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환란에 환란이 이어져도 (누가복음 8:40-48)

분당소망교회 2020. 11. 26. 10:47

 

환란에 환란이 이어져도..

 

 

 

누가복음 8:40~48

 

 

사람에게는 세 가지 질서가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세 가지 질서가 있어야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까닭은 그 세 가지 질서가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질서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깨어지거나 결핍될 때 사람들은 불안해집니다. 따라서 본인이 의식하든 못하든 간에 내가 이것이 부족하다, 채워야 되겠다, 다시 보충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부족하고 깨어질 때는 저절로 자기의 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까닭에 자기가 이유를 알지 못하고 무엇을 하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런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이 까닭입니다.

 

첫 번째는 육적 질서입니다. 건강, 안전 그리고 먹고 사는 경제 문제입니다. 이 세 가지가 안정이 되고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만 이것 대한 추구가 도가 지나칠 경우에는 파멸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서, 돈은 있어야하지만 너무 심하게 집착을 하는 것, 또 권력, 특히 남자들은 권력에 대한 욕구가 많습니다만 집착이 심할 때 파멸을 불러옵니다. 욕구가 있어야지 발전도 되지만 지나칠 경우는 문제가 됩니다. 그 다음 쾌락이 도가 지나칠 경우 곧바로 파괴를 불러옵니다. 자기 자신을 파괴시키고 가정을 파괴시키고 사회를 파괴시킵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고 사는 사람들, 질서가 있는 사람들은 안정된 삶의 모습을 가집니다. 삶이 아주 안정스럽습니다. 일하는 것, 살아가는 것, 행동하는 것 전부 안정스럽습니다. 그 옆에서 같이 가는 사람도 함께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질서가 깨어진 사람들은 엉뚱한 것을 추구합니다. 때로는 전혀 반대되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어렵게 됩니다. 추구하면 할수록 사이다를 마시는 것처럼 잠시는 시원하지만 갈증이 풀리지 않습니다. 점점 더 갈증이 심해집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육적 질서입니다

 

두 번째는 정신적 질서입니다. 평화와 안정의 질서입니다. 기쁨이나 만족 그 다음에 평화,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적절한 지식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이 질서가 없으면 늘 무언가에 쫓깁니다. 까닭도 없이 바쁩니다. 바쁠 일이 없는데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쫓길 일이 없는 데도 늘 쫓기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재산이 어느 정도 됩니다. 그 정도 되면 충분히 먹고는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가지려고 더 모으려고 안간 애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늘 불만이 많습니다. 사회에, 나라에, 다른 사람에, 아내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고 남편에 대해서 불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는 적개심도 많아습니다. 까닭 없이 적개심이 많습니다. 아무런 적개심을 가질 까닭이 없는데 적개심을 가지고, 미워할 까닭이 없는데 미워하는 것은 정신적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영적 질서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질서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신과의 사랑, 사람과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것이 적절히 되지 않으면 문제가 많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신을 믿든지 아니든지 간에 모든 사람들이 다 소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보면 그 안에 영원한 생명찾는 것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영적 질서가 있는 사람들은 그냥 행복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상하게 행복이 없습니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사랑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랑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을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아무리 사랑을 줘도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정말로 이해가 안 됩니다. 그 부분은 참 어렵습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받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사랑을 많이 받았고 받은 사랑이 많이 있는데도 그 사랑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많은 사랑을 추구하게 되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서 이리저리 다니는 사랑의 순례자가 됩니다. 이 사람에게 사랑 받고 저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늘 돌아다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랑의 전문 기술자가 됩니다. 사랑은 참 잘하는데 만족함이 없이 여기저기 사랑을 찾아다닙니다. 영적인 질서가 없습니다.

세상의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이 영적질서가 없기 때문에, 사랑의 질서가 없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갈증, 이 영적 갈증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자기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방황함이 있습니다. 이 사랑의 질서, 영적 질서는 단 하나, 하나님으로부터만 가능합니다. 다른 데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 이 질서를 잃었다가 기적적으로 되찾는 사건이 이어집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지나갈 때 무서운 광풍입니다. 평소 풍랑에 익숙하던 제자들이었지만 워낙 대단한 광풍인지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 전문가들이 두려워서 벌벌 떱니다. 첫 번째가 광풍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서 그라사 지방을 지날 때 소위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났습니다.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라는 말은 쇠사슬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주 무섭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힘이 없는 어린 아이가, 여자 아이가 남자 서넛을 가볍게 밀어붙입니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워낙 강하고 무서워서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정신병, 이런 환란이 있습니다.

세 번째, 열두 살 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급해서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 출발하십니다. 그 소식을 한 여인이 듣게 됩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이 듣고 이때다 싶어 예수님을 만나러 옵니다. 혈루증이라는 병은 피를 계속 흘리는 병입니다. 병 자체의 고통도 심하지만 더 큰 고통은 당시는 잘 씻을 수 없는 때라 냄새가 매우 심했습니다. 보통 자기 자신의 냄새는 자기가 잘 맡지 못하는데 혈루증은 워낙 피를 많이 흘리고 그것이 몸에 쌓여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못 견딜 정도로 심한 냄새가 있는 병으로 많이 고통스럽습니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있습니다.

네 번째, 그 일 후에 예수님께서 회당장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아이가 이미 죽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체 앞에서 통곡하고 있습니다. 어린 딸입니다. 겨우 나이가 열 두 살입니다. 나이가 적든 아니든 간에 자식의 죽음은 어마어마한 고통입니다. 다른 사람은 상상하지 못합니다.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습니다.

 

이 일들을 통해서, 이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 이 말씀의 대상이 누구인가?’ 입니다.

첫 번째, 광풍 때에 그 앞머리에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8:22) 예수님과 제자들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대상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 땅에 이르러..’(8:26) 배에 탔던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었으므로 이 말씀의 대상도 제자들입니다. 세 번째는 혈루증 여인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8:45) 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물으신 대상도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으셨을 때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8:45) 라고 베드로가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8:46)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번째, 회당장 딸을 고치러 가셨을 때는 열 두 제자들 중 특별히 세 사람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8:51)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만 데리고 가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말씀의 대상은 제자들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 여러분이 대상입니다.

 

그 다음에, 이 네 가지가 다 인생에게 닥칠 환란인데, 첫 번째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환란입니다. 이 환란은 항상 있고 점점 더 심해집니다. 갈수록 심해지고 갈수록 더 잦아집니다. 가뭄도 그렇고 홍수고 그렇고 태풍, 지진도 많이 있습니다. 산불도 무섭습니다. 그리고 역병, 전염병입니다. 미국에 코로나 때문에 사망한 사람이 베트남 전쟁 때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이런 자연으로부터 오는 환란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두 번째가 정신적 환란입니다. 본문의 환자에게 세상에도 없는 그 누구도 당하지 않았던 무서운 병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쇠사슬과 고랑에 묶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무덤 사이에 던져놓았습니다. 돼지들만 있는 곳입니다. 그 사람을 생각해봅니다. 그 사람은 본래 전쟁에 나간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에 나갔다가 이런 무서운 병에 걸렸는데, 이런 일을 겪기 전에 이런 일이 자기에게 생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병이 자기에게 올 것이라고 어떻게 상상했겠습니까? 그러나 누구에게든지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정신적 환란입니다.

세 번째는 육체적 환란입니다. 혈루증이 아니라 그 보다 더 심한 질환도 있습니다. 그런데 크든지 작든지 간에 병이 오래 되면 참으로 견디기 힘듭니다. 병이 오래 되면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일을 당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고, 신자들에게 더 심한 것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은 아닌가? 여기까지 가게 됩니다. 신자들이 이런 생각까지 가게 되면 어마어마한 고통이 옵니다.

네 번째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모든 인생이 당합니다. 누구나 세상을 떠납니다. 보통은 나이가 들어서 세상을 떠나지만 때로는 어린 나이에 젊은 나이에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주 분명하게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이란 환란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일이 오늘 본문에서는 다 이어진 일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지날 때 호수를 지나가 난 뒤 그라사 땅에 이르렀을 때, 그 다음 그곳을 지나 마을에 왔고, 그리고 마을에 와서 회당장 집으로 가는 동안 여인을 만났고 회당장 집에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앞의 세 가지 일은 누구나 똑같이 그 일을 당하는 일은 아니지만 누구든 당할 수 있는 일이고, 마지막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다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은 환란의 연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길은 환란이 이어진다는 것이 하나님 말씀이십니다. 이 일이 끝나면 저 일이 오고 저 일이 겨우 지나갔는데 또 다른 일이 옵니다. 마지막으로는 누구도 넘어갈 수 없는 죽음이 옵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믿는 사람들도 잘 믿는 사람에게도 못 믿고 덜 믿는 사람에게도 똑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씀에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환란을 당해도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라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아무리 무서운 환란을 당해도 예수에게 가는 사람은 이길 수 있다, 어떤 환란이라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예수에게로 가는 사람은 극복할 수 있고 넘을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감당할 수 없는 광풍, 타고 가던 배가 물에 가득 차서 뒤집힐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하자 모든 문제가 다 끝이 났습니다. 군대 귀신 정신병자는 그 누구도 그 사람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더 이상 사람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정신병자가 예수님을 만나자 깨끗하게 낫고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혈루증 걸린 여인입니다. 어떻게든 병에서 나으려고 모든 애를 다 썼습니다. 있던 재산 다 쏟아 부었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 여인이 퍼뜩 생각하기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회를 주셨다, 나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비록 자기는 회당장처럼 당당하게 예수님께 부탁드릴 처지가 안 된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예수님의 옷자락은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겉옷을 살짝 만졌습니다. 병이 완전히 나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십니다.

당시 회당장 지위는 웬만한 것은 다 할 수 있는 지위였습니다. 딸 치료를 위해서 좋다는 것은 모두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이 딸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왔습니다. 이미 숨이 끊어져서 죽은 딸이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하시니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환란을 당했는가? 어떤 환란을 당할 것 같은가?

앞으로 어떤 환란이 온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많은 환란이 온다고 할지라도, 겹치고 또 겹친 환란이라고 할지라도 예수께 가기만 하면 된다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여, 꼭 기억하라 혹 여러분들에게 환란이 있거나 앞으로 환란이 닥치면 곧바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예수께 가거라. 예수를 찾아라. 어떤 환란이 오든지 간에 예수께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부탁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꼭 가르쳐라, 전해라. 자녀들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환란이 오면 다른 노력도 해야합니다. 병이 생기면 병원에 가든 이런 저런 약을 쓰든, 자식 문제에 있어서도 이렇게 애를 쓰고 저렇게 애를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를 찾으십시오. 빨리 예수께 가십시오. 치료를 하고 애를 쓰고 이런 저런 노력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예수님께 가고 계속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명심하시고 그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잘 가르치고 이웃에게 전하십시오. 길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거기에 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