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30~37)

분당소망교회 2018. 6. 1. 14:52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30~37

 

 

아름다운 사람들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한 아들의 부모님 세상 이야기입니다.

대공황 시절 아버지는 미주리 주 세인트 조셉 강 근처에서 식료품 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 지역은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던 실업자들이 잠시 머물다 가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실업자들은, 먹을 것이나 임시로 머물 곳을 위해 일을 했다.

인정 많은 마을 사람들이 음식이나 물건을 그냥 주기도 했다. 실업자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또는 농장들을 떠돌아다니면서 남의 집 울타리나 헛간에 암호들을 몰래 새겼다. 예를 들면 배고프고 피곤한 나그네들이 한 끼 식사를 얻을 수 있는 집, 하룻밤 잠자리를 얻을 수 있는 집을 분필로 표시했다. 행복한 얼굴을 그린 표시는 들어가서 잠을 잘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외에 아플 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을 가리키는 암호도 있었다.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표시가 있는 집에서는 어느 누구도 품을 팔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우리 집 역시 어려웠다. 러시아에서 이민 오신 아버지는 처음에는 행상을 하면서 실, 바늘, 옷감, 가죽 등을 팔았다. 나중에 식료품점을 하기는 했지만 팔 물건을 갖추어놓느라고 많은 애를 먹었다. 아버지는 식료품이나 통조림 들을 가능한 선반 앞쪽으로 옮겨 진열해 놓아서 물건이 실제 있는 것보다 더 많아 보이게 하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주기도 하셨다.

부양할 자녀들이 다섯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외상 주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배고픈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내는 일이 없었다. 때로는 기차가 우리 마을에 서면 실업자들이나 떠돌이들이 철길로 뛰어내려 기차역에서 가까웠던 우리 가게 쪽으로 거리를 가득 메우고 몰려들었다. 더운 여름날에는 어머니는 주전자를 들고 가게 앞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레모네이드를 따라주셨다. 가게 안에 있던 아버지는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나누어주셨다. 아버지는 소시지와 우유도 좀 드릴까요?” 라고 묻기도 하셨다.

어느 날 남루한 한 노인이 낡은 손수건으로 눈을 닦으며 우리 가게에 들어왔다. 그 날은 군데군데 기운 작업복을 입은 남자들이 유난히도 많이 가게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노인에게 혹시 그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아버지에게 보여드릴 게 있으니 밖으로 나와 보라고 했다. 호기심에 나도 따라나섰다. 우리 가게 모퉁이에 석탄조각으로 그린 십자가 표시가 있었다. 노인은 그 십자가 표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선한 크리스천이 여기에 산다는 뜻입니다. 음식을 구하는 사람을 절대로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 집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어려웠던 대공황 시절이 지나는 긴 시간동안 아버지는 아무리 어려워도 그 십자가 표시를 지워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표시에 조금도 부족함 없이 행동하셨다.

이런 아버지를 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는 대답하시지 않고 대신 질문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교사인데 율법서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답을 잘 알고 있는 율법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라고 정답을 말했습니다.

율법교사는 자기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답을 알면서 또 질문하고 답을 알면서도 또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답을 알면서도 제대로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교사의 그 문제를 아셨기 때문에 대답 대신 도리어 질문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말씀하십니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10:28)

 

율법교사는 역시 문제였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알아들을 법도 한데 또 다시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해야할 나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일종의 말장난입니다. 상당히 많은 경우에 사람들 특히 잘난 사람들은 할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할 것을 하지 않습니다. 말로서 끝을 내려고 합니다. 그 율법 교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이 그 사람을 거의 죽을 정도로 만들고는 버리고 갔다. 그 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냥 피해서 지나가고 말았다. 그 다음 지나가는 사람이 평생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사마리아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얼른 응급처치를 하고 그를 주막에 데려다 돌보다주고 주막 주인에게 이미 든 비용을 지불하고 뿐만 아니라 만약 돈이 더 들면 돌아올 때 더 주겠다는 말고 함께 부탁까지 하고 갔다.’

그 이야기 끝에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랍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교사는 역시 대답은 잘했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37)

그 말까지 듣고 난 뒤 예수님께서 율법교사가 이제 더 이상 질문조차 하지 못하도록 마지막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37) 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도와주는 일과 관련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말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라,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핵심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누구를 도와줄까?’, ‘어떻게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생각만 하다 보니 나는 이미 선한 사람이고 사랑하는 사람이고 구제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론적인 문제만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 기도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제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내 손으로 도와주는 것이고 내 주머니를 열어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행하라는 말씀을 28절에서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하셨고, 37절에도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시골 가난한 집이 있었습니다. 너무 가난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는 물론이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어린 아들 하나를 도시로 내보냅니다. 가서 심부름하면서 밥이나 먹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난했습니다. 할 수 없어서 이미 보낸 어린 아들보다 더 어린 아들까지 형이 있는 곳으로 보냅니다.

이 동생이 형을 만났습니다. 처음 며칠은 좋았습니다. 그동안 먹지 못하던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동생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합니다. 주인 얼굴이 점점 더 무섭게 보이고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형에게 집으로 가고 싶다고 보챕니다. 형은 여러 말로 달랩니다. “이제 곧 괜찮아질 것이다. 좋은 친구들도 생길 것이고 네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학교도 가게 될 것이다.” 달랬지만 어린 동생은 두 살 밖에 더 많지 않은 형에게 돌아가겠다고 울며 칭얼거렸습니다. 동생을 달래던 어린 형은 동생을 데리고 시내로 나갑니다. 물건이 가득한 가게 진열장 앞에 섰습니다. 신기한 물건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생은 처음에는 신기해하더니 곧 돌아가겠다고 다시 칭얼거렸습니다.

그때 형이 동생의 손을 붙들고 말합니다. “저기 봐라, 이제 곧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저기 저 할아버지가 너에게 금돈을 주실 것이다.” 동생의 눈이 반짝 합니다. 저 멀리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 한 분이 오고 계셨습니다. 점점 가까워집니다. 그 할아버지가 동생의 손을 붙들고 이야기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늘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러나 땅의 어떤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 분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누구든지 그 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그 분의 이름은 예수님이다.”

그러나 동생은 할아버지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손만 보였습니다. ‘언제 저 할아버지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금돈을 끄집어내시나?’ 드디어 할아버지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이야기를 다 끝낸 할아버지는 손으로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에 주머니에서 금돈을 끄집어내어 동생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이 동생이 나중에 미국과 영국에서 백만 명이 넘는 영혼을 주님께 인도한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 디엘 무디 선생님입니다. 무디 목사님은 어릴 때 그 일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때 그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단지 나에게 금돈을 주셨고 나는 그때부터 더 이상 슬프지 않았던 것만 기억합니다. 그 할아버지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며칠 전 TV방송에서 전국 행사장면을 하나 방영했는데 그 제목이 나눔이 희망입니다였습니다. 보기에도 듣기에도 참 좋았습니다.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새해에 캐치프레이즈 하나 붙들고 싶지 않습니까?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새해 여러분의 캐치프레이즈로 붙들고 한 해 동안 그렇게 살면 참 좋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말씀 붙들고 그 말씀 그대로 사신다면 새해 한해는 여러분에게 풍성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새해는 여러분 인생 중에서 다른 어떤 해와 비교될 수 없는 풍요로운 인생이 될 것이고, 행복한 한 해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