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성령님이 오시는 곳 (사도행전 1:3-11)

분당소망교회 2020. 9. 20. 08:54

 

 

성령님이 오시는 곳

 

 

 

사도행전 1:3~11

 

 

위대한 하나님의 종 무디가 시카고 대화재로 모든 것이 다 잿더미가 되었을 때 한 고백이 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성령으로 채워달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당신을 나타내셨다. 나는 그 사랑에 감격하여 내게서 떠나지 마시라고 간구했다. 이제는 누가 온 세상을 준다고 해도 주의 임재하심을 맛 본 이상 그 이전의 상태로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 고백을 할 때 무디는 이미 세계적으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무디가 그처럼 절박한 상황에 오로지 단 한 가지, 성령 충만을 위해서 울부짖었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이 무디에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으면 이미 충만했던 사람이 또 다시 충만해지기를 그렇게 소원하고 간구하고 울부짖었을까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그것을 맛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믿으면서 때로는 신앙생활이 무기력하고 지루하고 예배당에 나오는 것이 발 무거워지고 기도하는 것이 큰 짐이나 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신앙생활의 의미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무디가 경험했던 그 성령 충만함이 있다면, 나라에 이런 저런 일이 있어도 자녀들에게 이런 저런 문제가 있어도 전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 그 성령 충만함을 내려 주실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다음에 40일간 이 땅에 계셨습니다. 40일이 지난 다음,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에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는 사흘 만에 다시 날아날 것이라는 기약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늘에 올라가기 전에 제자들에게 언제 다시 오실 것인지 기약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을지 생각해봅니다. 또 무슨 말씀을 하셨어야했을지도 같이 생각해봅니다.

당시 예수님을 처형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여전히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예수 한 사람 죽이고서는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잔당, 예수의 제자들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뿌리째 뽑아야 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 위기감 때문에 제자들은 모여도 문을 닫고 잠그고 은밀히 모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셔야 했을 것 같습니다,

얘들아, 이제 나는 하늘에 올라간다. 나도 없고 내가 3년 동안 늘 같이 가르친 열 둘 제자 중에 하나는 없어졌고 열 한 사람 너희들밖에 없는데, 너희들마저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 잠잠해질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 당분간 위험을 피하고 소나기가 그치고 난 다음부터 무엇을 하면 좋겠다.”

 

당시 예수님 제자들에게는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살기등등한 유대 지도자들을 피해서 당분간 예루살렘을 떠나 숨고 싶은 마음, 또 한 마음은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극도의 침체에 빠져 있었다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였으므로 제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정말로 메시아요 정말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그런 때에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영광의 나라로 올라가고 나니 얼마나 상기되었겠습니까? 신이 났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 거기서 대단한 권능을 가지고 내려오실 것이다, 그 권능을 우리들에게 나누어주실 것이다, 충분히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중 여러 가지가 긴가민가했습니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그 말씀도 정말일까? 아니면 상징적으로 말씀하시는 다른 뜻이 아닐까?’ 그때는 그랬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는 의심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틀림없이 오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다가온 것 중의 하나가 예수님이 죽으시기 바로 전에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외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서 각각 상당한 돈을 맡겼다. 그 주인이 돌아왔다. 계산을 했다. 그 중에 한 종은 열심히 일해서 상당한 이익을 남겼다. 그러나 다른 한 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받은 돈을 땅에 파묻어 두었다. 돌아온 주인이 그에 대한 보고를 받고 앞의 종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을 일에 충성을 다했으니 내가 큰 것을 맡기겠고 너는 큰일을 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뒤에 있는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말씀하시면서 지시하셨다, 저 악하고 게으른 종을 밖으로 내어 쫓아서 이를 갈면서 울게 하라.

이제 예수님께서 마치 타국에 가는 주인처럼 하늘로 올라가시는데, 제자들은 이때 곧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지고 돌아오실 때 나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고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권능을 받겠다는 생각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무언가 대단하고 큰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니 서둘러서 그런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늘 서두르기를 잘했던 베드로, 거기다 지난번에 큰 실수, 실패한 베드로는 더욱 더 만회하고 싶었습니다. 그 성격이 어디 가겠습니까? 빨리 큰일을 해서 예수님이 오시면 선생님, 제가 지난번에는 큰 실수를 했지만 이번에는 한 번 보십시오.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그런 마음과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나서지도 말고 무슨 일을 하려고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귀중한 말씀을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큰 일, 많은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작은 일을 하고 별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 괜찮습니다. 큰 일, 대단한 일을 한다고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큰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큰일을 맡기고 그 일을 할 만한 여러 가지 환경을 주셨습니다. 작은 일 할 사람은 아직은 아니고 또 그럴 만한 환경도 주시기 않으셨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신경을 쓰실 것이 없습니다. 다만, 큰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많은 일이든지 적은 일이든지 간에 내가 온 마음을 다해서 했는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나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기다려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다려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다릴 줄 알아야합니다. 별 것 아닌 말씀 같지만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지 말고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귀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할지라도 기다려라,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여러분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라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참 좋은 마음입니다. 나는 이렇게 좋은 궁궐에 사는데 하나님은 저 장막 속에 계실 수 없다고 생각한 다윗은 하나님의 종에게 물었습니다. 안 물어도 될 것 같은 일인데 물었습니다. ‘선지자님 제가 성전을 짓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의 종은 그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을 듯이 너무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하십시오.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됐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입니다. 우리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릅니다. 이것을 먼저 알아야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이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야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제사장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급했던 왕 사울은 더 이상 제사장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해서는 안 될 일인 제사 집전을 하고 맙니다. 제사를 안 지내는 것보다 나은 것 같은데 그것이 잘못된 것을 만들어갑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사울은 하나님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불순종하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 사울을 떠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좋은 일 같았는데, 해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법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때로는 하던 일도 그만 하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에게 저기서 일하라고 하시고, 어떨 때는 이 일은 그만하고 다른 일을 하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를 했는데 참 잘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할 일이 많았고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하던 일과 달리 가는 곳마다 길이 막혔습니다. 동으로 가면 될 것 같았지만 안 되었고, 서로 가도 남으로 가도 북으로 가도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 일행은 얼른,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고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계시는 마음입니다.

지금 나라 일에 걱정이 많습니다. 나라의 일뿐 아니라 가정의 일도 마찬가지이고 자녀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영안이 있으면 성령님께서,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면 걱정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인생인지라 걱정이 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원통하고 분통할 수도 있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평안을 얻게 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알았습니다.’ 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그러면 이제 아시아에서 그만하고 유럽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보따리를 싸서 유럽으로 넘어갑니다. 이것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사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잠잠하게 그냥 가만히 있으라, 어디에도 가지 말고 무엇을 하려고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하는가?’ 라는 것이 그 다음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이 인도하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4-5)

정확하게 표현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실 것인데, 성령님이 오시게 되면 그때부터 성령님의 인도와 지도를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상당히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처음에는 잘합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처음에는 잘 했습니다. 출애굽하고 난 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데,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가 여러분들을 인도하는데, 구름 기둥이 불기둥이 인도하면 따르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잘 따랐습니다. 아무리 오래 되어도 구름기둥이 불기둥이 안 움직이면 안 움직였습니다. 그러다 일주일 내내 열흘 내내 계속해서 구름기둥이 불기둥이 움직이면 같이 움직였습니다. 심지어는 한 달 일 년이든지 간에 구름이 머물러 있을 때에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나중에 실패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도 이런 일에 상당히 많이 실패합니다. 처음에는 충성도 합니다. 처음에는 기다릴 줄도 알고 참을 줄도 압니다. 겸손하기도 하고 온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사람이 바뀝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끝까지 가야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꼭 이 축복을 하고 싶습니다. 오래 기다릴 줄 아는 멋있는 모습을 가지십시오.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부모의 마음은 급할 것입니다. 건강도 그렇고 경제문제도 마음이 급하겠지만 기다릴 줄 알아야합니다.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기독교 신자들은 철저히 하나님 인도하심, 성령님 인도하심을 기다릴 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우선 되는 것 같고 잘 하는 것 같지만 금방 무너집니다. 말씀보다 앞서지 말고 기도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기도하면서 계속해서 여쭈어보십시오. 틀림없이 인도하십니다.

 

또한,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아주 희한하게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빨리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우리가 살짝 잘못된 사람 같고, 이런 설교 하는 목사가 무언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땅에 내려오신 성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정확하게 말하면 성령님이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하려고 나서지 말라, 여러분은 단지 성령님과 함께 가고 성령님의 뒤를 따라가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살기가 어렵습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물론 노력해야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경제활동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다 하려고 하면 힘들어서 못 삽니다. 어느 정도 하고 난 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성령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 저도 할 노릇 다했습니다. 애는 썼습니다. 이제 저는 철저하게 성령님 뒤를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하면 성령님은 기쁘시게 그 일을 하십니다. 신자들이 지극히 명심해야할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하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노인 목사님이 특강을 했는데, 노인 목사님이 칠판의 왼쪽 맨 위부터 오른쪽 맨 아래 끝까지 내가라는 말 하나만 끝까지 썼습니다. 그 글을 쓰시는데 한 10분은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이것 때문에 망한다, 내가 하려고 해서 망한다, 여러분이 내가라는 것을 이기면 제대로 목회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내가 하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결단코 성령님보다 하나님보다 주님보다 앞서지 말아야합니다. 항상 하나님 먼저 하십시오. 저는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하십시오. 비겁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앞장서겠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일이 급하다고 빨리 하고 싶다고 마음이 뜨겁다고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항상 성령님 먼저 나가십시오. 제가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은 그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중 가장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입니다. 틈나면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기도 못해도 괜찮습니다. 사실 기도 잘 하는 것이 위험합니다. 기도 못하는 것이 오히려 잘 하는 것입니다. 못하지만 한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2-14)

기다리면서 기도만 했습니다. 때가 될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여러분의 초점을 두십시오. 시선을 잘 두십시오. 아주 쉬운 일입니다. 이것을 못하여 지치고 힘들어 burn out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 교회에서 눈 여겨 보실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이 말로만 순종했는가?’ 라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가장 구체적인 일, 가장 실제적인 일, 현실의 일에 순종했다는 사실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 보궐선거입니다. 열두 명의 사도 중 가룟 유다가 빠져 나가 하나를 보충해야했습니다. 이 보충 선거는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일이고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도를 뽑는 일입니다. 목사들은 수없이 나오고 또 나옵니다. 추기경들, 교황도 수없이 나오지만 사도는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귀한 사도를 뽑는 일을 어떻게 했습니까? 마치 모라자라는 사람처럼 바보 같은 사람들처럼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24-26)

이렇게 하여 맛디야가 사도가 되었습니다.

왜 이들이 그런 방식을 선택했을까요? 다른 방식을 몰라서 그랬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들도 다 압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바보 같은 방식을 선택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제비뽑기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지 간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철저히 믿는 마음입니다. 그것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이런 마음 이런 믿음을 가진 분이 계십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 속에는 성령님이 이미 충만하십니다. 성령님은 이런 사람들 마음속에 가십니다. 성령님은 채비된 곳, 준비된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울도 처음에는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온유하고 겸손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서 영으로서 사울에게 들어가셨습니다. 사울에게 들어오신 하나님의 영, 성령님은 사울에게 온갖 권세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놀라운 용기와 담력과 뛰어난 지략을 주셨습니다. 그 당시 이웃이던 암몬은 대국이었고 이스라엘은 오합지졸 작은 나라였습니다. 지금 우리니라 상황과 같습니다. 수출 규제니 온갖 소리를 다해도 꼼짝하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걱정이 많습니다. 사울 당시는 지금 이보다 더했습니다. 암몬이 이스라엘을 공격한다고 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암몬 나라에, 뭐든 달라고 하는 대로 다 드릴 테니 제발 공격만 하지 말라 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암몬은 너희들 눈을 다 빼서 오면 평화협정을 받아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대국 암몬을 사울이 오합지졸로 통쾌하게 승리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니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라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어떻게 다 성령이 충만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성령 충만하시고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하여 함께 기도하면 그 어떤 나라도 이 나라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나라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건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닙니다.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그 무기력하던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님이 오시니 모든 것이 다 달라졌습니다.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하던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오시니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야말로 능력의 종들이 되었고 권능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오셨던 그 성령님이, 그 무력하던 제자들에게 오셨던 성령님이 지금 여러분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과 함께 있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이 문을 열고 여러분이 성령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모시려고 하면 기꺼이 들어가십니다. 절대로 거절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오십니다.

 

하나님을 찾고 또 찾으십시오. 바보처럼 찾으십시오.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이 했던 것처럼 바보처럼 하나님을 찾아보십시오. 예수님께 가고 또 가보십시오. 모자라는 사람처럼 그냥 가십시오. 성령님을 부르십시오. 응답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성령님을 한 번 불러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오십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깜짝 놀랄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미신이 아닙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세상이 달라집니다. 가정이 달라지고 내가 달라지고 우리 사랑하는 딸 아들들이 달라집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그 일이 있기 이전에 여러분이 성령님 오시옵소서라고 부르는 순간에 여러분 마음속에 평화가 생기고 행복이 생깁니다. 기독교인들이 최고로 누릴 수 있는 것이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신다하고 선포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내가 기도하고 요청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믿고 성령님을 찾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부르는 그 자체만으로도 여러분은 넘치도록 행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