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이기 위해서
사도행전 2:1~1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난 뒤에 사흘 만에 살아나시고 그 이후에 40일을 이 땅에 계셨습니다. 40일 후에 하늘로 승천하셨는데, 그때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기다리라고 마지막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5) 라는 약속입니다. 성령 세례가 있을 때까지 여러분들은 어디 가지 말고 예루살렘에 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들1:8) 라고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아주 쉽고 정확하게 번역하면, 내가 여러분들에게 성령님을 보내겠다. 그리고 내가 보낸 성령님을 받으면 여러분은 권능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온 예루살렘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이 내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여러분을 그렇게 만들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어느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합니다. 이때 모인 제자들이 약 120명 정도 되는데 이 사람들을 가리켜서 ‘120문도’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 제자들이 유대인 최대 명절인 오순절에 예루살렘 성전 한 곳에 모였습니다. 성전 한쪽에서 모였습니다. 그렇게 모였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먼저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고, 그 다음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있는 것을 제자들이 모두가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제자들이 모두 다 다른 언어 즉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말했습니다.
오순절에는 전 세계의 유대교인들이 모입니다. 외국에서 온 유대교인들이 외국말을 배운 적이 전혀 없을 그리고 외국에도 한 번 나가보지 못했을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사는 외국에서 쓰고 있는 외국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랍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 외국어만이 아니라 여러 제자들 각각 다른 나라의 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아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9-11절)
그때 예루살렘에서 모인 예수님 제자들의 모임을 가리켜서 초대교회라고 말합니다. 최초의 기독교 교회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교회이기 위해서 있어야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때로는 신문이나 언론에서 목사의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중에는 좀 미안한 소리이지만 교회 아닌 교회가 많이 있고 목사가 아닌 목사가 상당히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신문이나 TV에서 교회이다, 목사라고 하면 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 오늘 교회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맨 처음에 말씀하시는 것은 기도가 있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맨 처음 시작된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이 무엇을 했는지 눈으로 다시 한 번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12절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올라간 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13절에는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는 말씀으로 보아 늘 다락방에 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여자 성도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의 동생들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도만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또 사도행전 2장 4절에서는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라고 말씀하시는데,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자기네들끼리 모였고, 들을 사람 자기들밖에 없는데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그때 각각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외국어로 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또 그리고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7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상한 언어로 기도를 하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13절).. ‘새 술’을 마셨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제자들이 기도하는데 와서 보니 자기들 나라 말로 기도하더라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전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여서 오로지 기도했고, 성령님이 오셨을 때에도 교회는 기도했습니다. 교회가 교회이기 위해서 있어야할 것은 첫 번째가 기도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다가 성전 안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을 성전 밖으로 쫓아내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라고 하면서 기도가 없는 교회는 그곳이 아무리 교회 모양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하더라도 교회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신자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신자가 참된 신자가 되기 위해서 있어야할 것은 기도이다, 기도하지 않는 신자는 아무리 신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참된 신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기독교인이 될 때 있었던 일을 기억해보십시오. 사울이 기독교인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길에서 번갯불 같은 강한 빛에 의해서 시력을 잃어버립니다. 졸지에 시력을 잃은 사울은 사람들 손에 이끌려서 다마스쿠스로 들어갑니다. 며칠 째 보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때, 하나님께서 아나니아 라는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다마스쿠스의 어떤 집으로 가거라. 거기서 사울을 찾으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그 사람이 기도하는 중이다.’였습니다. 그 말씀은 사울이 이제는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 신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중에 기도하는 사람을 진정한 기독교 신자로 인정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 까닭은, 본인들은 알지 못하지만 어둠의 속삭임에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기도 해봤더니 어떤 결과가 있더냐? 응답이 제대로 되더냐? 기도해봐야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더 많지 않느냐? 일은 당신이 기도하는 데에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여기에 따라서 결정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여 기도할 것이 있느냐? 그냥 내가 바르게 하고 회사 생활 잘 하고 내가 사업 잘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때문에 신자들의 영적 상태는 정확하게 기도로 진단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신자들은 기도하고, 기도에 대해 긴가민가하는 사람들은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여러분들이 제대로 아셔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에게 있어야할 기도가 진정한 기도인지 아닌지의 문제와 관련해서, 오로지 예배나 모임 때만 기도 순서에 따라서 한 번 두 번 하는 사람의 기도는 기도로 인정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 예로 여러 교회들이 모여 있는 정통교단 중에서 어떤 교단은 예배 중에 주기도문 기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예배 중에, 모임 중에 하는 주기도문은 기도가 아니라 중언부언일 가능성이 많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가 있어야하고, 신자들이 모양만, 이름만이 아니라 진정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교회가 교회이기 위해서 있어야할 것은 성령님이 계셔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순절 이전에도 제자들은 모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제자들이 모인 그 모임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장, 2장 이때부터 즉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뒤부터 비로소 교회라고 합니다. 이전의 제자들의 모임, 그 이후의 제자들의 모임, 하나는 교회이고 하나는 교회가 아닌데, 핵심적인 차이는 한 쪽은 예수님은 계셨지만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고, 다른 한 쪽은 예수님은 안 계시지만 성령님이 오셔서 계셨다는 이 차이밖에 없습니다.
초대교인들에게 성령 강림, 외국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 번도 배운 적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제자들에게 외국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런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여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행2:1-3) 라는 말을, 사람들이 아무 근거나 까닭 없이 믿겠습니까? 자기네들끼리 말한 것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안 믿고 그냥 끝나고 맙니다. 객관적으로 사람들이 인정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자들들 중 어떤 사람은 바데 언어, 어떤 사람은 메대 언어, 어떤 사람은 엘람 언어, 브루기아 언어, 밤빌리아 언어를 하니, 적어도 순례객 중 자기의 나라 말을 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술 취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자기 나라 언어로 하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런 기적은 하나님만이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정도는 유대인들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모인 저 곳에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이 오셨다는 것을 확인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모인 그 곳에 성령님이 임하셨고 바로 그 모임을 교회라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멋진 교회 건물이라도, 찬송도 하고 심지어 기도를 잘해도 성령님이 계시지 아니하면 교회라고 할 수 없고, 이것저것 다 갖추어도 성령님이 계시지 아니하면 참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이것저것 다 잘해도 성령님이 임하지 않는 신자는 참된 신자가 아닙니다. 반대로 모인 곳이 시원찮고 사람들도 몇 사람 없어도, 뭘 제대로 못해도, 번듯한 건물이 아니라도 성령님이 함께 계시는 그곳을 교회라고 하고 이것저것 못해도 성령님이 임하신 그 사람을 신자, 성도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성령님이 특별하게 계시는 곳입니다.
아주 오래전 출애굽기 29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거기서 너도 만나고 이스라엘 자손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만날 것이다. 그 곳은 바로 회막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래 전 때는 회막이고 예수님 당시에는 성전이고 오늘날은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을 만나겠다, 특별히 내가 그곳에 있겠다, 거기 오면 내가 여러분 각각을 특별히 만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아십시오. 교회는 하나님이, 성령님이 특별히 계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드릴 주의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는 조심해야합니다. 교회가 시원찮고 별 볼일 없는 것 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좋지 않습니다. 말도 조심해야하고 행동도 조심해야하고 생각까지 조심해야합니다. 꼭 조심해야합니다.
이것을 명확하게 보이신 것이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입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땅이 팔리면 땅값 전부를 바치겠다고 교회에 약속했습니다. 땅이 팔렸습니다. 교회에 돈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당초 약속대로 땅 값 전부를 바치지 않고 일부를 떼고 나머지만 바쳤습니다. 문제는 그러면서 일부만 바친 그 돈을 전부라고 거짓말 한 것,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참 딱합니다. 안 바쳐도 됩니다. 바치겠다고 약속했다고 할지라도 돈 받으면 바치는 것이 아깝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것도 인정해야합니다. 조금만 바치게 되었다면, 교회에 찾아와서 ‘목사님 다 바치려고 했는데 노후 자금을 계산해보니 모자랄 것 같아서 조금만 바칩니다.’ 이렇게 해도 됩니다. 정 걱정되면 목사님을 찾아가서 ‘제가 도저히 다 못 바치겠습니다. 비상금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만 바칠께요, 죄송합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저에게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 개척할 때 어떤 분이 좋은 땅을 내놓았습니다. 문서도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신문에 그 땅이 개발된다고 보도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성도님이 찾아와서 죄송하다, 문서를 돌려 달라, 대신 돈을 얼마를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문서를 돌려드렸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거기 지금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했는가? 라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되는데 끝까지 거짓말만 하다가 참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대해 베드로가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행5:4) 라고 말하면서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5:4) 라는 말을 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교회에 성령님께서 계시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교회에,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여러분 가정에 오실 때 손님으로는 절대로 안 오십니다. 유교에서 제사 지낼 때 ‘귀신 손님이 오시다가’ 걸리면 안 된다 하여 빨랫줄을 치웁니다. 귀신 손님들 먹을 음식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으로, 성령님으로 오실 때 절대로 손님으로는 안 오십니다. 주인으로만 오십니다. 한 번 얻어 드시고 가는 것으로는 하나님은 절대로 안 오십니다. 오셔서 모든 일을 전적으로 주관하십니다. 성도들에게도 성도들의 가정에도 성령님이 오시면 그렇게 일하시고 더 더욱 교회는 그렇게 하십니다. 물론 일을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장, 어머니가 하고 교회에서는 교회 일꾼들이 합니다. 그처럼 사람들이 일하고 지도자들이 결정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성령님 뜻대로 다 이루어 가십니다. 이 눈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이상하게 왜 우리집에 일이 안 풀리나? 생각될 때가 있을 때 얼른 보십시오.
만약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성령님의 생각과 다르게 결정하고 일하는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한 결정, 사람들이 한 일 전부를 헛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잘 기억했다가 잘 보십시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구나,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셨구나...” 알아야합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교회를 인도하시는 방법이고 성도들을 인도하시는 방법이고 성도들의 가정을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누가, 어떤 사람이 그렇게 했다고들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계시기만 한다면 성령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이렇게 하신다고 하면 그것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신자들이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일처리 제대로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해도 겸손하게 성령님의 뜻을 묻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주변의 저 사람을 잘 보십시오. 이상하게 사업도 잘 하고 돈도 제법 모았습니다. 멍청하게 보여도 괜찮습니다. 못나게 보이고 판단도 제대로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못했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기만 하면 그 모든 것을 커버하고도 남습니다. 그것을 알아야합니다. 모르고 어쩌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나는 똑똑하기도 하고 말도 잘하고 판단도 잘 하고 일도 잘한다는 축에 속하는가? 아니면 일 잘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똑똑하든지 아니든지 간에 하나님께 묻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사람인가? 아주 중요한 이 문제를 각각 정직하게 판단해보십시오. 진정한 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똑똑하지도 못하고 잘나지도 못하고 결정도 제대로 못하고 마치 못난 사람들,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이지만, 그러나 끊임없이 기도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교회, 그 교회가 진정한 교회이고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신자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내가 훨씬 공부 잘했고 대학도 훨씬 더 좋은데 나왔고, 저 사람은 나보다 훨씬 못했는데 저 사람이 왜 저렇게 잘 되었는가? 잘 아십시오. 하나님께서 권세 주시고 능력 주시면 얼마든지 그렇게 됩니다. 혼자서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이상하게 그것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여러분,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떤 가정이 될 것인가? 이것은 여러분들에게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예정하신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시기도 하고 저렇게 해주시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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