하는 일들도 생겼습니다.
그러던 차에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빌립보 교회에 전해져왔습니다. 바울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이때다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을 꺼내지도 못하던 그들이 이제는 교인들 앞에서 대놓고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가 지금까지 뭐라고 했어. 바울은 본래 그런 사람이야. 죄 없는 사람이 왜 감옥에 가나? 죄가 있으니 갔지. 병은 왜 안 나아?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그러면서 이때를 자기들 위상을 높일 절호의 기회로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 생각에 바울이 다른 것은 다 시원찮은데 선교하나만큼은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우리도 선교를 얼마나 잘 하는지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바울만 선교를 잘 하는 사람인지 아나? 우리도 하기 시작하면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선교에 열심을 냈습니다.
반대로 바울을 사랑하던 대다수의 교인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에 허탈해져서 힘이 빠졌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퍼뜩 생각이 나서 말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감옥에 갇힌 바울님을 위해서 우리가 정말 잘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모두의 의견이 하나같이 일치합니다. ‘그것은 선교이다. 선교야말로 감옥에 갇히신 바울님에게 최고의 위로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다. 우리가 선교를 해봐야 얼마나 하겠냐만 그래도 결과에 구애되지 말고 있는 힘을 다해서 선교에 나서자.’ 마음이 다 합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을 미워하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바울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빌립보 교회 교인들 모두가 선교에 힘을 쏟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신자들이 이 세상 살아갈 때 온갖 일을 당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것도 신자들도 똑같이 당하고, 신자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당하지 않는 것까지 당합니다. 신자이기 때문에 손해 보는 일, 신자이기 때문에 억울한 일, 신자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 신자이기 때문에 가슴 무너지고 원통하고 분통한 일, 신자이기 때문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일, 교회 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악한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을 때 너무 많이 속상해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합하여 좋은 것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그 일이 정확하게 이 말씀의 증거입니다. 바울이 미워서 바울 대신 자기들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열심히 한 선교가 사실은 자기들이 미워하는 바울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도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라는 오늘 본문 18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신자들이 하나 더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 불행이 닥칠 것이다. 세상에는 실족하게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두들 잘 알아라.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불행이 닥칠 것이다.’
이 말씀의 뜻은 다른 사람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가슴 아프게 한 그것으로 절대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되어있다. 즉 그런 것까지 합해서 선을 이루고 좋은 것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악한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고야 말겠다는 예수님의 의지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못된 사람들, 악한 사람들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 혹은 세상에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세상 사람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들어하고 풀이 죽지만 하나님의 사람들, 기독교 신자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오히려 환한 얼굴로 자신만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시간이 가까이 온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든 저러든, 이런 일이든 저런 일이든, 이런 사람이든 저런 사람이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합해서 선을 만드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얼굴 활짝 펴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서 웃을 때 여러분은 그들과 달리 조용하게 들어가서 기도하시고, 세상 사람들이 죽겠다고 다 힘들어서 절절맬 때 여러분은 얼굴을 펴십시오. 이제 하나님께서 일어서실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시고 일어서십시오.
또 기독교 신자들은 이런 것을 세상에게 가르쳐주어야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세상 모든 것이 아니다.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이 계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 일을 하나님께서 만들고 계신다.’ 세상 사람들도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실 때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을 보시고, 나를 보시고 은혜를 베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당당하게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아서도 세상 사람들까지 은혜를 베푸시고 자비를 베푸실 것을 생각하시고 그렇게 사십시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신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있는 전염병도 심지어 개인적으로 나뿐만 아니라 내 자식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속상하고 가슴 아픈 일들도 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최고의 것으로 만드십니다.
바울을 이것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19-21절) 이것을 확실하게 알았던 바울, 그래서 당당했습니다. 참 멋있었습니다.
제가 며칠 간 계속해서 고민하고 요즘에 참 많이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세상적으로 멋진 것이 아니라 진짜 멋있는 사람. 우리 교인들이 어떻게 하면 이런 세상에서 멋있는 사람이 되게 할 수 있을까?’입니다.
바울은 참 멋졌습니다. 그런 외모, 환경 가운데서도 아주 멋지게 살아갔습니다. 당시 교회의 최고 수장이었던 베드로에게 당당하게 멋있게 말했던 바울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무슨 짓이냐?' 최고의 어른에게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그 바울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당당하게 외칠 말씀을 하나 선사하십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1-35)
이어지는 37절부터 3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니라 내가 확신하노라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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