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철저하게 하나님과 함께 (느헤미야 2:1-10)

분당소망교회 2020. 8. 5. 08:03

 

 

철저하게 하나님과 함께

 

 

 

느헤미야 2:1~10═══════════════════

 

 

세계적인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은 다른 사람 흉내 내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바쁘게 시간을 보내던 찰리 채플린이 남몰래 조용한 여행을 떠납니다. 시골 어느 마을을 지날 때, 마침 그 마을에 채플린 흉내 내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진짜 채플린처럼 분장하고 나와서 채플린 특유의 몸짓, 말투 흉내를 내었습니다. 채플린의 장난기가 발동되었습니다. 자기 신분을 속이고 출전을 요청했습니다. 대회에 참가하게 채플린은 자기가 평소에 하던 그대로 연기를 했습니다. 심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심사 결과, 진짜 채플린은 3등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진짜 채플린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채플린이 두 사람이나 더 있었던 것입니다.

 

신자들 가운데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만한 사람인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두기에는 정말로 아까운 사람, 본인도 시켜주기만 하면 모든 힘을 다하겠다는 각오로 채비가 다 갖추어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외면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저 사람은 참 괜찮은 사람인데, 저 사람은 쓰면 될 텐데, 이렇게 일하면 될 텐데, 하나님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잘 할 텐데이럼에도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고 쓰시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생각해볼 말씀이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6:7) 라는 말씀입니다. 본인도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데, 본인 스스로는 대단히 잘 하고 바르게 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럴듯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사람들이 보는 그것과 무언가 달랐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특별한 무엇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쓰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는 사람, 멋진 기회들을 받는 사람, 좋은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특별한 그 무엇이 없지만 하나님 눈에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 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특별한 그 무엇이 그 사람에게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대체로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해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복을 주십니다. 멋진 기회를 주십니다. 경제적으로도 건강도 기회들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대를 하십니다. 여기까지 아셔야합니다. 느헤미야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성경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했던 최고의 지도자 느헤미야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그 사랑을 받게 되었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그런 큰일을 했고 그런 복을 받게 되었는지 낱낱이 보여주십니다.

 

느헤미야 1장에서 여러 가지를 보여주셨는데 먼저 고통 중에 있는 내 조국 내 민족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또 특별한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아는데 느헤미야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겉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는 책임적인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권리는 주장하고 싶고 책임은 회피하고 싶고, 할 일은 하고 싶지 않고 받을 복은 받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라 정부의 고관들 가운데는 사실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조금 밉상 받을 말을 한다면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그렇습니다. 책임을 안 지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공천 받고,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정권에서 좋은 것을 다 누리는가? 어떻게 하면 기득권을 계속해서 누리는가? 이것만 생각하고 내 나라, 내 민족 특히 우리 후학들을 어떻게 책임져야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세먼지가 있어도, 젊은이들이 저토록 힘들어해도, 빈부격차가 점점 더 벌어져도 여기에 대해서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든 그 가운데서 내 이권만 챙기고 내 소원만 챙기려는 생각만 가득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책임이라고 말했고, 말만 책임이라고 고백한 것이 아니라 이 책임을 어떻게 하면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어떻게 하겠다고 결단을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느헤미야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 나라로부터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고,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좀 이루면 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했고 내가 성실히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느헤미야는 자기가 그렇게 된 것이 전부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성들 가운데 좀 잘 되면 내 아내가 평생 나를 돕고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내가 오늘 이렇게 된 것은 전부 다 내 아내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이 진짜 남자입니다. 그런데 어중간한 남자들, 못난 남자들은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압니다. 그 아내 없었으면 망해도 몇 번 망할 사람들이 많은데 남자들이 그것을 모릅니다. 여성 여러분 그런 줄 알고 사십시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나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장관급까지 올라왔는데, 내 조국에 있는 동포들을 위해서 어떻게 갚을까?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주셨는데 어떻게 하면 이것을 갚을 수 있을까? 그것을 궁리한 사람이고 결단한 사람이 이었습니다.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귀한 말씀을 하시면서 이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느헤미야를 그렇게 귀하게 썼다고 말씀하시고, 2장에서도 계속해서 그 말씀을 하십니다.

첫 번째로 하시는 말씀은 느헤미야는 제대로 기도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먼저 조국과 민족을 기도하는데, 단체로 모여서 공동기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절절한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고국의, 동포의 그 처참한 소리를 듣고부터 시작한 느헤미야의 기도는 절절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느헤미야는 그 소식을 듣기 전부터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조국의 소식을 듣고 난 뒤부터는 퍽 주저앉아서 통곡을 했고 밥도 먹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런 기도를 하니 마음에 있는 아픔이 얼굴에 수심으로 드러났습니다. 그의 절절한 심정이 얼굴에 수심으로 드러났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1-2)라고 왕이 묻자 느헤미야가 왕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3) 라고 정직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기도하니 나도 기도한다고 모양만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함께 기도하는 여러분들은 함께 기도할 때 자칫하면 휩쓸려서 기도하고 내 진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조심하고 각별히 조심해야합니다. 귀한 중보기도 하시는 분들은 늘 이것을 생각해야합니다.

느헤미야는 한두 번 잠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계속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어느 날 조국의 처참한 소식을 듣고 그때부터 넉 달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기도했습니다. 넉 달이라는 것을 성경에서는 11절의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라고 말씀하신 후, 21절에서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같은 해에 넉 달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넉 달 동안 계속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는 얼굴에 표가 확실히 드러나도록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까? 자기 자신 또는 자기 자식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시는 내 조국과 내 동포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방인인데 하나님으로부터 각별하게 사랑받은 로마 백부장이 있습니다. 고넬료입니다. 성경은 고넬료가 어떻게 기도했는지에 대해서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10:2)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도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기도가 있는데 고넬료는 항상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고넬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느니’(10:3-4).. 네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힘쓰고 애쓰고 도와준 것을 내가 기억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단지 기도해서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늘 기도하게 되면 돈을 쓰도 내 마음대로 못 씁니다.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도 돕고 싶다고 돕고, 돕고 싶지 않다고 돕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우라고 마음을 주시면 돕습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다 바르게 살아갑니다. 내가 힘이 있다고 권력이 있다고 내 힘과 권력을 마음대로 쓰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좋아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모양만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렇게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시고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과 일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과 권세를 주신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또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불러서 비를 내리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비가 안 온지 3년 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불러서 엘리야야, 너 가서 아합왕을 만나라. 만나고 나면 내가 비를 내리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엘리야는 아합왕을 만났습니다. 만나서 이제 곧 하나님께서 비를 주실 것인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당신이 지금 믿고 있는 바알과 아세라신 그리고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 중 누가 진짜 신인지 대결하게 장 좀 열어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850:1의 대결을 했고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비를 주십니다. 엘리야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그런 약속을 받았고, 하나님이 틀림없이 비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왕이여, 이제 곧 비가 내릴 것입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한 그가 어떻게 기도했는지 보십시오. 그는 편하게 기도할 수도 있었지만 벌레가 꼬부라지듯이 꼬부라져서 기도했고, 머리가 두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로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임을 알면서도 엘리야는 그렇게 절실하게 기도했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고 또 했습니다. 이런 엘리야가 자기 마음대로 살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겠습니까? 이런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안 좋아하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한 번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좋아하시려고 찾습니다. 복 주시려고 찾으십니다.

또 느헤미야는 한 순간 작은 틈에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4) 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왕이란 존재는 형님 같은 존재이거나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어른 정도가 아닙니다. 22절 마지막에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2:2) 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이때 왕의 존재는 북한의 김정은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때는 즉각 대답해야합니다. 하늘과 같은 왕의 물음에 느헤미야는 급하게 대답해야했지만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그 틈을 내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왕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을 때 느헤미야의 행동에 대해서 성경은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4)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기도입니다. 살아있지 않는 기도가 많습니다. 쓰레기통에 들어갈 기도가 상당히 많습니다. 아마 생각하면 1초도 안 되었을 것입니다. 1시간이면 3600초인데 3600초를 기도해도 건질 것이 하나도 없는 기도가 있고, 1초를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서 일어서는 기도가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톨스토이 작품 중에 구두수선공이 나오는 소설이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달픕니다. 그는 꼭 기도드리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이제부터는 이렇게 기도해야겠다고 결심하였지만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구두수선공은 날이 새자 기도하지 못했음을 한탄하면서 하나님, 어제 또 기도를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 또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또 화를 내었습니다. 또 큰소리 쳤습니다.’ 살아있는 기도란 이런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모든 일을 기도를 통해서 하는 사람입니다. 신자들 가운데 재주 많은 사람들이 조심해야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 내 재주로, 내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잘해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 좋은 관계를 통해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 무슨 특혜를 주어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 돈 있는 사람들은 돈으로 권세로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혹시 그렇게 해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려고 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실망하고 배신밖에 안 돌아옵니다. 처절한 배신이 옵니다. ‘세상이 이럴 수가 있는가?’ 라고 하지만 세상이 본래 그렇습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내 힘으로, 내 재주로 하려고 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서 죄송하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힘이 안 듭니다. 세상이 참 편합니다. 모르면 힘듭니다. 전부 다 용을 쓰고 힘을 쓰니 그렇게 해도 안 되는데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라고 하니 세상이 편합니다. 그냥 물결 타고 파도타고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더욱 더 책임적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십시오. 제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라고 하면 하나님이 깜짝 놀라십니다. 천사들도 놀랍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하나님께 전달하는 천사가 그 기도에 별표를 몇 개 붙여서 보냅니다. ‘하나님, 여기에 특별한 기도가 있는데, 이 사람이 기도했으니 들으십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힘들고 용을 쓰면서 살아야하겠습니까? 모를 때는 그렇게 살았다고 해도 이제는 좀 달라야합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는데 제가 무엇을 압니까? 그저 하나님이 잘 아십니다.

느헤미야는 큰 일, 대단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면서 맥 놓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약에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하나님께서 일어서신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노리고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엘리야를 봅니다. 엘리야가 이방 사제들 850명과 대결을 벌렸습니다. 갈렘산 대결입니다. 850:1 대결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고 난 뒤 하나님께 하나님, 약속한 대로 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난 뒤에 사환을 보내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무엇이 있는지 보라고 시켰습니다. 다녀 온 사환이 돌아와서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또 간절하게 기도한 후 다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또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기도하고 올려 보낸 이것을 일곱 번이나 했습니다. 어쩌면 일곱 번째 간 사환이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보려고 애를 쓰니 조그마한 구름조각 하나를 본 것이라도 보고 드려야겠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쫓아 내려와서 사람 손바닥만한 구름이 하나 있다고 하니 엘리야가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리고 빨리 왕에게 가서 지금 비가 올 것이니 왕에게 가서 피하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작은 구름 한 조각으로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렸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런 눈이 있습니까? 이런 눈을 가져보십시오. 세상사는 것이 재미납니다. 다른 사람 다 죽겠다고 징징거릴 때도 이렇게 살면 힘이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거기에 민감하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런 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정말로 편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준비를 합니다.

 

느헤미야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준비했는데, 먼저 전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했습니다. 왕이 묻자마자 느헤미야는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5)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것도 했습니다. 왕이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6) 라고 묻자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6)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미리 다 준비해두었습니다. 워낙 엄한 자리라 번복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다 준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 문제는 이렇게 하고 저 문제는 저렇게 할 것이라고 다 준비했습니다.

여러분이 혹시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혹은 건강적으로 어려울 때 여러분들에게 조언을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제가 경제적으로 살아나겠습니까? 건강이 어떻게 하면 좋아지겠습니까?’ 이것만 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테니까 만약 하나님이 경제를 회복시켜주시면, 건강을 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미리 김치국 좀 마십시오. 내가 경제적으로 회복되면 어떻게 살겠으며, 건강이 회복되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살겠다고 맹세하는 이런 것을 준비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니까 자꾸 달라고만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내가 주면 또 망칠 것 아니니?’ 하나님 걱정이 많습니다.

느헤미야는 일일이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보십시오.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이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7-8) 라고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다 준비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이렇게 하실 테니까 내가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돈을 주실 테니까 내가 이렇게 살겠다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려고 했다가 주실 수도 있고, 회복시키지 않으시려다 회복시킬 수도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11:2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잘 아십시오. 내가 기도하기만 하면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받은 줄로 믿고 그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받고 나서 좋다고 혼자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미국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전국적으로 닥친 가뭄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마을 사람들 다 죽게 생겼습니다. 교회가 가뭄을 위한 기도회를 합니다. 대대적으로 전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합니다. 예배당 마당에 모였습니다. 시간에 되어서 목사님이 단상에 올라섰는데 단상에 올라서신 목사님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맨 앞줄에 조그마한 여자 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얼굴은 불그스레 상기 되었고 그 손에 빨간 우산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기도회를 하니 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는 우산을 준비한 것입니다. 아무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그 아이가 준비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1:5-6)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느헤미야는 세상 모든 일에 주관자, 세상의 주인이신 것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절대적으로 인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드디어 허락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허락되었습니다. 그렇게 허락받은 것 또 그렇게 진행이 잘 된 것이 내가 그동안 왕에게 잘해서 왕이 그렇게 해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본문 8절에서 이것을 또 왕의 삼림 감독 이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도 한 번 고백해보십시오. 나도 열심히 했고 힘들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내 자식이 아무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키워주셨습니다. 내 인생 정말로 별것 아닌 인생인데 어떻게 이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인생이 달라지고 하나님 눈이 달라집니다.

 

믿음의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하는데 아무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까지 배타고 말 타고 해서 보내는데, 자기 하인을 보낸 것입니다. 정해진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구하라고 보내면서 자네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가기만 하라고 하자 하인이 걱정스러웠습니다. ‘걱정하지 말라. 가면 이미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미리 보내서 준비다 해두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보냈습니다. 그래서 하인이 갔습니다. 그렇게 간 하인 눈에 그럴듯한 사람이 하나 보였습니다. 하인은 즉각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24:27)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인정해버립니다. 지금 처음 만났는데 그 처녀를 자기 주인의 며느리로 주었는지 안 주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하인은 이미 그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십시오. 주인도 그렇게 고백하니 하나님께서 챙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맞추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처녀의 어른이 알았다고 대답하자 아브라함의 종은 땅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셨다는 감사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것을 종이 안 것입니다. 사실은 아브라함이 먼저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알게 되면 여러분의 딸도 아들도 그렇게 압니다. 모든 일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꼭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믿음, 이런 신앙이 있는 사람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절대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병이 들지 않습니다. 탓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면 병이 됩니다. 암은 이런데서 많이 나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암이 생겨도 낫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사람은 암이 들어왔다가 도망갑니다. 제 말이 믿어지십니까? 한 번 해보십시오. 했다가 믿었다가 손해 보면 하나님께 따지십시오.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암이 왔다가도 도망갑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망할 일도 없고 병도 안 됩니다. 그리고 조금 덜 한 사람을 만나도 생각보다 좀 모자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것이라고 만족하게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를 열심히 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서 모든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서 선교했습니다. 아시아에서의 선교가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동쪽으로 일이 안 되어 서쪽으로 갔습니다. 그래도 안 풀렸습니다. 더 서쪽으로 갔지만 또 안 되었습니다. 바닷가까지 갔지만 일이 안되었습니다. 남쪽으로 가도 동쪽으로 또 갔지만 일이 안 풀립니다. 그때 바울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16:6) 라고 즉각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그렇게 열심히 생명을 바치고 일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또 말합니다.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16:7)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고 느헤미야도 이러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늘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절절한 기도를 함으로 함께 했고 내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산다고 생각으로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세상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안 좋아하실 리가 있습니까?

 

여러분 이런 사람으로 사십시오. 지금까지는 어떻게 살든지 간에 느헤미야 흉내를 내면서 살아보십시오. 흉내라도 내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최고의 평신도 지도자라는 이름을 주셨고, 당신의 모든 지혜, 하늘의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좋은 것을 다 주셨습니다. 느헤미야에게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안 주실 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