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장이
느헤미야 7:1~4 ════════════════════
‘김진원’ 이라는 이름을 가진 권사님입니다. 캐나가 국적을 가졌고 70세가 조금 덜 되었습니다. 3년 전 2016년 싱가포르에 갔다가 급하게 병이 생겨서 입원을 했습니다. 검사결과 폐암으로 진단되었는데 말기라고 했습니다. 그 해 4월 14일 한국으로 이송되어서 대학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입원한 지 며칠 안 되어서 호흡곤란이 왔습니다. 이 권사님의 친구 분인 우리 권사님이 요청을 해서 심방을 했습니다. 호흡도 제대로 안 되는 말기 암 환자이었지만 표정이 아주 좋았습니다. 아주 밝았습니다. 믿음이 단단해보였습니다. 이 정도 되면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오래간만에 깊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신다고 믿느냐고 물었을 때, 건성이 아니라 깊은 곳에서 나오는 말로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곳으로 인도하시든지 다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물었을 때도 그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일체 살겠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죽여 달라고도 하지도 말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하라고 말했더니 좋다고 기꺼이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하나 소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있는 캐나다에 가서 죽고 싶다는 소원이었습니다. 기왕 말하는 김에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소원을 다 없애기로 했는데, 아무데서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서 죽으시라고 말했습니다. 이 정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도 좋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태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난 며칠 뒤, 병원은 온몸에 암이 퍼져 1개월이 채 안 남았으니 나가서 주변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퇴원을 시켰습니다. 퇴원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통원치료를 하고 검사를 하는데, 놀랍게도 2주 뒤에 비행기를 타도되겠다는 의사소견을 받게 됩니다. 2주 뒤 그 권사님은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로 갔습니다. 캐나다를 들어갔는데, 조금씩 좋아지지 시작했습니다. 검사를 받을 때마다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어느 날 의사가 완치되었다고 했습니다. 암이 하나도 안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 현재 건강한 몸으로 일상생활 중입니다. 지난 4월 4일 우리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병원 입중 중이던 그때 심방 끝내고 돌아오면서 ‘하나님께서 안 살리고 죽이시면 천국에서 만나고, 살려주시면 다시 한 번 봅시다.’ 이런 인사를 했습니다. 살아나서 돌아 오셨는데, 마침 제가 그때 중국에 있어서 만나지 못했지만 치료는 하나님이 해주시고 과일 바구니 선물은 제가 받았습니다.
그 권사님에 대해서 제가 제목을 우직하게 하나 달았습니다. ‘믿음의 승리다’ 우직하게 그리고 무식하게 제목을 달았지만 그러나 사실입니다. 믿음은 승리합니다. 여러분이 이 경험을, 체험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데, 그 능력이 정말로 대단하고 권세가 대단합니다. 건강, 경제문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이기지 못합니다.
심리학자 존 코이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네 가지 유형 중 하나에 속한다고 합니다. 첫 째는 인기가 있는 인정형, 수용형입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아주 인기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비호감 사람, 거부형, 배척형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사람입니다. 아십시오. 내가 배척하고 내가 거부하면 나도 배척당하고 거부당하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많이 모릅니다. 셋째는 중간으로 인기도 있으면서 비호감이 있는 사람들로 양면형이라고 말합니다. 네 번째는 이것저것도 아닌 무시형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 하나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 이 유형은 환경이 바뀌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열 살짜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주위에 함께 하는 사람도 바꾸고 환경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인기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인정형, 수용형으로 사람들에게 아주 호감을 사는 아이는 늘 인기를 얻었는데 함께 하는 사람이 바뀌어도 환경이 바뀌어도 한 시간 만에 다시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 수 있는지에 대해서 기발한 생각을 해서 함께 놀더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거부하고 배척하는 아이들은 바뀐 환경에서도 함께 하는 아이들에게도 여전히 욕을 하고 비판하고 큰 소리치고 위협하고 대장노릇을 하려고 했습니다. 대장 노릇 할 만한 사람은 당연히 대장으로 인정해줍니다. 그런데 깜이 안 되는 사람이 대장 노릇 하려고 하면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배척됩니다. 이런 아이들은 숨바꼭질 할 때에도 술래가 찾으러 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실험결과 어린 시절 경험하는 인기의 유형은 평생 지속할 가능성이 높더라는 것입니다. 전학을 가도 고등학교 입학해서도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회 집단에 들어가서도 심지어는 결혼을 해서도 인기 있는 사람은 여전히 인기가 있고, 인기가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인기가 없는 길을 갔습니다. 이 말은 즉,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십시오, 이것이 완전한 끝은 아닙니다. 여기에 중대한 변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변수입니다. 아무리 바뀔 것 같지 않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한 번 손대시면, 손가락 하나로만 건드리시면 아니 얼굴 한 번 힐끗 쳐다봐주시기만 해도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작정을 하시고 손대시고 하나님께서 결심을 하시고 쳐다보시면 그 사람은 바뀝니다.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골로새 교회의 빌레몬이라는 교인의 집에 오네시모 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주인에게 큰 해를 끼치고 도망을 갑니다. 도망간, 별로 득이 안 되는 노예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옛날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사람이 이제는 대단히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후에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독교 어른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 역사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인물인 바울입니다.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은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는 전혀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스데반 집사를 처형할 때 이 사울이 앞장섰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기독교 신자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서 외국에 출장까지 갈 정도였습니다. 이러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뀝니다. 기독교인들을 잡아서 처형하려고 했던 자기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보통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기독교 역사상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인물 바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 자체를 바꾸기도 하시고, 육신이 시원찮은 사람을 온전한 사람으로, 정신이 시원찮은 사람도 온전한 사람으로 하나님은 얼마든지 바꾸실 수 있고, 가정도 바꾸십니다. 가망이 없던 가정을 소망이 있는 가정으로 바꾸고, 전혀 가망이 없던 자식들도 하나님께서 한 번 쳐다봐주시기만 하면 얼마든지 바뀝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문제 여러 가지 걱정이 많으실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한 나라 최고의 지도자도 새끼손가락 하나 댈 것도 없습니다. 앞으로 눈 여겨서 한 번 보십시오. 틀림없이 그것을 보실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한 번 결정하시면 어떤 장애가 있고 어떤 사람들이 나서서 무슨 소리를 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결정을 이루고야 마십니다. 틀림없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확고하게 정하시면 반드시 이루고야 마십니다.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의 침략 때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해서 예루살렘 성 재건을 했는데 드디어 완성을 합니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방해가 많았습니다. 공사 시작하기 전에도 방해하는 사람, 어려운 일이 많았고 한참 진행 중일 때도 그렇고 끝날 무렵에도 계속해서 그러했습니다. 방해하는 사람들, 골치 아픈 일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외부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지만 사실 제일 힘든 것은 내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 재건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성벽이 다시 쌓여졌고 성재건 공사의 핵심인 성문도 달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큰 일, 그 힘든 일을 52일 만에, 두 달도 안 되어서 다 끝냈다는 사실입니다. 느헤미야 6장 15절에서는 ‘성벽 역사가 오십 이 일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라고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장 1절에서는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라고 완공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어려움은 계속되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려 하였노니’(3절) 이는 외적이 침입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어지는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4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공사하는 사람들이 자기 집을 짓지 못했기 때문에 쉴만한 곳이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시간에 그 큰 일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생각할 것은 여러분도 인생 살면서 이런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그 많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 큰 일을 어떻게 그렇게 단시일에 이룰 수 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답부터 보겠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 재건 공사가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께서 이것은 내가 하겠다고 결정하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초점을 맞추어주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하나님 뜻이 아니라면, 이것은 내가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면 아무리 여건이 좋고 환경이 좋고 진행상황이 좋아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막판에라도 잘못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10:29)
‘몇 푼 안 되는, 그저 간식거리 술 한 잔 안주거리밖에 안 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신 자식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 허락 없이 되는 일이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확인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께서 한 번 결정하셨으면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어도 아무리 방해가 많아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의 이세벨 사건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선언하셨습니다. ‘아합의 피를 개가 핥을 것이고 개들이 이세벨을 먹을 것이다’ 아합은 얼마 있지 않아서 죽어서 흘린 피를 개가 핥았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은 상당한 시간이 지나가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가고 또 가도 여전히 그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냥 빈 말씀으로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세벨은 태후의 자리에서 온갖 호강을 다 누렸습니다. 14년이라는 세월을 누렸습니다. 정말 그대로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시 들으시고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한 번 결정하시는 일은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14년째 되는 어느 날 나라에 반란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왕이 살해됩니다. 반란군 대장이 이세벨을 찾아갑니다. 그때 이세벨은 저 높은 곳에서 머리를 꾸미고 얼굴을 치장하고 있었습니다. 반란군 대장이 아래에서 ‘그 위에 누구 없느냐?’ 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누가 저 이세벨을 창밖으로 가져다 던지라’고 말했습니다. 이세벨은 창밖으로 던져졌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온 몸이 깨어져 죽었습니다. 한참 지나고 난 후, 반란군 대장이 그래도 시체라도 땅에 묻어주라고 명령합니다. 사람들이 나가서 찾아보았지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두개골 그리고 손발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개들이 이세벨의 시체를 먹어치웠습니다. 14년 전에 하셨던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안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입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당시 정치 상황, 진행 상황을 보아하니 자신이 석방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희한한 확신을 했습니다. 상황은 그렇지 않았고 모든 것을 다 짚어보아도 석방되지 못할 것 같았지만 바울은 석방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확신한 데는 근거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선교할 때의 이 일들, 저 일을 보니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셨고, 지금 남아있는 일도 틀림없이 자기에게 일을 맡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쓰실 일이 있는 한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죽지 않고 석방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 것이었습니다. 과연 바울은 석방되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 될까? 말까? 이 일이 이루어질까? 아닐까? 이것이 궁금하다면 무엇보다도 꼭 짚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만한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께 유익이 될 것인가?’ 먼저 꼭 이것을 짚으십시오. 이것만 짚으시면 됩니다. 짚으실 때 여러분께 당부 드리는 것은,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정직하게 짚으십시오. 그저 내가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다 없애버리고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보실 때 과연 이것이 하나님께 좋은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일이고 이 사회에 득이 될 만한 일인지 잘 짚어보십시오. 정직하게 짚어야합니다. 짚어보신 결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 일이라면 그냥 밀고 나가십시오. 물론 애를 써야하지만 너무 많은 애를 쓰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한 번 결정하셨으면 너무 많은 애를 쓸 필요 없습니다. 최소한 하는 일은 해야겠지만 죽으라고 애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알아서 하십시오. 하지 않으면 하나님 손해입니다.’ 이런 배짱을 가지고 사십시오. 그리고 만약에 정직하게 짚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면 얼른 포기 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아무리 힘쓰고 애쓰고 죽을 고생을 다해도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헛고생을 합니다.
다시 확인하십시다. 혹시 지금 또 앞으로 꼭 이룰 것이 있으면 그것을 아예 하나님 뜻에 맞추십시오. 경제문제라면 ‘경제 문제,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육체라면 ‘지금까지는 내 마음대로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육체를 살려주시게 되면 보잘 것 없는 한 몸이지만 주님을 위해서 또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제 이 한 몸을 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믿을 정도로 결심하고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당신의 뜻으로 결정하십니다.
예레미야 18장 6절에서 하나님께서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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