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들...
느헤미야 3:1~8 ═══════════════════
어느 전쟁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 군인들이 적지 이탈리아에 상륙합니다. 그 미군 가운데는 이탈리아계 병사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 미군의 사령관이 이탈리아계 미군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줍니다. 이탈리아를 선택할 수도 있고 미국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기회였습니다. 그는 “여러분, 혈육인 이탈리아를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성조기를 선택하겠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탈리아계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앞 다투듯 성조기를 선택하겠다, 성조기의 기수가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피보다 진한 것이 성조기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미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미국 사람이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관공서, 학교는 말할 것 없이 주유소에도 성조기가 나부끼고 있습니다. 정육점에도 성조기가 걸려있고, 심지어는 유모차에도 성조기를 달고 다닙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 사람들은 하루에 열여덟 번 성조기를 보고 산다고 합니다. 미국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여야 정치계뿐만 아니라 우리 눈으로 보기에 무질서하고 잡동사니로 뒤섞여 사는 그야말로 콩가루 같은 시민 가운데도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강력하게 결속하는 구심력이 있는데 그것이 성조기라고 합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 현재 900만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아랍의 인구는 그 서른 배가 넘는 3억이 한참 넘습니다. 서른 배가 넘는 아랍계에 둘러싸여서 당당하게 버티고 있고 큰 소리치고 사는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유대인들에게 있는 강력한 구심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구심력은 세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에게 있는 독특한 유대교적 종교의식 또 하나는 유대교적 결속력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라는 유대교적 선민의식, 이 세 개가 구심점이 된다고 합니다. 이 셋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여호와 하나님 신앙’ 으로 요약할 수 있고, 이것으로 똘똘 뭉쳐져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상당히 힘들고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다른 것은 제쳐두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 재건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내 삶의 터전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열일들은 뒤로 미루고 조국의 일, 민족의 일들을 먼저 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3장은 예루살렘 성 재건을 담당한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중에서 일부분 1절부터 8절까지 보셨습니다. 거기에는 어디어디까지는 누가 중수했고 그 다음은 누가 중수했고 또 그 다음은 누가 중수했다는 말씀이 32절 끝까지 계속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명단을 보면 마태복음 1장에서 계속해서 족보계보가 이어져 말씀하시는 것이 생각납니다. 혹자는 농담으로 마태복음 1장은 산부인과 장부 목록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마태복음 1장은 유대인들에게는 하나의 족보이므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유대인들에게는 물론이고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 이러 이러한 일을 했다는 그 가문의 자랑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지 그것을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먼저, 1절에서 5절은 예루살렘 성벽의 북쪽입니다. 이 북쪽은 적들의 공격에서 가장 많이 노출된 곳입니다. 적이 만약에 공격한다면 맨 첫 번째 대상으로 공략하는 것이 북쪽이므로 적의 공격 목표 1호이며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여기에 이 일을 누가 감당했는지 말씀하는데 그 중에서 1절은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제사장 그리고 제사장은 오늘날과 달리 이스라엘에서 신앙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모든 면에서 최고의 어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위험한 것을 주도적으로 앞장서서 감당하면서 다른 사람을 격려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위험한 일을 해야지 누가 하겠습니까?’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 교회는 어른일수록 더 큰 수고, 더 큰 희생을 하는 곳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수록 교회에서는 어른들이 먼저 나서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담할 일이 있으면 어른들이 더 많이 부담하고 때로는 전적으로 부담하는 곳, 이것이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교회에서 누가 큰 어른인지 알 수 있는 기준을 여기서 뽑아낼 수 있습니다. 직분,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이, 미안하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더 큰 수고를 하고 더 큰 희생을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먼저 나서는 분, 그 분이 바로 어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능력이 그렇게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든 내 일을 감당하려고 하고, 내가 더 많이 부담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단지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잠도 덜 자고 수고도 더 하는 분이 교회에서 어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은 사람들에게 권세를 부린다고 말씀하시면서 일괄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눅11:46) 라는 말씀입니다. 당시에는 어른으로 크게 행세하던 사람들, 별 것 아닌 율법으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손가락 하나 까닥대지 않고 어른 노릇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야단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그러나 신자들은 다르다.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이고 다른 사람,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신자이고 으뜸 신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북쪽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6절부터 13절까지는 서쪽인데, 서쪽은 바벨론 공격 때 파괴의 정도가 가장 심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담이 필요했습니다. 이 공사를 할 때, 나라가 세금으로 공사비를 준 것이 아니라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일도 하고 자금도 담당했습니다. 여러분, 남의 돈 쓰는 것은 얼마나 쉽습니까? 세금으로 퍼주는 것 얼마나 쉽습니까? 회사에서 내 돈은 금쪽 같이 아끼면서 회사 돈은 펑펑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라도 국민들이 힘들게 일을 해서 세금을 내는데, 물론 쉽게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로 어렵게 세금 내는 사람들의 심정을 모릅니다. 어느 신문 기자가 세금을 내지 않았으니 그 심정을 모른다는 기사를 썼는데 이들을 모릅니다. 그러면서 세금 안 내는 데는 재주 부립니다. 이때는 내 돈으로 일하면서 내가 수고를 다했습니다.
가장 파괴가 심한 지역, 많은 부담이 필요한 곳을 누가 감당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8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금장색, 향품 장사는 당시 예루살렘의 상공업자 그리고 기업가들이었습니다. 다들 힘든 가운데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비교적 여유가 있었고 조금 넉넉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네들이 많이 받았기 때문에 많이 부담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에서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기업가들은 주님의 그 가르침을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이 빌레몬서입니다. 한 장으로 되어있는 빌레몬서는 주인공이 빌레몬이고 조연이 오네시모라는 종입니다. 빌레몬은 재산이 넉넉했습니다. 이 빌레몬은 기독교인들이 돈이 있으면, 재산이 있으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아주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람입니다.
먼저, 자기 집을 예배당으로 제공했습니다. 예배당으로 제공하는 것이 돈이 얼마나 들며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예배를 잠깐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 예배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사도 제공해야했고 음료도 제공해야했습니다. 이 빌레몬은 예배드리는 분들에게 식사도 제공했고 음료도 다 제공했습니다. 오래 있다 보니 쉬는 곳도 있어야하고 아이들이 있다 보니 아이들이 지낼 공간도 있어야하는데 빌레몬은 자기 집을 이런 예배당으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어려웠습니다. 교회에 가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게 되자 교회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빌레몬 때문에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하도 굴다리 앞에서 노숙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굴다리 선교를 하는데, 그들 간에 통신이 어찌나 잘 되는지 어디에 가면 어니는 얼마를 주는데 거기 가면 분당소망교회가 2,000원을 준다는 소문이 돌고, 빵도 주더라, 떡도 주더라는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이 오는 것처럼 그 지방에서 골로새 교회에 관하여 그런 소문이 퍼진 것입니다. 빌레몬 한 사람 때문에 규모로 또 양적으로 골로새 교회가 성장할 정도였습니다.
세 번째, 서쪽 공사 중에 특이하게 눈여겨 볼 것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고’(느3:12) 라는 말씀입니다. 살룸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여자들은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공사에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는 면제되었다고 잘 되었다고 할 텐데 살룸은 달랐습니다. 아들이 없으니 자기 딸들을 데리고 나가서 일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태는 어떻게 하든지 어떤 핑계를 대든지 간에 핑계가 없으면 억지로 이유를 대고라도 내 부담을 아니 하려고 하고 내 수고를 아니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살룸 집안은 달랐습니다. 최근에 3․1절을 중심으로 독립투사들이 많이 재조명되었는데 그분들에게 참 귀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는 딸들도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어른들은 이렇습니다.
1세기 초대교회 시절에 예루살렘 지역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것을 알고 그 당시, 유럽 아시아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구제헌금을 모금했습니다. 그때 아주 특이한 기록이 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8:1) 라는 말씀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넘치는 연보를 한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는 교인들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형편이 안 좋으니 참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라고 어른들이 말렸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교회는 ‘어르신들, 제발 우리들도 이 일에 참여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허락하자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가 시원찮고 모자라고 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 비해서 약삭빠르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어가십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 심판주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3: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그만 했고 교세가 약해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하나님은 다 기억하셨습니다. 심판주이신 예수님께서 이런 교회를 두고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3: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앞에 문을 열어 두었는데 누가 그 문을 닫는지가 관건입니다. 건강의 문, 사업의 문, 자녀의 문 어떤 문이든지 간에 다 열려있어서 아무도 닫을 사람이 없다고 이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로 14절에서 19절까지는 남동쪽 지역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이 지역은 일곱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일곱 구역 중에서 여섯 구역의 구성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예루살렘 성벽을 다 완공되어도 자기네들한테는 별로 혜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곱 구역 중에서 여섯 구역을 그 사람들이 담당했습니다.
사람들은 늘 이해관계를 따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어떤 일만 있으면 이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만 따지는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내 돈을 들여가면서 내 수고를 들여가면서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사실 아프리카 갈 때, 동남아 갈 때면 걱정도 됩니다. 때로는 치료할 때 진물이 나고 피가 나기도 하는데 의사 선생님들이 자기 돈을 들여 그런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 가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도가 높아서 머리가 아파서 절절 매면서도 또 가고 또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돌아올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지, 나에게 좋은 것인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실지, 하나님께서 섭섭하고 쓸쓸한 세태에 나를 보시고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으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 살아가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 살아가는 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유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아주 큰 이유입니다. 사실은 사울은 다윗에게 큰 원수였습니다. 사울은 먼저 다윗을 철전지 원수처럼 죽이려고 끈질기게 쫓아다녔습니다. 다윗이 피하고 피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옵니다. 손 내밀어 찌르기만 하면 끝이 납니다. 그런데도 안 죽였습니다. 또 한 번 기회가 왔습니다. 부하들까지 ‘이번에는 꼭 찌르십시오. 장군께서 찌르시지 못한다면 그냥 모른 척 하고 계십시오. 우리가 찌르겠습니다.’ 라고 말할 때 다윗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기도 죽이고 싶었습니다. 죽이면 자기는 안 쫓겨 다녀도 되고 자기 길이 다 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일이 내게 좋은 일인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인지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까닭을 말합니다. 그렇게 못된 사울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종인데, 그런 종을 내가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지 아닌지 그것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받는 것이 부러울 것입니다. 부러워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나는 싫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그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 다음 다섯 번째, 20절에서 마지막 32절까지로 동쪽 지역입니다. 아마 일이 조금 쉬웠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담당한 사람 면면을 보면 앞에서 보았던 똑같은 이름이 나옵니다. 다른 데서 이미 일한 사람,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동쪽 구역도 담당했습니다. 먼저 21절을 보면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4절에서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라고 같은 이름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 이중으로 일한 것입니다. 23절에 ‘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라고 나오는데 11절에도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화덕 망대를 중수하였고’라고 나옵니다. 또 27절에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라고 나오는데, 그 드고아 사람들이 5절에도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라고 똑같이 나옵니다. 그리고 30절에 ‘셀레마의 아들 하나냐’라고 나오는데 8절에도 ‘향품 장사 하나냐’라고 또 나옵니다. 30절 마지막에는 ‘그 다음에는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4절에도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라고 나옵니다. 이처럼 여러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이런 저런 핑계로 참여 하지 않은 사람들이 필경은 있었을 것입니다. 5절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인들이란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귀족들은 세상적 명예도 부도 다 누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도 받았고 백성들로부터, 다른 국민들로부터 다 받아 누리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희생적으로 헌신적으로 수고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이런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하고 가장 위험한 것을 했고, 했던 사람이 또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갑니다.
모세, 여호수아 시대 때 갈렙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 정복을 끝내고 땅을 분배하는데, 그 당시 땅 분배하는 최고 어른이 여호수아였습니다. 갈렙과 함께 정탐 나갔던 사람입니다. 그때에 모세가 갈렙에게 나중에 어떤 땅을 달라고 하든 간에 다 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것이 기록에 남아있고 여호수아도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땅을 분배하는데 갈렙이 여호수아를 찾아왔습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전혀 달랐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님, 오늘 내가 지금 85세이지만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공략하지 못한 저 땅에는 거인들이 살아서 우리가 공략하기 힘듭니다. 나를 시켜주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시기만 하면 제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발 내가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쪽으로 보내주십시오.” 라는 부탁을 한 것입니다. 참 귀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튼튼하게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의 희생을 받기만 하고 끝내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게 하신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실제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기적을 다윗에게 허락하셨을까요? 다윗이 물맷돌을 잘 돌려서 그러셨던 것일까?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당시 사람들은 거의 다 물맷돌을 잘 돌렸고 특히 베냐민 사람들은 다 잘 돌렸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도 전쟁하러 나올 때 이 정도는 대비하고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단 한 번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런 기적을 허락하셨을까요?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밤낮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독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중에서는 장군 ,병사 중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나와서 전쟁하라, 이기면 우리가 여러분을 섬기겠다고 조롱하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 광경을 성경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삼상17:24)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국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마 최근에 여러분 가운데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초라한 모습을 보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방위비 등 온갖 소리를 다하는 데도, 중국은 미세먼지의 원인이 있는데도 우리나라 장관 중에서 아무 소리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은 재판 결과에 불순종하고 보복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북한에서 무슨 말을 하면 한 마디도 못하는 상황이니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나라가 이럴 수 있습니까? 젊은 분들 이것을 보고 이 나라를 잘 붙들어주십시오.
다윗이 그랬습니다. 너무 속상했습니다. 속된 말로 다윗은 골리앗 앞에 나설 감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골리앗과 대결하러 나갈 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기는 쉽습니다. 겁 없이 나서는 이 다윗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시고 깜짝 놀라셨습니다. 큰일 났다, 나가기만 하면 좋은 사람 죽이겠다고 생각하셔서 할 수 없이 일어서셨습니다. 그냥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가지고 있는 것은 물맷돌 하나이므로 거기다 능력을 주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여러분, 기적을 어떤 때 허락하시는지 잘 아십시오. 간절하게 내가 바란다고, 죽으라고 졸라댄다고 하나님께서 기적을 주시지 않습니다. 조금은 도와주실 수 있지만 큰 기적은 그렇게 한다고 허락하지 않습니다. 기적은 일어날만한 사람에게, 받을만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이들은 불가능하게 보이던 예루살렘 성벽 공사,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 그 공사를 그 귀한 사람들 그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람들 덕분에 두 달이 채 안 되는 52일 만에 끝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다 기록해두고 당신이 기억한다는 말씀이 오늘 이 말씀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에 있어서 특이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3장에서 이름들이 나와 있고,4장, 5장, 6장에서는 공사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어떤 큰 일이 있으면, 공사하는 과정들을 적어두고 그 다음에 그때 그 공사에 누가 담당했고 누가 또 이 공사를 했는지 이야기하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경을 기록하실 때는 순서를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의 이름을 먼저 냈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일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제 일차 목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충성되게 내 일,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한 사람, 한 사람 다 일일이 기억하십니다. 그 사람들 무엇보다도 내가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고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느헤미야 3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일을 맡기시는 제 1의 이유는 일 자체가 아닙니다. 어떤 일을 꼭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 신자를 성숙시키고 성장시키고 복을 주시기 위해서 이런 일을 맡기기도 하고 저런 일을 부탁하기도 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이것은 희생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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