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에게 로마는
사도행전 23:19~30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에 모든 일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없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직격탄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특별히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를 사랑하십니다. 시편 35편은 ‘여호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시라’(시35:10)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있으면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 영세민들이 아주 심각하게 타격을 받는데 왜 그러실까? 이제 이미 시간이 길어져서 아주 심각하게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러실까?’ 답답한 마음으로 의문하다가 모세와 천사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수행길에서 모세는 천사를 만납니다. 모세가 천사에게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천사가 모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아마 그대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말 뒤에 천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가난한 어촌의 고깃배를 가라앉혀버립니다. 유일한 재산, 유일한 삶의 도구라고 할 수 있는 고깃배를 바다 속으로 가라앉혀버리고 또 하나는, 까닭 없이 미남 청년 하나를 죽여 버립니다. 나머지 하나는 무너져 가고 있는 이교도의 성벽을 튼튼하게 천사가 일으켜 다시 세워줍니다.
모세가 참지 못하고 화를 냅니다. 그러자 천사가 모세에게 말합니다. ‘미남 청년은 얼마 있지 않아 수많은 다른 젊은이들을 죽일 것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악무도한 해적들이 고깃배를 빼앗으려고 그 마을로 오고 있었다. 만일 고깃배가 그대로 있었다면 고깃배를 빼앗기 위해서 해적들은 마을 사람들 모두 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무너져 가던 이교도 성벽 그 아래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그 성벽이 무너지면 보물이 드러날 것이고, 그 보물을 가지고 그 성의 이교도 인들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터이었다.’
천사가 모세에게 말합니다. ‘모세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잘못이 있는가?’
아시아와 유럽을 선교하던 바울이 뜻이 있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류를 했습니다. ‘바울님, 따라다니는 사람들, 따라다니면서 해치려고 하는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루살렘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큰일 납니다. 절대로 예루살렘에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기어이 예루살렘에 들어왔습니다.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을 때, 악한 유대인들, 못된 유대인들이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바울을 모함하고 선동했습니다. 못된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고 세상 사람들이야 늘 선동에 약합니다. 예루살렘 시민들이 그 선동에 넘어갔습니다. 바울에게 달려들어 몰매를 가했습니다. 성전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죽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성전 안에서는 죽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온 예루살렘 시내가 난리가 난 듯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소란이 당시 예루살렘에 와있던 로마군 천부장에게 전해집니다. 천부장이 부하들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집단 폭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바울을 군중들에게서 빼내었습니다. 로마 군부대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튿날 유대인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재판 도중에 유대인들 간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2대 주류인 바리새인, 사두개인 사이에 격렬한 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이 찢겨서 죽을 정도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때 천부장이 다시 바울을 법정에서 빼내서 군부대로 데리고 갑니다.
그 일 뒤의 일이 오늘 본문의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모의를 했습니다. 성경은 이 일에 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 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행23:12-15)
그 사실이 바울의 생질에게 전해졌습니다. 생질이 바울에게 말하고, 그것이 다시 로마군 사령관인 천부장에게 전해졌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저 멀리 가이사랴 로마군 본영으로 이송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온 후에 당한 위기와 관련해서 참으로 의외인 것이 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역사는 대체로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나는, ‘바울의 그 위기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위기는 같은 민족에게 왔습니다. 특히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셨다고 하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더 사랑해야할 사람들이, 더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합니다. 같은 유대인들,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도 땅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 이런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들 생각뿐입니다. 바울의 생각이, 바울이 하는 일들이 옳은지 그른지 여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관심은 바울이 하는 것이 우리 마음에 맞는지 안 맞는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의외의 일이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의외의 일입니다, ‘바울이 위기 때마다 용케 위기를 면하는데, 그 위기를 모면케 해주는 사람, 그때 바울을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누구였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과 원수나라 로마였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지켜주었습니다. 처음에 성전에서 붙들렸을 때, 천부장과 함께 출동한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빼내주었습니다. 까딱하면 죽을 뻔 했는데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빼내준 것입니다. 그때 로마군 부대로 압송될 때 바울이 기회를 얻었습니다. ‘천부장님, 내가 저분들에게 잠시 말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요?’ 라고 했는데 천부장이 허락했고, 그 시간 그 많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재판 때 또 위기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때 안 되겠다 싶어서 천부장을 비롯한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빼서 다시 군부대로 데리고 갔습니다.
암살결사대가 바울을 암살하려고 할 때의 장면을 자세하게 봅니다.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16절) 바울의 생질이 바울에게 모의를 알렸습니다. 바울이 천부장에게 중요한 일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라고 하자 천부장이 바울의 생질을 데리고 가서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천부장이 조치를 해주었습니다. 천부장은 백부장 둘을 불러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총 470명을 준비시켰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주둔 로마군 인원이 총 600명 정도였습니다. 600명 중 470명을 뺐으니 2/3가 넘은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바울을 어떻게 보호했는지를 성경이 증언합니다,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22절)
하나 더, 예루살렘 주둔 로마군의 2/3를 보내면서 총독에게로 바울을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한 일입니다. 바울을 태우고 갈 짐승, 말을 말합니다.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라는 23, 24절도 보십시오. 보병 이백 명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보병이니 걸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병 칠십 명이라고 했는데 기병은 말을 탔을 것입니다. 그리고 창병 이 백 명을 준비했다고 했는데 이 창병들도 다 걸어갑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에 태워 보냈습니다. 여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부장이 총독에게 편지하면서 변호까지 해주었습니다.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구원해주었다고 말하고,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다..(26-29) 천부장은 바울이 무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한 번 느껴보십시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 로마가 과연 하나님께도 원수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유대민족에게 로마는 침략자고 압박자이고 수탈자이고 원수입니다. 이미 지금까지 100년 동안 그러했고 앞으로 500년 동안 더 그렇게 이스라엘의 원수로 있을 것입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원수의 나라가 로마입니다. 그러나 이런 로마가 바울에게 있어서는 보호자요 방패였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호하라고 바울 앞을 막아준 방패 같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방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처럼 이라고 말씀드렸지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로마를 써서 바울을 지켜주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는 이스라엘에게는 원수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옛날 앗수르도 그랬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너무 잘 못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징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들어서 당신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바벨론이 또 심판 도구가 됩니다. 이 바벨론이 도구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징벌합니다. 그 다음에 로마는 하나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이루시는 또 하나의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종 바울을 보호하는 또 다른 종으로 로마를, 로마군대를 쓰셨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전 세계에 전파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로마군을 쓰셨습니다. 이것이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 라는 말씀입니다. 로마, 로마군을 들어서 바울 당신의 종을 지키고 챙기고 호위하고 로마까지 안내하는 당신의 종으로 쓰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한 번 보십시다.
우리나라 주변의 미국, 그 다음 위에 있는 중국, 아래에 있는 일본, 심지어 북한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여러분의 로마’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힘들고 어렵게 하는 원수 같은 사람, 여러분에게 큰 손해를 끼친 사람, 여러분을 정말로 원통하고 분통하고 억울하게 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형들이 어떻게 동생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한 대 쥐어박는 것은 몰라도 어떻게 노예로 팔수가 있습니까?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보디발 집에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보디발 집이 요셉 때문에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 아내가, 자기가 유혹하다가 잘못되자 요셉에게 뒤집어 씌었습니다. 이럴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 내가 도구로 썼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일이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회사가 부도가 날 수 있고, 혹시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이 무서운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이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무서운 사고가 생길 수 있습니다. 못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배신당하는 일들도 있고, 교통사고와 같은 무서운 사고도 생길 수 있습니다. 암과 같은 중한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죽어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크나큰 상처가 여러분들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일 저런 일, 좋든 안 좋든 간에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도구로 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일을 당할 때 이런 눈으로 보십시오. 그러면 미워할 것도 없고 속상할 것도 없고 가슴 아플 일도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을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도구로 쓰기도 합니다. 때로는 여러분들이 무릎에 힘을 잃고 온 몸에 힘이 다 빠졌을 때 여러분에게 힘주시고 여러분을 일어서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이 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살리는 도구로 여러분들로 하여금 능력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 도구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혹시라도 여러분들에게 어떤 것이 찾아올 때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반갑게 맞이하십시오. ‘아! 하나님께서 이제 일하실 마지막 시간이 되었구나.’ 여러분에게 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당신의 도구로, 모든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쓰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 ‘이것을 가지고, 이 사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까?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시려고 저런 일이 생겼고 저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가?’ 라고 생각하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눅 들지 마십시오. 자신 만만하십시오. 당당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사십시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 그런 사람들을 여러분의 보호자로 방패로 길잡이로 만들어주십니다.
다만 하나 꼭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꼭 기억하십시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바울처럼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지키심을 받고 챙기심을 받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인가 혹은 아닌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래도 내가 조금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사람으로 사는 것, 이것만큼 확실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그 ‘로마’는 어려움이나 고통, 아픔을 주는 로마가 아니라 여러분을 지키고 보호하는 여러분의 길을 평탄하고 영광으로 옷 입혀주는 로마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은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울 지라도 여러분만큼은 평안하게 그야말로 샬롬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바울에게 로마는
사도행전 23:19~30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에 모든 일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없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직격탄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특별히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를 사랑하십니다. 시편 35편은 ‘여호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시라’(시35:10)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있으면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 영세민들이 아주 심각하게 타격을 받는데 왜 그러실까? 이제 이미 시간이 길어져서 아주 심각하게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러실까?’ 답답한 마음으로 의문하다가 모세와 천사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수행길에서 모세는 천사를 만납니다. 모세가 천사에게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천사가 모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아마 그대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말 뒤에 천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가난한 어촌의 고깃배를 가라앉혀버립니다. 유일한 재산, 유일한 삶의 도구라고 할 수 있는 고깃배를 바다 속으로 가라앉혀버리고 또 하나는, 까닭 없이 미남 청년 하나를 죽여 버립니다. 나머지 하나는 무너져 가고 있는 이교도의 성벽을 튼튼하게 천사가 일으켜 다시 세워줍니다.
모세가 참지 못하고 화를 냅니다. 그러자 천사가 모세에게 말합니다. ‘미남 청년은 얼마 있지 않아 수많은 다른 젊은이들을 죽일 것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악무도한 해적들이 고깃배를 빼앗으려고 그 마을로 오고 있었다. 만일 고깃배가 그대로 있었다면 고깃배를 빼앗기 위해서 해적들은 마을 사람들 모두 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무너져 가던 이교도 성벽 그 아래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그 성벽이 무너지면 보물이 드러날 것이고, 그 보물을 가지고 그 성의 이교도 인들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터이었다.’
천사가 모세에게 말합니다. ‘모세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잘못이 있는가?’
아시아와 유럽을 선교하던 바울이 뜻이 있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류를 했습니다. ‘바울님, 따라다니는 사람들, 따라다니면서 해치려고 하는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루살렘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큰일 납니다. 절대로 예루살렘에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기어이 예루살렘에 들어왔습니다.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을 때, 악한 유대인들, 못된 유대인들이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바울을 모함하고 선동했습니다. 못된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고 세상 사람들이야 늘 선동에 약합니다. 예루살렘 시민들이 그 선동에 넘어갔습니다. 바울에게 달려들어 몰매를 가했습니다. 성전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죽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성전 안에서는 죽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온 예루살렘 시내가 난리가 난 듯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소란이 당시 예루살렘에 와있던 로마군 천부장에게 전해집니다. 천부장이 부하들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집단 폭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바울을 군중들에게서 빼내었습니다. 로마 군부대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튿날 유대인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재판 도중에 유대인들 간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2대 주류인 바리새인, 사두개인 사이에 격렬한 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이 찢겨서 죽을 정도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때 천부장이 다시 바울을 법정에서 빼내서 군부대로 데리고 갑니다.
그 일 뒤의 일이 오늘 본문의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모의를 했습니다. 성경은 이 일에 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 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행23:12-15)
그 사실이 바울의 생질에게 전해졌습니다. 생질이 바울에게 말하고, 그것이 다시 로마군 사령관인 천부장에게 전해졌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저 멀리 가이사랴 로마군 본영으로 이송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온 후에 당한 위기와 관련해서 참으로 의외인 것이 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역사는 대체로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나는, ‘바울의 그 위기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위기는 같은 민족에게 왔습니다. 특히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셨다고 하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더 사랑해야할 사람들이, 더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합니다. 같은 유대인들,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도 땅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 이런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들 생각뿐입니다. 바울의 생각이, 바울이 하는 일들이 옳은지 그른지 여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관심은 바울이 하는 것이 우리 마음에 맞는지 안 맞는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의외의 일이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의외의 일입니다, ‘바울이 위기 때마다 용케 위기를 면하는데, 그 위기를 모면케 해주는 사람, 그때 바울을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누구였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과 원수나라 로마였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지켜주었습니다. 처음에 성전에서 붙들렸을 때, 천부장과 함께 출동한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빼내주었습니다. 까딱하면 죽을 뻔 했는데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빼내준 것입니다. 그때 로마군 부대로 압송될 때 바울이 기회를 얻었습니다. ‘천부장님, 내가 저분들에게 잠시 말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요?’ 라고 했는데 천부장이 허락했고, 그 시간 그 많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재판 때 또 위기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때 안 되겠다 싶어서 천부장을 비롯한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빼서 다시 군부대로 데리고 갔습니다.
암살결사대가 바울을 암살하려고 할 때의 장면을 자세하게 봅니다.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16절) 바울의 생질이 바울에게 모의를 알렸습니다. 바울이 천부장에게 중요한 일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라고 하자 천부장이 바울의 생질을 데리고 가서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천부장이 조치를 해주었습니다. 천부장은 백부장 둘을 불러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총 470명을 준비시켰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주둔 로마군 인원이 총 600명 정도였습니다. 600명 중 470명을 뺐으니 2/3가 넘은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바울을 어떻게 보호했는지를 성경이 증언합니다,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22절)
하나 더, 예루살렘 주둔 로마군의 2/3를 보내면서 총독에게로 바울을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한 일입니다. 바울을 태우고 갈 짐승, 말을 말합니다.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라는 23, 24절도 보십시오. 보병 이백 명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보병이니 걸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병 칠십 명이라고 했는데 기병은 말을 탔을 것입니다. 그리고 창병 이 백 명을 준비했다고 했는데 이 창병들도 다 걸어갑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에 태워 보냈습니다. 여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부장이 총독에게 편지하면서 변호까지 해주었습니다.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구원해주었다고 말하고,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다..(26-29) 천부장은 바울이 무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한 번 느껴보십시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 로마가 과연 하나님께도 원수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유대민족에게 로마는 침략자고 압박자이고 수탈자이고 원수입니다. 이미 지금까지 100년 동안 그러했고 앞으로 500년 동안 더 그렇게 이스라엘의 원수로 있을 것입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원수의 나라가 로마입니다. 그러나 이런 로마가 바울에게 있어서는 보호자요 방패였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호하라고 바울 앞을 막아준 방패 같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방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처럼 이라고 말씀드렸지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로마를 써서 바울을 지켜주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는 이스라엘에게는 원수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옛날 앗수르도 그랬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너무 잘 못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징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들어서 당신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바벨론이 또 심판 도구가 됩니다. 이 바벨론이 도구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징벌합니다. 그 다음에 로마는 하나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이루시는 또 하나의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종 바울을 보호하는 또 다른 종으로 로마를, 로마군대를 쓰셨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전 세계에 전파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로마군을 쓰셨습니다. 이것이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 라는 말씀입니다. 로마, 로마군을 들어서 바울 당신의 종을 지키고 챙기고 호위하고 로마까지 안내하는 당신의 종으로 쓰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한 번 보십시다.
우리나라 주변의 미국, 그 다음 위에 있는 중국, 아래에 있는 일본, 심지어 북한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여러분의 로마’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힘들고 어렵게 하는 원수 같은 사람, 여러분에게 큰 손해를 끼친 사람, 여러분을 정말로 원통하고 분통하고 억울하게 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형들이 어떻게 동생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한 대 쥐어박는 것은 몰라도 어떻게 노예로 팔수가 있습니까?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보디발 집에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보디발 집이 요셉 때문에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 아내가, 자기가 유혹하다가 잘못되자 요셉에게 뒤집어 씌었습니다. 이럴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 내가 도구로 썼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일이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회사가 부도가 날 수 있고, 혹시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이 무서운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이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무서운 사고가 생길 수 있습니다. 못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배신당하는 일들도 있고, 교통사고와 같은 무서운 사고도 생길 수 있습니다. 암과 같은 중한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죽어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크나큰 상처가 여러분들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일 저런 일, 좋든 안 좋든 간에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도구로 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일을 당할 때 이런 눈으로 보십시오. 그러면 미워할 것도 없고 속상할 것도 없고 가슴 아플 일도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을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도구로 쓰기도 합니다. 때로는 여러분들이 무릎에 힘을 잃고 온 몸에 힘이 다 빠졌을 때 여러분에게 힘주시고 여러분을 일어서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이 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살리는 도구로 여러분들로 하여금 능력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 도구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혹시라도 여러분들에게 어떤 것이 찾아올 때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반갑게 맞이하십시오. ‘아! 하나님께서 이제 일하실 마지막 시간이 되었구나.’ 여러분에게 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당신의 도구로, 모든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쓰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 ‘이것을 가지고, 이 사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까?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시려고 저런 일이 생겼고 저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가?’ 라고 생각하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눅 들지 마십시오. 자신 만만하십시오. 당당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사십시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 그런 사람들을 여러분의 보호자로 방패로 길잡이로 만들어주십니다.
다만 하나 꼭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꼭 기억하십시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바울처럼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지키심을 받고 챙기심을 받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인가 혹은 아닌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래도 내가 조금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사람으로 사는 것, 이것만큼 확실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그 ‘로마’는 어려움이나 고통, 아픔을 주는 로마가 아니라 여러분을 지키고 보호하는 여러분의 길을 평탄하고 영광으로 옷 입혀주는 로마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은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울 지라도 여러분만큼은 평안하게 그야말로 샬롬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소망 말씀(설교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야같은 세상에서 (민수기 9:15-23) (0) | 2020.11.24 |
---|---|
엘리사의 뼈 (열왕기하 13:14-21) (0) | 2020.11.24 |
이러든 저러든 (빌립보서 1:12-21) (0) | 2020.11.22 |
또 오라! 또 마셔라 (사도행전 7:51-60) (0) | 2020.11.12 |
어른이 있으면 (사도행전 6:5-15) (0) | 2020.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