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자기의 가치는 (마태복음 7:1-12)

분당소망교회 2020. 8. 4. 09:02

 

 

 

 

 

자기의 가치는

 

 

 

마태복음 7:1~12 ═══════════════════

 

 

문전성시를 이루던 갈빗집이었습니다. 지방에서도 손님이 몰려왔고 한참을 줄서서 기다려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 판매량이 3000만원을 넘던 음식점이었습니다. 주인 부부가 매일 나와 마당에서부터 가게 곳곳을 청소했습니다.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을 만큼 위생적인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은 신선한 식재료를 사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나갔습니다. 혹시라도 음식 맛이 조금이라도 잘못 되었을까봐 수시로 체크했습니다. 오는 손님들에게 친절, 정성을 다했습니다. 주인 부부는 문 닫을 때까지 늘 가게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 음식점이 변했습니다. 장사가 잘 되자 주인이 가게 관리에 소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회장 명함을 새겨 지역 사업가 모임에 나가서 유지 형세를 했습니다. 국내외 골프장을 매일 다녔습니다. 부인도 남편 따라 자기 시간을 가지며 이제는 가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게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식재료 구매를 유통업체에 맡겼고, 주방장은 리베이트를 받았습니다. 품질이 떨어지고 원가는 올렸습니다. 단골들이 하나 둘 떠났습니다. 손님은 줄고 수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가격을 올렸습니다. 손님이 더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이 가게는 문을 닫았습니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서 토해낸다는 말을 씁니다. 가게가 주인을 토해냈습니다. 주인이 가게를 귀하게 여기지 않자 가게도 주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가게는 더 이상 그런 주인을 품을 수 없어서 토해내고 만 것입니다

 

레위기 18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제 곧 가나안 땅을 차지해서 살게 될 이스라엘에게 경고를 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18:24-25)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18:28)

오래된 옛날 대중가요 <작은 연못>이 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이 있었다. 이 연못에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여름, 연못 속에 살던 붕어 두 마리가 서로 싸웠다. 그 중에 한 마리가 죽었다. 죽은 붕어의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었다. 연못 속에서는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다.연못이 서로 죽을 때까지 죽으라고 싸워대는 붕어들을 도저히 품을 수가 없어서 토해버린 것입니다

 

가치가 없는 것들은 다 토해냄을 당합니다. 나라도 가정도 사람도 그렇습니다. 가치가 없으면 행복으로부터 토해냄을 당합니다. 평화로부터, 풍성함으로부터, 사랑받음으로부터 토해냄을 당합니다. 행복도 평화도 풍성도 사랑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만 받습니다.

 

마태복음 712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말씀은 유명한 기독교의 황금률로 예수님의 명언이라고 세상에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기 위해서 남을 대접하라고 하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 앞의 1절도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아야할 것은, 내가 비판받지 않기 위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가 그런 것이라면 우선 우리 예수님은 죄송하지만 기독교인들을 이기주의자, 자기 중심주의자가 되라고 만드시는, 그렇게 가르치시는 못난 주님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우리 기독교인들은 모두 좁쌀이 되고 맙니다. 한 알이 더 많으냐, 적으냐? 내가 이 한 알을 줄 것인지 말 것인지 아무 것도 아니고 티끌밖에 안 되는 좁쌀을 세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런 기회에 확실하게 아십시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그렇게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이타주의를 가르치셨습니다. 늘 다른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 힘없고 불쌍하고 없는 사람, 약한 사람, 병든 사람 이런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은 고아와 객과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2419절에서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넉넉하지 못했고 넉넉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24:19-2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힘들게 남기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 지나갔으면 그냥 두라, 다른 사람이 먹도록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돈을 빌린 채무자를 위해서는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전당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24:10-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라도 채권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더 값어치 있는 전당물을 잡으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습니다. 예수님 마음이 이렇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날짐승이나 들짐승까지 챙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 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25:3-7)

이 정도 챙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가 전혀 아닙니다. 이타주의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실 때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24:18)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24:18) 라는 경고까지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옛날에 종 되었던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없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가진 사람이고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행하라고 명령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신명기 2422절에서도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게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라고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드럽게 하시는 말씀이지만 경고입니다. 이 말씀은 만약에 옛날에 나그네였고 종이었던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면 이제라도 나는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 여러분들이 이전에 포로였고, 나그네였고 종이었는데 다시 그런 종, 나그네, 포로가 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볼 때 여러분들이 먼저 생각하실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의 시선을 여러분 자신에게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비판을 받지 않느냐? 어떻게 하면 내가 조금 더 대접을 잘 받겠는가? 어떻게 하면 내가 형통하게 되고 내 일들이 잘 풀리고 내가 넉넉하게 되는가?’ 이런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시선을 여러분들에게 두면 예수님의 말씀은 전부 다 실없는 말씀, 아무 쓸모없는 말씀이 되고 맙니다.

 

이제 오늘 본문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요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7-8) 라는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냉정하게 보십시오. 이 말씀 그대로 되던가요? 여러분들이 구할 때, 찾을 때, 문을 두드릴 때 항상 문이 열리고 찾았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여러분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가 요구할 때 어떻게 반응하시는 하나님이신가?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구할 때, 우리가 찾을 때, 우리가 문을 두드릴 때 못 들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외면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9-11)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므로 여러분들이 세상 살면서 시선을 에게, “우리에게 두지 말고 그 하나님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보면 이런 경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 수 있다는 이것이 오늘 황금률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가?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께 그런 바람이 있고 소원이 있는 사람들인데,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이 말씀을 하십니다. ‘마땅하게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처럼 여러분들도 힘없고 모자라고 딱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을 안타깝게 두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들이 열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네들은 도저히 길이 없고 방법이 없어서 여러분들에게 길을 달라고 답을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들은 외면하지 않고 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기독교인이 아니겠느냐?’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런 소원을 가지고 그렇게 기대하시고 그런 것을 원하심에도 불구하고, 만약 여러분들이 그 딱한 사람들에게 답을 안 주고 문을 안 열어주는 사람이라면 여러분들은 과연 하나님께 그런 응답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나에게 문 좀 열어주십시오. 나에게 응답을 주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과연 복을 내리시겠는가?’ 라고 이어집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라는 6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될지 여러분들이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가치는 자기가 만든다. 나에게 사랑받을 가치, 나에게 대접받을 가치, 여러분들이 구하고 찾고 소원하는 것을 나에게 받을 수 있는 가치, 여러분들이 답답할 때에 내가 흔쾌하게 문 열어줄 가치, 그 가치는 다 여러분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네 번째 왕인 르호보암이 이것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역대하 1116절과 17절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어서 역대하 121절에서는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나라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지도자들이 이러면 백성들이 다 따라합니다. 지금 이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교회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목사라는 사람이 잘못된 말, 잘못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면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지게 되고, 성도들은 무엇이 바른 것인지 아니면 잘못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그에게 병거가 천이백 대요 마병이 육만 명이며 애굽에서 그와 함께 온 백성 곧 리비아와 숙과 구스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더라 시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빼앗고 예루살렘에 이르니 그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의 일로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하셨다 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이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들이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저희를 조금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대하12:2-7)

르호보암이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니까 하나님 은혜가 덮어졌고 나라가 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르호보암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나자 하나님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나라가 형편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죽을 때가 되자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조금밖에 안 돌아왔습니다. “경향이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무섭습니다. 한 번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경향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어야합니다. 올라오려고 했지만 조금밖에 못 올라와서 하나님도 은혜를 그것밖에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남 유다의 참 괜찮았던 왕 아사도 그러했습니다. 한참 동안 잘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은 다 없앴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 결과를 성경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대하15:15)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성경은 이때부터 아사 왕 제삼심오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대하15:19) 라고 말씀하십니다. 잘했더니 35년 동안 나라가 평안했고 풍요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 이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잘하던 아사, 잘 살고 평안하게 되자 사람이 바뀝니다. 36년째 되던 해, 어찌된 일인지 사람이 바뀝니다. 나라에 위기가 왔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나서서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그 하나님의 종들을 학대했습니다.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합니다. 올라가면 한없이 올라가서 하나님보다 더 올라가게 됩니다.

그 결과를 성경은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대하16:12)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의사를 찾아가지 말라, 약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약을 쓰든지 의사를 찾아가든지 간에 의사도 약도 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것이고 치료는 하나님께서 해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아사가 왕위에 있은 지 사십일년 후에 죽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대하16:13) 라고 말씀하십니다. 삼십 구년에 발이 병들었고 사십일 년에 죽었습니다. 2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를 하나님께서는, ‘저 아사는 죽지 않을 병으로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사가 하나님께 잘하자 하나님도 35년 동안 한없이 잘해주셨습니다.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심판 광경을 이렇게 보여주십니다,

심판주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한다. ‘저주를 받을 자들아,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라.’ 심판주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너희들은 불쌍한 사람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 옷 입히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않았다. 이 죄로 그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른편 사람들에게 심판주가 또 이 말씀을 하신다.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최고의 나라, 이 땅에서 영광 그리고 저 하늘에서의 영광도 여러분들이 받으라. 그 이유를 심판주는 불쌍한 사람이 먹을 것을 주릴 때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혔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돌보았다. 그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 모든 영광 이 모든 복을 받게 되었다.’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드십시오. 그것도 조그마한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최고의 가치가 있는 사람, 정말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사람에게도 그렇게 되십시오. 여러분의 아내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런 여러분들이 되고, 이웃에게도 회사에 가장 작은 사람에게도 그런 가치를 만들어 가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그런 가치를 만들어 가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가치를 만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가치대로 대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