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이렇게 축복하라 (민수기 6:22~27)

분당소망교회 2018. 8. 9. 10:33

 

이렇게 축복하라

 

 

 

민수기 6:22~27

 

 

설 명절에는 세배를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세뱃돈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어릴 때는 세뱃돈을 받고, 나이가 들면 주고, 나이가 더 들면 다시 받습니다.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에게는 세뱃돈을 드려야합니다. 돈이 넉넉하게 있는 어른이라도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겠지만 세뱃돈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이 빌어주시는 복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상징적으로 주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세뱃돈은 복을 빌어주는 덕담의 상징입니다. 세뱃돈을 주면서 건강해하라, 공부 잘해라, 사업 잘되라는 복을 입으로 말하기도 하고 마음속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새해에 세배를 하면 세뱃돈도 주고 덕담도 하는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덕담보다도 더 좋은 덕담, 기독교인들만 할 수 있는 좋은 덕담이 없을지 생각해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생각하실 것은 모든 것에 대한 답이 성경에 들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다른 집에 들어갈 때 혹은 사무실에 들어갈 때 기도를 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 또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10:11-1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집이나 사무실에 들어갈 때 기독교 신자들은 잠시 기도를 하게 되는데 준비하지 않으면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준비 없이 기도하면 기도를 해도 사실은 모양만 내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중요한 일을 위해서 어떤 길을 갈 때, 자식이나 남편이 어떤 길을 갈 때 짧은 시간이라도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생각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출발하기 전에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모세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금송아지를 하나님 대신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이들을 다 없애고 새로운 민족을 만들어서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하실 정도로 화를 내셨습니다. 모세가 엎드려서 하도 간곡하게 사정을 하자 용서를 해주셨지만 그 때문에 3천 명 정도나 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이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올라가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같이 가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요청하지 않아도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화가 나셔서 당신은 가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 말씀에 그렇게 잘 따르던 모세가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시면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당시 하나님은 너무 화가 나셔서 도저히 함께 갈 마음이 아니셨습니다. 정말로 화가 많이 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하나님께 함께 가주셔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한 걸음 양보를 하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가시지 않지만 천사들을 함께 보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쯤 되면 모세도 물러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 같지만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른 것은 다 순종해도 이 일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내키시든지 아니 내키시든지 간에 우리가 가나안에 갈 때 친히 꼭 함께 가 주셔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모세가 알았던 하나님의 마음이 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보내면 도저히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사실, 그것을 모세는 알았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을 알아야합니다. 부모님 마음도 알아야합니다. 명절이 되었는데, 힘드니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 그대로 믿는 자식은 못난 자식입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얼마나 자식들이 오기를 바라는지 모릅니다. 용돈을 드릴 때에도 쓸 데가 없으니 괜찮다고 하셔도 그 말 믿으면 안 됩니다. 더 드려야합니다.

 

제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크게 후회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20여 년 전 어머님 계신 곳에 가는데 보통 12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때로는 20시간도 걸렸습니다. 어머니는 늘 제가 힘든 것을 아시니 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어느 해인가 그 말씀을 듣고 난 뒤 어머니께서 정말로 제가 힘들게 오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형님도 어머니 말씀대로 오지 말라고 하셔서 명절 전에 다녀가면서 명절에는 오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도 형님도 오지 말라고 하셨고 명절이 지나고 난 뒤 다시 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마음 쓰지 않았는데, 명절 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늦게까지도 집에 들어오시지 않아서 형님께 여쭈었더니 혹시라도 제가 올까 하여 마중 나가서 기다리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했음에도 혹시라도 올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 때문에 나가 계셨던 것입니다. 딱 한 번이었지만 저에게 이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꼭 내려갔습니다. 심지어 22시간 운전해서 간 적도 있습니다. 내려가서는 하는 일 하나도 없습니다. 피곤해서 누워 자고 있으면 누워 자는 아들을 쳐다보시면서 그렇게도 좋아하셨습니다.

하나 더 후회하는 것은 어머니가 나중에 몸이 안 좋으셔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습니다. 평소에 늘 용돈을 드렸는데 이제는 달리 쓸 데가 없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용돈을 조금 줄였습니다. 그리고 난 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용돈을 적게 드리면 어머니는 제가 경제가 어려운지 안 좋은 일이 있는지 한없이 걱정하셨습니다. 한 번 용돈을 내리고 난 후부터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낳았습니다. 어머니께 용돈을 드렸지만 사실 어머니는 하나도 쓰시지 못하셨습니다. 나중에 돌아가실 때 보니 어머니 돈이 많았습니다. 그 돈을 어머니를 모시느라 힘들었다고 큰 형수님 다 드렸습니다. 오지 말라는 말, 돈이 필요 없다는 말, 그 말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가고 또 가는 것입니다. 돈이 필요 없다고 해도 드리고 또 드리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아실 것이 하나님 마음입니다. 하나님 마음을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여러분과 하나님의 사이클이 같이 돌아가면 장담하건데 여러분이 하나님께 이것저것 일일이 구하는 기도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올라가시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라고 우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못 이기시는 척 하면서 친히 함께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분이 좋으셨습니다. 만약 모세가, 하나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만 올라가겠다고 했다면 얼마나 서운하셨겠습니까?

 

다시 덕담 즉 축복으로 돌아갑니다. 신자들이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최고의 덕담, 축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오늘 본문의 축복입니다. 소위 아론의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자식들이나 손주들이 세배를 하고 나면 그들은 여러분의 손만 쳐다봅니다. 그때 성경을 펼쳐들고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오늘 본문 24절과 25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말씀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아직 어린 아들들은 그 말씀은 잘 듣지 않고 오로지 여러분의 손만 쳐다볼 것입니다. 그때 아이들이 쳐다보고 있는 손을 주머니에 넣어 꺼내서 세뱃돈을 주십시오. 아이들이 모르는 것 같아도 기억 않는 것 같아도 알고, 오래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제사장 아론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축복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제사장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베드로전서 2장에서 9절에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기독교인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신자들은 모두 제사장들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기독교신자들이 다른 사람들 특히 자식들이나 손주들에게 하는 축복을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먼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는 24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개의 비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복을 주시고라는 말씀의 복은 무릎 꿇고 축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들이나 손주들을 축복하실 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서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축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내 아들 딸에게, 내 손주들에게 이런 복을 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바로 이런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저 아이가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잘 되게 해주십시오. 공부 잘하게 해주십시오. 사업 잘 되게 해주십시오.’ 무릎 꿇고 하나님께 비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축복할 때 이런 의미를 알면 의미가 훨씬 달라집니다.

24절에는 지키시기를 원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의 지키신다는 말은 감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치 죄수를 감시하듯이 감시한다는 것입니다. 교도소에 있는 죄수들을 안에서도 밖에서도 얼마나 감시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처럼 죄수를 감시하시듯이 어디를 가든지 쳐다봐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기를 무릎 꿇고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다음은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는 25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시기를 원한다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4장에서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4:2-3)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 주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든 의미에서 건강하게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이 축복을 하게 되면 그런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린 송아지가 뛰어 노는 모습을 보셨습니까? 어른 소는 천천히 걷지만 힘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증권회사는 황소를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이에 비해 송아지가 경쾌하게 뛰는 모습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이 송아지가 건강과 젊음의 상징입니다. 이 복은 그런 복을 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는 세상 사람들을 이긴다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악인을 밟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빛을 비춰주시면 여러분의 상대, 여러분의 대적,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여러분의 발바닥 밑에서 가루가 된 재와 같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25절의 축복입니다.

 

이어서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라는 26절 말씀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에 대해서 아주 잘 말씀하시는 것이 시편 27편의 말씀입니다. 시편 27편은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27:8) 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27:9)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아들, , 손자, 손녀에게 얼굴을 향하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반대로 부정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고 숨긴다는 것은 화가 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기 싫다는 것입니다. 버리고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네가 도움을 요청해도 도와주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숨기고 가린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시면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사람이 여러분을 보지 않아도 속상하고 힘든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신다면 정말로 깊은 절망 속에 빠지게 됩니다.

어느 병원 병실에서 한 젊은이가 노인의 싸늘한 시신을 부둥켜안고 통곡을 합니다. 젊은이는 아버지,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라며 통곡을 합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비행기를 탔습니다. 여러 시간의 비행 끝에 아버지가 누워계신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도착한 시간은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아버지는 장군이셨습니다. 장군이신 아버지는 아들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말씀 잘 듣고 순종하고 공부도 잘 했습니다. 이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가 바라던 사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의 자랑스러움, 뿌듯함과 기대는 한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아들이 자기 뒤를 이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들이 사관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아무리 실망해도 아버지는 아버지입니다. 자식들은 이것을 잘 모릅니다. 아들은 이제는 아버지가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 아들은 모든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고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아들은 그 원인이 아버지가 자기를 받아들여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들은 어떻게 하든 간에 아버지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렇지만 일은 조금도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게 됩니다. 이 아들은 앞으로 절대로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고 잘하겠다는 말을 하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부랴부랴 날아갔지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끝내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의 말을 듣지 못한 아들은 절망하면서 통곡한 것입니다.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되십니다. 남편들은 아내의 받아들여지는 사람, 아내도 남편으로부터 받아지는 사람이 되십시오. 자식들은 부모의 받아들여지는 사람으로 사세요. 너무도 중요합니다.

사람으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처럼 중요한데 하물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진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문제이겠습니까? 어마어마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진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방언 받으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처음 방언을 받게 되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가득 찹니다. ‘환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평안이 있습니다. 일이 안 되어도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한다고 해도 이 평안은 빼앗기기 않습니다. 물론 당분간입니다. 차제에 말씀드리는데, 방언은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좋은 것보다 좋지 않은 것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간에 방언을 처음 받으면 이런 환희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모든 능력, 모든 권세를 다 주신 것 같습니다. 내가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내 기도를 들러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최고 지도자 모세가 죽고 난 뒤 여호수아는 공황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까지나 함께 계실 것 같은 모세였습니다. 물론 여호수아도 언젠가는 모세도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시자 너무 놀라게 됩니다. 자신을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이랬던 여호수아가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성공적인 지도자가 됩니다.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원인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죽고 난 후 깊은 실망 속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는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셨는지 혹은 여호수아가 자기 혼자만의 생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다고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신다는 믿음이 있을 정도가 되면 그것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1:5)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1:9)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드시고 나를 향해서 보신다는 것도 믿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자신을 잃고 두려움 속에 빠져서 어쩔 줄 몰라 했던 여호수아가 단번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최고 성공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믿음을 가지고 축복하십시오.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이 축복을 하십시오. 본문의 이 축복이야말로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단지 이런 좋은 일이 있을 때 항상 조심해야할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런 축복을 할 때 복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아들, 딸들도 알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아론이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축복하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를 불렀지만 축복의 주체가 모세가 아니라 아론입니다. 그러나 아론도 정작 복의 주체는 아닙니다.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가 복을 주시고’, ‘여호와가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가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계속해서 복의 주체가 하나님인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아들 딸 손자 손녀들에게 축복할 때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두 번째, 여러분이 축복할 때 성경에 있는 말보다 더 좋은 말로 축복하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 보다 더 잘 하는 축복, 더 좋고 더 큰 축복의 말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히브리나 영어로 된 성경을 보고 한글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조금 모자라는 번역일지라도 그것 그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고 받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다가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주신 성경말씀 이대로 축복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대로 하십시오.

세 번째, 여러분이 축복할 때 내가 이렇게 축복하기는 하지만 정말로 하나님께서 이내가 축복하는 복을 내려주실지 의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 없는 생각 하지 마시고 믿음을 가지고 축복하십시오. 틀림없이 이 축복을 받아주실 것이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단한 사람이라서 그런 권세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축복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셨고 당신 명령에 따라서 축복하는 사람들의 축복에 듣고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명령과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27)라고 명령약속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축복하셨는데 혹시라도 그 축복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붙들고 따지십시오. 따져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 좋아하십니다.

 

이와 함께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자녀가 경제의 복을 받기 원한다면 꼭 권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식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치십시오. 물론 자녀들에게 당장은 다소의 부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친다면 그것이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경제적 지원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3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나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3:10-12)

여기에는 틀림없이 하나님 당신이 말씀하신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말씀하시면서 그렇게 강하게 하신 말씀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복보다 큰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얼마나 단단하게 약속하셨는지는 나를 시험하여 보라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넘치는 복을 주시고 그 다음에는 그 복을 지켜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 가운데 돈을 많이 벌기는 했지만 사기를 당했든지, 병이 나든지 이렇게 저렇게 하여 남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넘치는 복을 주시고 그것을 다 다 지켜주겠으니 나를 시험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구나 십일조의 복은 부모가 자식에게 빌어주는 복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복을 빌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식이 조금 모자라면 그 아버지를 봐서, 그 어머니를 봐서 그 자식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많이 모자라서 도저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비는 복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로 인한 복은 한계가 없습니다. 당사자의 자격으로 말미암은 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실제적인 필요를 여러분이 채워주시는 것도 좋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약속하신 오늘 본문의 민수기의 축복을 하십시오. 세배 받을 때뿐만 아니라 다른 때에도 늘 그렇게 하십시오. 민수기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24-26) 라는 말씀을 읽은 후, 세뱃돈을 주고 또 귀한 성경 한 구절을 펼쳐서 읽어준다면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말씀을 받아라!’고 한 후 이 말씀을 읽어주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나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3:10-12)

그리고 하나님 말씀이다.” 라고 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