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 (여호수아 14:6-15 )

분당소망교회 2016. 10. 28. 13:18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

 

 

 

여호수아 14:6-15  

 

박상길이라는 나이든 백정이 장터에 푸줏간을 냈습니다.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왔습니다. 그 중 한 양반이 박상길에게 , 상길아 고기 한 근 다오.’ 라고 반말로 주문했습니다. 백정 박상길은 , 그러지요.’ 고분고분 대답하고 솜씨 좋게 칼로 고기를 베어서 주었습니다. 함께 온 다른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백정 신분이기는 하지만 나이든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기가 거북했습니다. 그래서 박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 라고 다른 말로 주문했습니다. 박상길은 아주 기분 좋게 , 고맙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고기를 잘라주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고기를 산 양반이 보니 자기가 받은 고기보다 갑절이나 많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이 사람 것은 크고 내 것은 작으냐?’ 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박상길이 손님 고기는 상길이가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서방이 잘라서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양반되기 쉽습니다. 양반 집에서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나이 들기도 쉽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세월이 가면 나이가 듭니다. 그러나 어른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했습니다. 그 후 광야를 지나 가나안 근처에 도착하게 됩니다. 출애굽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때였습니다. 모세가 가나안을 정탐하기 위해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 때 그 둘 중 한 사람인 여호수아가 그때로부터 40년 후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거의 다 정복했습니다.

이제 점령한 가나안 땅을 분배하려고 하는 그때, 40년 전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탐했던 갈렙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특별한 자리에 있을 때 사람이 찾아오면 겁이 납니다. 겁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려운 부탁을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무리한 부탁을 하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되지 않을 사람을 취직시켜달라고 하고 안 될 사람을 승진시켜달라는 부탁 등 이런 저런 부탁을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갑질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기업 회장에게 또 로펌 대표에게 그리고 대학원 원장에게 시험에 떨어진 자식을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이런 저런 부탁을 한 일들 때문에 젊은이들이 상당히 화가 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참으로 괴로운 것은 그냥 부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을 말하기도 하고 과거에 당신을 위해서 내가 이런 일을 해주었다는 말을 들먹이면서까지 부탁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찾아온 갈렙이 그러했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를 찾아와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6-8)

갈렙의 말은 사실입니다. 열두 명 중 열 명이 하나님 뜻을 거부하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 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더 믿었습니다. 그들은 절망에 빠지게 되고 밤새 울고불고 통곡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백성들은 모세 말고 다른 지휘관을 세워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섰습니다. 그 당시 일을 민수기 14장의 기록입니다,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이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14:6-7)

그들은 우리의 먹이입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뿔이 잔뜩 나 있는 사람들, 화가 나 있는 사람들, 절망에 빠진 사람들 앞에 이렇게 나섰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서주셨기 때문에 겨우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참으로 충성된 사람 여호수아 그리고 갈렙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께도 충성스러웠고 최고지도자 모세에게도 충성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갈렙을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1:35-36) 라고 인정하셨습니다.

 

이 갈렙이 당시의 동지 여호수아를 찾아와서 옛날 정탐꾼 때의 일을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땅을 분배하고 있는 중이었고 그 일 때문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가장 바르고 합리적으로 해도 말이 많습니다. 이해관계가 걸리면 때문에 평소에는 고상하다가도 얼마나 말이 많은지 모릅니다. 합리와 논리를 잃어버립니다. 제비를 뽑아서 결정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구는 더 큰 땅, 더 좋은 땅을 주고 최고 지도자가 영향을 끼쳤다는 등 오해를 하고 말이 많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늘 그렇습니다. 마치 오해하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습니다. 아무것도 오해할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소설을 다 쓰고 오해하는 것이 사람들입니다. 이런 때 갈렙이 찾아왔으니 여호수아가 혹 무슨 부탁하러 오지 않았나?’ 걱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우려대로 갈렙은 땅 문제를 부탁했습니다. 거기다 옛날 어른 모세 이름을 들먹이고 45년 전의 일까지 들먹였습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쯤 되면 씁쓸합니다. 인생이, 세상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싫어집니다. ‘그렇게 충성스럽던 갈렙도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결국 갈렙도 인간 속물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구나, 갈렙도 나이가 드니 노욕을 이기지 못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노욕이 생깁니다. ‘나이 욕심이 생겨납니다. 노욕, 나이 욕심을 이기십시오. 믿음으로 이겨나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추해집니다. 나이 들어 자기 몸에 나오는 냄새를 알지 못하듯이 자기가 얼마나 욕심을 부리는지 본인은 알지 못합니다. 갈렙이 이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하게 보면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라는 14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갈렙은 옛날 사십대에 하나님께 충성했던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85세가 된 그때까지 여전히 하나님 말씀을 잘 좇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갈렙은 우리가 우려하는 청탁을 하러 온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갈렙의 요구를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갈렙은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12) 라고 말했습니다. 갈렙이 지금 달라고 요청한 것은 산지입니다. 산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 그 땅이 어떤 땅인지 보겠습니다.

첫 번째, 그 땅은 이미 정복한 땅이 아닙니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남의 땅입니다. 그 땅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면 내가 정복해서 내 것으로 가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 땅은 좋은 땅이 아닙니다. 척박한 땅입니다. 그때까지 그 땅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그 땅이 좋은 땅이 아니기 때문에 정복해봐야 별 소용없는 땅이므로 밀어두었을 가능성이 많은 땅입니다. 이런 땅을 지금 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그 땅은 정복하기 아주 어려운 땅이었습니다. 당시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에 대해서 12절에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아낙이라는 것은 거인이라는 말입니다. 거인들 즉 센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데 거인 중에서도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15)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 땅은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 거인 중에서도 정말로 큰 사람들, 싸워서 상대하기 힘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다고 말씀하시고 또 그 성에 대해서는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다’(12) 라고 말씀하십니다.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땅은 좋지 않아도 성은 견고할 수 있습니다.

갈렙이 지금 여호수아에게 찾아와서 달라고 하는 땅은 이런 땅이었습니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을 내가 정복해서 가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정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강한 원주민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정복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그리고 정복해봐야 다른 사람들이 탐내지 않는 별로 좋지도 못하고 척박한 땅 이런 땅을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내 것 챙기고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챙기려고 하는 세상입니다. 가능한 나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세상입니다. 수고는 덜하고, 수고는 안 하려고 하면서 얻는 것은 더 많이 얻고 얼굴은 더 많이 내려고 하는 세상입니다. 어디든 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세상 나라도 그렇고 하나님 나라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정반대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수고, 다른 사람은 덜 하려고 하는 수고를 자진해서 내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일만큼 피하려고 하는 그 일을 내가 하겠다고 갈렙이 나선 것입니다.

사실 갈렙이 요청하는 산지는 그동안 여호수아에게 하나의 큰 고민이었습니다. ‘좋지도 못한 땅, 척박한 땅이고 살고 있는 사람은 강한데 이 일을 누구에게 부탁할까? 이 사람에게 맡길까, 저 사람에게 부탁할까? 부탁했다가 거절당하면 어떻게 하나?’ 인사하는 사람의 심정이 이렇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나라 교회에 있어서 인사는 정말로 더 어렵습니다. 세상이야 돈을 받고 일하지만 교회는 헌금을 내면서 일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도 그런 고민에 빠질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너무 큰 죄악에 빠져서 멸망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으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자비하신 하나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든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고 살려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고민고민 하셨습니다. 누구를 보내 회개시키고 바로 돌아오도록 만들어야 되겠는데 너무 어렵습니다. 그 일을 할 만한 사람 찾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생각하다가 한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요나였습니다. 요나를 불러서 가라고 하셨는데 요나는 배를 탔지만 다른 곳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이것 때문에 요나는 3일 동안 악취가 진동하는 온갖 오물 속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을 고생을 다했습니다. 요나가 이렇게 고생했지만 요나보다 더 힘들었던 분이 하나님입니다. 요나는 고생을 좀 하면 되겠지만 하나님은 살려야할 사람들, 구원해야할 사람들이 너무 많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가슴이 참 아프고 답답했습니다. 이 일을 누구에게 맡길까.. 고민하셨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이제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선민입니다. 하나님은 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누구를 보내야겠는데 아무도 나설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보시기도 그렇습니다. 그럴 까닭이 있습니다.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해봐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싫은 소리를 하면 싫어합니다. 좋고 편한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찾아가게 됩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그러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런 말을 하면 당할 것이 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6:8) 라고 한탄하셨습니다. 그 한탄을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갔을 때 이사야가 듣도록 슬쩍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한탄을 들은 이사야는 선뜻 나섭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날 보내주십시오.’ 이사야의 그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직접 말씀도 못하시고 슬쩍 비추신 하나님의 이 심정을 생각해보십시오. ‘이사야야 가거라라고 쉽게 말하면 좋을 텐데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말을 못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사야는 자기가 가겠다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십시오.

 

갈렙이 그랬습니다. 여호수아가 갈렙 형제여, 당신이 좀 나가줬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부탁도 하기 전에 이 어려운 일을 하겠다고 먼저 나섰습니다. 그 땅을 달라고 하는 갈렙의 말을 들은 순간 여호수아는 그 말의 뜻을 당연하게 알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땅 문제 때문에 이런 저런 걱정으로 답답했던 여호수아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시원했을 것입니다. 잠언서 2513절은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게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렙은 그 답답했던 여호수아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갈렙 때문에 여호수아보다 더 마음이 시원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가슴입니다. ‘내 소원은 하나님은 들어주셔야합니다. 내 부탁은 먼저 들어주셔야합니다.’ 내 필요를 하나님께 달라고 아우성 치고 붙들고 늘어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에는 온갖 핑계를 댑니다. ‘이 일만큼은 피하게 해주십시오. 저에게는 이런 사정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양하고 거절하니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 답답하던 하나님의 가슴을 갈렙이 시원하게 해드렸습니다.

 

그 갈렙에게 무엇보다 귀한 것이 또 있습니다. 당시 갈렙 나이가 여든 다섯 살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조금만 들어도 나이 핑계를 잘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아십시오. 내 나이 얼마라고 핑계하는 것은 자기를 스스로 더 늙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이를 말하면 말할수록 더 빨리 늙습니다. 그것은 육체만 늙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은 육체보다 더 빨리 늙습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뇌의 시스템은 여러분이 하는 말을 제일 잘 듣습니다. 사람보다 훨씬 빨리 듣는 것이 여러분의 뇌입니다. 입으로 하는 말은 물론이지만 마음속으로 하는 말까지 여러분의 뇌는 듣습니다. 과학자와 의학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제일 빨리 듣는 것이 여러분 자신의 뇌입니다. 여러분이 자꾸 내 나이 얼마라고 하면 치매 빨리 오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빨리 치매에 걸리고 싶으면 나이 이야기하십시오.

그러나 갈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 나이 여든 다섯 살이지만 나이 많다고 내가 하는 부탁을 거절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세로되’(10)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11)

나이가 많다고 거절하지 마시고 이 일을 나에게 맡겨주십시오.’ 얼마나 멋집니까? ‘그런 위험한 일은 나 같은 늙은이가 하고 젊은이들은 다른 일을 시키십시오.’ 라는 말입니다. 세상과 반대입니다. 나이 팔십오 세의 갈렙, 참 멋집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귀해진 사람이 갈렙입니다. 진짜 멋진 갈렙, 그는 나이가 든 것이 아닙니다. 젊었습니다.

 

언젠가 전해들은 일본인 교수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일본인 교수가 미국에서 근무하던 대학을 떠나게 되어 젊은 일본인 학자들이 선배 교수의 송별잔치를 했습니다. 함께 근무하던 한국인 교수도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그런데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일 나이 많은 그 교수가 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고기를 굽고 있는데 잠시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굽고 있더랍니다. 그 분은 초대 손님이며 다음 날이면 이제 그 대학을 떠나게 됩니다. 더구나 송별 잔치하는 마당이 자기 집이 아니라 후배 교수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교수는 내내 움직였습니다. 고기 굽는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들을 찾아내고 그냥 앉아서 대접받는 일이 없었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연장자를 존중하는데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그 한국인 교수가 그 일본인 교수에게 교수님 젊은이들에게 시키고 우리는 그냥 술이나 마십시다.’ 라고 농담 삼아 한 마디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일본인 교수는 우리는 나중에 마시지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마음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참으로 마음 답답해합니다. 하나님은 더 답답해하십니다. 어느 기독교인이 성경을 보노라면 하나님은 참 외로우시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도 성경을 보면서 계속해서 드는 마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답답하십니다. 참 외로우십니다. 이렇게 답답함을 느끼시는 하나님, 외로움을 느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 마음도 시원하게 해드리고 사람 마음도 시원하게 해드리십시오. 남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아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 부모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 주변의 다른 사람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제가 단연코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사시면 하나님께서 행복하십니다. 여러분 남편이 행복하고 아내가 행복하고 자식이 행복하고 부모가 행복하고 동료가 행복하고 매사가 행복합니다. 분명하게 그렇습니다. 그러나 더 행복한 사람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여러분이 그렇게 살면 여러분이 굳이 이런 저런 것으로 아쉬워하고 매달리고 간구하고 부탁할 일이 없어집니다.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 덜 주실지 너무너무 분간을 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