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나의 얼굴은 (출애굽기 34-29-35)

분당소망교회 2020. 11. 26. 10:46

 

 

나의 얼굴은

 

 

출애굽기 34:29~35

 

 

어느 초등학교 학급에서 착한 어린이 상을 주기 위해서 누가 우리 반에서 가장 착한지 투표를 했습니다. 개표했더니 신기하게도 서른 명 쯤 되는 반 전체 학생 모두가 한 표씩 얻었고 두 명만 예외였습니다. 두 명 중 한 아이는 두 표를 얻었고, 다른 한 아이는 한 표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단 두 표를 얻은 아이가 착한 어린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두 다 자기 자신에게 투표를 하였고 한 아이만 자기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 투표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슬프게 너무도 슬프게 하는 아이들의 슬픈 모습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예쁘던 아이들, 그 귀여운 아이들, 그 깨끗한 아이들을 누가 그렇게 만들었겠습니까?

아이들의 아름다운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덮인 곳에서 파란 하늘보고 자라니까요

아이들이 파란 색을 보고 자라면 파란 아이들이 됩니다. 검은 색을 보고 자라면 검은색 아이들이 됩니다. 우리 어른들이 정직하게 돌아봄, 깊이 고뇌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 예쁜 아이들, 그 깨끗한 아이들 앞에 어떤 색의 사람으로 살아가는가? 아이들에게 흰색 비추는 흰색 사람인가? 검은색을 비추는 검은색 사람인가?’

 

출애굽 뒤에 모세가 하나님을 뵈러 시내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신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격노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백 배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노가 겨우 조금 가라앉아 모세는 산을 내려옵니다. 산을 내려온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모시면서 뛰노는 것을 보게 되됩니다. 모세의 화가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화가 난 모세가 하나님께서 주신 그 귀한 돌판, 하나님께서 친히 돌을 준비해서 거기다 십계명을 새겨서 주신 그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버렸습니다. 그 귀한 돌판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서 3천 명을 처형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하나님께서 마음이 좀 풀어지셨는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난번에 만들어준, 네가 화가 나서 깨뜨려버린 돌판과 똑같은 것 두 개를 만들어서 산으로 올라오라.’

시내산에 올라온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을 하십니다. ‘분명하게 알라. 나는 너희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고 인도하겠다. 너희 이스라엘은 내가 준 계명을 잘 지켜라.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들로서의 거룩함을 지켜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 이스라엘이 할 일, 두 가지를 확실하게 하신 후 하나님은 모세가 만들어가지고 간 돌판에 십계명을 다시 새겨주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돌판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산에서 내려올 때는 지난번과 달랐습니다. 지난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모세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까닭은 모세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모세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오늘 성경에 광채가 가득한 모세의 얼굴을 보면서 그와 함께 몇 몇 얼굴들을 생각해봅니다.

 

먼저는, 하나님 얼굴입니다. 물론 보이는 얼굴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 얼굴입니다. 하나님 마음 얼굴은 한 마디로 본래 사랑이고 지금도 사랑이고 결국 또 사랑입니다. 사랑의 얼굴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가나안 땅에 기근이 올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미리 생각하셨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굶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셨습니다. 요셉을 먼저 이집트로 보내셨습니다. 총리가 되게 하시고, 모든 것을 준비하고 난 뒤에 야곱의 가족들, 이스라엘을 이집트로 보내셨습니다. 이집트 고센 땅을 준비해두셨습니다. 7년 동안 극심한 기근이 있었지만 야곱의 가족들은 그 기근을 잘 넘겼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 이집트 귀빈으로 갔던 야곱의 가족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노예로 전략되고 맙니다.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된 노동, 견디기 어려운 압제에 신음하고 탄식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과 탄식을 들으시고 해방시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도 아시고 그것을 위해서 미리 준비하시기도 하시지만, 자주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나에게 왜 이런 어려운 일, 왜 이렇게 힘든 일, 고통스런 일이 있는지 한탄합니다. 조금만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보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자기들의 뒷모습을 볼 수가 있을 텐데 많은 사람들이 당장의 그것만 보다가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시는 일들을 보지 못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노예 생활하다보니 노예근성이 몸에 배였습니다. 조그만 일만 있으면 불평을 하고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합니다. 일만 있으면 이 사람 원망하고 저사람 원망하고 죽겠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집트에서 해방될 때는 그렇게 좋았습니다. 그러나 홍해가 앞을 가로막자 이제는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을 치고, 물이 없다고 아우성치고, 마실 물이 있기는 한데 물이 써서 못 마시겠다고 아우성치고,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하나님은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징징거리면 애들이란 본래 징징거린다고 하시고, 투정하면 애들은 다 그렇게 투정한다고 하시면서 변함없는 사랑과 자비로 그저 챙겨주시기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잠시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에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범죄를 저지릅니다. 하나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절대 용서하지 않으실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보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진멸시켜버리겠다, 내가 무서운 벌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꼴도 보기 싫다, 너희들 먼저 가라 나는 너희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시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사람들도 자식들에게 화가 나거나 속이 많이 상해도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어머니이고, 손주들이 뭐라 해도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고 할머니는 할머니입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예 지고 시작합니다. 항상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회개를 했습니다. 진실한 회개인지 잘 몰라도 회개를 하고 모세가 중보를 하자 하나님께서 언제 화를 내었나 하시듯 싹 바뀌었습니다.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34:6)라는 말씀은 그것을 확인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그렇게 화를 내신 바로 그 뒤에 이 모습을 보여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기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34:10)

그렇게 화를 내셨는데 그 백성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를 낸 것 다 잊어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무엇을 더 해주실지 준비하셨다가 준비하신 것을 하나씩 꺼내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렇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늘 쳐다보십시오. 여러분들이 행복해집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고민이 없어집니다. 세상을 쳐다보면 괜히 속상하게 됩니다. 요즘 울화병 걸린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럴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핑계입니다. 정치 때문이다 무엇 때문이다 그것 다 핑계입니다. 핑계대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저의 외할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이었는데 참 멋진 할머니셨습니다. 우리가 많이 잘못한 일이 있을 때 할머니는 무섭게 화를 내셨습니다. 엄청 무서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저한테 들키셨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야단치신 할머니가 뒤로 돌아서시면서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그런 할머니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화내봐야 오래 못갑니다. 얼굴 붉혀보아야 오래 가지 못합니다. 화를 내셔도 화를 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하나님 얼굴은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이 얼굴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모세의 얼굴이 두 번째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모세의 얼굴이 점점 변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보실 것은 모세의 얼굴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세가 그 얼굴로 변한 까닭이 무엇인지입니다.

맨 처음에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 있을 때 자신이 넘쳤습니다. 패기도 넘치고 혈기도 넘치고 힘도 넘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이집트 사람을 쳤습니다. 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적당하게 쳐야지 죽도록 쳐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혈기가 넘쳐도 지나치게 넘쳤고, 모세의 얼굴은 강인함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야로 쫓겨났습니다. 떨기나무 불꽃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뒤에 모세가 변하는데 점점 더 온유해졌습니다. 아주 겸손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옛날에 그런 사람이었던가 전혀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시내산까지 갈 때, 노예근성이 남아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얼마나 말이 많았습니까? 얼굴은 하나도 못 얻어먹은 사람처럼 불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이 많고 원망하고 투정하는 사람들, 아우성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기도만 했습니다. 그러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일이 있으면 또 원망했습니다. 이 일을 원망하고 저 일을 불평했습니다. 그러다 모세에게 대들기까지 했습니다. 돌을 던질 위기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이르기만 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부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원망하고 아우성치고 불평하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하나님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디 하나님께는 죄 짓지 마십시오.’ 라고 그저 타이르기만 하고 하나님께 기도만 했습니다.

그 뒤에 시내산에 도착해서 모세는 하나님을 뵈러 시내산에 올라갔는데 두 번 올라갔습니다. 40일간을 두 번 하나님을 뵀습니다. 그 후에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모세의 얼굴이 변했습니다.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빛이 났습니다. 모세의 얼굴에 난 빛, 그 광채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모세가 두 번 많은 시간 하나님을 뵙다 보니 하나님을 닮게 되었다, 그것도 많이 닮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래 같이 있으면 닮게 됩니다.

주례를 하다보면 참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오래 연애한 이들일수록 더 많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부부 중에 금슬이 좋은 사람은 얼굴이 닮아갑니다. 먹는 것, 말하는 것 두 사람이 닮아갑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래 함께 하다보면 닮아갑니다.

 

아십시오. 악한 사람과 오래 같이 있으면 속으로 욕하고 뒤로 돌아서서 욕하지만 닮아갑니다. 선한 사람과 오래 있으면 그 사람을 닮아갑니다. 자연적으로 닮아갑니다. 어두운 사람과 함께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안 됐지만 어두운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밝은 사람과 함께 하면 희한하게 밝아집니다. 말도 밝아지고 생각도 밝아지고 행동도 다 밝아집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다 믿기지 않아도 그냥 듣기만 하십시오. 귀신 오래 섬기면 귀신 닮아갑니다. 정확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당하면 안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오래 가까이 하자 하나님 얼굴을 닮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의 얼굴입니다. 참으로 변덕스럽습니다. 먼저 여기서 잠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변덕은 정신질환의 초기단계라는 것을 꼭 아십시오. 그리고 내 자녀들을 망치고 싶다면 변덕을 계속 부리십시오. 자녀들을 망치는 제 일이 부모의 변덕스러움입니다. ‘질서가 없이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잠시 밝아지기도 했지만 반짝 하고 말았습니다. 감사도 잠깐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 반짝에 그쳤고, 그러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아예 없었던 듯합니다. 본래의 불평불만의 얼굴, 원망의 얼굴이 이어집니다. 거의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만이 가득했고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얼굴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중노동할 때 힘들다고 죽겠다고 아우성쳤습니다. 그것은 그럴 수 있습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해방시키겠다고 말씀하시자 좋아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해방이라는 그 큰일을 하다보면 그 가운데 이런 일 저런 일이 있는데, 그 좋은 일을 위해서 이런 저런 일이 조금 있다고 죽겠다고 아우성칩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왜 시킵니까? 자기네들 좋으라고 하는데 좀 힘들다고 부모에게 원망하고 투정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조금 힘들다고 이런 소리 저런 소리하고 온갖 못된 소리를 다합니다.

드디어 출애굽했습니다. 출애굽 할 때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은금 패물을 받았습니다.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좋아함도 잠시였고 그 밝은 얼굴도 잠시였습니다. 홍해에 길이 막히자 원망하고 못된 소리를 했습니다. 차라리 우리를 이집트에 노예로 그대로 내버려두지.. 못되게 말했습니다. 부모에게 자기를 왜 낳았냐고 못된 소리를 하는 아이들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홍해가 열리고 건너가자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고 모세를 존경한다고 난리가 납니다. 그러다 조금만 또 힘들면 또 바뀝니다. 이전에 놀라운 일들, 위대한 역사를 행하신 하나님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그럴까요? 왜 거의 다 원망과 불만이 가득 차고 불평의 얼굴일까요?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만 대하고 세상 사람들만 대하다보니 그랬습니다. 물론 신자라고 하면 다 주님을 뵙고 주님을 만났다고 하지만 말만 그렇지 실제로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고 주님을 뵌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뵙는다, 예배당에 간다,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면서도 사람만 보아서 그렇고 세상만 보아서 그렇습니다. 세상은 어둡습니다. 그리고 세상 속에 살아가는 인간 또한 미안하지만 어둡습니다. 그 어두운 세상을 보고 어두운 사람들만 보다보니 사람들이 어두워지고 어두운 세상을 닮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7장에서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7:20-2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갖 악한 것이 사람들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이런 사람들을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점점 어두워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제가 실수를 하나 했습니다. 아홉 살 난 손자 아이가 손으로 이빨을 만지면서 흔들린다고 자랑하듯이 온 집을 돌아다니면서 이를 흔들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엄마가 저러다 덧니가 날 것 같으니 한 번 보려고 하자 기겁을 하면서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가 불렀는데, 그때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오라고 하여 무릎에 앉히고서는 검사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옛날부터 그런 거짓말을 쉽게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옛날 어른들 많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믿고 입을 벌리고 있을 때 톡하고 이를 뽑아버렸습니다. 아이가 울기는 했지만 잠시 울고 끝이 났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날 생겼습니다.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할아버지가 거짓말을 했어. 할아버지가 왜 거짓말을 했을까?’라고 물었답니다. 아이 엄마는 그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것도 목사인 할아버지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이는 믿기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병들어가는 이빨 뽑아준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빨 뽑아주면 좋은 것인데, 이빨 뽑을 때 아프게 한 것과 거짓말 한 것만 생각한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깨끗한 백지장 같은 마음입니다. 밝은 빛을 비추면 밝은 아이가 되고 어두운 빛을 비추면 어두운 아이가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 이미 장성을 했든 아직 어린 아이들이든지 혹은 여러분의 손주들의 마음이 환하고 밝고 노래처럼 파랗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들이나 손주들에게 어떤 빛을 비추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의 아이들이 많이 밝고 밝은 마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의 빛을 자녀들, 아이들에게 비추지 마십시오. 미안한 말이지만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의 마음도 어둡습니다. 아무리 감추어봐야 아무리 포장을 잘해봐야 어둡습니다. 많이 보이면 보일수록 아이들이 어둠만 접하게 됩니다. 아예 포기하십시오. 하지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을 비추어주십시오. 하나님을 많이 보여주십시오. 오래 하나님을 뵙게 되면 아이들 마음이 깨끗해지고 환하게 되고 맑게 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러분의 아이들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