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그리스도의 병사 (느헤미야 8:1-6)

분당소망교회 2020. 9. 8. 15:45

 

 

 

 

 

그리스도의 병사

 

 

 

느헤미야 8:1~6 ════════════════════

 

 

 

오늘은 가족구역이 우리 구역은 이렇게 섬기고 있습니다.’ 라는 보고 간증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가족 구역장 최수경 집사입니다. 먼저 교회에서 가족 구역 간증을 부탁받았을 때 걱정과 염려가 앞섰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 교회 가족 구역예배가 처음으로 드려진 것은 2011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구역도 이때부터 교회 앞 단독주택에 사시는 성도님들을 주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동안 구역장님들 세 분이 사랑과 수고로 헌신해주셨고, 현재는 제가 가족구역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앞으로 선배 구역장님들께서 잘 다져놓은 전통을 이어받아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구역예배를 드리면서 깨닫게 된 것은, 위로는 하나님을 믿으며 안으로는 서로를 깊이 알아가고 밖으로는 사랑과 열정으로 구역 식구들이 주님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저희 가족구역이 9년 동안 흔들림 없이 잘 이어오고 있는 점이 있다면 첫 번째, 여성구역의 결속력이 가족구역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우선 잘 모입니다. 개인적인 특별한 가족 애경사 외에는 전원 참석합니다. 이는 매주 모이는 여성 구역원들의 친밀도가 기인한 것 같습니다. 신앙에 믿음을 통해 가족 같은 끈끈한 정으로 합심하여 선을 이루는 결속력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예배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제시한 순서에 따라 거룩하게 한 시간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위한 기도와 특히 건강을 비롯한 가정사에 대하여는 가족 같은 마음으로 공감하며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구역교제인 평화의 초대 주제토론시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간증이 이어지며 때로는 마음 아픈 상처로 눈물을 흘리고 또 좋은 경험을 서로 공감하며 감사의 시간을 나누고 있습니다.

세 번째, 신앙생활에 정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가까운 거리에 거주하고 있는 구역원들이 많아 교회에서 자주 모이고, 봉사에 참여하고 대부분 새벽예배와 토요 성경공부를 통해 구역식구들이 기도 응답을 받고 은혜의 시간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남성들이 중심을 잘 잡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남성 혼자 구역예배에 참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직장 및 사업으로 바쁜 남성들이지만 새 구역원이 오더라도 전혀 낯설지 않게 포용하고 적응하여 다양한 연령대인 5~6가정 10여명이 빠짐없이 예배를 꼭 드리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저녁 식사를 통해 매번 새로워지는 느낌입니다. 한 달을 마감하는 마지막 주말에 모여 각자 다른 사업장이나 직장에서 경험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공유하다 보니 흥미진진해지고 때로는 에너지를 얻기도 합니다. 여섯 번째, 저희 가족구역 예배가 문화로 정착되어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보고 싶고 궁금하며, 만나면 이야기 거리가 있고 즐거우니 전입과 전출로 구역원이 바뀌어도 이제는 가족구역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바탕으로 교회와 지역 주변 청소, 어려운 이웃돕기 그리고 이웃과 친해지기, 전도 등 다양한 비전을 실행하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만의 가족구역이 되지 않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먼저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고 분부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 믿음의 년 수나 직분에 상관없이 꾸준히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 그리고 주님 앞에 엎드려 경건히 기도하고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저희 가족구역은 겸손한 자세로 정진하겠습니다. 끝으로 구역주제를 낭독하면서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아멘

 

성경은 교회를 군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자를 군인, 병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군대라고 한다면 중심 되는 전투부대는 구역입니다. 그 중에서 구역장, 교구장이 얼마나 잘 훈련되었나에 따라서 그 교회의 강함, 약함이 결정됩니다.

최근에 들리는 소리 때문에 속상한 것이 있습니다. 북쪽의 아무개는 평화는 힘에서 나온다고 말하면서 온갖 행태를 다 부리고 있는데, 남쪽에서는 군인들까지 훈련도 하지 않고 혹자의 말에 의하면 평화를 구걸한다고 합니다. 속이 많이 상하고 한편으로 인간적으로는 걱정되는 일들도 많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군인들이 훈련을 받아야하는데……젊은이들이야 훈련이 힘들기 때문에 반대하는 소리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훈련이 있는 훈련이 있는 군대라야 하는데 걱정이 많이 됩니다.

 

자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에게 부모에게 효도, 공경하는 훈련을 시켜야합니다. 가끔 보면 아주 얄밉다고 할 정도의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는데도 자식들에게 효도하는 훈련을 시켜 자식들에게 많이 효도 받는 경우입니다. 저는 그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식들에게 효도하는 훈련을 시켜야합니다. 나중에 효도한다는 말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중 효도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 훈련시켜야합니다.

얼마 전에 사회에 남아있는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들, 사위, 딸한테 다 보냈습니다. ‘아빠의 50년 된 친구가 오랜만에 분당에 와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오래된 귀한 친구를 내 돈으로 대접하는 것보다 자식들이 준 돈으로 대접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라는 말과 함께 은행 구좌번호까지 보냈는데 앞으로 대여섯 번은 더 대접해도 될 만큼 상당히 많이 받았습니다.

재미를 붙여서 이번 어버이날에 또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현찰로 하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벌써 일부는 들어왔습니다. 아마 오늘 내로 다 들어올 것 같습니다. 안 하는 것을 가르쳐가면서라도 대접받아야지 가르치지 않으면 가망이 없습니다.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에 훈련 없는 한국군 군대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만약 전쟁이 난다면 우리나라에서 전쟁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생각해봅니다. 첫째는 베트남전 참전한 병사들이 아마 제일 잘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잘하는 사람은 바로 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군대 입대하고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 정말로 죽을 만큼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소 생활이 끝나고 자대 배치되면 좀 나을까 생각했는데 자대에 배치된 뒤에는 죽을 정도보다 더 강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훈련이 백골 유격훈련입니다. 이 훈련을 한 번 받고 나면 죽을 때까지 그 훈련을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최근 어느 신문에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중국은 625전쟁에서 자신들이 세계 최강의 미군에 승리했다고 말한다. 당시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디딘 미군은 일본에 주둔하던 주일 미군이었다. 미군이 한국에 왔다고 하는 순간 전쟁은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주일 미군은 전 세계의 미군 중에서도 장교에서부터 병사까지 군기가 제일 엉망이었다. 야전에 풀어놓고 보니 소총 수리도 제대로 못하는 병사가 절반이상이었다. 미군 병사들은 다리가 길어서 한국의 거친 산악지형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말이 오랫동안 돌았지만, 사실은 훈련부족으로 다리에 힘이 없는 것이었다. 미군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주일 미군은 자신들의 목적은 경찰 임무라고 생각하고 훈련을 전혀 하지 않았다. 미군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동양의 작은 병사들이 겁 없이 달려들었다. 미군은 연대가 무너지고 사단이 무너지고 사단장까지 포로가 되는 극도의 수치를 당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기독교 신자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훈련받지 않은 그리스도 병사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권세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신자란 이름만 가진 완전 무능력자입니다.

훈련을 받아야합니다. 군인들도 훈련을 받아야하고 신자들도 훈련을 받아야합니다.

 

디모데후서 23절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종 바울은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의 이 가르침에 따라서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모진 고난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죽는 데도 같이 따라다니고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디모데는 바울과 주님 예수그리스로부터 그토록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훈련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아주 초라한 인생이 되고 불상 사나운 신자가 되고 맙니다.

일반적으로 조금 큰 일’, ‘대단한 일을 하고 난 뒤 사람들은 쉬고 여유를 가지고 즐깁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누가복음 22장에서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2:26)라고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도 기독교 신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기뻐할 때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반대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슬퍼하고 죽을상을 쓰고 있을 때 기독교 신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쉴 때라고 안심할 때 기독교 신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 기독교 신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것이 기독교 신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편안히 다 잠들어 있을 때, 기독교 신자들은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경건했던 사람 욥이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기 1장의 기록입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1:1-5) 라고 말씀하십니다.

재산이 많고 모든 것이 다 좋습니다. 그럴 때 자식들이 잔치를 하고 먹고 즐기면 욥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아이들이 죄를 지을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요 기독교신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자들에게 흔히 거룩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높고 위대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을 가리켜서 거룩하다고 할 때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기독교 신자들을 가리켜 거룩하다고 말하는 뜻의 의미입니다. 신자들은 사는 방식이, 사는 모습이, 돈 쓰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진정한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은 다 경제가 어렵고 죽겠다고 아우성칠 때 그리고 겁이 나서 주머니를 열지 못하고 바짝 움츠리고 있을 때,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도 별로 돈이 없지만 주머니를 열어서 힘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고 이것저것 팔아주는 사람이 기독교인입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쉬고 즐길 때 바짝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서 기도합니다. 영적 근육을 단련시킵니다. 다른 사람 다 놀 때 근육을 단련시킵니다. 혹시라도 어떤 일이 있게 되면 내가 이 나라를 챙겨야한다, 내 조국을 챙겨야한다, 이 세상을 챙겨야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 쉴 때 영적인 근육을 단련시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들, 유대민족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박한 소망이던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성벽 공사를 다 끝내고 성문까지 달았습니다. 이제 완전이 일이 끝났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보실 것은 그렇게 완전하게 끝내고 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했던가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거기에 대한 답입니다. 성벽 완공 후 맨 처음 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아직 내 집도 준비되지 않았고 먼 길 돌아와서 피곤해도 시간을 가지고 여유를 즐기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먹고 즐기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을 제대로 다시 챙겨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그 모진 고통을 당하고 처참한 포로생활 한 까닭이 무엇인가? 신앙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어려움을 당했다, 다시는 그런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제는 신앙을 챙겨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성벽이 없으면, 성문이 없으면 적이 마음대로 침입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그것을 하였고, 그리고 난 후 신앙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또 하나 관심을 가지고 보실 것은 그 신앙 부흥운동을 공사 끝난 뒤 얼마 만에 시작했는가?’ 입니다. 공사 시작한 지 52일 만에 끝냈는데 그 날이 언제인지 성경은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라고 느헤미야 615절에 분명하게 말씀하시면서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엘룰월은 유대인들의 종교력으로 여섯 번째 달입니다. 625일에 공사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신앙 부흥운동이 시작된 것은 일곱째 달 초하루에라고 오늘 본문 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625일에 공사가 다 끝이 났고 신앙부흥운동을 시작한 날은 71일입니다. 닷새 동안에 준비했고 쉬지 않고 곧바로 시작한 것입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공사 끝나자마자 준비해서 곧바로 신앙 부흥운동을 했다는 기록을 성경은 남기고 있습니다.

 

세 번째, 신앙부흥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른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만한 모든 사람’(2)이 다 모였습니다. 3절에도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만한 모든 사람이라고 똑 같은 말을 했습니다. 말귀 못 알아들을 아이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부모가 안고 업고 신앙부흥운동에 참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 다, 말귀를 알아 듣든 못 알아 듣든 모든 국민들이 신앙부흥운동에 참석했다는 말이 됩니다.

 

네 번째, 신앙부흥 행사를 한 시간을 눈여겨보십시오. ‘새벽부터 정오까지’(3) 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벽부터 모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기독교의 가장 기본입니다. 우리 교회 성경공부는 1년에 석 달씩 여섯 달을 하는데 토요일 아침에 합니다. 세상 사람들 특히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일주일 수고하고 푹 좀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뜻이 그것이라고 생각하고 정했습니다. 특별새벽예배도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들 모두 나와서 함께 특별새벽예배를 지킵니다.

 

다섯 번째 빠뜨리지 말고 찾아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신앙부흥운동이라고 하여 모여서 무엇을 했는가?’ 입니다. 부흥운동이라고 해서 소위 이 사람 저 사람 이말 저말 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좋은 말을 듣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 명심하셔야합니다. ‘옛날에 우리가 <그런 짓>을 하다가 망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편하게 하십시오. 행복하게 사십시오. 평강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었다가 나라가 망했으니 다시는 소위 잘난 사람들말 듣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로지 하나님 말씀만 들었습니다.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1).. 성경을 읽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2).. 성경을 읽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들었습니다. 3절에도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라고 말씀하시고 18절에도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로지 하나님 말씀입니다. ‘듣기 좋은 말,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런 말만 들었다가 우리가 망했으니 이제 우리는 오로지 알아 듣든지 못 알아 듣든지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듣다가 우리가 망했다. 이제는 우리가 안 좋아해도 하나님 말씀을 듣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그냥 읽고 듣는 것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뜻을 배워서 깨달았습니다. ‘에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 자리에 서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7-8)라고 말씀하고, 12절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고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12)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섯 번째,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흔히 우리도 신앙부흥운동을 했다.’ ‘우리도 성경사경을 했다, 성경공부를 했다는 그냥 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음 자세입니다. 마음자세가 너무 분명했습니다.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라는 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 말씀을 펴니 다 일어섰습니다. 까닭을 잘 아셔야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을 지내며 그렇게 된 이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조국에 돌아와 제사장이 그 귀한 말씀을 읽으시는데 그냥 앉아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 일어났습니다.

에스라가 위대한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6)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하나님 소리만 들어도 좋았습니다. 송축만 했는데 아멘 아멘 하고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라는 9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들으니 너무 좋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길이었고, 이것이 우리의 생명이었고 이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해서 우리가 그런 곤혹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느헤미야 8장 광경은 너무도 좋고 너무도 아름답고 참으로 부러운 광경입니다.

 

여러분, 부디 잘 아십시오. 신자의 가망, 신자 가정의 가망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지 알고 그렇게 사는 것 거기에 가망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보면서 더욱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이 나라는 이런 안타까움을 당하지 말아야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멸망하기 전에 국민들이 그 참혹한 환란을 당하기 전에 포로로 끌려가서 처절한 삶을 살기 전에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